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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

       아카데미로 복귀했다.

       

       힌드라스타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기숙사로 도망쳤고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마차에서 내리자 올리시아가 쪼르륵 달려와 나를 맞이했다.

       

       “어서오세요, 디안 님.”

       

       “별일 없었지?”

       

       “교장 선생님께서 오셨서요. 디안 님이 어디 갔는지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 왜 나를 찾는지는 모르고?”

       

       “중간에 도망치셔서 못 여쭤봤어요.”

       

       올리시아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망쳤다고?”

       

       “차라도 드시라고 안으로 모셨는데, 제가 차를 타오는 사이에….”

       

       올리시아는 선뜻 다음 말을 하지 못하고 곤란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뭔데?”

       

       “그게….”

       

       주저하며 올리시아가 입을 열었다.

       

       “막 빨래를 마친 디안 님의 셔츠 냄새를 맡고 계시더라고요….”

       

       “뭐라고? 뭔 소리야?”

       

       “말 그대로요. 쪼그리고 앉아서 바구니에서 디안 님 셔츠 한 장을 꺼내서는 코를 박고 계셨어요. 뭐하시냐고 물으니 도망치셨어요.”

       

       이건 도대체 뭔 상황이야? 키르린이 뭘 어쩌고 어째?

       

       순간 셀린느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키르린을 주의하라고 했었지.

       

       혼자서 무슨 엉뚱한 꿍꿍이를 꾸미고 있을지 모른다고.

       

       그 다크엘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나저나 라이너스 경의 집에는 잘 다녀오셨나요?”

       

       “어. 너도 갔으면 좋았을 텐데. 걔 엄청나게 잘 살고 있더라.”

       

       라이너스네 대저택을 설명하자 올리시아의 눈이 반짠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런 꿈만 같은 집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세상에…. 언젠가 그런 집에서 사는 게 제 일생일대의 소원인데….”

       

       “그럼 열심히 해서 공작이 되면 되겠다. 그런 곳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대귀족이니까.”

       

       “제가 아니라 디안 님께서 귀족이 되시는 편이 더 빠를 걸요?”

       

       그건 그렇지. 처음에 황성에서 내게 하사하려던 작위가 공작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그것을 거절하고 떠났기에 지금 와서 다시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달라 해도 황제가 마다할 것이고.

       

       그리고 귀족이 된다고 마냥 행복한 건 아니야. 

       

       작위가 높아질수록 거기에 따르는 제약이 엄청나게 많아지지.

       

       마치 현생의 재벌들이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아 아주 조금의 일탈에도 뭇매를 맞는 것과 비슷하달까.

       

       어중간한 규모의 중소기업 사장들의 행복도가 가장 높은 것처럼 여기서도 적당히 벌어먹고 간섭 안 받고 사는 게 최고다.

       

       

       # # # # #

       

       

       월요일은 전체회의. 

       

       대회의실에 키르린 교장 주관으로 이론학과와 전투학과, 그리고 행정실까지 모두 집합하는 자리.

       

       내가 막 부임해서 처음 들어갔던 회의도 바로 이 전체회의였다.

       

       전투학과 교수들과 웃고 떠들며 회의실로 들어가자 이미 이론학과 교수들은 착석한 상태.

       

       저 사람들은 항상 회의 이십 분 전에는 미리 와서 회의 내용을 검토하고 옷매무새도 점검하고 참 부지런하다.

       

       그에 반해 우리 전투학과는….

       

       “야, 브로그! 내가 주말에 괜찮은 술집을 찾았는데 말이야. 말통 하나를 그 자리에서 통째로 마시면 술값을 공짜로 해준다더라!”

       

       전투장비교수 드워프 카자다르가 큰소리로 말하자 비무장전투교수 오크 브로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오늘 당장 간다!”

       

       “좋아. 모턴! 너도 같이 가자!”

       

       “뭐… 좋습니다.”

       

       “오렌디! 웨이버! 갈 거지?”

       

       “당연히 가야죠.”    “좋습니다!”

       

       남자 교수들이 동의하자 잔뜩 기분이 좋아진 카자다르가 음울한 표정의 제네브를 돌아봤다.

       

       “얌마! 너도 오늘은 빠지지 말고….”

       

       “안 갑니다.”

       

       카자다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네브가 단칼에 거절했다.

       

       “저 염병할 새끼는 매번 빠지네. 나머지는! 안 갈 사람 손 들어!”

       

       뒤따라 들어오는 여자 교수들에게 카자다르가 소리치자 애나 교수가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손을 들었다.

       

       “저, 저는… 아이들을 돌봐야 해서….”

       

       “뭐? 말이 네 애냐?! 어?! 하루 빠진다고 문제 안 생겨!”

       

       “저는 어차피 술도 못 마시고 재미도 없어서… 가봐야 분위기만 흐릴 게 뻔해요…. 안 갈래요….”

       

       “에잉, 쯧쯧. 펠리미아랑 린더스! 너희는 가는 것으로 알고 있겠다!”

       

       “린더스가 아니라 리나라고 불러달라니까요? 일단 저도 참석.”

       

       “나도요.”

       

       펠리미아가 손을 들며 동조했다.

       

       “그럼 제네브랑 애나 빼고는 다 가는 거냐? 야, 디안!”

       

       “나도 참석. 공짜로 술 준다고 하면 티라엘렌까지도 가지.”

       

       금요일도 아니고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에 갑자기 회식 약속을 잡는 전투학과 교수들.

       

       그런 우리를 보는 이스메라 교수의 얼굴에 지독한 경멸감이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이스메라 교수님.”

       

       자리에 앉으며 인사하자 맞은편의 이스메라 교수가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호호 웃었다.

