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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

       

       

       “···여기군.”

       

       

       하율은 인기척이 없는 뒷골목을 바라보았다.

       

       광원이 없어 인기척은커녕 앞도 잘 보이지 않는 뒷골목.

       

       저 멀리 화려한 야경이 눈을 따갑게 하는 도시와는 다른 세계. 그녀는 그런 장소에 제 발로 걸음을 옮기며 의문을 표했다.

       

       

       “왜 아무도 없지? 장소도 이상해. ···뭐지?”

       

       

       분명 이곳이다.

       

       상부에서 급한 업무가 생겼다며 주었던 휴가마저 회수해가며 보낸 장소.

       

       굳이 나를 현장에서 떨어뜨려 놓으려고 휴가까지 쥐여줬으면서 다시 부르다니.

       

       짜증이 치솟다 못해 폭발하려고 했지만 어떻게든 억누르고 지정한 장소로 왔더니, 이게 뭔가.

       

       무언가 있기는커녕 인기척도 없다. 설명해줄 사람 정도는 있어야 할 텐데?

       

       ···촉이 왔다. 무언가 있다고.

       

       

       “스으읍···. 후우···.”

       

       

       심신의 안정을 찾기 위해 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여태껏 수많은 초인 범죄를 겪어온 경험상, 갑자기 불안해진다면 언제나 준비를 철저히 해두어야만 했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사실이 있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이전 사건들의 경험을 통해 수상하다는 사실을 눈치챘다는 뜻이니까.

       

       

       “상부에서 지정한 위치에서 이런 기분 나쁜 감각이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

       

       “역시 수사관이라 그런가, 감이 좋네요? 시우 군을 보는 것 같았어요.”

       

       “?!”

       

       

       분명히 인기척은 없었는데!

       

       하율은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장소를 벗어나기 위해 다리를 박차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인기척도 없이 이런 장소에서 내게 말을 걸다니. 수상하기 그지없다.

       

       당장 제압하고 무슨 일인지 들어야···!

       

       

       “이런, 움직이지 마세요. 조금 더 움직이면···죽어요?”

       

        “···하, 젠장.”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피고있던 담배의 연기 사이로, 얇은 실들이 보였으니까.

       

       실들이 나를 감싸듯 펼쳐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실이겠지.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더 움직이면 정말 죽어버릴 거라고.

       

       많이 본 실이다. 휴가를 가기 전까지 뚫어져라 쳐다봤으니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지.

       

       아라크네의 실이다.

       

       젠장.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이깟 실들은 나를 건드릴 수조차 없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수상한 낌새를 보인다면 순식간에 목이 달아날 게 뻔했다.

       

       ···끝났군.

       

       

       “···아라크네는 빌런들만 죽이는 거 아니었나? 하, 이래서 빌런들은. 수틀린다면 뭐든지 할 녀석들보고 무슨···.”

       

       

       내가 거슬렸던 걸까.

       

       아라크네를 쫓으며 위험할 거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설마 추격을 멈춘 상황에서 보복이 들어올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젠장, 여기서 죽는 건가? 매일같이 잔소리를 퍼붓던 클레어의 목소리가 문득 떠올랐다.

       

       위험한 짓 좀 그만하라고 매일같이 시끄러웠는데.

       

       옛 동료이자 친구였던 그를 잃은 사건이 또 일어날까 봐 걱정했던 걸 걱정하지 마라며 대충 넘겼었는데.

       

       ···또 잔뜩 울어버리겠군. 젠장. 더 울리지 않기로 했었는데.

       

       

       “안녕하세요, 수사관님. 오랜만이네요?”

       

       

       뚜벅, 뚜벅.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사람 하나 없는 골목이기에 발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

       

       어두컴컴한 골목길에서 벗어나 내게 다가온 그녀의 모습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보아도 괜찮겠지.

       

       

       “···역시 너였구나, 아르테 이시스. 네가 범인이었어.”

       

       

       내가 계속해서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녀가, 불길한 눈동자를 살며시 뜬 상태로 내게 다가왔다.

