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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3

       *** ***

         

       혼인식에 앞서 제례를 치른다.

         

       하늘의 뜻을 이곳에 붙잡고 길함을 기원하는 기원제. 그 후에는 황국과 황국의 호국영령과 선조들에게 또다시 제를 보낸다. 그 뒤 내 가문, 호가에게 또 다시 제를 보낸다.

         

       말로 하니 고작해야 몇 마디로 요약할 수 있었지만 어디 제사를 지낸다는 말 한마디에 파생되는 행동이 한두 가지인가. 축문을 읽고 향을 피우고 예법에 맞추어 신을 모시고 술을 따르고 음식을 공양하고 또 식이 끝난 뒤에는 혼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길도 열어주고 배웅까지 해주어야 한다.

         

       나는 그 복잡한 과정을 척척 해냈다.

         

       수 개월간 예부의 관리들에게 들들 볶인 성과였다. 아 위대한 반복학습이여. 모르긴 몰라도 지금의 나는 설령 영혼이 없어질지라도 이 길고 복잡한 절차를 완벽히 수행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체매크로 1번이 되어 식순을 진행하고 있자니 이토록 긴 식순을 처음 경험해보는 하객들 사이에서 황족의 혼인식이라 그런지 뭐가 다르다는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식순에 따라 움직이며 하객들의 눈치를 살피니 다들 애써 지루함을 삼키고 있었다.

         

       위서련은 손으로 턱을 받친 채 삐딱한 태도를 취한 지 오래였고, 당소열은 당도연에게 옆구리를 꼬집히면서도 연신 졸고 있는 상황.

         

       나는 하객들의 반응에 슬쩍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이토록 식순이 길어진 이유는 황실의 예법이 복잡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혼인식에 다섯 부인을 모두 세우고 싶다는 내 고집의 결과물이었다.

         

       보통 한번에 부인을 여럿 들이게 된다고 치더라도 식은 별개로 치르는 것이 이 중원의 상례다. 그런데 그런 상례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듯한 합동 혼인식을 치르게 되었으니 예부의 관리들이 뒷목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식의 정통성을 강화하고자 원시 고대의 예법들까지 가져다 붙인 결과 지금의 기나긴 예식 절차가 탄생한 것이었다.

         

       내가 부득불 합동 결혼식을 밀어붙인 이유는 간단했다.

         

       한 사람, 한 사람씩 혼인식을 치르게 되면 당연히 식의 순번에 따라 누구는 첫 번째 부인이 되고 누구는 두 번째 부인이 되는 식으로 확실하게 ‘서열’이 생긴다.

         

       나는 내 아내들 간에 그런 서열이 생기길 바라지 않았다. 그런 서열은 우리들이 행복하게 사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될 뿐이니까.

         

       그러니 뭐 이 길고 지루한 식순도 견뎌내야겠지. 이런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야말로 가장의 의무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자아를 끄고 무아지경으로 식순을 반복하길 한참. 드디어 기나긴 식순이 끝났다.

         

       예부의 관리들이 제단에서 내려와 예단으로 자리를 옮기자 억지로 지루함을 참고 있던 하객들도 드디어 혼인식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몸을 바로 세웠다.

         

       ”모월 모일! 천지신명과 호국영령들의 한 데 모인 이 자리에서 인연의 결실을 거두고자 함을 알리는 혼인식을 거행코자 합니다!“

         

       “신랑! 사천 출신! 자는 뇌검낭인이며 호가의 장남, 이름은 천안이오!”

         

       예부 관원들의 인도에 따라 신랑석에 위치하니 고요했던 내 심장도 조금씩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하여…참으로 긴 시간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다. 악양에서 박문수 빙의도 하고, 혁기린 팬클럽도 창설하고, 사파 출신 장인 어른도 패주고, 요녕에서 떡이 빠져라 웃고, 여가 산장도 재건했다.

         

       그 모든 일이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이어서 신부께서는 모습을 드러내 주시오!”

         

       가벼운 탄성이 들리며 다섯 사람이 식장으로 들어온다. 나는 그 모습을 하나 하나 눈에 담았다.

         

       우선은 흑묘.

         

       흑묘는 오늘 그 누구보다도 화려한 복장을 걸쳤다. 밝은 주홍색을 기반으로 형형색색 흐트러지게 피어난 꽃잎 자수들은 흑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어울렸다.

