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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0

    점심이 살짝 지난 무렵, 인형점.

    인형의 작업테이블을 이어붙이고 놀고있던 칠판을 세워서 마치 회의장처럼 만들어둔 테이블에, 루크와 시에나, 메를린과 서드가 앉아있었다.

    ‘으, 이게 대체 뭐라고 긴장된다니.’

    어색한 침묵 속, 시에나는 문득 조용히 앉아있는 서드에게 인사를 건넸다.

    “서드, 라고 했던가? 안녕, 오랜만이네. 전에 한번 봤었지?”

    “…안녕하십니까. 시에나 경찰관님. 오랜만입니다.”

    “으응, 이제 경찰은 아니야. 넌 어때? 요즘도 아카데미 잘 다니고 있니?”

    “뭐, 그럭저럭……. 그런데 설마 당신이 여기에 있을 줄은 몰랐군요.”

    “하하, 그건 나도 그래.”

    그렇게 시에나와 서드가 나름 안면이 있는 사이에 어색하게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 고든이 뒤늦게 인형점의 문을 열고 당당히 입장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모두의 주목을 받은 고든은 가볍게 사과를 꺼내며 능청스레 웃었다.

    “아, 미안. 아침에 한대 피우지 않으면 잠이 안깨서.”

    “그러세요.”

    막 태운 마력초 향기를 몸에 묻히고서 뻔뻔스런 그의 모습에 시에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실내에서 마력초 냄새 풍기지 말라고 루크한테 한소리 들은 뒤론 꼬박꼬박 입에 물고 밖으로 나가는 것까진 좋은데, 그걸 핑계로 이렇게 시도때도 없이 자리를 비우는 건 또 새로운 문제다.

    그러면서 미안함은 커녕,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이라니.

    역시 마음에 들래야 들 수가 없는 인간이랄까.

    그 때, 루크가 읽고있던 문서들을 옆으로 치워놓고 테이블을 노크하듯 두드리며 말했다.

    -똑, 똑.

    “자, 다들 주목.”

    “……..”

    순식간에 조용해진 인형점의 분위기에, 루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입을 열었다.

    “이렇게 모두 모였으니,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지.”

    큼큼, 잠시 목을 가다듬은 루크는 에이레스의 지도를 펼쳐둔 칠판 앞으로 다가가 말을 잇는다.

    “이야기에 앞서, 일단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네. 타워 습격과 같은 날, 총 세곳에서 루체스트와 관련된 소란이 있었지. 알고있나?”

    루크가 세 손가락을 펼치며 꺼낸 말에 고든은 의아하다는 듯 까슬한 턱을 문지르며 되물었다.

    “세곳?”

    그에겐 언론에 한창 보도되는 중인 ‘타워 테러’ 이외의 정보는 딱히 없었던 탓이다.

    “일단 두곳은 알겠어, 너희 집과 루체스트 타워. 맞지?”

    시에나의 말에 루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맞네.”

    “그러면, 나머지 하나는?”

    시에나의 물음에 대답은 의외로 곁에서 가만히 듣던 서드에게서 들려왔다.

    “트로이 적하장, 이겠군요.”

    정답이라는 듯 서드에게 고개를 끄덕여준 루크는 말을 이었다.

    “타워 테러사건 때문에 아직 관심이 몰리진 않았지만…….. 같은 날, 다른 시간, 트로이 적하장에선 그곳에 있던 모든 인부들이 화재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지.”

    하룻밤 사이에 적하장의 모든 인부가 화재와 함께 ‘증발’해버린 사건.

    그리고 그 또한 루체스트와 연관된 사건이었다.

    루크는 시에나를 보며 살짝 덧붙였다.

    “톰이 확실히 눈썰미가 좋더군.”

    루크는 옆에 준비된 문서들 사이에서 하나를 집어들어 테이블 중앙에 밀며 말했다.

    “오늘 아침 새벽같이 시에나와 함께 역 보관함에 가서 찾아온 자료들 중에 섞여있던 문서일세.”

