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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

       

       

       

       

       

       56화. 피어나다 ( 2 )

       

       

       

       

       

       월급이 들어오는 날은 마음이 풍족해지는 날. 동시에 사람이 좀 멍청해지는 날이기도 하다.

       이렇게 쓰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월말에 또 쪼들릴 텐데… 생각은 그렇게 하지만 몸은 정직하게 결제하고 있다.

       

       일단 10만원어치의 깡골드를 결제했다.

       

       

       우웅ㅡ

       

       – [WEB발신] 카드 100,000원 일시불 승인.

       

       

       핸드폰에 도착한 결제내역. 이미 엎질러진 물은 돌이킬 수 없다. 이제부터는 즐겨야 한다.

       

       

       “뭘 사볼까~”

       

       

       작게 엉터리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무기 리스트를 쭉 훑어본다. 각양각색의 무기들이 가득하다. 

       

       그래도 명색이 황제인데, 최소 A급부터 시작해야겠지? 필터를 걸어서 A급 이상만 보이도록 했다.

       

       주르륵 나타나는 무기들. 역시 A급이라 그런가 디자인부터 다르다. 내가 고민하던 불타는 대검 비슷한 것도 보인다.

       

       

       “아… 불타는 대검. 이것도 진짜 정석 중에 정석이긴 한데.”

       

       

       이것저것 마음에 드는 아이템이 너무 많다. 보면 볼 수록 고민만 깊어지는 상황. 한숨이 절로 나온다.

       

       대검, 쌍검, 망치, 방패, 도끼 심지어는 전기톱까지. 황제는 뭘 들어도 잘 어울리니까 더 고민이다.

       

       

       “… 서치해볼까?”

       

       

       검색창에 “황제 캐릭터”라는 단어를 넣고 서치를 돌려봤다. 여러 가지 이미지의 황제가 나타나난 화면. 음… 참고할 만한 자료가 있다.

       

       

       “왕의… 4가지 장신구? 레갈리아?”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홀린 듯 마우스를 향한다. 길게 나타난 활자들. 대충 읽어보니까 왕관, 검, 왕홀, 보주. 이렇게 4개는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물건이라는 듯하다.

       

       

       “왕홀이라…”

       

       

       내 머릿속에서 황제라고 하면, 검을 들고 앞에서 싸우기보다는 뒤에서 지휘하는 전략적인 이미지가 더 강하다. 칼 들고 싸울꺼면 장군을 했어야지.

       

       좋아, 딱 느낌 왔다.

       

       

       “지팡이 쪽에서 찾아봐야겠네.”

       

       

       큰 지팡이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도 존나 크고 화려한 지팡이를.

       

       지팡이 카테고리 쪽에서 리스트를 뒤적거린다. 개성이 강한 지팡이가 여럿 보인다.

       

       

       “파라오의 만년 눈 지팡이…? 뭐야 이건. 짝총나무 지팡이?”

       

       

       내가 찾는 건 저런 평범한 지팡이가 아니다. 뭔가, 뭔가 좀 더 크고 화려하고 위엄있는, 그런 지팡이가 필요하다.

       

       

       “오…”

       

       

       무기 리스트를 열심히 뒤적거려서 찾았다. 다행히 A급 무기 거의 마지막에서 발견한 무기. 까딱 잘못했으면 S급까지 깡골드로 살 뻔했다.

       

       

       “사자심왕의 태양 지팡이… 이름 좋네.”

       

       

       멋있다. 이름부터 멋있다. 사자심왕, 영어로는 라이언 하트.

       이름만 봐도 황제를 위한 아이템이다.

       

       사자심왕이라는 이름답게 지팡이 끝에 장식된 사자 두 마리가 태양처럼 동그란 보석을 물고 있었다. 이게 바로 황제한테 어울리는 무기지.

       

       10만원의 가치가 바로 이런 거다. 망설임 없이 깡골드로 무기를 해금시켰다. 얼마 전 제련소에 넣어 뒀던 백금까지 아낌없이 투자해서 만들어 준다.

       

       

       ㅡ빠밤!

       

       《최초획득! A등급, 사자심왕의 태양 지팡이 획득!》

       

       

       인벤토리에 들어온 찬란한 지팡이. 생각보다 크기도 큼직한 것이 마음에 쏙 든다. 이리저리 지팡이를 돌리면서 구경하다가, 문득 저번에 상점에서 봤던 ‘특대형 무기 패키지’가 떠올랐다.

       

       

       “이번에 패키지도 사야겠다.”

       

       

       재빨리 화면을 상점으로 이동시키고, ‘특대형 무기 패키지’를 찾았다. 운이 좋은 건지 30% 할인까지 붙어 있는 상황.

