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561

       *** ***

         

       혼인.

         

       중원에서의 혼인식이란 사실 식이라기보다는 길게 이어지는 연회에 가깝다.

         

       이는 시대상을 고려해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이 드넓은 중원에서 딱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맞추어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약속이 잡으면 일찍 출발하는 것이 보통이고 그리 출발해 여행이 순조롭게 이어진다면 며칠, 길게는 몇 주 먼저 도착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반면 악재가 겹치면 그리 일찍 출발하고도 제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렇게 객이 도착하면? 제 경사를 축하해주고자 먼 길 달려온 객들을 식전이라는 이유로 소홀히 대접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 그리 접대를 시작하면 혼인식을 올리기도 전에 피로연이 먼저 열리는 셈이다.

         

       현대에서도 결혼식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 중원무림의 혼인식은 그 규모가 다른 일생일대의 행사인 셈이다.

         

       그러니 나와 같이 성대한 혼인식을 올리는 이들은 일찍 들이닥치는 하객들까지 고려하여 미리 모든 준비를 마쳐야 했고 그 후에도 한달 정도는 혼인식에만 집중할 각오를 해야 했다.

         

       그리하여 혼인식이 이루어지기 한참 전부터 모든 준비를 마쳤다.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자리를 비웠던 흑묘를 비롯하여 혁기린, 독고이설도 그 시간에 맞추어 복귀했고 산장도 제 시간에 맞추어 재건했다.

         

       뿐일까.

         

       단기 하인 대거 고용. 철저한 식순 및 손님 접대 준비까지. 특히 손님 접대는 괜히 정파 사파끼리 객당에서 시비가 붙지 않도록 철저하게 동선까지 조율했다.

         

       준비는 만전 그 자체!

         

       “가주께 조언을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나 식의 점검을 위해 답사를 나온 예부의 관리들은 조금, 아니 많이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부마께선 무림인이시니 필히 황실의 법도를 지켜야 한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중원의 통례 정도는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로 조근조근 패는 예부의 관리들과 문제점을 고쳐나가기를 한참.

         

       “후우, 최소한은 갖추었군요.”

         

       예부의 관리들은 마치 61점으로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통과한 응시생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마지못해 합격 도장을 찍어 주었다.

         

       진짜 합격이라기보다는 혼인식이 성큼 다가왔으니 어쩔 수 없이 놓아주었다는 표현이 걸맞겠지.

         

       그렇게 혼인식까지 이 주 정도 남은 시점에서 정말로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고 오래간만에 서공을 쓰다듬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가주, 손님이 도착했습니다.”

         

       첫 손님이 도착했다.

         

       “오래간만이에요! 마술사님!!”

         

       멀리서 온 사람이 가장 먼저 도착한다는 법칙은 이 중원에서도 유지되는 것인지, 대망의 첫 손님은 머나먼 서장에서 중원까지 달려와 준 라노사라였다.

         

       이제는 도저히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 없을 정도로 폭풍 성장한 사라. 나이에 비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던 몸은 무인다운 건강한 신체로 거듭났다.

         

       “…사라?!”

         

       “세상에, 정말로 많이 자랐군요.”

         

       “언니! 드디어 기운을 제어할 수 있게 되셨군요! 축하해요!”

         

       흑묘와 여일예 그리고 사라가 손을 잡고 서로 반가움을 토해냈다. 뭐 흑묘도 태음지체를 제어하게 되었고 사라도 구음지체의 부작용을 완전히 극복한 모습으로 해후했으니 당연히 기쁘겠지.

         

       “서장에는 지금도 마술공연이 이어지고 있답니다! 후후, 아직 마술사님이 보여주신 공연을 따라잡으려면 멀었지만 훗날은 어떻게 될지 몰라요!”

         

       초면인 다른 이들과 안면을 트고 저녁에는 함께 식사를 했다. 서로 할 이야기는 산더미 같았으니 이야기는 끊이질 않고 꽃을 피웠다.

         

       찍찍!

