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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0

        

       박진성과 리세는 뉴욕을 중심으로 돌아다녔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전에 ‘가볍게’ 뉴욕 곳곳의 관광지에 들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란 나라가 좀 넓은 나라이던가.

       뉴욕만 하더라도 구경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다 못해 넘치는 수준이었고, 그 때문에 열심히 돌아다녔음에도 즐기지 못한 것들이 가득 넘쳐났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고….

         

       어느새 리세는 낯설고 약간은 무섭게도 느껴졌던 미국이 슬슬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타 문화에 대한 이질감과 그로 인한 공포심이 사라진 자리에 약간의 설렘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관심이 가는 이성과 여행을 갔을 때 느끼는 그런 감정일 수도 있고, 약간의 설렘이라고 표현보다는 좀 더 간질간질한 무엇일 수도 있으리라.

         

       ‘드라마 같아.’

         

       게다가 리세는 또래의 다른 무녀들과는 달랐다.

       신사 태생이기는 했지만, 다른 신사 태생의 무녀들처럼 수련이나 신앙을 키우는 데에만 집중하느라 문화생활을 등한시하지도 않았고, 좋은 가문에 시집가기 위한 교육만을 받은 채 방 안에만 틀어박혀서 생활하는 규중처녀(閨中處女)도 아니었다.

       그녀는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며 노는 것을 좋아했고, 유행하는 것들을 따라 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유행’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드라마였다.

         

       리세는 드라마를 꽤 좋아했고, 그녀가 재미있게 본 드라마 중에서는 한국에서 온 드라마들도 많았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은, 그녀가 본 드라마의 어떤 장면을 떠올리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은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의 바(Bar) 간판을 본 뒤, 구체적인 형태로 변화했다.

         

       ‘무슨 드라마였더라? 검사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어디 가자고 해서, 여주인공은 어디 놀러 가는 게 아닌가 생각하면서 도심 속을 걷고 어디론가 도착했는데…. 그때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주인공이 뭔가 의심되는 바(Bar)가 있다면서 여주인공과 함께 애인 동반인 척 들어간 뒤 의심 인물들의 대화를 엿들으려고 하고…. 그런데 남주인공이 사실 술을 못 하는 사람이어서 술 한 잔만 마시고 그대로 뻗어버리지. 그때 마침 의심 인물들이 남주인공이랑 여주인공 쪽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위기가 찾아왔는데, 그때 마침 서브 남주가….’

         

       간판을 보자 리세의 머릿속에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의 장면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신력(神力)과 진성이 준 주물로 인해 향상된 머리로 인해, 더더욱 선명하고 완벽하게 재현된 채로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재현된 드라마의 장면의 끝부분에서는 술에 취한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을 끌어안고 침대에 눕는 장면이 있었는데-

         

       ‘…!!!’

         

       그 장면을 떠올린 리세는 흠칫하며 눈을 크게 떴다.

       행여 자기 생각이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았을까, 자신의 옆쪽에서 걸어가던 진성이 자신의 이런 상상을 눈치라도 채지 않았을까 하는 귀여운 상상 때문에 당황한 것이다. 하지만 이내 진성의 얼굴이 평온하자 괜히 혼자서 난리를 친 것이 민망해져서, 갑자기 길을 가다가 이런 망상 같은 것을 떠올린 것이 부끄러워서 볼을 살짝 붉혔다.

         

       리세의 얼굴이 살짝 달아오르고, 귀가 빨갛게 물들었다.

       그리고 괜히 목 부근이 따끈따끈해지는 느낌이 들었고, 몸에 발산되는 열이 빠져나올 곳을 찾지 못한 채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열기 때문일까?

       아니면 한계치를 넘은 부끄러움이 뇌의 어느 부분을 살짝 마비시키기라도 한 것일까?

         

       리세는 충동적으로.

       어쩌면 본능에 따라, 이렇게 말했다.

         

       “신주님. 혹시 술 좋아하세요?”

         

       리세는 옆에서 걷던 진성의 옷 소매를 살짝 잡고, 진성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키 차이 때문에 리세의 고개는 자연스럽게 위로 향했고,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은 그녀의 얼굴에 생기를 북돋아 주었다. 거기에 아까 망상을 중간에 끊어버린 뒤 눈을 크게 치떴던 것 때문인지 눈이 살짝 촉촉해져 있기까지 하였다.

         

       진성은 그런 리세의 모습을 보고는 그녀가 관심을 가지는 곳이 어디인지 추측할 수 있었다.

         

       “칵테일에 관심이 있느냐?”

         

       리세는 진성의 물음에 천천히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래, 가자.”

         

       진성은 방향을 바꿔 바(Bar)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성의 옷자락을 잡고 있던 리세의 손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황스러움이 아직 남아 무의식중에 계속 잡는 것일까?

       아니면 마침 잡은 거, 그냥 계속 잡고 있겠다는 생각에 붙잡고 있는 것일까?

         

       홍조가 떠 있는 얼굴과 아까보다 더 빨개진 귀만이 그에 대한 대답을 알려줄 수 있으리라.

         

       그렇게 진성과 리세는 분위기 좋은 바(Bar)에 발을 디뎠다.

         

       바에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목재로만 이루어진 인테리어.

       마치 18세기, 부자들이 오가던 곳을 떠올리게 만드는 인테리어였다.

         

       거기에 은은한 조명.

       깔끔한 차림의 바텐더 여럿.

