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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3

    “의뢰를 받아줘서 고맙구나. 길을 못찾아서 헤메고 있었거든.”

    “뭘요, 다 돕고 사는 세상이죠!”

    아이는 마치 괴한들에게 두드려맞고 널부러져 있었던 건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씩씩하게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물론 메고 있던 가방이 가벼워진 덕도 조금은 있겠지만, 그녀들이 보기엔 뜻밖의 횡재로 인한 마음의 여유가 더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이 확실해보였다.

    아이의 발걸음은 누가 봐도 신난 것처럼 보였으니까.

    “다 저만 믿고 따라오시면 돼요!”

    “하하, 그래. 잘 부탁해.”

    시에나는 동시에 루크에게 살짝 속삭였다.

    “정말 괜찮을까?”

    아이니까 나쁜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일단 이 아이가 정직한 아이는 아니었다.

    누구에게서 뭘 훔쳤는진 몰라도, 일단 어디선가 도둑질을 하다가 쫓기던 아이니까.

    이런 곳에서 자란 아이에게 수준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 이상한 거라는 걸 시에나도 알고는 있었지만…….

    처음 걱정한대로 아이가 가이드하는 척 하다가 선금만 받고 도주할 우려도 있고, 사실은 아이가 지름길따위는 모르고 있을 경우도 충분히 가능성 있다.

    사실, 믿을 수 없는 건 마찬가지라는 소리다.

    하지만, 루크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저 아이 말곤 대안이 없잖은가. 저 아이 말고는 애초에 말도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걸.”

    솔직히 말해, 스스로 손을 내밀긴 했지만 루크도 그 아이를 100% 신뢰할 수 없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대체할 방안이 없다.

    이 아이를 제외한 사람들은 애초에 거래가 통할 정도로 우호적인 상황도 아니고, 이 길바닥에서 언제까지고 헤메이고 있을 수도 없다.

    이미 시간을 꽤나 낭비한 상황이라, 이대로라면 고든쪽과 시간을 맞출 수 없게 될게 뻔하니까.

    그런데 이 아이는 지름길까지 알고 있다고하니, 루크의 입장에선 아이를 믿지 못하더라도 포기하기 어려웠다.

    루크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뭐, 일단 가는 방향은 맞는 듯 하니 기다려보지. 이상한 곳으로 간다고 판단되면 그때 추궁하면 되니까.”

    루크의 대답을 들은 시에나는 이어 조용히 말했다.

    “흐음……. 알겠어. 일단, 우리 소지품에 신경을 좀 쓰는 게 좋을 것 같아. 게다가, 네 주머니엔 우리 바이크도 들어있으니까.”

    “걱정 말게. 이미 소지품에는 전부 도난방지, 추적마법이 인챈트되어 있으니.”

    루크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손버릇 나쁜 아이를 따라가면서, 그런 기초적인 보안에도 신경쓰지 않을 리 없으니까.

    그 때. 

    그녀들이 속닥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문득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둘이 무슨 얘기 하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냐.”

    아이의 물음에 시에나와 루크는 곧장 별 말 하지 않았다는 듯 시치미를 떼었다.

    그녀들이 아이의 손버릇을 믿을 수 없다는 건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대놓고 의심을 한다는 티를 내서 좋을 건 없으니까.

    루크는 곧바로 주제를 돌렸다.

    “아무튼, 네가 있어서 다행이다. 여기 사람들은 쌀쌀맞아서, 길을 물어봐도 대답은 커녕 말도 제대로 섞으려고 하지 않았거든.”

    그러자 아이는 당연한 이야기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야 그렇겠죠. 여기 사람들은 다들 외부인에게 적대적이니까요.”

    그러자 루크가 그게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다들 대체 왜 그렇게 외부인을 경계하는거지?”

    이런 빈민가에서 외부인이 환대받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던 건 아니지만, 여기는 그 거부방식이 굉장히 이상했다.

    이 거리에서 루크가 겪은 적대반응은 조롱이나 협박, 희롱같은 반응이 섞인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니라, 오직 ‘경계심’뿐이었으니까.

    “글쎄요? 어쩌면, 소문 때문일지도?”

    “소문이라고?”

    “외부인이 사람들을 못살게 군다나? 뭔가 이상한 걸 요구하면서 여기서 나가라고 한다던데요. 거부하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리고. 자세한 건 저도 잘 몰라요.”

    아이의 말에 루크는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흐음, 여기서 내보내려 한다라…….”

    뭔가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아이의 대답에 루크와 시에나는 잠깐 서로를 향해 눈빛을 교환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에나가 입을 열었다.

    “꼬마야. 그럼 그 소문이 돈게 언제쯤이니?”

    “저는 꼬마가 아니라 루미예요.”

    아이가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시에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정정하며 다시 물었다.

    “그래, 루미. 어쨌든, 언제부터 외부인이 찾아왔지?”

    “글쎄요, 외부인들이 보이기 시작한 건 아마 작년 여름쯤인가? 그런데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안보이게 된 건 한달정도 된 것 같네요.”

    “그런가…….”

    루미의 말이 끝나자, 시에나와 루크는 다시금 시선을 교환했다.

    한달 전부터 사람들이 실종되기 시작했다는 말이 굉장히 신경쓰였기 때문이었다.

    시에나가 속닥거렸다.

