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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3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요정여왕의 웃음은 해맑고 순수했지만 정작 그 웃음을 보는 내 마음 속은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

   

   아니 나 그 때 엄청나게 실례되는 일을 한 것 같은데!?

   

   어차피 다시 안 볼 사이라고 생각해서 되는 대로 마구잡이로 간슈 그 개같은 꼬맹이에 대한 울분까지다 담아서 목소리를 잔뜩 냈었단 말야!

   

   그걸 기억하고 있다면 보복당하는 게 당연하잖아!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지 않으냐?>

   

   고갤 갸웃거리는 요정여왕의 시야 속에서 당황하고 있으려니 할아버지가 한숨 어린 목소리로 날 질책했다. 더 중요한 문제라니.

   

   아. 그래.

   

   ‘간슈우우우우!’

   

   성격 더러운 애늙은이 같으니라고! 왜 시련이 현실에 영향을 끼치는 건데!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상황이 이렇게 된 건데에에에!

   

   미리 설명을 했어야지! 아니 뒤늦게라도 무슨 상황인지 알려줬어야 할 거 아냐!

   

   이래서 신이란 족속들이 안 되는 거야!

   

   지상에 사는 사람들도 지들마냥 ‘그런가다.’라고 그러면 ‘아아. 그런 건가.’ 하고 알아먹으니까 만날 설명을 개판내지!

   

   사람을 좀 보라고! 사람을!

   

   그렇다고 허접 주신이나 변태 까마귀마냥 너무 뚫어져라 보지는 말고!

   

   그 녀석들 수준이 되면 관심이 아니라 스토킹이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잖으냐.>

   ‘…아니에요? 간슈한테 찍힐까봐 말 돌리시는 건가요?’

   <신을 모욕하는 게 올바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하여튼. 요정여왕께서 너를 떠올렸다는 이야기는 저 분이 꿈에서 깨어났단 말 아니더냐?>

   

   아. 아아아? 맞네? 그렇네? 의식이 부상하는 게 아니라면 무언가를 떠올린다는 행위를 할 리가.

   

   “아아. 제가 불안하신거군요?”

   

   뺨에 손바닥을 가져다 댄 채 느릿하게 고갤 끄덕인 그녀는 이내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괜찮습니다. 저는 아직 꿈을 꾸고 있으니까요.”

   “치매야?”

   “요정의 숲을 잠재운 결계를 만들어낸 것은 에르기누스님입니다만 전 그 속에서 수백년이란 세월을 보냈습니다. 어느 정도 제어권을 지닐 수밖에 없죠.”

   

   그러고 보면 여왕의 방해 때문에 에르기누스가 결계 안을 보지 못할 만큼 여왕의 장악력은 뛰어났었지.

   

   “물론 오래가지는 못할 겁니다. 여전히 제 육신은 어둠에 절어있으니까요. 그래도 여러분들의 계획이 시작될 때까지 버티는 건 가능할 거에요.”

   “우리가 뭘 하려는지 알고나 하는 소리야? 어설프게 주접 부려봐야 아줌마 같아서 불쌍해 보일 뿐인데?”“저의 조각에게 말씀해주셨잖아요? 구해주시겠다고.”

   

   정말 기뻤다고 말하는 여왕의 모습에는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지만 그녀의 주변은 그렇지 못했다. 푸르렀던 숲이 서서히 시들어간다.

   

   하늘의 한 가운데에 자리했던 태양이 조금씩 아래로 향한다. 여왕의 꿈이 끝나려 한다.

   

   “에르기누스님의 제자 분?”

   “네? 네! 조이 파트란이라고 합니다!”

   “후후. 활기차신 분이네요. 자. 어서 계획을 실행해주세요.”

   “일단 숲의 중심에 도착해야.”

   “도착했답니다.”

   “네?… 어라?”

   

   여왕의 말을 듣고서 주변으로 고갤 돌리면 어둠에 침식되어 제 형체조차 남기지 못한 것들이 보였다.

   

   나무도. 풀도. 호수도. 다른 모든 것이. 검게 물들어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 안은 아직 제 꿈 속이니까요. 바라는 장소에 가는 것쯤은 간단하답니다.”

   

   꿈속이니까 어지간한 건 할 수 있다는 말. 저거 적일 때에도 통용되는 거 아닌가?

   

   조이! 최대한 빨리 계획을 실행해줄래?! 꿈의 침식이 끝나버리면 어떤 꼴을 당할지 감이 안 잡힌다고!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우선 기반이 될 마법진을 그리겠습니다.”

