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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1

    “정말 이런 곳에 우리가 찾는 게 있을까?”

    시에나의 불안 섞인 목소리에 루크는 지체없이 대답했다.

    “아마도. 그대도 규칙성을 확인하지 않았나?”

    루크가 지도에 굳이 귀찮게 직접 펜으로 표시까지 해가며 위치를 정확히 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모든 사건의 발생 위치와 화물의 위치가, 뒤집어진 황제 자리의 모양과 놀라우리만치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별자리라는 것이 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들을 마찬가지로 무수히 많은 현상에 대치되는 규칙으로 이어 만들어지는 것이 기본이기에, 과거 점성술사들 사이에선 ‘대충 모래를 던진 종이에 점 몇개를 이어놓으면 비슷하게 생긴 별자리가 존재할 것이다’라는 우스개소리도 있을 정도이기는 하다.

    게다가 루크가 있던 시대에서 무려 5000년이나 흐른만큼, 몇몇 별자리는 이미 형태가 달라져 전보다 더욱 많은 형태로 분화되었을 것임을 생각해보면 그 말이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황제자리’만큼은 그런 농담이 통하는 별자리라고 볼 수 없었다.

    천체에서도 움직임이 거의 관측되지 않는 48개의 별, 그것들을 이어 ‘영원한 권력’을 형상화한 황제자리는 별자리 중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많은 별을 잇는 모양이었으니까.

    그러니까, 황제자리 만큼은 각 지점들이 절대 우연히 비슷하게 생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루크에겐 상당히 골치아픈 상황이었는데, 황제자리는 가장 복잡하고 강력한 의미를 지닌 형태인만큼, 완성되었을 때의 마법적 현상 또한 매우 강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 완성되지 않은 지점이 단 두개 남아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이 토레프거리.

    그리고 조금 떨어진 장소에 위치한 자레드 외곽 통합물류공장이었다.

    계획 브리핑 전에 이미 이야기를 전부 들은 시에나였지만, 역시 불안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곳에 정말 뭐가 있기엔…….”

    도심지 외곽에 위치한 ‘토레프 거리’는, 그야말로 빈민가라는 말이 어울리는 장소다.

    단적으로 말해서 모두의 관심에서 잊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빈자들이 몰려든 장소.

    그렇다보니 거주지를 향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래서 정말 그렇게 생각하기 싫지만, 시에나는 떠오르는 불길한 생각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정말로 이미 사건이 있었는데, 단지 우리가 알아차릴 수 없었던 거라면?”

    도시에선 한명밖에 죽지 않은 테러를 갖고 한참을 떠들지만, 이런 빈민가에선 누가 한파에 얼어죽든, 칼에 찔려 객사하든,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런 동떨어진 빈민가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이슈가 될 수 없으니까.

    안타깝지만 이는 분명한 현실이다.

    그러니 어떤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루크가 그걸 앉아서 확인할 방법은 전무하다.

    어쩌면, 루크가 말한 ‘황제’는 이미 완성된 상태고 자신들은 그저 그 사실을 확인하러 온 것 뿐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으리라.

    그리고 그 사실을, 루크도 알고 있었다.

    “……”

    일단은 물류센터에 ‘화물’이 도착한 기록은 없다만, 화물이 도착한 기록이 딱히 없음에도 발생한 몇몇 사건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으로선 그저 그렇지 않기를 비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적어도 아직은 형태가 완성된 특별한 마력의 흐름같은 것은 감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는 수밖에…….’

    —–

    “바이크를 타고선 더이상 갈 수 없겠는걸.”

    천천히 거리를 지나던 시에나가 문득 거주구 근처에서 바이크를 멈춰세우며 말했다.

    그동안은 어떻게든 바퀴달린 탈것이 움직일 수 있을만한 길이 존재했기 때문에 어찌어찌 몰고 왔지만, 사람이 사는 거주구쪽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길도 좁아지고, 계단이나 언덕도 제멋대로여서 도저히 바이크를 몰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여기서 억지로 더 바이크를 끌고 들어간다고 해도, 좁은 틈을 빠져나올 수가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군, 여기부터는 도보로 다니면서 탐문을 하도록 하지.”

    “그래.”

