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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

       

       

       

       

       “하아암.”

       “뀨우웅…!”

       “잘 잤어, 아르야?”

       “뀨우!”

       

       좁은 침낭 속에서 서로를 꼭 껴안고 잠들었던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상쾌한 아침을 맞이했다. 

       

       ‘밤에 혹시라도 야행성 마물들이 습격해 올까 봐 걱정했는데 운이 좋았네.’

       

       캐머해릴 주변에는 야행성 마물들이 꽤나 많이 서식해서, 보통 다른 마을이나 도시에서 캐머해릴로 올 때에는 마지막 날 밤에 한 번쯤 전투를 치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시끄러운 알람 결계석 소리를 안 들어도 돼서 다행이야.’

       

       「레키온 사가」에는 ‘알람 결계석’이라는 아티팩트가 있는데, 잠깐 머물거나 잠을 잘 때 활성화를 시켜 놓으면 일정 거리 안에 들어오는 침입자를 감지해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경보를 울린다. 

       

       ‘결계 마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마법사들에 비하면 감지 범위가 많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듣고 바로 일어나면 대처할 시간 정도는 있으니 꽤 효자 아이템이지.’

       

       저게 없었으면 우리는 지금까지 밤마다 두 시간마다 일어나서 교대로 불침번을 서야 했을 것이다. 

       

       ‘불침번이라니. 군대 전역 이후로는 듣고 싶지도 않은 단어야.’

       

       어쨌든, 캐머해릴 밖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을 마물들의 습격으로 방해 받지 않은 덕분에 나와 아르는 그야말로 꿀잠을 자고 일어날 수 있었다. 

       

       “으음…. 아직 마이어 씨도 안 일어나신 거 같은데, 조금만 더 있다가 일어날까?”

       “뀨우.”

       

       물론 잘 잔 거랑 이불 속에서 나가기 싫은 건 별개였기 때문에 나와 아르는 조금만 더 밍기적거리기로 했다. 

       

       “아르야, 말랑말랑~”

       “뀨우!”

       

       아르의 말랑한 손바닥을 만지작거리며 미소를 짓자, 아르도 기분이 좋은지 눈을 초승달처럼 접으며 웃었다.

       

       ‘아르 손바닥은 언제 만져도 좋단 말야.’

       

       손바닥 가운데에 있는 메인 젤리, 그리고 손가락 쪽에 있는 조그만 젤리들도 만지는 맛이 있었다. 

       

       ‘그리고 손바닥을 꾸욱 누르면 나오는 요 귀여운 발톱들….’

       

       꾸욱.

       

       ‘오, 전보다 꽤 날카로워진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드래곤은 발톱 관리를 어떻게 하지? 

       그냥 놔둬도 되나?

       아니면 고양이처럼 스크래처 같은 게 있어야 하나?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보통 야생 동물의 발톱은 평소에 많이 돌아다니고 먹잇감을 사냥하는 상황을 전제로 자란다. 

       

       그래서 직접 먹잇감을 구하지 않고 활동량이 낮은 집고양이들에게는 빠르게 자라는 발톱을 닳게 하기 위해 긁을 걸 갖다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양이들 스스로 발톱 때문에 다치거나 불편해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당장이야 괜찮겠지만….’

       

       아르도 이렇게 인간 사회에서 돈을 주고 음식이나 간식을 사 먹는 데에 이미 익숙해지고 있는 이상 언젠가 그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여기서 더 자라는지 어떤지 가끔씩 확인해 줘야겠네.’

       

       아르가 짧뚱한 두 팔을 뻗어 스크래처에 대고 박박박 긁는 모습을 상상하니 그건 그거대로 귀엽긴 했다. 

       

       “발바닥도 말랑말랑~”

       “뀨우!”

       

       하지만 어쨌든 그건 나중에 할 걱정.

       나는 이번엔 손바닥보다 큰 발바닥 젤리를 만지작거리며 힐링을 했다. 

       

       ‘그리고 배까지….’

       

       어제 저녁에 고기를 먹고 빵빵해졌던 배는 어느새 소화가 다 되었는지 딱 귀여울 정도로 완만하게 불룩해져 있었다. 

       

       비늘 색보다 연한, 베이지색에 가까운 배를 쓰다듬으며 종종 꾹 누르자 아르의 입에서 기분 좋은 뀨 소리가 났다. 

       

       ‘마지막으로….’

       

       손바닥, 발바닥, 그리고 배까지 순회 공연을 돈 다음, 나는 마지막으로 아르를 다시 품에 꼬오옥 안았다. 