         

       “어머!”

         

       특이점이라면 사라를 보자마자 서공이 철썩 달라붙었다는 점이랄까. 요새들어 사람에게 쓰다듬어지는 일에 익숙해진 서공이었지만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들러붙은 일은 처음이었다.

         

       내 생각으로는 구음기의 정순한 기운에 이끌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럴 수가…”

         

       사라의 손길에 좋아죽는 서공의 모습에 혁기린의 눈이 검게 죽었다는 사실만 말해주겠다.

         

       그렇게 사라를 쫓아다니는 서공과 그 모습을 건물 기둥 뒤에서 훔쳐보며 소매를 잘근잘근 깨무는 혁기린을 바라보길 며칠.

         

       본격적으로 손님들이 구름같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혼인을 축하드리오, 대협.”

         

       “감사합니다.”

         

       묵주문이나 경양식당과 같이 사천성에서 나름 인연이 있었던 문파들이 도착했고 내가 모르는 이들 역시 하나 둘 방문하기 시작했다. 하객은 나만 부르는 게 아니었으니까.

         

       “캬! 드디어 자네가 당주님을 데려가는구만! 진짜 기다리다가 목이 빠지는 줄 알았네!”

         

       “하하, 오래간만입니다. 두휘 님.”

         

       “당주! 얼굴을 그렇게 드러내놓고 다니니 내 속이 다 시원하오!”

         

       “후후, 고마워요. 다 여러분들의 노력 덕분이지요.”

         

       흑묘의 경우 월복당에 청첩장을 돌렸다. 이제 흑묘가 품고 있던 태음지체라는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굳이 월복당의 정체를 꽁꽁 숨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의 규제와 규율이 약화된 만큼 자연히 월복당의 정보력 역시 약화될 테지만 당원들에게 가해지는 규제와 규율이 가혹했던 것이 사실이었던 만큼 모두를 위해서는 감수해야 할 일이겠지.

         

       월복당의 정보력이 떨어지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흑묘와 월복당원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이게 최선일 것이다.

         

       “그럼 우리는 사모께 인사드리러 가겠네!”

         

       이미 나나 흑묘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는 이들이니만큼 나보다는 장모님인 손미옥이 더 궁금했던 모양인지 금세 사라지는 월복당원들.

         

       “하하하하하하! 자네 오래간만일세! 이 악경철을 잊지는 않았겠지?”

         

       “하하하하! 제 친우이신 악경철 대협을 어찌 잊겠습니까! 이리 자리를 빛내 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야금야금 따다가 크게 잃어주는 호구, 아니 든든한 저금, 아니 이득충 악경철도 빠르게 도착했다. 내 하객으로 초청된 것이 기회라 판단했는지 옥계에서 경공으로 하루면 닿을 거리임에도 벌써부터 달려와 붙어 있으려는 모습이 참 여전하다 싶었다.

         

       포달랍궁과 은원이 있으니 혹시 사라에게 해코지를 하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되었지만 큰 손해는 봐도 제 묫자리를 팔 정도로 어리석은 양반은 아니니 괜찮겠지.

         

       솔직히 말해서 손님 하나하나에 신경 쓰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몰려드는 손님이 좀 많았어야지.

         

       특히 혁기린과 모용연화의 이름하에 초대된 이들은 하나같이 거물들이었다. 두 사람의 인맥을 합치니 구파일방 오대세가 전체에게 청첩장이 간 것은 물론이요, 천하 각지에서도 이름만 대면 알 법한 문파들의 대표나 장이 한둘이 아니었다.

         

       게다가 황제파 신하들, 말이 좋아 신하들이지 고관대작들의 방문도 줄을 이었으니 말 다하지 않았을까.

         

       천하에서 모르는 자들이 없는 집단에서 나온 대표자들을 쉴새없이 만나고 있었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정신이 없는 와중 나를 더 정신이 없게 만들 얼굴들 역시 도착했다.

         

       “야! 우리 왔다!”

         

       “호천안 동기 나가신다!”