    톰이 말한 보관함 안에는 그가 말했던대로 그 바이크 열쇠 외에도 루체스트에 관한 추가적인 자료 몇장이 담겨있었다.

    시에나의 정직 이후 고작 며칠정도밖에 지나지 않아 쌓인 자료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이 핵심을 짚는 중요한 자료가 있었다.

    잠시 후, 루크가 제시한 자료를 가장 먼저 낚아채간 것은 역시 고든이었다.

    서드와 메를린은 당시 사건의 경험자이니 자료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시에나는 경찰로서 당시 적하장에서 그런 일이 있었음을 얼핏 알고는 있었으니까.

    고든의 눈은 선글라스로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으나, 분명히 호기심으로 번뜩이고 있었으리라.

    고든은 천천히 개요를 읽어내렸다.

    “적하장 대화재. 실종자 파악된 인원만 약 30명, 소실된 경제적 가치는 추산 약 437억규모……. 이거, 대단한 피해로군.”

    이런 자료는 으레 그렇듯 가장 확실한 피해만 산정한 것이니 실제 피해는 아마 그 이상이 되리라.

    “그런데, 이게 루체스트에서 벌인 짓이란건가?”

    “그래, 그 소속의 흑마법사가 일으킨 참상일세.”

    “허. 뭔가 꺼림칙한데.”

    흑마법이라는 말에 고든은 눈쌀을 찌푸렸다.

    뭐, 평범한 반응이다.

    흑마법은 보통 꺼려지고 두려운 것이니까.

    흑마법이 얽혔다면, 이 희생자와 재산피해들은 그저 안타까움을 표해야 할 숫자가 아니다.

    흑마법이라면 그 숫자가 곧 실재하는 위협이 되는 셈이다.

    “그 녀석은 대체 이 정도의 희생으로 뭘 하려고 한 거지?”

    그 이야기들을 가만히 듣고있던 시에나는 팔짱을 낀 채 암산으로 흑마법의 규모를 추산하기 시작했다.

    피해규모에서 흑마법의 최대 규모를 추산하는 방법은 현대에서는 이미 공식화되어있었으니까.

    애초에 흑마법 관련 사건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하는 게 피해규모에서 흑마법의 규모를 역산하는 작업 아닌가.

    사람의 경우, 희생자의 성별이나 연령, 병의 유무, 사회적지위, 성격등의 각종 대입할 수 있는 지표가 이미 존재하고, 물건에는 평균단가를 구하는 방법부터 보존도, 시간이 지남에따라 가치가 쌓이는 물건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이런저런 항목이 이미 빼곡할 정도로 자세하게 분석되어 존재한다.

    물론, 시에나가 천재라서 그걸 암산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원래는 전문가들이 계산기를 가지고 끙끙대면서 이런저런 감가를 다 따져서 정확하게 추산해야 하는 거지만, 그냥 얼추 가늠만 하는 정도로 만족한다면 그렇게까지 복잡하진 않다.

    ‘대충 평균적인 성인 남성으로 발생하는 에너지가 1 메카콥스정도니까, 적당히 30으로 퉁치고…. 437억이라했으니까 그걸 대충 반으로 나눈 다음… 경찰 피해추산 방식의 평균적인 오차율을 생각하면….’

    주먹구구식이긴 하지만, 결국 어떻게든 숫자는 낼 수 있었다.

    “그정도면 대충 300 메가콥스 정도 규모네요.”

    시에나의 중얼거림을 들은 고든이 다시 묻는다.

    “300메가콥스면 어느 정도지?”

    시에나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흑마법이라 성질이 다르긴 하지만, 클래스로 따지면 워프트레인이 한번 운행되는 정도의 마력양이에요.”

    “그렇구만. 연비 나쁘네.”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이 흑마법을 쓰지 않는 거죠.”

    사람 30명과 437억의 재산을 태워서 얻은 결과가 열차 운행 한번 할 에너지라니. 

    그 흑마법 에너지를 열차운행에 쓰지는 않았겠지만, 만약 정말 열차 운행에 쓰였다면 더럽게 비싼 연료임이 틀림없다.

