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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2

        

         

       괴물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존재.

       그 존재는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하키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있지도 않았고, 사람을 재료로 이상한 생체실험을 하다가 괴물을 탄생시킬 정도로 매드 사이언티스트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부려 먹히다가 결국 분노에 눈이 돌아가 버려 괴물을 탄생시킨 불쌍한 대학원생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교수 아래에서 한껏 단련된 말솜씨와 글솜씨로 괴물을 꾀어서 테러를 벌이려고 하는 문과 계열 대학원생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여성.

       그것도, 아름다운 여성이다.

         

       윤기 흐르는 머리카락은 찰랑거리고 있었고, 육감적인 몸매와 몸에 딱 맞는 드레스는 눈 둘 곳을 두기가 힘들었다.

       딱 달라붙는 드레스는 가슴의 윗부분이 드러나는 형태였고, 치마는 나름 긴 것 같지만 몸의 윤곽을 드러낼 정도였기에 오히려 눈을 두기가 힘들었다.

         

       미녀.

       길을 걷다 보면 수많은 사람이 눈길을 주고, 말을 주고, 접근할만한 미녀였다.

         

       실제로 지금 일어나는 소동을 보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잠깐이나마 그 여성에게 쏠리기까지 했으니, 지금 등장한 여성의 매력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또각.

         

       여인은 괴물과 문 사이에 발을 집어넣었다. 그리곤 지나가려다가 괴물이 비키지 않자, 잠시 눈살을 찌푸리더니 하얀 종아리로 괴물의 다리 부분을 툭 쳤다.

       그러자 괴물은 한 대 얻어맞은 가전제품처럼 움찔하더니 몸을 옆으로 붙이며 여인이 지나갈 만한 충분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바 안으로 발을 디디는 여인은 화가 난 것 같은 표정을 지은 채 악취를 풍기고 있는 동양인 남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너 잘 걸렸다는 듯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가, 무엇이 떠오른 것인지 잠시 멈칫했다.

         

       후우우우-

         

       그녀는 화를 식히기 위한 것인지 작게 한숨을 쉬더니, 남자를 쫓아오느라 살짝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고자 자기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리곤 가볍게 손짓으로 긴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뒤, 손을 들어 올렸다.

         

       그렇게 손을 들어 올린 여인은 마치 수신호를 보내듯 손짓했고, 괴물은 그 신호를 보자 프로그래밍 된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듣기만 해도 육중한 소리.

       뭔가 어설픈, 그렇기에 더욱 기괴해 보이는 외형과는 달리, 그 무게와 위력이 심상치 않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괴물을 부리는 아름다운 여성이라.

         

       뭔가 불균형하면서도 묘하게 어울린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착각일까?

         

       바에 있는 사람들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만 보았다.

       어떤 이는 괴물에 대한 공포와 경계를 품고, 어떤 이는 지금 상황에 대한 흥미를 품고, 어떤 이는 괴물을 부리는 여성에 관한 관심을, 어떤 이는 지금 등장한 여성이 누구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는 얼굴로.

         

       그리고 어떤 이는.

         

       “손님.”

         

       그냥 바라만 보지 않았다.

         

       컵을 닦고 있던 바텐더는 컵과 리넨 수건을 내려놓고는, 진지한 얼굴로 여성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는 곤란하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데리고 오신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무게가 너무 많이 나가면 바닥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뭐?”

         

       당연하게도 바텐더의 말을 들은 여성은 날이 선 반응을 보였다.

       눈썹이 들썩였고, 꿰뚫는 듯한 시선이 바텐더에게 머물렀다.

         

       그 시선이 보내는 의미는 뻔했다.

         

       자기 직원과 관련되어있는 사람 같으니 감싸려 하는 게 아니냐는 뜻이 담긴 시선이었다.

         

       하지만 바텐더는 그녀의 눈총을 받았음에도 겁먹지 않았다.

       도리어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귀찮다는 듯 한숨을 푸욱 쉬었을 뿐이다.

         

       “프라이버시에 참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 건물이 튼튼하기는 하지만 중장비도 견딜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죠. 그것도 사람 형태의 자그마하면서도 무거운 존재라면, 좁은 범위에 무게와 압력이 몰려 있다면 더더욱 말입니다.”

         

       바텐더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무슨 일로 왔는지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다.

       당신이 소환사인지 연금술사인지 아니면 다른 능력자인지도 모르겠고, 저 괴물의 정체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

       갑자기 등장한 이상한 사람을 끌고 가서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도 관심이 없다.

       별로 끼어들고 싶지도 않고.

         

       “발소리를 들으니 꽤 많이 무거운 것 같군요. 우리 바는 상당히 육중한 덩치를 가지신 분들도 감당할 수 있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저런 발소리를 내는 존재를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는 장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 부디 저 무거운 존재를 물려주시지 않겠습니까?”

         

       근데 발소리 들으니까 끼어들지 않을 수가 없다.

       저런 발소리 내는 걸 들였다가 바닥 무너질 거면 책임질 거냐.

       아니, 책임지는 건 둘째치고 수리하는 동안 장사를 못할 텐데 그건 어쩔 거냐.