         

       동기가 혼인한다는데 제 인생이 바르게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경각심을 느끼기는커녕 더욱더 철이 없어진 두 놈을 비롯한 낭인객잔의 낭인들과 유사연이 도착했다.

         

       “진짜 혼례 한번 정신없이 치르는구나.”

         

       여길 봐도 거물 저길 봐도 거물인 상황에 기가 질린 유사연. 아마 사방에서 번뜩이는 시선에 담긴 의미를 알고 있기에 더욱더 그렇게 느껴지겠지.

         

       천하에서 이름난 거물이니 어쩌니 해도 결국 내 혼인식에 왔다는 것은 나와 어떤 식으로든 인맥을 쌓고 싶다는 뜻이다. 그런 이들에게 있어 유사연은 썩 괜찮은 교두보겠지. 나와 인연이 깊으면서도 상대적으로 그 위치는 높지 않은 사람이니까.

         

       유사연을 좀 챙겨 줄까 싶었지만 마음처럼 일이 풀리지는 않았다. 사발팔방으로 퍼져나간 낭인들 때문이었다.

         

       “두 분께 인사드립니다. 소녀는 모용연화라 합니다.”

         

       “오! 무림에 이름나신 춘풍소소 모용연화 소저가 아니십니까! 전 호천안의 [동기]인 고래검 여진상입니다!”

         

       “본인 역시 호천안의 [동기]인 반월도 정삼입니다. 이리 뵙게 되어서 참으로 영광입니다!”

         

       “니들은 좀 제발 밥만 처먹고 꺼져라, 응?”

         

       주접을 떠는 두 놈.

         

       “느껴지나? 나는 분명 자력으로 해냈다.”

         

       “잘하셨소. 그래서 어디 다저용은 좀 이길만 하시오?”

         

       “…”

         

       몇 년동안 끙끙 앓다가 겨우겨우 초절정에 오른 자소경이 무슨 용빼는 재주로 깨달음을 얻은 다저용을 따라잡았을까. 자력갱생했다고 자랑하러 온 자소경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물러났다.

         

       “서공! 서공은 어디에 있습니까?”

         

       서공 인형 세 개를 품에 안고 일단 서공부터 찾고 보는 서이령.

         

       “이령, 일단은 좀…”

         

       “서고오옹!”

         

       그런 서이령의 뒤를 졸졸 쫓는 조용상까지. 딱 봐도 조용상의 연심이 느껴졌으니 참 좋을 때다 싶었다.

         

       남들보다 배 이상으로 손이 가는 낭인놈들을 다 정리하고 나서야 나는 간신히 다음 손님을 맞이할 수 있었다.

         

       “오래간만이오. 대협.”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사마 태수.”

         

       다음 손님은 낭인들과 함께 동행해온 사마염이었다. 사마염은 나를 찬찬히 살피더니 빙그레 웃었다.

         

       “많이 성장하셨구려.”

         

       “그렇습니까?”

         

       그 성장이란 아마 무공의 성장이 아니겠지. 글쎄. 나는 과연 성장했을까. 나 자신의 갈고 닦음보다는 그저 사건사고를 해결하는데 집중한 느낌이었는데 말이야.

         

       그 과정에서 성장했다 치더라도 그걸 과연 성장으로 보아야 할지.

         

       “알면 좋으나 모르면 모르는 대로 좋을 일이오. 중요한 것은 바른 길을 나아간다는 사실이 아니겠소.”

         

       바른 길이라.

         

       그렇다면 사마염이 생각하는 바른 길이란 무엇일까.

         

       질문을 던지려 했으나 이미 늦어 있었다.

         

       “태수! 오셨습니까!”

         

       “공주 마마!”

         

       무당파에서 온 손님을 맞이하고 있던 혁기린이 합류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눈빛이 변해버린 사마염은 품에서 세필과 한 권의 책을 내밀며 외쳤다.

         

       “일단 이 금명월일상집에 서명부터 해 주시지요!”

         

       “…예?”

