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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2

    <562 – 그렇게 올라오는 거 아닌데(4)>

     

    장차 대륙최강을 논할 수 있는 세력은 여럿이 있었다.

     

    엘프들의 엘븐하임.

    언더월드의 헬하임.

    인간들의 신성중앙제국.

     

    신성중앙제국의 군단은 제국에 복귀하자마자 지하에서부터 열린 헬게이트를 닫기 위해, 지하에서 얻을 수 있는 고가치 아티팩트를 탐내는 제국 내 세력들을 저지하느라 완전히 발이 묶였다.

    엘븐하임은 세계수가 불타고 유실되어 거점이 소실되니 제 가치를 상실했다.

    현재, 세계최강을 논할 세력은 불과 1년 사이에 바뀌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와이히엠하이 재단.

    제국과 자웅을 나란히 하는 인간계 최대규모세력.

    그 재단의 방첩파트를 담당하는 암살메이드들이 무뚝뚝한 얼굴로 전송소의 안팎을 이중으로 지키며 일제히 이쪽을 응시했다.

    이사장의 허락이 없는 한, 누구도 여기서 무사히 벗어날 수 없다.

    마치 그렇게 주장하는 것처럼.

     

    “벨라. 문을 열어주시겠습니까?”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파파의 목소리에 크게 움찔하는 티토소가.

    나 지금 울어도 되지? 하고 묻듯이 힝 거리는 티토소가의 옆에서 벽이 스르륵 움직였다.

     

    “히약!”

     

    긴 검정 망토를 걷으며 은신을 해제하고, 어둠 밖으로 걸음을 내딛는 암살메이드.

    분명 눈앞에 있음에도 어둠 속에 있는 것처럼 흐릿하게 보이는 상대에게서 나는 무섭도록 익숙한 긴장감을 느꼈다.

     

    제국의 혁명가.

    만신의 대리인.

    결사의 총수.

     

    삼대거악 중 지금껏 내가 경험했던 회차에서 재단 대신 존재했던 ‘비밀결사’의 특급자객 언럭.

    고인물들 사이에서도 언럭이 뜨면 환생트럭에 치였다는 말이 농담처럼 전해질 정도로 살벌한 강자가 손을 뻗었다.

    목 근처로 스산하게 이는 기운에 보호막을 만들어 저항하니, 언럭이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찰칵.

    끼이익.

     

    미끄러짐 없이 정확하게 문고리를 잡아 여는 손길.

    나는 저 손길에 목이 붙잡힌 회차들을 기억한다.

    적게 잡아도 수십.

    빌드 구축이 완성되지 않은 근 력올인한방캐릭이좋아해병도 암살할 수 있는 강자다.

     

    “힝잉…?”

     

    언럭의 불길한 기운에 울음을 터뜨리려던 티토소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침묵과 어둠은 그녀를 더욱 공포스러운 암살자로 만들어주었고, 티토소가의 힝잉잉은 목을 겨누는 서늘한 기운에 놀라 이어지지도 못했다.

     

    “친구들과의 우애가 더욱 돈독해졌군요. 교우관계를 소홀히 하지 않는 모습에 이 파파는 안심했답니다.”

    “파파네 메이드들도 건강하네요! 꽤 강한 독연을 풀었는데 아무도 쓰러지지 않을 줄은 몰랐어요!”

    “하하. 리프는 독에도 조예가 있지만 아직 배울 것이 많습니다. 정말로 귀한 독은 값지고 쉽게 구할 수 없죠. 독단은 금수저들의 전유물이랍니다.”

     

    역시 독공은 리프가 키워주는 것만 받아먹으면서 설렁설렁 키우는 것이 옳았다.

    돈 많은 악성향 갑부 NPC들과 돈으로 싸움 붙으려고 해서는 필패가 확정이지!

     

    “혁명군 놀이에 심취하지 않고 이렇게 성장을 도모하고자 천령산맥을 찾아온 점도 높이 평가할 점입니다. 위업 하나를 이루고 세상 다 산 것처럼 은퇴하고 다 내려놓고 노는 족속들이 많아서 파파도 이래저래 걱정이 컸답니다.”

    “괜찮아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제 목표는 훨씬 더 원대하니까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내려놓아야 할 짐이 있다면 버릴 수도 있겠습니까?”

    “친구들은 짐이 아니에요!”

    “저런. 파파가 친구들을 짐이라고 말할 거라고 의식했던 겁니까? 은연중에 부족함이 있다고 느껴도 친구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하면 서운함을 느낄 겁니다.”