         

       바텐더는 정중한 말투로, 하지만 말투 이상의 것을 표현하는 듯한 시선과 표정으로 여인에게 그렇게 말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 그렇구나 하고 괴물을 뒤로 물릴법한 대응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바텐더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여인은 평범해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괴물을 데리고 왔다는 점에서 평범과는 거리가 먼 것이기는 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서라도 평범한 사람들과는 꽤 차이가 있는 듯 보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깔이 있어 보였다.

       바텐더의 표정을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리는 것 하며, ‘이야기를 어디까지 하나 보자’하는 태도도 그렇고, 바텐더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음에도 입이 근질근질한지 달싹거리기를 반복하는 입술도 그렇고.

         

       성질머리가 더러운 것이 분명해 보였다.

         

       게다가 봐라.

       바텐더가 바닥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핸드백으로 향하는 저 손길을.

         

       이성의 영역이 아닌 습관으로 굳어진 저 동작.

       핸드백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려고 하는 저 달러 뭉치들.

         

       ‘하, 잘못 걸렸군.’

         

       취객들을 상대하며 온갖 꼴을 다 봐왔던 바텐더는 저 여자가 왜 핸드백에 손을 가져가는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성깔 있는 부유한 사람이 저런 표정을 지으면서 핸드백에서 달러 뭉치를 꺼내려고 한다?

         

       높은 확률로 행패를 부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

       ‘높은 확률’이다.

         

       놀랍게도 돈 있는 사람이 벌이는 진상 짓거리는, 바텐더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으면….

       부유한 동네, 가진 재산과 반비례하는 예의, 거기에 사람의 이성을 날려버리고 짐승처럼 만들어버리는 알코올의 힘이 합쳐지면 만들어지는 마술의 힘이라고 하겠다.

         

       ‘돈 집어 던지거나 뿌리면서 난리를 치겠군. 후우….’

         

       바텐더는 각오했다.

         

       곧 난리가 일어날 것이라고.

       저 여자의 찢어지는 짜증 섞인 소리와 함께 달러가 하늘을 날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달러를 바텐더의 면상에 집어 던지면서 폭언을 할 것만 같았던 여자는 달러를 얌전히 핸드백 안으로 집어넣었고, 심호흡을 하려는 듯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랬다가 숨을 크게 들이쉬는 것 대신에, 손을 자신의 가슴께에 올리더니 진정해야 한다고 최면을 거는 것처럼 심장이 있는 부분을 두어 번 토닥거린 뒤 바텐더를 바라보았다.

         

       “그래요. 무거워서 안 된다 이거죠?”

         

       “…예. 맞습니다.”

         

       “그럼 무겁지 않으면?”

         

       “예?”

         

       “무겁지 않으면 어떠냐고. 안 들려요?”

         

       “무겁지 않으면, 예. 기물 파손이 일어나거나 청소해야 하는 것만 아니면 괜찮습니다만….”

         

       “그래? 알았어요. 그럼 된다 이거지?”

         

       여자는 바텐더에게 틱틱대는 말투로 그렇게 말하더니, 힘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에 초록색 불빛이 일렁이기 시작했고,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색색의 기운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아니, 은은한 LED 불빛 속에서 향을 피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빛은 피었다가 퍼져나가며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내었고, 이윽고 그것은 바람에 몸을 맡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괴물에게로 향했다.

         

       연기는 괴물의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마치 코팅이라도 하는 것처럼 얇게, 하지만 넓고 골고루 퍼져나간 것이다.

       그렇게 퍼져나간 연기는 괴물의 몸에 조금씩 스며들었고, 연기가 스며들수록 괴물은 꿈틀거림은 점점 심해졌다.

         

       그 모습은 마치 지렁이가 꿈틀대는 것 같은, 혹은 뱀이 몸을 배배 꼬는 것 같은 조금은 징그러운 모습이었지만…. 여인은 그런 모습이 익숙하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그 과정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쿠웅.

         

       괴물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바 안으로 들어오는 대신에 바의 밖에서 대기를 하였고, 혹여 악취를 풍기는 남자가 도망칠 수 없도록 언제든 문을 막을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었다. 마치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는 거목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제 몸에서 또 다른 가지를 뻗었고, 덩굴을 뽑아내어 또 다른 형상을 만들어내었다.

       나뭇가지와 덩굴을 대충 묶어서 만들어낸 것 같은 허수아비 같은 모습의 무언가였다.

         

       그것은 마치 탯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기다란 줄기 하나가 괴물과 연결되어 있었다.

         

       투두둑.

         

       그리고 그것은 괴물과는 달리 무겁지 않았고, 걸을 때마다 나뭇가지가 밟히는 것 같은 소리만 날 뿐 바닥에 그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을 것 같았다.

         

       “됐죠? 그럼 나 일 볼 테니까 관심 끄도록 하세요. 그냥 저 사기꾼만 데리고 갈 테니까.”

         

       그렇게 허수아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여자를 제지했던 바텐더의 암묵적인 동의를 얻은 채 말이다.

         

       허수아비가 향하는 곳은 남자가 있는 곳.

         

       제니라는 이름의, 자기 여동생의 뒤에 숨은 채 덜덜 떨고 있는 사기꾼이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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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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