         

       “허, 그 버르장머리 없는 태양수호회라는 놈들 말입니다! 감히 이 사마염을 제치고 저들끼리 추종자들의 순위를 매기네 어쩌네 하면서 꺼드럭거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어야지요!”

         

       “아….”

         

       그래 확실히 사마염이라면 혁기린의 팬 0호라고 할 만한 자겠지. 모르긴 몰라도 태양수호회에게 인정받지 못해 그 자존심이 상했다고 한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특히 이 부분에다가 어렸을 때부터 절친한 친우이자 동반자인 사천태수 사마염이라고 글귀를…”

         

       “예, 예.”

         

       아무래도 사마염도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다. 당장 표정은 좀 떨떠름해도 혁기린 역시 사마염이 반가워 보이니 됐나.

         

       “와하하하! 교관님!”

         

       “교관님, 참으로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그 뒤로는 훈련생들을 대표하여 재상해와 광재련, 조가주가 찾아왔다. 이제 새로운 제련법으로 돈을 쓸어담고있는지 진짜 딱 졸부스러운 비단옷을 입은 광재련과 제법 기도가 창수처럼 바뀐 조가주. 그리고 언제나처럼 느물거리는 재상해까지.

         

       “그래, 놀지만 말고 뭔가 얻어들 가라.”

         

       광철공방에서 찍어낸 주괴에 관심을 가질 무가는 많을 터이니 광재련에게 이곳은 사업의 장이었고 조가주에게 있어서는 현경 화경 고수가 득시글거리는 이곳은 무학의 지평을 높일 장소였다.

         

       “어허, 교관님. 제가 뭘 얻어가려면 다리를 좀 놓아 주셔야지요.”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재상해는 당당하게 나에게 인맥을 요구했다. 고개를 까닥거리는 방향을 돌아보니 혁기린과 대화하고 있는 사마염이 보였다. 아무래도 재상해에게는 잘 나가는 지방 인맥이 필요한 모양이다.

         

       “기회가 왔다고 너무 거저먹은 모양입니다. 요새 시선이 따가우니 좀 낙양을 벗어나 지방에 가고자 합니다.”

         

       권신파를 싹 쳐냈으니 관직에 공석이 많이 생겼을 터. 아무래도 재상해는 그 기회를 너무 잘 타는 바람에 견제를 받는 모양이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만 좋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재상해와 근본정도주의자인 사마염이 잘 맞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재상해 정도면 소개해도 욕먹을 인재는 아니니까.

         

       그 뒤로는 모용모와 모용서가 찾아왔다.

         

       “하하하하! 형님!”

         

       “하하하하! 아우님! 잘 지내셨는가!”

         

       “예. 요샌 광산을 돌보느냐고 정신이 없습니다!”

         

       새끼 잘 지내는 모양이네.

         

       나는 큰 소리를 내며 모용모와 어깨 동무도 하고 그 상태로 주변을 지나가던 무림인들에게 모용모를 소개시켜주기도 했다.

         

       모용세가의 섬서분타는 명맥을 유지기로 했지만 그렇다 한들 나락으로 떨어진 평판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섬서분타의 본가 주장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혈교의 준동 때문에 천하 모든 이들이 피해를 입은 상황이니 혈교에게 이용당한 전적이 있는 섬서분타가 어떻게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무림영웅인 나랑 섬서분타 방계 출신인 모용모가 친하다는 소문이 퍼지면 뭐 큰 도움은 안되더라도 보탬은 되겠지.

         

       “하하하하!”

         

       모용모는 그런 내 배려는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채, 그저 의형제 취급해 기뻐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래. 눈치가 없으면 뭐 어떤가. 사마염의 말대로 바른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지.

         

       그리고 개똥도 약에 쓸 데가 있다더니 모용모도 쓸모가 있었다.

         

       “오, 그대가 내 [동기] 호천안의 의형제라는 모용모입니까? 본인은 반월도 정삼이라 합니다.”