         

       사천낭인 시절. 흑묘는 틈만 나면 흑의를 벗어던지고 화려한 옷을 즐겨 입었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유독 화려한 옷에 집착하던 그 모습은 무의식 중에 장모님과의 추억을 쫓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장모님의 혼신의 역작임이 분명한 옷을 걸친 흑묘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그 뒤로는 여일예가 눈에 들어왔다.

         

       백색 기조에 녹색 테두리가 새겨진 단아한 의복을 걸친 여일예. 생에 한 번 있는 혼인식을 치르기에 적합한 옷이라기보다는 현숙한 부인이 평소에 입을만한 옷이었다.

         

       저 옷은 여가산장의 재건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한 옷이었다. 그 날 여일예가 지었던 표정을 생각해보면 아마 어머니의 옷이었겠지.

         

       화려함은 부족했으나 그럼에도 저 복장이 여일예만의 매력을 살린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러한 이유가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다음으로는 혁기린이다.

         

       황족을 상징하는 붉은 천 위로 새겨진 금실 자수. 그리고 오늘은 그 뒤에 덧대어 수많은 금빛 장신구들이 달려 있었다. 그야말로 격이 다른 화려함이었다.

         

       그러나 그 화려함 사이로 보이는 혁기린의 얼굴에 떠오른 한 줄기 웃음이 순수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이 역시 오직 혁기린만이 가능한 일이겠지.

         

       이어서는 독고이설이 눈에 들어온다.

         

       독고이설은 평상시의 화려함 대신 담백한 백색 기조의 옷에 흑룡 자수가 새겨진 옷을 입고 나왔다. 평시에 비해 장신구의 숫자가 줄어들었음에도 그 화려함이 조금도 가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잠시 독고이설을 살피던 나는 금세 이유를 깨달았다. 분명 수수한 백색 의복이었지만 그 옷의 매음만큼은 그야말로 독고이설에게 딱 맞아 떨어지고 있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단순하되 그 단순함의 미를 살리기 위해 의복을 고치고 또 고쳤을 테니 당연히 화려하다 느껴질 수밖에.

         

       반면 모용연화는 평시와 크게 차이가 없는 복장이었다. 기본적으로 화려함을 늘었지만 늘 그렇듯 모용세가의 자수가 새겨진 의복 위에 장포를 덧입었다는 정도일까. 꾸미지 않았다기보다는 펑시의 수준이 높았다는 뜻이겠지.

         

       한 사람 한 사람을 눈에 담다보니 어느새 다섯 사람은 내 눈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눈동자들을 바라보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제 나 진짜로 결혼하는구나.

         

       그러한 실감과 함께 긴장감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신부! 호남 출신! 자는 흑묘이며 소가의 장녀, 이름은 연화요!”

         

       “신부! 운남 출신! 자는 홍죽군협이며 여가의 장녀, 이름은 일예요!”

         

       “신부! 대 황국의 적통 유씨! 자는 혁기린이자 금명월이며 그 존함은 야요!”

         

       “신부! 운남 출신! 자는 운남제일화이며 독고가의 삼녀, 이름은 이설이요!”

         

       “신부! 요녕 출신! 자는 춘풍소소이며 모용가의 직계. 이름은 연화요!”

         

       그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이에도 식순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신부들의 소개가 이어지고 이내 상 위에 놓여진 여섯 개의 잔에 하나하나 술이 채워진다. 이 술을 마시면 우리는 부부가 된다.

         

       솔직히 말하겠다.

         

       내 머릿속에는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불안이 맴돌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할 여가산장, 아니 호가산장에서 나는 내가 결심한 대로 흑묘를, 여일예를, 혁기린을, 독고이설을, 모용연화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망설임과 불안함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그럼에도 나는 확신을 담아 잔으로 손을 뻗었다.

         

       나와 마주보고 잔에 손을 뻗고 있는 다섯 사람의 눈에 뚜렷하게 떠오른 기쁨 때문이었다. 이 혼인이 나에게도, 그리고 일행들에게도 기쁨이 된다면 대체 고민하고 망설일 필요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니 망설임없이 잔을 비웠고.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 ***

         

       부부가 된 이들의 가장 큰 중대사는 무엇인가?

         

       뭐긴 뭐야 첫날밤과 합방이지.

         

       그 첫날밤을 치른 지도 벌써 일주일이 되었다.

         

       ‘좋았지…’

         

       아무도 없는 침상에 누워 전날 밤, 신혼 초야를 떠올리려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 날밤의 추억만큼은 굳이 회상할 필요 없이 가슴 한켠에 고이 간직하고 있으리라.