       

       한 손으로는 엉덩이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통통한 꼬리를 한 번 잡아 쓸어내렸다. 

       

       그 상태로 엉덩이를 토닥여 주자 아르는 보답이라도 하듯 내 가슴께에 꾹꾹이를 하며 뀨우 소리를 냈다. 

       

       ‘아침부터 정말 행복 치사량 주입이구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운 좋게 사이코들한테서 튀다가 드래곤 레어에 떨어져서 알을 깨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매일 아침마다 말랑한 행복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불공평한 거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인생은 원래 불공평한 법. 빙의도 실력이다, 이 말이야. 후후.’

       

       빙의 직후엔 하늘을 원망하며 살아남기 바빴던 나는 이제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만약 아르를 데리고 한국에서 브이로그 채널 같은 거라도 운영했으면 분명 ‘진짜 님은 세금 2배로 내셈. 아니 3배로.’나 ‘1인 1가구 아르 보급해라!’, ‘나만 드래곤 없어!’ 같은 댓글이 달리겠지.’

       

       그럼 거기에 대댓글로 ‘님아 드래곤은 저 사람 빼고 다 없음’ 같은 게 달리면서 부러움의 행렬이 이어질 거다. 

       

       ‘반려동물 채널 운영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이제 좀 알 것 같구만.’

       

       여튼, 나는 아르 덕분에 아침마다 과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무려 캐머해릴에 도착하는 날.

       

       ‘내일이면 이 행복을 고급 침대에서 누릴 수 있다는 말씀이지. 흐흐.’

       

       그렘 마을에서 히파르까지, 히파르에서 캐머해릴까지.

       

       중간에 히파르에서 하루 동안 온천에 몸을 푹 담그고 피로를 풀었다고는 하지만….

       

       ‘그래 봐야 하루였으니까.’

       

       자고로 여행길의 피로를 제대로 풀려면 3일은 필요한 법.

       

       ‘캐머해릴에 도착하기만 하면 이제 호위 임무도 완전히 끝이야.’

       

       임무로 돈도 벌고, 오다가 산적들 잡아 현상금도 추가로 벌고, 여기까지 오면서 마물도 쏠쏠하게 잡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레벨업도 많이 했다. 

       

       즉, 내가 이번 호위 임무를 하면서 원했던 건 모두 달성했다는 것. 

       

       ‘캐머해릴에서는 조금 느긋하게 있어도 되겠지.’

       

       그러다가 캐머해릴 북부의 꿀 사냥터 마물들을 잡기 좋은 타이밍이 오면 가서 아르와 함께 한 번 쓸어 담아 주면 된다. 

       

       ‘캐머해릴이 관광 도시는 아니지만, 그래도 물건 구경하는 재미는 있는 곳인 데다가 히파르보다 넓어서 돌아다니는 맛도 있을 거고.’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품에 안은 아르의 온기를 실컷 느끼다가, 결국 햇빛이 텐트의 틈을 비집고 들어올 때쯤 일어나 침낭을 정리했다. 

       

       “쀼웃!”

       

       아르도 내가 침낭을 정리하는 동안 옆에서 기지개를 쭈욱 켜더니 텐트 밖으로 뽈뽈거리며 나가 아침 햇살을 맞이했다. 

       

       “허허, 아르도 일어났구나.”

       “쀼!”

       

       마이어 씨는 텐트 밖으로 나온 아르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마이어 씨도 일찍 일어나셨네요.”

       “아닙니다. 사실 밤에 굉장히 푹 자서 일찍 눈이 떠졌는데, 밍기적거리다가 지금 일어난 겁니다. 허허허.”

       “…사실 저도요.”

       

       텐트 밖으로 나온 내가 마이어 씨와 이야기하는 동안, 마침 실비아 씨도 일어났는지 살짝 부스스한 금발을 넘기며 나타났다. 

       

       “좋은 아침이에요.”

       “실비아 씨도 좋은 아침이에요. 그런데 실비아 씨는 조금 피곤해 보이시네요…? 잘 못 주무셨나 봐요.” 

       

       실비아는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한 뒤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하하. 전 괜찮아요. 어젯밤에 잠이 좀 안 오길래 밖에서 혼자 수련을 좀 했더니….”

       “잠이 안 온다고 수련을 하셨다고요…?”

       

       나는 그 말에 한 번 더 놀랐다. 