     

    티토소가가 바로 눈시울이 그렁그렁해졌다.

     

    “노디이… 우리 짐이야…?”

    “그럴 리가! 티토소가는 천사의 엔젤링 같은 거야!”

    “헉. 내가 그렇게 천사처럼 귀여워?”

    “엔젤링이 떨어진 천사는 49일 내로 새로운 엔젤링을 구하지 않으면 죽는대!”

    “무, 무슨 의미야…?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어차피 49일 내로 다시 만들 수 있으면 이론상 눈에 보일 때마다 뚝뚝 떼어뒀다가 다시 강화하면 고강 엔젤링을 얻을 수 있잖아?”

    “머야 그게. 천사한테 돌려줘 엔젤링!”

    “엔젤링은 달고 있으면 이속이 막 올라가서 좋아. 고강 옵션만 잘 띄우면 천사가 아니어도 달 수 있어. 티토소가랑 똑같지?”

    “의미를 모르겠어!”

     

    티토소가는 몰라도 된다.

    사실 티토 들으라고 한 소리가 아니니까.

     

    “호오. 혹시 그 엔젤링은 비공정에도 달 수 있습니까?”

    “해보면 알지 않을까요!”

    “도전정신이 생기는군요. 아주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입니다. 역시 우리 딸은 어른과 거래할 줄 아는 똑똑한 아이입니다. 칭찬해드리죠.”

     

    파파가 벽에 종이 하나를 붙이고는 도장을 찍었다.

     

    ━━━

    [합격]

    티토소가

    ━━━

    [심사 중]

    오크노디

    즈앙

    지젤

    이사벨

    손오천

    히스클리프

    브론즈 디 아스트라다

    ━━━

     

    목적이 아주 불순해 보이는 리스트가 떴다.

     

    “쥐방… 오크노디 아버지? 거 실례지만 뭐 하는 명단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저런. 선물은 모르고 받을 때가 가장 즐거운데요. 정말로 알고 싶습니까?”

    “…”

     

    불길한 상상에 휩싸인 손오천이 굉장히 찝찝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재단 장학금 심사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선물을 주면서 합격 불합격을 따져? 솔직히 말해. 당신, 우릴 죽이려고 왔지?”

    “이해할 수 없군요. 제가 왜 그런 아까운 짓을 저질러야 합니까?”

    “아까운 짓…?”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며 쏘아붙이던 이사벨도 혼란에 빠졌다.

     

    “아이들은 누구보다도 이기적입니다. 추함과 약함에 대한 혐오를 감출 줄 모르고, 어른들보다도 법과 도덕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죠. 물론 제 아이가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만, 여러분은 순수한 아이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우릴 이용하겠다는 거야?”

    “딸아이의 장난감을 빼앗을 정도로 저는 야박한 파파가 아니랍니다. 어른이 되면 빛바랠 친구라고 해도 어린 시절에는 곰 인형처럼 소중히 아끼고 애지중지하기 마련이죠. 적어도 몇 년간은 제 아이의 장난감이 되어줄 여러분을 어찌 제가 빼앗겠습니까?”

     

    너희는 버려질 것이다.

    다름 아닌 내 손에 의해서.

    그렇게 단언하는 파파의 말에 이사벨의 눈에도 걷잡을 수 없는 불안이 소용돌이쳤다.

    왜들 저렇게 겁이 많을까?

    나는 안심하라는 의미로 모두를 격려했다.

     

    “입학 동기에 같은 강의 듣는 친구끼리 이것저것 재는 법이 어딨어요? 졸업할 때까진 다 친구죠!”

    “오크노디. 졸업할 때까지라는 말은 졸업 이후에는 아니라는 뜻이야?”

    “즈앙, 너무 서운해하지는 마. 모두가 한날한시에 졸업하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잖아! 오히려 그런 거 부담 갖고 같이 졸업하려고 하다가 뱁새가 황새 몰?루하게 돼!”

     

    즈앙의 눈에도 배신감이 일었다.

    힝.

    걱정을 덜어주려고 했는데 왜 다들 걱정이 더 늘어난 것 같지?

     

    “힝. 파파 때문에 모두랑 사이가 멀어졌잖아요. 파파 미워!”

    “이런. 미움받는 일은 괴롭습니다. 제가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받는 미움이라면 특히나 더 그렇죠. 용서를 구해도 되겠습니까?”

    “싫어요!”

    “사과의 의미로 선물도 드리죠.”

    “…먼지는 들어볼래요!”