   

   조이가 자신의 지팡이에 마력을 담은 순간 바닥마저도 메우고 있던 어둠이 걷히며 쩌억 갈라진 땅이 모습을 드러낸다.

   

   생명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땅 위에 선 조이는 심호흡을 하고서 눈을 감았다.

   

   주변으로 흘러나온 그녀의 마력이 실이 되어 세상에 자수를 놓는다.

   

   단순히 마법진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마법진을 새겨 넣는 거다.

   

   조이라는 술사가 없어지더라도 마법진은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수 있도록.

   

   “영애님. 저희도 저희가 할 일을 하죠.”

   

   세상을 수놓는 마력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아공간에서 여러 성물을 꺼냈다.

   

   성인의 뼛조각. 허접 주신의 걸음이 닿은 성수. 성지에서 벤 나무를 태워 만든 재.

   

   이외에도 주신 교회에서 안다면 기겁을 하며 회수하려 들 여러 성물들을 꺼낸 난 페이비와 함께 신성영역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했다.

   

   일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우리는 완벽히 부활한 어둠의 악신을 상대해야 해.

   

   모니터 너머였다면 모를까 지금의 우리로써는 증원이 올 때까지 완벽하게 대처할 수 있으리라 확신할 수 없어.

   

   그러니 사전준비를 최대한 철저하게 해야 해.

   

   최악이 찾아와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영애님.”

   “뭐.”

   “겨우 기도를 해준 것만으로 이렇게나 많은 걸 받아도 되는 걸까요.”

   

   음. 뭐. 괜찮지 않을까.

   

   아르테아 백작 울다가 기절할 정도로 기뻐했고 나중에 우리가 한 일을 전해 주러가서 기도해주면 행복에 절어서 그대로 주신 곁으로 가버릴 테니.

   

   반쯤 농담 삼아 한 말이었지만 아르테아 백작이라면 진짜 그럴 것 같아서 무섭다. 그 인간 얼빠여우랑은 좀 다른 방향으로 극심한 변태니까.

   

   울다가 지쳐 쓰러져서는 무슨 꿈을 꾸는 건지 침을 흘리며 히히 웃어대던 아르테아 백작을 떠올리며 질색하고 있으려니 어느새 신성영역을 위한 준비가 끝났다.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군.”

   “괜찮아요. 무능왕자님이 짐덩이가 되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요? 할 줄 아는 게 없으면 귀엽기라도 해야 하는데 이 따위로 생긴 부분이나 사과해주세요.”

   “그건 절대 사과하지 못하겠다만.”

   “왜? 사과해야 하는 거 아냐? 허접왕자님 잘못이잖아.”

   “그러니까 그게 왜 내 잘못이냐! 아니 애초에 그게 잘못이긴 한 거냐!?”

   

   이외에도 여러 자잘한 준비를 끝마치고서 아서와 프레이의 무기에 신성을 불어 넣어줬다.

   

   처음엔 이런 일에 능숙한 페이비가 하는 편이 더 낫지 않나 생각했지만 그녀보다도 내 신성이 더 짙기에 효율적이란 것 같다.

   

   “태양이 저물어 가는 군.”

   

   우리가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요정여왕의 꿈은 계속해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중심부에서 퍼져나가는 어둠이 숲을 침범한다.

   

   떨어져가던 태양이 주홍빛으로 바뀐다.

   

   푸르게 물들어가는 하늘에 하나 둘 별의 빛이 보인다.

   

   기괴하게 뒤틀린 요정들의 웃음소리가 숲의 안 쪽에서 들려온다.

   

   아직 요정여왕의 얼굴이 그대로 남아있는 걸 보면 버틸 수 있는 듯 하지만 언제까지 유예가 이어질지.

   

   “루시. 준비가 끝났어요. 봉인을 꺼내주세요.”

   

   휴우. 다행이다. 안 늦었구나.

   

   “제대로 된 거 맞아? 평소처럼 이상한 실수한 거 아니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에르기누스님께 부탁해 검증을 위한 마도구를 가지고 왔거든요. 더 이상은 마도구가 반응하지 않으니 문제는 없습니다.”

   

   더 이상이란 이야기는 여태까지 몇 번이나 반응했다는 거지? 이 상황에서도 조이의 얼빵함은 여전히 유효하구나.

   

   “흐흫. 스스로가 얼빵이란 걸 인정하고 대비했구나? 귀엽네.”

   “제 손에 너무 많은 게 달려있잖아요! 무섭다고요!”