       

       

       《특대형 무기 패키지 : 일정 크기 이상의 무기 판매 가격 상승! 일정 크기 이상의 무기 제작 시 일정 확률로 재료 반환! 일정 크기 이상의 무기 자동제작 효율 상승!》

       

       

       일정 크기라고 툴팁에 써져 있지만, 아마 전부 대형 무기를 말하는 거겠지. 패키지에 포함된 재료 반환은 약간 아쉽다. 패키지부터 사고 만들껄ㅡ 싶었다. 

       인생은 서순 차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딱 맞다.

       

       

       “그래도 못 참지.”

       

       

       손은 거침없이 결제를 향했다.

       

       

       우웅ㅡ

       

       – [WEB발신] 카드 36,900원 일시불 승인. 

       

       

       이 정도면 알찬 소비였다고 생각한다.

       

       

       

       

       ————

       

       

       

       

       점심을 먹은 직후, 다들 낮잠을 자거나 산책을 하기 위해 사무실을 비웠다. 타이밍은 바로 지금. 재빨리 게임을 킨다.

       

       익숙한 신전을 지나 여관으로 화면을 옮긴다.

       오랫동안 기다려 준 황제에게 지팡이를 줄 시간이다.

       

       여전히 위엄있는 모습으로 있는 황제 캐릭터. 태양 지팡이를 들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 가슴이 웅장해진다.

       

       황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양팔을 쫙 펼지더니 뭐라고 외치기 시작한다.

       

       

       《ㄷacet mi을 responum!》

       

       

       저번처럼 엉망으로 깨지진 않고, 그래도 중간중간 한글의 흔적이 남았다. 저럴 거면 그냥 글자를 아예 깨버리던가, 저게 뭐야?

       

       

       ㅡ삥뽕

       

       

       팔을 벌린 황제를 가리는 메시지창. 지긋지긋한 선택지창이 나타났다.

       

       

       《카이사르는 혼란해합니다. 누구에게 주겠습니까?》

       

       

       “… 뭘 누구에게 줘?”

       

       

       곧이어 나타나는 선택지.

       

       

       《황제 카이사르에게 주기》 《아버지 카이사르에게 주기》

       

       

       “…”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유튜브에서만 보던 똥겜 선택지를 또 마주하니까 정신이 어질해지는 기분. 아니, 둘 다 같은 사람인데 고르는 의미가 있나 싶다.

       

       

       “하… 결국에는 같은 사람한테 주는 거 아닌가?”

       

       – “아닙니다! 달라요!”

       

       “어?”

       

       

       무심코 내뱉은 혼자말에 대답하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 도대체 누가? 

       

       의자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지만, 모두 자는 중이거나 핸드폰에 열중하고 있다.

       도대체 뭐였지? 꿈에 나온 여자의 목소리와 비슷했는데?

       

       … 환청인가? 오소소 일어난 닭살을 문지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요즘 주변에서 자꾸 이상한 일이 생기는 거 같은데, 진짜 굿이라도 한번 해야 되나 싶다.

       

       내가 호들갑을 떠는 사이, 황제는 화면을 보며 다시금 뭐라고 대사를 쳤다.

       

       

       《무t 하n in ㅍㅜㅁiqu니id!》

       

       “하, 진짜 뭐라는 거야?”

       

       ㅡ치지직

       

       “어, 어?”

       

       

       여관을 비추던 화면에 갑자기 노이즈로 가득 찼다. 신호가 나쁜 구식 텔레비전처럼 이리저리 일그러지는 화면.

       뭐야 이거, 왜 이래?

       

       

       “어 씨. 뭐지?”

       

       

       당황해서 어어 허는 사이에 팟ㅡ하고 노이즈가 사라지며 깔끔해진 화면이 나타났다. 

       

       … 일시적인 오류였나?

       

       노이즈가 사라진 화면에는 두 개였던 선택지는 사라지고, 한 개의 선택지만 남아 있었다.

       

       

       《인간 카이사르에게 주기》

       

       

       “하아ㅡ 모르겠다. 이제는.”

       

       

       뭘 골라도 같은 사람이 아닌가 싶지만… 어차피 고를 수 있는 게 하나여서 나에게는 선택지가 없다.

       

       

       “멍청하네 진짜.”

       

       

       진짜 멍청한 게임이다.

       

       《인간 카이사르에게 주기》를 선택하자, 황제가 고개를 푹 숙였다. 뭔지 모르겠고 이제는 그냥 빨리 무기를 팔고 싶은 마음뿐이다.

       

       

       “얼른 받고 가라…”

       

       

       지팡이를 스윽 드래그해서 황제에게 줬다. 지팡이를 받아쥔 황제는 빛에 감싸이더니, 뿅 하고 여관에서 사라졌다.

       

       후우… 뭔가 기가 쏙 빨린 기분이다.

       노곤노곤하니, 배도 부르고 의자에 몸을 깊게 묻으니까 잠이 온다.

       

       

       “하으ㅡ 지금이 몇 시지?”