         

       “하하하! 대협, 말씀을 편히 하시지요. 형님과 동기라면 응당 제 형님이 아니겠습니까!”

         

       “와하하하! 아우님 참 마음에 드는구만!”

         

       눈엣가시같던 정삼과 여진상을 데리고 술판으로 사라진 것이다.

         

       “배려해주어서 고맙소.”

         

       그 덕에 모용서와는 차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뭘요, 이제 한 식구 아닙니까.”

         

       “하하! 그렇구만. 앞으로도 잘 부탁하겠네.”

         

       그 뒤로는 청허 선사와 운종 선사가 이끄는 점창파의 제자들이 도착했다. 여일예와는 반가이 해후하면서 혁기린과는 서로 예를 갖추는 기묘한 장면이 연출되긴 했지만…그래도 사제지간의 정은 여전해 보였다.

         

       “자네가 결국 본문의 제자를 둘이나 데려가는구만.”

         

       여일예는 나와의 혼인을 위하여 정식제자에서 속가제자로 내려왔다. 그리고 혁기린은…좀 복잡한데 결론만 축약하면 속가제자가 되었다. 그러니 점창파 입장에서는 후예십시 중 두 자리가 비어버린 셈이었다.

         

       혁기린이나 여일예나 그냥 단순한 후기지수 중 한명이라고 볼 수 없는 이들이었으니 점창파 입장에서는 큰 손실이다.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무림의 시각으로 볼 때 말이다.

         

       진정한 정파 중의 정파로서 제자들 아끼기로 유명한 점창의 시각은 다르겠지.

         

       “송구합니다. 선사.”

         

       “후후, 농일세. 인연의 오고감을 어찌 사문이라는 이름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그저 가끔 들릴 터이니 박대나 하지 말아주게.”

         

       “제가 어찌 점창파의 식구들을 박대하겠습니까? 그저 편할 때 언제든지 방문해주셔도 됩니다.”

         

       여가산장과 점창파의 거리는 제법 가깝다. 그야말로 편하고 반가운 이웃이니 교류를 마다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선사님들은 내 대답에 만족해하면서 여일예의 안내를 받았다.

         

       온 천하에서 손님이 쇄도하는 정신없는 상황 속이었지만 옛 인연들과의 해후는 참으로 반가운 일이었다.

         

       물론 반가운 손님만 온 건 아니었다. 청첩장을 받고 왔으면서도 노골적으로 의심이나 적대감을 품은 이들도 있었으니까.

         

       “앞으로의 행보를 유의해야 할 것이오.”

         

       “우리가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뭐 이런 놈들이 무림의 평균인 게 사실이었다. 남의 경사고 흉사고 장사고 관심없이 무기부터 뽑아 객잔 다 작살내고 행사 다 잡치는 놈들 말이다.

         

       그래도 별 걱정은 들지 않았다.

         

       이런 이들은 결국 잔칫상에 날아든 날파리에 불과했다. 애초에 소란을 피워 주목을 받거나 명성을 올리려는 속셈은 결국 이들이 이름값이 없다는 반증. 물론 무림에서야 방귀 좀 뀐다고 평가받는 이들일 테지만 지금 여기에 모여 있는 이들이 어떤 이들인가? 왼쪽을 돌아보면 구파일방의 장로들, 오른쪽을 돌아보면 고관대작들이 즐비하다.

         

       날파리가 아무리 얼쩡거려봐야 상을 엎는다는 건 불가능하니 그냥 다른 손님들 신경 긁는 것만 좀 신경쓰면 될 일이다.

         

       물론 딱히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라고 다 무시할 만한 자만 온 건 또 아니었다.

         

       “쩝, 이런 애송이의 혼인식이나 보러 와야 한다니 이 사복설도 다 죽었군.”

         

       혈도 사복설이 나타났으니까. 운남을 대표하는 자리에서 천마를 향해 검을 뽑는 미친놈. 그 행실을 고려해보면 우리 집 객당에서 칼부림을 내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자였다.