    “저기, 실종이 시작된게 한달 전이면…, 이미 늦은 거 아냐?”

    그에 루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건 모를 일이네. 실종자가 반드시 희생자일거란 보장은 없으니까.”

    시에나가 무엇을 걱정하는 건지는 알겠지만, 실종자가 꼭 ‘제물’이 되었을거란 예측은 너무 비관적이었다.

    사람들이 사라진다는 건 그저 소문일 뿐이고, 실제로 사라졌는지, 사라졌다면 얼마나 사라졌는지 정확한 상황은 모르는 상태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에는 아직 흑마법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실종자가 제사의 희생자일거란 추측은 아직 이르다.

    그래도, 마음이 조금 조급해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그 때, 루미가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두분, 또 속닥거리시네요. 저만 빼놓고 무슨 재밌는 이야기라도 하나요?”

    “아하하…, 미안. 잠깐 의논할 게 있어서.”

    그러자 루미는 조금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쏘아내면서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꿍꿍이인진 몰라도, 길을 안내하고 있는 건 자신이었으니까.

    “그런데 너는 우리가 외부인인 걸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네? 사라지는 게 무섭진 않니?”

    분명 처음엔 크게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아이의 불신은 루크가 건네준 선금과 함께 완전히 사라져버린 듯 했다.

    선금 5만길만으로 태도가 이렇게 변해도 되나 싶을 정도.

    그러자 아이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뭐, 원래 그런 걱정보단 눈앞에 보이는 돈이 더 중요한 법이잖아요. 안그런가요?”

    과연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의심스러운 이런 곳이더라도, 결국 돈은 돈인 법이었으니까.

    이는 세계가 멸망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지속될 개념임이 분명하다.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

    뭐, 따지고보면 가끔은 돈도 거짓말을 하기는 하지만……, 그게 사실 돈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결국 그 돈으로 사기를 치든, 위조를 하든 사람이 문제인거지.

    따라서, 아이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손에 들린 5만길짜리 지폐는 아주아주 정직한 것이었다.

    그걸 주는 사람이라면, 소문의 외부인이든 내부인이든 알 바가 아니고.

    “어떻게 보면, 저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라고 볼 수 있죠.”

    그렇게 한차례 스스로를 칭찬하듯 우쭐해진 루미는, 문득 떠올랐다는 듯 루크와 시에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 외부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언니들은 여긴 뭐하러 오셨어요? 여긴 딱히 관광할만한 것도 없는데.”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쥐, 벌레, 슬라임으로 가득한 지저분한 토레프거리.

    예의 그 외부인들과 같은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라면, 여기는 외부인을 찾아오게 만들만한 이유가 정말 눈곱만치도 없었으니까.

    뭐, 어쩌면 시궁창에 잔뜩 있는 쥐와 벌레, 슬라임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거기에 둘러쌓여보고싶은 거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럴 사람은 거의(특히 여성 중에서는 더더욱) 없을테고.

    하지만 루크는 그런 루미의 질문에 대답해줄 수 없었다.

    아이를 괜히 쓸데없이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그건 비밀이란다.”

    루크에게서 기대했던 대답을 들을 수 없자 루미는 조금 실망하는 듯 했지만서도, 이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제가 어리석었네요. 이렇게 여자 둘이서 중심가로 가는 거면 뻔한 얘기겠죠. 저도 알건 다 알거든요.”

    “그러니?”

    아이가 스스로 납득한 듯 보이자, 루크는 별 말 없이 입을 닫을 수 있었다.

    그런데 보통 루미 정도 나이대의 아이들은 생각이 몇단계는 건너뛰며 질문이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이 끊기질 않는 법인데, 환경이 이런 탓인지 궁금한 것보단 납득하는 속도가 빠른 모양이었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격언은 이런 곳일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법이니까.

    이어 루미는 잠시 생각하더니, 잠시 후 선심쓰듯 말했다.

    “손님? 원하신다면 1만길에 서비스로 중심가에서 제일 유명하고 비싼 창관까지 안내해 드릴 수도 있어요! 저도 어차피 그쪽을 지나야해서.”

    “뭐, 뭐?!”

    루크는 아이의 오해에 놀라 주변도 신경쓰지 않고 목소릴 높이고 말았다.

    “아 깜짝이야. 왜 그렇게 소리를 질러요? 값이 너무 비싼가?”

    이런 걸 해본 적이 있어야 감을 잡지.

    가게 안내는 얼마를 받아야 하는 거람?

    그렇게 궁시렁거리는 모습에, 루크는 아이가 상식이 크게 어긋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애초에 자기가 그렇게 충격적인 소리를 한 줄도 모르는 것 같았다.

    이어서 루크는 헛기침을 지어내며 말했다.

    “얘야, 이상한 상상은 그만두거라. 중심가를 찾아가는 젊은 여성이라고 몸을 팔거란 생각은 잘못된 추측이야.”

    “흠, 그런가요? 그럼 전 아쉽게 됐네요.”

    그 후, 루미는 루크에게 터무니없는 오해를 한 것에 대한 사과도 않고 다시 앞장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허.”

    그 모습에 루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루미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그 뒤를 따랐다.

    시에나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역시 애들 살기에 좋은 동네는 아니네.”

    “확실히…….”

    “또! 이번엔 진짜로 저 욕한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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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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