         

       그리고 굳이 초야를 떠올릴 필요도 없었다.

         

       그날 이후로 매일 밤에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니까.

         

       “하아아아….”

         

       잠깐 그 몽실몽실한 기억에 취해 있던 나는 이내 현실을 떠올리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몽실몽실한 분위기를 이어나가고 싶었으나 현실은 냉혹했다.

         

       하나의 끝은 또 하나의 시작일 뿐이다.

         

       그 말이 이렇게 와닿는 일이 또 있을까.

         

       혼인식을 끝마쳤거늘 끝난 것은 식이었을 뿐 혼인 그 자체가 아니었다. 행복함에 환하게 웃거나 눈물을 글썽이는 신부에게 뽀뽀를 갈기며 끝이 나는 소설과 다르게 현실의 삶은 끝이 없으니 혼인으로 시작된 일은 식이 끝난 뒤에도 계속해 이어진다.

         

       나는 유부남이 되고 나서야 왜 신혼여행이라는 문화가 생겼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결혼식이라는 일생일대의 행사를 치르고 파김치가 된 몸으로 부득불 해외나 여행지를 찾아 떠나는가. 그것이 낭만이라서? 혹은 특별한 추억이라서?

         

       뭐 그런 의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할 때, 신혼여행의 진정한 목적은 부부가 서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그 시간이었으니까. 만약 신혼여행을 떠났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오직 아내들과 함께 꽁냥대고 있었겠지. 부부간의 오붓한 시간을 즐기고 싶은 마음은 한가득인데 현실은 해가 뜨자마자 접객을 하러 나서야 하는 처지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만 신혼이라니 이게 뭐냐고. 왜 중원무림에는 신혼여행이라는 고도화된 풍습이 없는 것이지?

         

       “아 겁나 하기 싫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어깨를 축축 늘어뜨리며 어거지로 장포를 걸치고 나니 단장을 마친 아내들이 들어왔다.

         

       어젯밤이 떠올랐는지 잠시 표정이 묘해진 흑묘. 음, 뭐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면 저런 표정을 지을 법한 일이었다.

       

        여담으로, 흑묘는 밤에는 꽤 취약했다.

         

       그런 낮이밤저 흑묘는 괜스레 민망해졌는지 흠흠 소리를 토해내며 입을 열었다.

         

       “가실까요, 남편?”

         

       “흠. 크흠…그럽시다. 부인.”

         

       흑묘가 부인이라는 말이 어색하다는 듯이 온몸을 비틀어대며 진저리를 쳤다. 그 모습에 혁기린이 슬쩍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런, 연화 부인께서는 부인이라는 호칭에 익숙해지셔야지요.”

         

       혁기린에게 놀림당하는 흑묘라니. 혼인 전이라면 생각조차도 못할 광경이었다.

         

       “으윽…뭔가요 선배는! 이게 다 선배 탓이에요! 갑자기 존댓말이나 하고 그러니까!”

         

       괜히 내 탓을 하는 흑묘를 보며 나는 그저 뒷목을 벅벅 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뭐라고 해? 왠지 부인이라고 부르니까 존댓말을 해야 할 것 같잖아.

         

       혁기린은 무안함에 화를 내는 흑묘를 보며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후후, 호칭 문제야 차차 정리하면 그만입니다. 다만 그래도 하객들에게 보여줄 때만큼은 참으시지요.”

         

       “칫, 그 정도는 알거든요?”

         

       “자자, 이제 갑시다. 하객 분들이 많이 기다리셨겠소.”

         

       “예.”

         

       이제는 혼인식장에서 피로연장이 되어버린 하객석을 둘러보니 참 인사해야 될 이들이 많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누군가의 손님이었던 이들이 이제는 모두의 손님이 되어버렸으니까.

         

       “잘 즐기고 계십니까?”

         

       “어서 오시지요. 술 한잔 드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나는 이 자리에 모여있는 하객들을 살폈다.

         

       이미 피로연이 일주일동안 진행된 상황이니만큼 대부분의 하객들과 친분을 튼 지 오래였다. 그리고 하객들 역시 다른 하객들과 교분을 나누었으니 그 결과 이렇게 하객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술잔을 나누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자, 한잔 받으시지요.”

         

       “감사합니다. 문주.”