       

       ‘역시 이게 4성 검사인가? 이렇게 밤낮 가리지 않고 수련을 하다니.’

       

       어쩐지 다른 검사들보다 기본기가 탄탄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그 뒤에는 이런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저런 모습을 보면 뭔가 괜히 나도 수련에 돌입해서 스탯이라도 올리거나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야.’

       

       방금까지 침낭 속에서 아르를 껴안고 밍기적거리면서 캐머해릴에서도 느긋하게 쉴 생각이나 했던 게 좀 양심에 찔린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나는 아르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게 목표인 걸.’

       

       저렇게 실비아처럼 젊은 나이에 꽤나 높은 경지에 오르고,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더 높은 경지를 추구하는 무인武人들과 나는 근본적으로 목표하는 바가 다르다. 

       

       ‘그래. 틀린 게 아니라 서로 다른 거지.’

       

       나에게는 나의 삶이 있고, 실비아에게는 실비아의 삶이 있는 거다. 

       

       ‘그러니까 난 밤에 수련은 안 할래….’

       

       그리고 아르처럼 성장기일 때는 밤에 잘 자는 게 중요하니까.

       아르를 잘 재우기 위해서라도 나는 밤에 자야 한다.

       

       아무튼 자야 함. 

       

       “뭐, 그렇죠. 오늘 일정에는 지장 없게 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실비아는 빙긋 웃으며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그럼 정리되는 대로 출발할까요?”

       

       우리는 텐트를 마저 정리하고, 간단하게 빵과 우유로 아침을 때운 후 캐머해릴을 향해 떠났다. 

       

       가는 길에 마물을 몇 마리 더 만나긴 했지만, 그 이외에는 별일 없이 순조롭게 길을 따라 나아갔고.

       

       “와아, 드디어 왔다!”

       “쀼우우!”

       

       캐머해릴에 도착한 우리는 검문을 통과해 안에 들어오자 참았던 환호성을 내질렀다. 

       

       “허허, 레온 님. 실비아 님. 그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납품 물자도, 마차도 완전히 멀쩡한 상태로 도착했습니다. 여기 보수 먼저 받으시고…. 이것도 챙겨 가십시오.”

       

       마이어 씨는 보수가 든 주머니를 나와 실비아에게 건네고는, 간식들이 들어 있는 가방에서 포장되어 있는 간식 박스 몇 개를 꺼내 우리에게 내밀었다. 

       

       “쀼우우…!”

       “감사합니다, 마이어 씨. 맛있게 먹을게요.”

       “저도 감사히 받을게요.”

       

       간식 박스를 본 아르의 눈이 커졌고, 그걸 본 나는 절대 사양하지 않고 단숨에 받아서 가방에 고이 모시듯 넣었다. 

       

       “그럼 저는 납품을 하러 먼저 가 보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마이어 씨는 그 말을 남기고 거리 저쪽으로 곧 사라졌다. 

       

       “실비아 씨도 고생 많으셨어요.”

       “레온 씨랑 아르도요.”

       

       남은 우리와 실비아도 곧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고 보니 실비아 씨 보는 것도 이게 마지막이겠네.’

       

       처음엔 수상한 말과 행동들 때문에 경계를 했었지만, 며칠 동안 함께 호위 임무를 하면서 이제는 솔직히 정도 조금 들었다.

       

       ‘파티에 이런 검사가 있으면 마법을 쓰는 우리로서는 아주 든든하기도 하고.’

       

       하지만.

       

       ‘아르가 드래곤인 이상, 우리에게 파티원을 만드는 건 사치야.’

       

       이런 단기간이라면 몰라도, 장기간의 동행은 우리에게 리스크가 너무 컸다. 

       

       ‘어차피 실비아 씨도 정말 우연히 마이어 씨 호위 임무를 같이 하게 된 것뿐이라면, 여기서 우리는 갈라지는 게 자연스러워.’

       

       인연이란 흘러가는 것이라고 했던가.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인연이라면 이대로 흘러가게 두는 것이 맞는 선택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어깨도 괜히 더 홀가분해지는 것 같았다. 

       

       “그럼….”

       

       그렇게 아르를 데리고 나는 곧 발걸음을 떼었다. 

       

       뚜벅.

       터벅.

       

       “…?”

       

       뚜벅뚜벅.

       터벅터벅.

       

       근데 이 사람, 왜 자꾸 나 따라오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러고 보니 정신이 없어서 후기 작성을 못 했네요. 독자님들 덕분에 이번 공모전에서 굿스타터상을 수상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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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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