         

       사파와 정파, 특히 운남사파와 사천정파의 인원들끼리는 마무칠 일 없이 동선을 짜 놓기는 했지만 이 미친놈이라면 찾아가서 시비를 걸고도 남는다.

         

       “자리를 빛내 주기 위해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편히 연회를 즐겨주시기를.”

         

       “흥, 무엇을 즐길지는 본인이 정한다.”

         

       “예, 제 얼굴에 먹칠을 하지 않는 선에서 즐겨주시면 됩니다.”

         

       내 대답에 사복설이 ‘이놈 봐라?’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호, 애송이 주제에 제법 세게 나오는구나. 내가 천마신교라나 암룡문이라는 뒷배에 겁이라도 먹을 것 같으냐.”

         

       “굳이 뒷배를 찾을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제가 대협보다 부족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대적이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군요.”

         

       사복설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고, 사복설의 전후로 산장을 찾은 이들의 안색이 시퍼렇게 질렸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사복설을 바라보았다.

         

       내 자신감은 허세가 아니었다.

         

       당연히 일대일로는 사복설에게 진다. 무림에서 괜히 배분을 따지겠는가? 살아온 세월이 다른 이들끼리 실력에 격차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고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었다.

         

       그러니 사복설과 내 대결이 성립한다는 것 자체가 사복설에게는 망신이다. 나이 지긋한 현경 고수가 이십대 후기지수 한 명도 제대로 못 다루고 도를 뽑는다는 상황 자체가 말이다.

         

       그리고 도를 뽑는다고 치더라도 사복설이 날 쉽게 제압할 수 있을까. 패배야 확정이지만 대결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수를 주고받기만 해도 사실상 내 판정승이다.

         

       만약에 사복설인 진짜 내 목숨을 해치려 한다면 일행들 불러서 육성진이라도 형성하면 된다. 이제 흑묘까지 화경에 올랐으니 사복설 정도라면 어떻게 이겨볼 법한 일이다.

         

       “..크크크! 재미있군. 재미있어.”

         

       진짜로 일행들 불러서 육성진을 펼쳐야 하나 고민이 될 정도로 대치가 길어질 즈음, 사복설이 웃음을 터트리며 물러섰다.

         

       “거칠게 구른 놈이라 그런지 애송이치고 기개가 제법이구나.”

         

       결국 사복설은 끝까지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말은 입에 담지 않았으나, 결국 뼛속까지 무인인 자이니만큼 날 인정한 이상 큰 문제는 일으키지 않겠지.

         

       어디까지나 약자치고 인정 받은 편인지라 진짜 사고가 일어날 상황에서 참지 않으리라는 것이 문제겠지만.

         

       그 뒤로는 당가의 사람들이 도착했다.

         

       “대협, 축하드립니다.”

         

       “여, 제자야.”

         

       “호 형, 축하드리오.”

         

       “끌끌, 오래간만에 보는구나.”

         

       “오라버니! 언니들! 축하해요!”

         

       당가에서는 독의 어르신과 함께 당도경과 려아, 그리고 당도연과 당소열이 와주었다. 아무래도 비천마차로 마음껏 달리지는 못한 모양인지 당도연의 얼굴이 좀 푸석해 보였지만 뭐 수년간 즐길 만큼 즐겼으니 이제는 좀 쉬어야지.

         

       려아와 손을 잡고 꺅꺅 공명하며 너무 예뻐젔다니느니, 언니들이야말로 너무 예쁘다느니 꽃향기 풀풀 나는 걸즈 토크에 돌입한 일행들을 뒤로한 채 오래간만에 독의 어르신과 인사를 나누었다.

         

       “흑묘 소저의 체질은 말끔하게 고쳐진 모양이로군. 참으로 잘되었네.”

         

       “약조하셨던 보약은 잊으시면 안됩니다.”

         

       “그래. 내 정력에 좋은 놈으로만 골라서 챙겨주지.”