    시에나는 바이크의 시동을 껐고, 루크는 뒷자리에서 내려 주변의 상황을 둘러보며 한숨을 지었다.

    “그나저나, 참 슬픈 현실이군. 아직도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하류에 가까운 강물은 인근 공장이나 폐기물 처리장에서 떠내려온 죽은 마나더스트와 쓰레기때문에 거의 오폐수나 다름없는 상태였고, 하수구에는 아마도 그 찌꺼기들을 받아먹어가며 살고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쥐와 벌레의 시체, 그리고 슬라임의 점액이 온통 들러붙어있었다.

    아마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쥐와 벌레와 슬라임의 삼파전이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으리라.

    눈을 돌려 사람이 사는 주거구역도 눈쌀이 찌푸려지는 상태임은 마찬가지.

    지형이나 미관,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지어올린 건물들은 정말이지 부실한데다 복잡해서 보는 사람 정신이 다 나갈 것 같은 산만한 모습으로 그녀들의 눈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동안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현대의 모습에 도취되어 존재를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역시 ‘빈민’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 오히려 그들의 부정적인 상황은 5000년 전의 그 때보다 더욱 심화된 것만 같다.

    강에도 상류와 하류가 있는 것처럼.

    어쩌면 이게 세계가 돌아가는 법칙으로 정해진 것일지도 모르지.

    사실, 급을 나눠 차별을 자행하는 건 사람뿐만이 아니다.

    어느정도 지능이 있고, 무리를 이루는 모든 생물들은 자연스레 각자의 기준으로 등급을 매기고 살아가는 법이니까.

    세상 어딘가에는 이런 세계가 있으리라는 사실을 머리속으론 알고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게 되니 생각보다 씁쓸한 기분이 든다.

    시에나는 어딘가 복잡한 심정의 루크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두었다.

    루크라면 자신이 어설프게 위로하지 않아도 스스로 납득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실제로 루크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전과는 달리 능숙해진 솜씨로 바이크헬멧을 벗으며 시에나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들어가지.”

    그렇게 루크가 거리로 걸음을 향하려던 순간이었다.

    “잠깐만, 루크야.”

    “응?”

    “가는 건 좋은데, 일단 가기 전에 이 바이크를 좀 어떻게 다른 곳에 맡기거나 숨겨둬야 할 것 같아.”

    누구보다 범죄와는 먼 청렴한 성격의 시에나였지만, 역설적이게도 누구보다 범죄와 가까운 직업이었던 탓에, 그녀로서는 당연히 어떤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뭐 사람을 경제적 수준에 따라 차별하고 그러는 건 아닌데, 이런 곳에 이런 좋아보이는 바이크를 놔두기엔 좀 불안해서. 그리고, 이건 내 바이크도 아니잖니?”

    보아하니 제대로 된 주차시설도 없어보이는데, 우범지역으로 분류되는 이 장소에 이렇게 비싸보이는 바이크를 세워뒀다간…….

    여기 사는 사람들을 전부 도둑으로 보는 건 아니지만, 역시 긍정적인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 그렇군.”

    그런 시에나의 주장에 루크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도 빈곤한 지역에 명마를 끌고가는 사람은 없었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는 순간, 어떤 값비싼 명마라도 굶주린 빈자들에 의해 가장 질 낮은 방식으로 요리되어 그들의 뱃속을 채우게 되어버릴 테니까.

    물론 그런 짓을 했다간 다시 그 말의 주인(보통은 꽤나 권력있는 부유층일 것이 확실한)이 돌아왔을 때 그들의 목이 남아있으리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당장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뒷일따위 생각할 여유가 있을 리 없잖은가?

    아마 그런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이리라.

    “그래도 뭐, 그런 문제라면 걱정 말게.”

    하지만 루크에겐 그런 시에나의 걱정을 가볍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스윽.

    루크는 주머니에서 작은 마석을 꺼내 바이크에 가져다대었다.

    그러자 바이크는 순식간에 빛과 함께 휩싸이더니, 모습을 감췄다.

    아공간을 활용하는 간단한 수납 아티팩트이다.

    그 후, 루크는 시에나에게 바이크를 수납한 흑색 마석을 건네며 말했다.

    “자, 어때. 이제 괜찮지?”

    그 모습을 본 시에나는 문득 당황하며 그 보석을 받아들었다.