       

       

       슬쩍 시계를 보니 12시 20분. 지금자면 40분이나 잘 수 있다. 몰려오는 잠기운에 저항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점차 멀어지는 의식… 잠이 점점 몰려온다. 몽롱하게 현실이 멀어져간다…

       

       그리고…

       

       

       – “왜 자꾸 레이드를 안 돌리시는 건가요?”

       

       “예?”

       

       

       또 붉은 머리의 여자가 꿈에 나왔다.

       

       어?

       

       

       

       

       

       ************

       

       

       

       

       

       데모닉과 케니스는 5호가 일어났다는 말에 황급히 뛰어갔다. 도대체 지난 사흘 동안 뭘 하고다녔고, 어디서 악마를 잡아왔는지.

       

       그녀에게 들을 것이 많았다.

       

       임시로 세워진 천막 안, 5호는 항상 쓰고 다니던 가면을 벗어놨다. 갑주는 케니스가 진작에 분해한 상황.

       몸에 딱 달라붙는 내의를 가리기 위해, 큰 천을 망토처럼 두르고 있었다.

       

       

       “… 팔라딘님, 용사님.”

       

       

       속삭이듯 들려오는 여인의 목소리.

       

       

       “5호…인가요?”

       

       

       케니스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흉흉한 갑주와 섬뜩한 가면 아래에 저런 가녀린 여인이 있으리라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 했을 것이다.

       

       새하얀 설원처럼 빛나는 백발이 흘러내렸고, 눈동자는 핏방울처럼 붉은색이었다.

       오랫동안 햇빛을 쬐지 못했는지 희다 못해 창백한 피부는, 이단 심문관이 아닌 병약한 아가씨처럼 보였다.

       

       데모닉의 표정에도 당황한 기색이 뚜렷했다. 이단 심문관들은 만신전 내에서도 겉도는 느낌이 강한 집단이기에, 데모닉도 5호가 여자라는 사실을 몰랐다.

       

       

       ‘붉은 눈동자?’

       

       

       데모닉은 5호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 봤다. 피처럼 붉고, 탁한 빨간색. 눈처럼 새하얀 머리카락.

       인간이 자연적으로 가질 수 없는 색이다. 저런 색의 눈동자를 가지는 것은…

       

       

       “5호. 너는 정체가 뭐지?”

       

       

       눈 깜짝할 사이에 뽑혀 나온 데모닉의 칼이 5호의 목을 겨눴다. 살짝 찔린 피부에서 붉은 핏방울이 아른 거렸다.

       

       옆에 있는 케니스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랐지만 5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마치, 데모닉의 반응이 당연한 것처럼.

       

       

       “… 팔라딘님, 지금은 제 정체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조곤조곤 속삭이듯 말하는 5호. 어딘가 살짝 몽롱한 기색마저 있다.

       

       

       “… 그래 지금은 다른 급한일이 있지. 하지만 나중에라도 반드시 들어야겠다.”

       

       “… 당연합니다. 때가 되면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데모닉이 5호의 목을 겨눴던 칼을 내리자, 5호의 흰 사슴 같은 목에 한 줄기 붉은 선이 남았다. 주르륵ㅡ하고 흘러내리는 피.

       

       

       “5호! 일단 이 손수건으로 상처…를… 어?”

       

       “… 괜찮습니다. 몸이 튼튼해서요.”

       

       

       케니스가 5호에게 손수건을 내밀었을 때에는 이미 상처가 사라졌었다. 속임수 마술처럼 감쪽같이 사라진 상처.

       케니스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어, 어? 상처가?”

       

       “… 나중에,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5호는 침착한 말투로 속삭였다. 표정도 무표정인 그대로였다. 감정이라는 것을 거세당한 인간처럼, 무뚝뚝함과는 차원이 다른 괴리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5호. 할 말이 뭐지?”

       

       

       데모닉의 말에 5호가 고개를 돌려 데모닉을 마주 봤다.

       

       

       “…바다.”

       

       “바다?”

       

       

       5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악마들이 ‘영혼의 바다’를 노리고 있습니다.”

       

       “영혼의 바다?”

       

       

       케니스의 고개가 갸웃했다. 그런 바다가 있던가?

       데모닉은 무언가 짚이는 게 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5호, 그건 불가능하다. 영혼의 바다는 악마들 따위가 넘볼 수 있는 곳이 아니야.”

       

       “… 그렇습니다. 노린다는 표현은 조금 부적절했군요.”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인 5호가 말을 정정했다.

       

       

       “… 막대한 가능성을 지닌 영혼의 바다를, 악마들이 이용하려고 합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어색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늘 감사합니다!!

    ㄴㅇ0ㅇㄱ!! 아닛 이게 무슨 일입니까!!

    – ‘두부는귀엽다’님!!! 48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응애 나 아기 작가. 응애응애. 저는 아직 응애입니다. 아, 응애에요!

    – ‘신선우’님!!! 19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작가는 글로만 이야기하는 것인데, 저의 생각이 미숙하고 짧았습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고 노력해서 더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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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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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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