    그 때, 루크가 테이블을 두드리며 끼어들었다.

    “다들 주제에서 벗어난 얘기는 그쯤 해두지.”

    금세 다시 조용해진 테이블의 상황에, 루크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조사 결과, 이 적하장에는 ‘데이그란트’에서 도착한 화물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네.”

    “잠깐, 데이그란트라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지명의 등장에 다들 의외라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데이그란트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식물은 커녕 바람도 제대로 불지 않는 끔찍한 장소에, 대체 무슨 수출품이 존재한단 말인가?

    데이그란트는 과거 마계의 침식이 발생한 첫번째 지역임과 동시에 가장 많은 마족들이 거주하던 장소로, 현재는 일반적인 생명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 영향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5000년이 지난 지금도 지역 대부분을 덮은 반마나와 독기는 사라지지 않았고, 심부에서는 보호장구 없이는 살아남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나마 생물이 존재할 수 있는 외곽 지역조차 그 독기에 변형되고 적응한 각종 치명적인 몬스터와 동물들이 득실거리는 탓에 주변국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골치.

    이런 데이그란트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은 사명감넘치는 생물학자나 연구자들 뿐이다.

    “뭐, 거기 박물관에 기증될 새 마계 화석이라도 들어있었던 건가?”

    고든은 농담처럼 중얼거렸지만, 그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긴 했다.

    선박이 인접한 해안을 지나가기만해도 자동으로 감시위성의 추적대상이 될 정도인 데이그란트에서 그나마 제대로 유통과정을 밟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학술 연구목적의 화석이나 극소량의 마석뿐이니까.

    그리고 적하장에 선적되는 컨테이너의 규모를 떠올려보면 극소량만 유통가능한 마석은 아닐테니, 아마 마계생물의 거대한 화석이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물론 화석이라해도 데이그란트에서 한번에 옮길 수 있는 개수나 부피에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파괴를 막고 독기가 용출되는 것을 방지하기위한 완충재를 채워넣는 걸 생각해보면 컨테이너 한개 분량의 부피가 나올수도 있으니까.

    고든의 농담섞인 추리에 루크는 적당히 대꾸하며 말했다.

    “그 화물에 들어있던 게 화석이건, 아니면 드래곤하트건, 그정도 규모의 의식을 무리없이 치러낼 정도로 강한 매개라는 건 사실이지. 그게 중요한걸세. 데이그란트에서 온 화물이, 강력한 의식의 매개라는 것.”

    “……그게 무슨 소리야?”

    이후, 루크는 지도를 붙인 칠판을 가까이 당기고 펜을 집어 어느 지점에 x를 그려넣었다.

    “리오니스, 건물 붕괴. 34명 사망. 뭐, 안타깝지만 이건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사고지. 하지만…….” 

    루크는 조금 떨어진 곳에 o를 그려넣으며 말을 이었다.

    “공교롭게도 사건 발생 2시간 전, 현장에서 불과 1km 떨어진 장소에서 데이그란트의 화물을 받은 기록이 있더군.”

    “뭐?”

    “설마…….”

    “공교롭지? 놀라기엔 아직 이르네. 사실, 대륙에는 이것과 비슷한 일들이 많았거든.”

    얼핏 전혀 상관없어보이는 두 별개의 사건이 보이는 기묘한 관계성에 일동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루크의 말에 모두가 표정을 굳혔지만, 루크는 오히려 재미있지 않냐는 듯 홀로 칠판의 지도에 하나씩 표시를 해가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카르파, 공연중 바닥 꺼짐, 18명 사망. 화물이 배달된 곳은… 여기.”

    “오렌, 터널붕괴. 23명 사망, 화물은 이곳에 배달되었고…….”

    “자레드 펄, 몬스터 습격. 사망자는…….”

    “그리고 여긴……..”

    루크의 호명은 그렇게 한동안 이어졌다.

    그렇게 펜으로 표시한 장소가 지도에 빼곡해졌을 무렵, 루크는 마침내 펜의 뚜껑을 닫았다.