    자세히 보니, 마석 내부에 작은 미니어쳐처럼 변한 바이크가 담겨진 게 보였다.

    ‘이 작은게, 아공간 아티팩트라고?’

    아니, 진짜 너무 오랫동안 경찰로만 살아서 그런가?

    며칠 전에 그 병수발 들어주는 곰인형 때도 그렇고, 원터치식 아공간 아티팩트라니!

    요즘 기술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예르나가 요즘 돈 많이 버나?

    이런 물건이 무슨 애 주머니에서 턱하니 튀어나오는 건데?

    “이거 비싼 거 아니니?”

    시에나가 그렇게 묻자, 루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대 걱정만큼 그렇게 비싼 게 아니니 부담갖지 말게. 어디서든 살 수 있는 흔한 마석에 세공을 해놨을 뿐이니까. 그리고, 방금 그게 한계용량일 정도로 수납공간이 그렇게 크지도 않고…….”

    공간왜곡식조차 적용하지 않은, 기초적인 정보 보존식 아티팩트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얘기냐면, 이건 물체를 직접 보관하는 게 아니라 물체의 정보를 축소시켜 보존하고 아공간에서 불러낼 때 질량을 불러와 다시 생성하는 방식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보니 생물의 유동적인 마나흐름까진 보존할 수 없어서 살아있는 것을 수납할 수 없는 데다, 주변의 마나환경이나 정보전달력에 따라 안정성도 떨어지는 단점이 있는 임시품에 가까운 물건이지만, 그래도 ‘게이트’를 열기엔 아까울 때 몇개 쯤 쓸만 하지 않을까 싶어 몇개 주워온 거랄까.

    용량으로 따지면 루크가 시에나의 집에 짐을 가져올 때 사용한 여행가방이 훨씬 큰데다 들어가는 기술도 고급이었지만, 바이크에 그런 대용량 가방은 실을만한 공간이 없어서 불편했으므로.

    “으음, 그렇구나.”

    사용된 기술을 설명하며 별것 아니라는 듯 이야기하는 루크의 말을 들으며 다시 보니, 확실히 재료는 그다지 비싸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양산품이라는 느낌이 든달까.

    뭔가 섬세하게 느껴지는 세공을 제외하면, 마석의 빛도 탁한 것이 순도가 높아보이지 않고, 주변을 감싼 금속도 그냥 싸구려 잡철같은 느낌이었다.

    이후 시에나는 순수하게 감탄하기 시작했다.

    아공간 마법이 인챈트된 가방이나 주머니는 많이 봤는데, 이런 보석 형태인 건 처음봤다.

    보기에 예쁜데다 실용적이기까지!

    어디서 파는 지 알면 자신도 하나 구비해두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거 하나면 방금 전처럼 주차문제도 해결되는데, 악세서리나 인테리어 소품으로 장식해도 꽤나 어울릴 것 같기도 하니까.

    그런 시에나의 표정에서 감정을 읽은 루크는 선뜻 말했다.

    “가지고 싶으면 가져도 된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그리 비싼 건 아니니까.”

    “정말? 가져도 되는거야?”

    루크의 통큰 제안에 시에나는 처음에는 엄청 기뻐했지만, 이후 난해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마석의 직관적이지 않은 사용법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이내 보석의 표면을 툭툭 건드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시에나는 루크에게 보석을 되건네며 물었다.

    “그런데 이거 안에서 다시 꺼낼 땐 어떻게 꺼내?”

    “아차.”

    그러자 루크는 그제서야 미처 그걸 생각 못했다는 듯, 이마를 탁 쳤다.

    사실 마력을 주입하면 간단히 사용할 수 있는 도구이지만, 서클도 없고 공간관련 클래스의 주문도 알지 못하는 시에나에겐 마석에 갇힌 바이크를 다시 불러낼 방법이 전무했던 것이다.

    결국, 루크는 시에나에게 다시 마석을 받아가며 나중에 그녀도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의 물건으로 다시 선물해주겠다고 했지만, 시에나는 차마 용돈을 챙겨주지는 못할망정 뭘 받는다는 게 문득 염치없게 느껴져 거절했다.

    그래도 내심 루크가 몰래 깜짝선물로 준다면야…….

    그땐 사양하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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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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