         

       역시 이 양반이 뭘 아시는구만. 서로 은밀한 웃음을 주고 받고 있자니 뒤에서 얼쩡거리는 막이가 눈에 들어왔다. 의원복을 입은 것을 보니 결국 어르신이 제자로 거두신 것일까.

         

       하체가 유독 튼실해진 모양으로 봐서는 거의 약초꾼이 가까워 보였지만 말이아.

         

       “너도 잘 살고 있냐?”

         

       “예? 예. 대협…소인은 잘 지내고 있사옵니다.”

         

       아무래도 떡상한 내 명성에 짓눌린 모양이다. 뭐 그래 지금의 내가 서로 옥신각신하던 일류따리 사천낭인이 아니긴 하지.

         

       내가 요새 명성이 대단하긴 하지만 막이도 독의 어르신의 제자나 마찬가지니 결코 낮은 신분은 아닌 셈. 그러니 이렇게 저자세를 취할 필요는 없을 텐데 말이야.

         

       “너 뭐 잘못 먹었냐?”

         

       “허이구, 내 얼굴에 제대로 똥칠을 하는구나.”

         

       “뭐! 뭐냐! 기껏 대우해줬더니만…!”

         

       나와 독의 어르신에 면박에 발끈하는 막이. 그러고는 이내 뜨악한 표정으로 실수했다는 듯이 입을 틀어막고는 눈알을 굴리며 눈치를 본다.

         

       그 모습을 본 독의 어르신은 진짜로 수치심을 느끼신 모양. 이내 손이 번개같이 움직여 막이의 귀를 잡아당겼다.

         

       “악! 악! 어르신 아픕니다!”

         

       “이놈의 자식! 그냥 닥치고 따라와라!”

         

       소란을 피우며 객당으로 사라지는 막이와 독의 어르신. 결국 둘다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혼인을 축하하오. 호 형.”

         

       “고맙소. 당 형. 당형께서는 소식이 없으시오?”

         

       “하하하하! 그러게나 말이오! 호 형에게 이런 말을 듣는 날이 올 줄이야. 이 당모도 경각심을 좀 가져야 하나 봅니다!”

         

       왜 내가 뭐.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그냥 슬쩍 웃음이 나왔다. 뭐랄까. 진짜 당도경은 나에게 있어서 친구같은 자이기 때문일까.

         

       “나중에 잘 나간다고 청첩창을 무시하지나 마시오.”

         

       “이번에 하는 거 봐서 결정하겠소.”

         

       “하하하!”

         

       그렇게 웃고 있자니, 주변이 점차 조용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 이 여가산장에는 그야말로 수많은 사람이 있다. 초대받은 하객은 물론이고 그 하객들을 소화하기 위해 고용된 수많은 하인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대접하기 위한 물자를 옮기는 상인들까지.

         

       사람 소리가 끊일래야 끊일 수가 없는 환경인데 소란이 잦아든다라.

         

       아무래도 그 사람이 온 모양이다.

         

       스스스스스!!

         

       이내 산장의 정문에서 그 기세가 조금씩 풍겨온다. 계단을 오르고 있는지 조금씩 문과 담을 넘어 산장을 잠식해가는 검은 기운.

         

       꿀꺽!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는 마른침 삼키는 소리와 함께 이내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강렬히 빛나는 태양 아래에서도 윤기조차 나지 않는 칠흑의 머리카락과 그런 머리카락이 드러워 진 얼굴 속에서 광채를 뿜어내는 붉은 눈동자. 그리고 언제나처럼 오만함과 자신감이 묻어나는 비틀린 입꼬리까지.

         

       소천마 위서련이었다.

         

       “다행히 본녀가 늦지는 않은 모양이군.”

         

       활기 대신 정적이 흐르는 산장. 그런 분위기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는 듯 태연하게 말을 거는 위서련.

         

       참 위서련다운 모습이었다.

         

       “어서 오시지요.”

         

       혼인식 이틀 전.

         

       초대받은 모든 손님이 도착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두화로 자를까 하다가 결국 편집점을 찾지 못해 고봉밥이 되었군용.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