       

       그녀의 웃음이, 그 불길한 눈동자와 합쳐져 나를 비웃는 것 같이 느껴졌다.

       

       

       “많이 귀찮았어요, 수사관님. 알리바이가 있는데도 저를 귀찮게 하시다니.”

       

       “···.”

       

       “제가 당신을 과연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시겠어요?”

       

       

       안봐도 뻔하지.

       

       귀찮은 방해물을 제거하고 싶은 건 모든 인간의 본능이고, 어찌 보면 당연한 행동이다.

       

       그게 사람일 경우 대부분은 그들을 피하거나, 교정하려 들거나, 참지만···.

       

       빌런들은 다르다.

       

       굳이 어렵게 갈 필요 없이, 치워버리면 그만이니까.

       

       

       “죽이겠지. 젠장.”

       

       “아뇨, 살릴 건데요.”

       

       “뭐?”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죽이지 않는다고? 왜?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답니다. 저는 당신을 죽일 생각이 없어요.”

       

       “···그럼 왜 나를 공격했지?”

       

       “어허, 공격이라뇨. 제압이라고 해주실래요? 다치신 곳도 없으면서.”

       

       

       퉁명스럽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가증스러웠다.

       

       결국 이 녀석도 빌런이다. 아직 나를 살려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무언가의 계획이 있기에 그럴 터.

       

       빌런에게 생사를 저당 잡힌 상황에 기분이 저 아래로 처박히는 것 같았다.

       

       

       “···뭐, 별건 아니고요. 당신에게 한가지 제안을 하고 싶어서요.”

       

       “제안?”

       

       “네, 제안. 어렵지는 않아요.”

       

       

       휘리릭.

       

       순식간에 내 주위에 떠다니던 실들이 내 몸을 휘감더니 나를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

       

       “아, 움직이시면 안 돼요? 익숙하지 않아서, 잘못하다간 근육이 찢어질지도 모르니까요.”

       

       

       병원신세 지기 싫으시면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에요.

       

       그렇게 말하는 아르테의 모습에 힘을 쭉 빼버렸다.

       

       반항은 의미가 없었다. 이 상황에 반항한다고 한들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할 게 뻔했다.

       

       죽거나,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을 경험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무슨 제안이지?”

       

       “···어렵지는 않아요? 자아, 저와 함께 가보자고요.”

       

       

       그 이후의 일은 생각하기도 싫다.

       

       끔찍한 감각.

       

       마치,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꿈속에서 구름 위를 거니는 것 같은 감각.

       

       타인에게 온몸을 맡기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불쾌한지, 하율은 똑똑히 깨달았다.

       

       인형사의 실에 묶인 인형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다르지도 않은가? 정말 실에 묶여서 강제로 끌려다녔으니까.

       

       믿을 수 있는 동료에게 맡겨도 모자란 목숨을 빌런에게 맡기게 되다니. 참으로 기구한 팔자였다.

       

       

       “자아, 도착했어요. 여기에요.”

       

       “여기는, 어디지?”

       

       “위버멘쉬의 은신처 외곽. 남은 잔당들의 절반이 있는 장소에요.”

       

       “···!”

       

       

       무엇을 하려는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율은 이곳이 어떻게 될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문득 처음 아라크네 사건을 맡게 된 계기였던 산장의 그 끔찍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자아, 저길 보세요. 빌런들이에요.”

       

       “···빌런들?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뭐긴요. 보면 아시잖아요?”

       

       

       도대체 뭘 보여준다는 건지.

       

       너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아 무심코 눈을 찌푸리며 바라보았다가,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역겨운 행위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걸 내게 보여주는 이유가 뭐냐. 나는 저런 건 이미 숱하게 보아왔어. 내게 충격을 주려 했던 거라면···.”

       

       “아뇨, 충격 같은 게 아니에요. ···저 사람들, 만약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건가요?”

       

       “뭐?”

       

       “당신이라면, 저들을 어떻게 할 건가요?”

       

       “이상한 걸 묻는군. 당연히 체포···.”

       

       “체포한 이후에는요?”

       

       

       불쑥.