     

    파파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합격도장을 내밀었다.

     

    “이름 하나를 찍을 기회를 드리죠.”

    “그럼 이사벨의 이름을 찍을게요!”

     

    즈앙의 눈에 서운함이 더해졌다.

     

    “오크노디. 역시 내가 베스트프랜드라는 말은 거짓이었어? 우린 베프가 아니었던 거야?”

    “이건 베프를 찍는 투표가 아니야!”

    “그럼 알려줘. 적어도 오크노디는 이게 뭔지 이해하고 고른 거잖아.”

    “착한아이를 고르는 명단이라고 생각해!”

    “착한아이…? 그럼 난 이사벨보다 나쁜아이야?”

    “착한 게 꼭 좋은 건 아니야! 어른들은 착하다는 의미를 보통 잘못 사용하거든.”

     

    즈앙의 눈에서 서운함이 사라지고 대신 호기심이 생겼다.

     

    “손 많이 가지 않는 아이. 시키는 대로 말을 잘 듣는 아이. 뭐든지 실패하지 않아서 대견한, 욕하거나 때려서라도 재촉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 어른들은 그런 아이를 착한 아이라고 부르기도 해!”

    “아니 시벌 드럽게 나쁜 의미네?”

     

    손오천이 불쑥 욕설을 내뱉었다.

    지젤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런 의미에서라면 티토소가와 이사벨은 비교적 고분고분한 편이기는 하군요. 이용하기 쉽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심사를 고분고분하게 따르지는 않았다.

     

    “손오천. 부축은 되었다.”

    “오. 히스클리프 형씨. 벌써 다 나은 거요?”

    “심사란 높은 자가 낮은 자의 등급과 당락을 결정하는 짓. 어중칠검의 위에 선 자는 오직 제국의 황제뿐이다. 어찌 제국의 황제가 아닌 자에게 고개 숙여 평가를 받기를 자처할 수 있는가.”

    “정 그렇다면 이대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뭐? 이걸 그냥 보내줘?”

    “제가 여러분의 목숨을 붙잡고 협박이라도 하는 줄 알았습니까? 하하하. 몇 번이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소중한 딸에게 선물을 주러 왔을 뿐입니다.”

     

    어떻게 날 의심할 수 있냐며 짐짓 상처받은 표정을 짓는 파파.

    파파의 능청스러운 태도에 히스클리프는 얼떨떨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대로 내가 애들을 데려가겠다고 한다면?”

    “아이들은 선물을 받지 못해 슬퍼하겠죠.”

     

    갑자기 자신이 나쁜 어른이 된 기분에 휩싸인 히스클리프가 어쩔 줄 몰?루했다.

    고민에 빠진 히스클리프를 보다못한 그림자가 불쑥 일어나서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이제 됐다. 당신은 륭 노사에게 가혹하게 시달린 탓에 판단력이 온전치 못하나보군.”

    “지금 어중칠검을 무시하는 건가?!”

    “무시라…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 어중칠검은 대륙십대도적과는 입장이 다르니까.”

    “너희가 어중칠검보다 강하다는 거냐!”

    “강함? 그런 허울뿐인 문제가 아니다. 대륙십대도적은 랭킹보드에 이름이 기재되지. 그리고 그 이름을 지키는 자에게는 행운이 함께 한다. 누구나 탐이 날 정도로 대단한 행운이.”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걸까.

    히스클리프가 조심스럽게 나와 파파, 교수님이 고려했던 문제를 입에 담았다.

     

    “서열쟁탈전을 우려하는 건가?”

     

    랭킹보드에 이름을 실은 자.

    행운을 지킬 힘이 없는 자.

    언제 어디서 강자들의 습격을 받아 죽을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자.

     

    너무 빠른 성장은 그런 위험을 동반한다.

    동료들은, 적어도 내 눈에는 그런 위험을 언제나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니 이건 기회다.

     

    “이런. 선물의 정체가 들켰군요.”

     

    파파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솔직하게 인정했다.

     

    “재단에 쓸모를 증명하지는 않아도 됩니다. 그저 스스로를 증명하십시오. 그럴 수 없는 약자들에게 베푸는 선물. 그것이 바로 ‘선제적 서열쟁탈전’에 의한 랭킹 회수입니다.”

     

    랭킹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습격당하기 전에 먼저 평화롭게 랭킹을 거두어간다.

    약자의 목숨을 구해준다는 측면으로 해석하자면, 파파의 명단에서 합격도장을 받는 사람은 목숨을 선물 받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착한 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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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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