   

   지팡이를 붙잡은 조이의 손이 떨리는 걸 본 나는 까치발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툭툭 두드려 주고서 마법진 쪽으로 향했다.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했어.

   

   여기까지 오는 것도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이제부터가 계획의 시작.

   

   마음의 준비를 하고서 인벤토리를 연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답시고 온갖 것들을 넣어 놓은 인벤토리의 한 구석에 악신의 봉인이 있다.

   

   몸 전체에 주신의 신성을 두르고서 악신의 봉인을 꺼낸 순간 봉인에 금이 가는 것이 보였다.

   

   …미친!?

   

   “루시! 빨리 마법진 한 가운데에 내려놔요!”

   

   말 안 해도 내려 놓을 거야! 이런 기분 나쁜 거에는 0.1초도 닿고 싶지 않다고!

   

   거의 내던지듯이 봉인을 내려놓으려던 그 때 위기감각이 비명을 내질렀다.

   

   위험하다고? 뭐가? 뭐가 위험한데?

   

   철벽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있단 말야!

   

   위험은 어디에도.

   

   봉인을 향해 날아드는 나무의 뿌리가 보인다.

   

   봉인을 가로 채기 위해 달려드는 요정의 무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노리는 건 내가 아니라 봉인 쪽이었나!?

   

   젠장. 반응이 늦었어.

   

   둘 모두에 완벽히 대처하는 건 불가능해.

   

   그렇다면 일단 내 몸을 던져서.

   

   나무의 뿌리가 잘게 찢겨 허공으로 흩어진다.

   

   봉인을 향해 달려들던 요정들이 격풍에 휘말려 저 멀리로 날아간다.

   

   “아직 꿈은 끝나지 않은 것 아니었나!?”

   “히히. 재밌어졌다.”

   

   두 사람의 조력 덕에 다시금 봉인을 붙잡은 나는 뒤 편에서 느껴지는 위기감각을, 쉴 새 없이 경고를 내뱉는 철벽의 조언을 억지로 무시하며 마법진 가운데에 악신의 봉인을.

   

   “말씀드렸잖아요? 꿈 속에서는 대개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악신의 봉인이 여성의 손 위에 올려진다. 결코 바깥으로 나와선 안 될 어둠이 어둠의 위에 자리를 잡는다.

   

   “놀라셨나요?”

   

   여성의 목소리를 듣고서 고개를 들면 요정여왕의 얼굴이 보인다.

   

   그녀의 얼굴은 이전과 다를바가 없다.

   

   그렇지만 한 가지.

   

   그녀의 눈동자만은 다르다.

   

   요정여왕의 푸르렀던 눈동자는 이제 초록을 잃고 다른 바다를 품게 됐다.

   

   검정으로 가득 찬 끝없는 바다를.

   

   “요정을 너무 쉽게 믿으면 안 된답니다? 요정은 장난꾸러기들이니까요.”

   

   함정?

   

   함정이었어?

   

   어디서부터?

   

   이성을 되찾았던 게 아니야? 우리를 초대했던 게 아냐?

   

   아니야. 왜 이렇게 된 건지에 대한 생각은 나중에 해도 돼.

   

   지금 해야 할 일은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는 것!

   

   “푸하핳♡ 그 나이 처먹고 자기를 요정이라고 부르는 건 좀 애처롭네♡ 나잇값 좀 하시죠? 닭장 아줌마♡”

   

   요정여왕의 얼굴이 검정으로 뒤틀림과 동시에 나를 향해 바람이 날아들었다.

   

   나무뿌리가 땅에서 솟아났다.

   

   주변에 독이 퍼졌다.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소리가 귀를 채웠다.

   

   그렇지만 저 모든 공격은 나를 노리는 것.

   

   악신의 봉인을 노리는 게 아니다.

   

   요정여왕의 손에서 봉인을 거두어 방패 뒤에 숨긴다.

   

   나를 향해 날아드는 충격이 방패에 꽂힘과 동시에 내 가벼운 몸이 허공을 난다.

   

   그렇게 몇 바퀴를 구른 나는 페이비의 옆에 도달하고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쫄래쫄래 도망치는 건 잘 하시네요. 정말 요정 같은 분이에요.”

   “그치?♡ 내가 생각해도 그래♡ 너 같은 썩은 여자보단 내가 더 요정에 어울리잖아♡”

   

   젠장. 최악에 대비한 건 사실이지만 최악의 상황이 펼쳐지길 기도한 건 아닌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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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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