       

       역겨운 광경을 담던 내 눈이 범죄현장을 가리는 아르테의 불길한 두 눈동자를 담았다.

       

       마치 악마의 속삭임과도 같이, 그녀가 내게 속삭였다.

       

       

       “체포한다면, 그들은 감옥에 가겠죠.”

       

       “당연하지. 죄를 저질렀으면 죗값을 치러야 하는 거다.”

       

       “피해자는 만족하던가요?”

       

       “뭐?”

       

       “빌런들에게 당했던 피해자. 그들과 그들의 유족들은 무어라 하던가요?”

       

       “그, 그건···.”

       

       

       그녀의 질문에 수없이 많이 만나 온 피해자의 원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한 두명이 아니다. 지금껏 만나온 자들은 내게 탄원했다.

       

       어째서 형량이 저것밖에 되지 않느냐. 어째서 저들은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느냐.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수많은 피해자들의 말이 귓가에 떠돌았다.

       

       

       “당신도 있지 않나요? 빌런들에게 주변인이 크게 다친 경험이. ···동료가 죽었다던가?”

       

       “너, 네가 그걸 어떻게···!”

       

       “수사관을 십 년 넘게 해오셨다면 당연한 거죠. 그렇죠? 당신의 주변인을 다치게 한 그 빌런, 지금은 뭘 하고 있나요?”

       

       “복역 중이다. 그런 걸 왜···!”

       

       “아하. 그러시구나. ···정말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저 사람, 어딘가 익숙하지 않나요?”

       

       

       아르테에게 무언가 소리치려던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숨이 끊어진 피해자를 가지고 노는 저 빌런의 모습이, 그의 얼굴이 낯에 익었다.

       

       

       “서, 설마···.”

       

       “복역 중? 아하하. 그렇다면 저기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그,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 협회의 수사관을 죽였을 텐데! 초인을 죽인 범죄자라고!”

       

       “당신도 알고 계시잖아요? 빌런도 사회로 복귀할 수 있다는 걸.”

       

       “···!”

       

       

       알고 있다.

       

       극악의 생존율을 뚫고, 최전선에서 일정 기간을 복역하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설마. 설마 정말로···!

       

       

       “옛 동료를 죽인 범죄자가 또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있네요. 이번에는 규모가 훨씬 큰 범죄조직에 속한 상태로.”

       

       “···.”

       

       “아아, 하지만 어쩌죠? 빌런은 사로잡혀도 운이 좋다면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을 텐데. 한번 살아남았으니, 두 번은 더 쉽겠죠.”

       

       “···.”

       

       “불쌍한 피해자는 늘어만 가고, 시민의 고통은 하늘을 찌르겠네요!”

       

       

       두 눈에 들어오는 끔찍한 광경과 뇌리에 각인된 끔찍한 광경이 겹쳐 보였다.

       

       피해자는 다르다. 하지만 가해자는 같다.

       

       사람을 죽여놓고 버젓이 웃던 괴물이, 사회에 풀려나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냐.”

       

       “아하하, 아하하하! 드디어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이 생긴 건가요?”

       

       “말해! 어서! 뭘 말하고 싶은 거냐!”

       

       

       저 멀리의 빌런들에게 들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크게 웃던 아르테가 순식간에 웃음을 그치며 내게 말했다.

       

       

       “이하율 수사관.”

       

       “···.”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겠습니다.”

       

       

       실들이 서서히 풀려나갔다.

       

       팔과 다리의 실이 풀려나가 도망칠 수 있게 되었음에도 나는 못에 박힌 듯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끔찍한 광경을 억지로 바라보게 하던 목에 감긴 실들이 풀려나도 나는 여전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라크네는 당신을 원합니다.”

       

       “···너희가, 나를?”

       

       “같이 사회의 쓰레기들을 청소하지 않겠나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람은 어째서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하는건가요?

    사장님 나빠요!!!!!

    아, 그리고 지금껏 받아온 팬아트를 공지 하나에 몰아넣었습니다!!!

    앞으로 받는 팬아트들은 모두 그곳에 넣을 예정이에요!

    다음화 보기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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