         

       나는 송문파의 문주가 건네는 잔을 받았다. 송문파는 굳이 비유하자면 천호문과 비슷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문파였다. 광주에서는 모르는 자가 없는 문파이나 천하 전체에서 보면 무림에 깊이 관심이 있는 자들이 아니면 모르는 수준이랄까.

         

       송문파의 문주는 무림정세에 관심이 많은 대표주자 중 한 사람이었다. 뭐 확실히 지역의 패자가 되었다면 외부에 명성을 떨치는 일에 관심이 가기 마련이고 외부에 명성을 떨치기 위해서는 필히 정세를 파악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그래 신혼 생활은 마음에 드십니까?”

         

       “하하.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날들입니다.”

         

       “한창 좋을 때지요. 좋을 때야.”

         

       가벼운 농담과 신변잡기로 대화의 포문이 열린다. 그 뒤로 이어지는 대화의 목적은 분명했다.

         

       “과거에 전소되었던 산장을 이렇게 완전히 복원시키다니요. 상당한 금전이 소비되었을 터인데 이를 감당하다니 그 재력이 부럽습니다.”

         

       “하하, 운좋게 투자가 대박이 났을 뿐입니다. 혹시 광철공방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획기적인 재련법을 개발한 공방인데 그쪽에 돈을 좀 넣어놨었지요.”

         

       “허, 과연…투자의 혜안까지 있으셨습니까.”

         

       내 의중을 떠보는 것. 보다 정확히는 무림에 나타날 신생 세력에 대한 정보 파악이었다.

         

       “그렇다 한들 이 큰 산장을 단번에 복구한 것은 놀랍기 짝이 없군요.”

         

       “암룡문주께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이 호가산장에 외가의 지분은 어느 정도 들어있는가를 파악하려 들거나.

         

       “그러고보니 산장의 명패가 호가산장으로 바뀌었더군요. 호천안 대협께서는 일가의 가주가 되실 생각이십니까?”

         

       “일문의 문주가 되기에 충분하신 분이니, 개파를 해도 이상하진 않겠지요.”

         

       문파를 만들 것인지 세가를 만들 것인지 떠보기도 한다.

         

       뭐 내가 줄 수 있는 답은 정해져 있었다.

         

       “하하. 무림세력이라니오. 그저 일가를 이루고 편히 쉴 생각입니다.”

         

       잠정적 은퇴 선언이다.

         

       왜 은퇴 선언이 아니라 잠정적 은퇴 선언이냐면 사실 은퇴 선언을 하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젊기 때문이다. 앞으로 살아갈 길이 구만리 같은데 나중에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은퇴 선언을 한단 말인가.

         

       “과연. 그렇습니까.”

         

       말은 그렇게 했으나 그 누구 하나 내 말을 믿는 기색은 아니었다. 뭐 이미 지난 일주일간 수도 없이 반복된 상황인지라 이제는 그저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사실 내가 무림에서 잠정적 은퇴를 하겠다는 말을 했을 때 내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건너 건너 하객으로 찾아온 무림의 인사들 뿐만이 아니라 내 지인들까지도 말이다.

         

       정삼과 여진상은 개가 똥을 끊겠다며 내 말을 비웃었고 유사연이나 유경, 그리고 독고영천 등은 ‘이놈이 또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거지?’라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으니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날 의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영양가 없는 대화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오늘도 당도경과의 도박에 열중하고 있는 위서련이 눈에 들어왔다.

         

       “흠.”

         

       그러고보니 위서련은 내 잠정 은퇴 선언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무슨 주머니괴물 조련사도 아니고 눈만 마주치면 도박 승부에 돌입했던지라 속내를 들을 기회가 없었다.

         

       보아하니 당도경과의 승부도 거의 끝이 난듯하니 지금 물어보면 딱이겠군.

         

       두 사람의 승부를 관전하는 이들 사이에 끼어서 막바지로 향하는 도박을 관전한다. 당도경의 가전이 바닥인 것으로 볼 때 이번 판은 위서련의 승리인 듯 싶었다.

         

       오늘의 종목은 주사위.

         

       달그락. 달그락.

         

       잔 속에서 섞이는 주사위의 소리를 듣고 있자니 새삼스럽게 위서련의 도박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사실이 와닿는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이 판이 내 판이 아닌 탓도 있겠지만 잔 속에서 나는 소음이 제법 둔탁하다.

         

       마치 잔 속에 물이 들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저 안에서 구르고 있는 주사위의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보통 재주로는 어림도 없겠지.