       양복을 입은 채 술을 홀짝이는 사람들까지.

         

       딱 봐도 ‘당첨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와아….”

         

       리세는 미국 드라마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모습에 감탄했다.

       그리고 이러한 감탄은, 어느 벽면에 붙어있는 사진과 사인들을 보고 더더욱 커졌다.

         

       “신주님, 여기 드라마 촬영 장소래요.”

         

       드라마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정말로, 드라마에서 사용된 장소였다!

         

       벽면에는 배우들이 이곳에서 촬영할 때의 모습이 사진으로 붙어있었고, 그 옆에는 배우들의 사인이 붙어있었다. 게다가 그 아래에는 그녀도 알고 있던 유명한 미국 드라마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드라마 촬영 날짜와 회차에 대한 설명이 가볍게 적혀 있었다.

         

       드라마 촬영 장소라니!

       그냥 길 가다가 관심이 간 장소가, 드라마 촬영 장소라니!

         

       리세는 자신의 선택에 뿌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정말로, 드라마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도 받았고.

         

       드라마.

       그래, 드라마….

         

       리세는 자연스럽게 아까 전 떠올렸던, 한국 드라마의 한 장면을 떠올리고야 말았다.

       그래, 그때의 그 장면 이후의 장면을 말이다.

         

       ‘그렇게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이 침대에 나란히 쓰러지고, 그때 카페? 광고 로고와 함께 예고가….’

         

       …물론 그 이후 장면은 별건 없었다.

       한국 드라마의 수위가 높아야 얼마나 높겠는가.

         

       게다가 그 장면은 딱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 좋은 부분이니만큼, 그 부분을 딱 잘라버린 뒤 다음 화를 보게 만드는 용도로 쓰면 딱 맞기도 했으니….

         

       ‘아, 그래서 이 장면이 기억에 남았구나.’

         

       리세는 자신이 왜 그 장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는지 이해했다.

         

       이해해버렸다.

         

       두근두근한 느낌이 이어지려는 그 순간, 뭔가 기대감이 꼭대기까지 치솟은 그 순간.

       딱 잘라버리고 다음 화 예고가 떠버렸는데 어떻게 기억에 남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리 드라마가 이런 거라지만, 그 장면은 너무 심했다.

       심해도 너무 심했다.

         

       그래,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겠지.

       분노가 담긴 채 머릿속에 박혔을 텐데….

         

       리세는 그때 느꼈던 분노를 다시 떠올리자, 다시 한번 몸에 열기가 도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 열기는 아까 느꼈던 것과는 좀 다른 성질의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다른 성질이라고 해서 크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리세를 적극적으로 만들어주고, 망설임을 없애주는 역할은 했으니까.

         

       “에흠, 신주님. 들어가요.”

         

       리세는 눈을 빛내며 진성을 빈자리로 이끌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데 그때.

       양복을 입은 남자 한 명의 둘의 앞을 가로막더니 말했다.

         

       “잠깐. 신분을 증명할 것을 보여주시겠습니까?”

         

       “네, 네?”

         

       리세는 갑자기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경호원같이 보이는 사람의 모습에 당황했다.

       하지만 진성은 이런 일이 익숙하기라도 한 듯, 품 안에서 여권을 꺼내 보여주었다.

         

       “확인했습니다. 두 분이십니까?”

         

       “예. 두 명이 앉을 자리가 있습니까?”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빈자리에 안내해줄 서버가 올 겁니다.”

         

       남자는 진성의 물음에 잠시 기다려달라는 듯한 제스처를 했다.

       그리곤 가지고 다니는 리모컨같이 생긴 장치의 버튼 하나를 눌렀고, 그 버튼이 눌리자 서버(Server)로 보이는 여성 한 명이 진성과 리세에게 왔다.

         

       “이쪽으로 오시죠.”

         

       동양인으로 보이는 서버는 익숙하게 둘을 빈자리로 안내했다.

       그 자리는 기묘하게도, 리세가 눈여겨보았던 그 자리였다.

         

       약간 구석진 자리에 있고, 사진을 찍으면 포스터가 배경처럼 찍혀나오는 데다가, 바 안의 풍경이 멋들어진 배경처럼 찍히는- 소위 말하는 사진 찍기 좋은 명당에 안내가 된 것이다.

         

       리세는 자신들이 앉은 자리를 보고 눈이 살짝 커졌다.

         

       그리고 그러한 리세의 표정을 본 서버는….

         

       찡긋.

         

       좋은 시간 보내라는 듯, 리세를 향해 윙크를 한 번 하고는 미소를 짓고는 사라졌다.

         

       리세는 서버의 윙크를 받고 잠깐 당황했다가, 이내 그녀가 자신에게 왜 윙크했는지 깨닫고 말았다.

         

       손.

       손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쭉, 진성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바에 들어서기 전에도, 바에 들어선 후에도, 심지어 이 테이블에 안내될 때까지.

       계속 말이다.

         

       ‘아.’

         

       그러니 서버가 그들을 분위기 좋은 자리로 옮긴 것도 이해가 된다.

       풋풋한 분위기를 보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겠지.

       아니면 뭐, 그냥 여행 다니면서 좋은 추억 하나 쌓으라고 안내해준 것일 수도 있겠고.

         

       힐끔.

         

       리세는 슬쩍 진성을 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세한 움직임의, 누군가에게 하는지 모를, 그런 끄덕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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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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