    이렇게보니, 여기저기서 야금야금 잘도 모아왔겠구나 싶다.

    아마 과거 니드호그를 이용한 전시장 붕괴 계획이 자신에게 좌절된 이후 어떻게든 그만한 가치를 창출해내려 몸을 비틀었던 흔적이려나?

    이게 전부 한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면 정말로 이상하겠지만, 여러군데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다보니 나름 평범하다면 평범하게도 보인다.

    “이런건 다 언제 조사한거죠…?”

    서드가 놀라며 묻자, 루크는 별거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데이그란트의 화물은 어느 나라든 요주의 대상이니까, 추적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 거기에 주변에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과 사고를 묶어서 알아보는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야.”

    다들 어찌나 주시하는지, 떠다니는 아무 감시위성이나 잡고 뒤적거려도 데이그란트의 화물정보는 전부 알아낼 수 있었다.

    그 정보를 알고나면, 적당히 주변을 타겟으로 사건 발생여부를 확인하기만 하면 되는 거고.

    “아니, 그러면 잠깐만. 나 조금 이해하기 버거운데. 이 모든 사건의 희생자가 정말, ‘제물’로 사용된 거라고?”

    시에나는 혼란스러웠다.

    루체스트가 이 정도로 막나가는 상황인지는 몰랐는데.

    이 정도의 손실 가치라면, 그동안 이 정도 규모의 흑마법을 축적해온 흑마법사라면, 개인이 아닌 군대가 필요한게 아닌가?

    막말로, 이정도의 가치라면 세계수의 가지가 발생시키는 에너지의 절반정도는 된다.

    그런데 도시 하나를 통채로 날려버릴 수 있는 가치를 모은 흑마법사가 상대라고?

    사고를 위장한 대량학살을 그렇게나 잔뜩 해가면서?

    이게 뭐가 가능한 상황인건가?

    그에 루크는 가볍게 반박했다.

    “그간의 손실가치가 어떻니해도 결국 모여야 그렇게 되는 거지. 그 힘들이 모이기 전에 서두른다면, 아직 시간은 남아있네.”

    “……그래, 그렇네.”

    루크의 말로 조금 진정한듯한 시에나의 모습에, 메를린은 조용히 웃으며 제안했다.

    “여러모로 많이 복잡해보이는군. 일단은 좀 쉬지. 목욕도 좀 하고.”

    단 하루만에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버겁고, 많은 정보들이었을 테니까.

    “목욕이요?”

    —-

    그날 밤, 목욕을 위해 메를린이 사용하는 무인 숙박시설에 도착한 루크는 옷을 벗다 말고 잠시 창 밖의 풍경에 매료되어 거리를 감상하고 있었다.

    겨울 밤의 찬바람이 루크의 몸으로부터 열을 빠르게 빼앗아갔지만, 지금의 그녀에겐 오히려 그 추위가 나쁘지 않은 감각이었다. 

    그 때였다.

    -똑똑.

    노크소리의 주인공은 메를린, 그녀는 편한 잠옷을 들고 있었다.

    “자면서 입을 옷이 필요할 것 같아서 가져왔네.”

    “음, 고맙군. 이따가 갈아입도록 하지. 침대에 대충 놔두게.”

    메를린이 잠옷을 침대 위에 살며시 내려놓는 것을 확인한 루크는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보냈다.

    휘황찬란한 오색 라이트로 가득한 장난감거리의 창 밖 풍경은 언제 봐도 참 특별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었다.

    사람을 묘하게 들뜨게 한달까, 그것은 마치 이 모든 문명과 시스템을 이뤄낸 지성이라는 존재에 대한 하나의 찬사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한동안 풍경을 보고 있으니, 그녀를 방에서 나가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던 메를린이 문득 루크의 곁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동생들 일은 미안하게 생각하네. 아무리 운명으로 정해진 일이라해도, 저항하는 모습은 보였어야 했던 건데.”

    “…나도 미안하네, 그 땐 나도 너무 과격했어. 당시엔 좀, 머리에 피가 심하게 쏠려서.”