       

       “어서와요, 디안 교수님. 아침부터 다들 활기가 넘치시군요. 역시 전투학과다워요.”

       

       큰 공간에 책상이 서로를 마주보며 기다랗게 배치되어 있고 각편에 이론학과와 전투학과가 앉는다.

       

       가장 끝 중앙의 상석은 키르린의 자리. 그 좌우측이 나와 이스메라 교수. 그리고 저 끄트머리에 행정실장이 배석한다.

       

       그래서 싫든 좋든 이스메라는 월요일 아침마다 나와 겨우 2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 얼굴을 맞대야만 한다.

       

       “그런데 디안 교수님. 방금 그건 어떤 의미인가요?”

       

       회의 때 보고할 자료들을 뒤적거리고 있으려니 이스메라 교수가 물었다.

       

       “어떤 거요?”

       

       “공짜 술이라면 티라엘렌까지도 간다는 말씀이요.”

       

       “아, 그거요. 티라엘렌은 여기서 굉장히 멀리 떨어진 곳이잖아요. 그만큼 공짜로 마시는 술이 좋다는 겁니다.”

       

       “그렇군요. 참으로 적절한 비유 같습니다. 하지만 티라엘렌에는 술이 없지요. 엘프들의 숲이니까요.”

       

       “맞는 말씀이십니다. 고귀한 엘프들은 정신을 좀먹는 음료와는 거리가 먼 분들이지요.”

       

       그때 키르린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교장님.”

       

       “아, 으응….”

       

       교수들이 인사했지만 키르린은 안절부절 인사를 받는둥마는둥했다.

       

       왜 저러나 하고 보니 키르린이 계속 나를 힐끔거리면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마 어제 우리 집에 찾아왔다가 내 셔츠로 이상한 짓을 한 것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키르린이 자리에 앉으며 회의가 시작되었다.

       

       우리 전투학과에서는 야외실습장 개선사업의 진척도를 보고했다.

       

       다음주중으로는 모든 공사가 완료. 여름의 무더위 전에 아이들이 충분히 실습할 여건을 조성할 수 있음.

       

       이론학과에서는 전적지 답사 계획의 초안을 제시했다.

       

       “올해 전반기 답사할 장소로는 이브로니크 성이 적합하다고 생각됩니다.”

       

       이스메라가 보고서 초안을 보며 설명했다.

       

       “이곳은 과거 4년전쟁 때 마왕군에게 점령당한 인간연합의 성으로, 당시 특임대원으로 활동하던 라이너스 경이 재탈환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괜찮은 생각이야. 이브로니크 성이라면 장차 제국의 특임대원이 될 우리 아카데미 학생들이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겠지.”

       

       키르린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동은 가능하다면 차원문을 이용하고 싶은데요. 마법대응교수님. 가능하신가요?”

       

       “가능합니다.”

       

       이스메라의 물음에 오렌디가 시원하게 대답했다.

       

       “행정실장님. 점심시간이 애매하게 걸려서 혹시 급식소에서 도시락을 준비할 수 있나요?”

       

       “물론이죠.”

       

       “좋습니다. 이브로니크 성 일대의 풍경이 좋으니 거기서 도시락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오후에 복귀하는 하루 일정으로 진행하면 좋을 듯합니다.”

       

       이스메라는 능숙하게 관련된 사항들을 조율해 나갔다.

       

       그런데 나는 좀 다른 생각인데….

       

       “전투수석께서는 따로 의견이 있으신지요?”

       

       때마침 이스메라가 내게 묻자 아까부터 품고 있던 의문을 제기했다.

       

       “제가 궁금한 게 있는데요. 거기 가면 제대로 답사는 할 수 있습니까?”

       

       “무슨 뜻이죠, 전투수석교수님?”

       

       “제 기억으로는 성벽도 반쯤 무너지고 들어가는 다리도 엄청 위태로웠는데…. 진입로 쪽에 깔린 독기가 완전히 사라졌는지도 알 수 없잖아요. 규모를 알 수 없는 지뢰지대도 있고…. 해서 아무리 특수임무 아카데미 학생들이라지만 좀 위험한 거 아닐까 해서요.”

       

       그러자 교수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서로를 쳐다봤다. 

       

       “독기는 뭐고 지뢰지대는 또 뭐야…? 그런 게 있어?”

       

       무슨 분위기지? 내가 말실수를 했나?

       

       이스메라 교수가 매혹적인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전투수석교수님께서 착각을 하신 듯하군요. 이브로니크 성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예? 그런 곳이 아니라뇨? 똑같은 이름의 다른 성이 또 있습니까?”

       

       “물론 이브로니크 성은 하나뿐입니다. 그리고 아카데미 학생들도 충분히 답사를 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이기도 하고요. 다른 의견은 더 없으신지요?”

       

       “아, 예….”

       

       잠시 턱을 긁적이던 나는 옆에 앉은 펠리미아를 옆구리로 툭툭 찔렀다.

       

       “설명 좀.”

       

       “이브로니크 성은 관광지예요, 수석교수님.”

       

       “뭐? 관광지?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이 돼요. 연간 수만 명이 찾는 굉장히 유명한 곳인데요. 저도 작년에 다녀왔는 걸요.”

       

       “진짜?”

       

       “네에. 승강기까지 설치해서 편하게 올라갈 수 있어요.”

       

       “승강기…?”

       

       정말로 이브로니크 성이 관광지가 되었다고?

       

       피를 피로 씻던 그 지옥 같던 산성 이브로니크가?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정말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브로니크 성이 관광지가 된 모습을 쉽게 떠올리기가 어려웠다.

       

       라이너스와 함께 절벽을 기어오르던 때가 아직도 선명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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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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