         

       요 일주일간 당도경을 상대로 우위를 점한 것이 단순한 요행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두 사람의 도박 경력 차이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지만 당도경과 위서련은 그 입장이 다르다. 당도경은 당가암룡투법을 완성시키기 위해 계속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던 반면 위서련은 그냥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도박에만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위서련도 도박기술을 대성할 수 있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잔이 멈추었다.

         

       “2에 걸겠습니다.”

         

       “이겼군.”

         

       나온 주사위의 눈은 8이었고 당도경은 담담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위서련과 당도경의 현란한 손재주를 관람하던 몇몇 하객들도 좋은 승부를 보았다며 인사하고는 흩어졌다.

         

       “그래, 다음 상대는 그대인가?”

         

       “됐습니다. 오늘은 술이나 마시지요.”

         

       “흐음. 그러지.”

         

       가볍게 주안상이 차려지고 나와 도경 그리고 위서련이 둘러앉았다. 시간을 끌 필요 없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내 잠정적 은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위서련은 내 물음에 피식 웃었다.

         

       “정말 은퇴를 할 생각이 있기는 한가?”

         

       “예? 아니 당연한 일 아닙니까.”

         

       “글쎄. 내가 아는 호천안이라면 은퇴를 결심한 순간 실행하는 자다.”

         

       ….내가 그렇게 결단력 넘치는 사람이었나?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당도경에게 시선을 돌리니 그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강호에 미련이 남았으니 앞에 잠재적이니 뭐니 구설을 붙이는 거겠지.”

         

       위서련의 지적에 나는 고민에 빠졌다. 정말로 내가 강호에 미련이 남은 것일까. 미련, 미련이라…

         

       솔직히 말해서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의 혼인식만 봐도 미련이 남을 만한 점은 몇 개 있다. 우선은 육성진을 만들어 준 서문연에게 청접장을 돌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모용세가에서 재결합에 성공했다고는 들었지만 새 신혼을 누리기로 작정을 했는지 그 뒤로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종적을 알 수가 없었다.

         

       숨기로 작정한 진법가 부부에게 무슨 수로 청첩장을 보낼 수 있을까.

         

       그 다음으로 미련이 남는 일이라면 무림맹주 연천백의 초대에 실패했다는 점일까. 무림맹주를 초대했다면 천마신교나 황실에게 경계심을 보이는 하객들의 의심을 풀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물론 위서련이 말하는 미련이란 혼인식에 대한 미련이 아니겠지. 다만 모든 일에는 이런 식으로 미련이 남는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런 미련이 남았다고 한들 누군가 시간을 돌려 혼인식을 다시 치를 것이냐 묻는다면 고개를 젓겠지.

         

       그렇다면 내가 깔끔하게 은퇴를 결심하지 못한 이유는 위서련의 말대로 강호에 미련이 남아서일지도 모른다.

         

       미련. 미련이라.

         

       내가 강호에 남은 미련이란 무엇일까.

         

       무공 욕심?

         

       무공이야 이 호가산장에서도 얼마든지 익힐 수 있다.

         

       그렇다면 명성 욕심?

         

       있을 리가.

         

       이제는 누구나 알아보는 상황에 익숙해졌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반평생 동안 명성이 오를까 노심초사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보다 더 유명해진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문파 창설?

         

       글쎄.

         

       내가 뇌공을 택하고 단사패검을 익힌 이유는 번개대검검사에 대한 동경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손 닿는 범위 안에서 정철을 쓰러트릴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었을 뿐.

         

       뭐 오랜 시간 수련해 온 만큼 정이 들긴 했지만 경운무심공과 단사패검을 기반으로 문파를 만들고 싶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보다 솔직히 말해서 단사패검과 경운무심공은 내 취향의 무공이 아니었다. 가위 바위 보 싸움에서 가위와 보를 포기하고 보를 찢는 최강의 바위가 된다. 열혈만화나 소년만화에서 나올 법한 뜨거운 설정이지만 난 열혈바보보다는 수많은 패로 상대를 농락하는 설정이 더 마음에 든다.

         

       모험이나 기연 사냥?

         

       이젠 할 만큼 하지 않았나. 이젠 마차 타기도 지겹다. 한국의 원형인 환국이 살짝 궁금하긴 해도 이역만리가 넘는 길을 떠날 생각을 하면 학이 떼진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이 무림에 무슨 미련이 남았는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그 답을 찾지 못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유부남이 되어버린 호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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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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