    “이해하네. 그럴 수 있지.”

    이정도면 나름 성공적인 화해다.

    사실, 그는 운명을 보는 눈으로 미리 그녀가 자신을 용서하리란 사실을 알았다.

    자신이 화해를 청하지 않았어도, 아마 그녀는 지금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화해를 하고 그 상황에 놓여보는 것은 또 느낌이 달랐다.

    그러니까 머리로는 알아도, 직접 겪는 게 다르다는 건 이런 얘기려나.

    그러고보니, 그녀는 이미 어떻게 될 지 알고 있다는 핑계로 많은 일들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 많았다.

    그런데, 그 일들이 이제와서 조금 후회가 된다.

    그렇게 말 없이 난간에 루크와 함께 기대어있던 메를린은 문득 버릇처럼 주머니에서 마력초 갑을 꺼내 한 개피를 입에 물었다.

    그러자 곧바로 그녀의 곁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네, 그거…….”

    루크가 그녀의 입에 물린 마력초를 가리키며 말하자, 메를린은 문득 알아차렸다는 듯이 황급히 입에서 마력초를 빼며 말했다.

    “아, 미안하네. 난간에 기대니까 버릇처럼……. 나가서 피우도록 하지.”

    흡연을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 흡연을 하려고 했다니.

    방금 막 정식으로 화해하고나서 이게 뭐하는 짓이람.

    그러나 루크의 입에서 나온 말은 굉장히 의외의 것이었다.

    “나도 하나 줄 수 있겠나?”

    운명을 보는 눈을 갖고있음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에 메를린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네가 마력초를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고든이 실내에서 마력초에 불을 붙일 때마다 그를 그렇게 갈궈대더니, 지금은 한개피만 달라니?

    일단 달라니 주긴 하겠다만, 메를린으로서는 도무지 그 영문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루크는 메를린에게서 받은 마력초에 손가락 끝으로 불을 붙이며 말했다.

    “싫어하진 않아. 그냥, 그동안 피우지 못한거지.”

    “응? 무슨 뜻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그녀의 반응에, 루크가 말을 이었다.

    “약속을 했었거든. 다신 입에 대지 않기로.”

    그때를 생각한 루크는 피식 웃었다.

    참, 돌이켜보면 너무 얼간이같은 행동이었다.

    감히 숲지기한테 연초를 권하다니, 그냥 미쳐도 단단히 미쳤던거지.

    …역시 물담배를 권했어야 했는데.

    아무튼, 애시당초 고든에게 실내에서 흡연을 하지 말라고 한 것도 사실 자신은 약속때문에 피우지도 못하는데 옆에서 하도 맛있게 피우는 모습이 꼴보기 싫다는 이유였지, 흡연 자체가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메를린이 호기심을 담아 묻자, 루크는 난간에 기대어 한숨과 함께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지금은 몸이 바뀌었으니까 괜찮지 않나 해서.”

    그 때, 메를린이 루크의 가슴켠에 박힌 제어마석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나저나 그 몸, 그 녀석의 작품인가?”

    “뭐, 그렇지.”

    “호오, 못 본 사이 실력이 많이 좋아졌나보네.”

    그녀가 말하는 ‘그 녀석’이란, 한 때 루체스트의 수석 연구원이던 사이먼을 말하는 것이다.

    현재는 루크에게 운명조차 닿지 않는 곳으로 무급으로 고용당해 본인의 재능을 착취당하는 상태이지만, 그 실력은 어째 루체스트에게 많은 급여를 받던 시절보다 오히려 더 좋아보인다.

    “이런 걸 보니 나도 자극을 받지 않을 수 없군. 오늘은 나도 조금 늦게 잠자리에 들어볼까.”

    “음. 건투를 빌지.”

    메를린의 열정적인 중얼거림에 루크는 적당히 맞장구치며 다시 마력초의 연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멋진 야경을 바라보며 일년만에 피우는 마력초의 향기는, 생각보다 더 감미로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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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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