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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4

       *** ***

         

       내가 과연 강호에 남은 미련이란 무엇일까.

         

       나 혼자서는 답을 찾을 수 없었지만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는 이제 유부남. 아내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집단지성을 구사할 수 있는 남자지.

         

       고로 저녁 시간에 함께 식사를 하며 오늘 위서련과 했던 대화를 풀어냈다.

         

       “하긴 잠정적 은퇴라니, 서련이 지적하고 나니 조금 신경 쓰이네요.”

         

       “미련이라…혹시 불명 어르신에 관련된 일이 가슴에 남은 것 아닙니까?”

         

       혁기린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불명과 관련된 일은 숙제다. 핵심석을 찾고 진법을 수련하는 건 은퇴를 하고 나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진법숙제는 미련을 남기고 자시고 할 게 아니다. 왜냐고? 진법을 대성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니까.

         

       이몸 호천안.

         

       도박을 대성하기까지 약 6년이 걸렸다.

         

       현대에서 배운 잡지식의 도움을 받고 매일 밤을 새가며 도박장에다가 자금을 꼬라박으며 온 몸을 비틀어서 6년이 걸렸다. 도박도 그 정도 세월이 걸렸는데 어렵기로 소문난 진법 수련은 어떨까.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잔다고 도만 닦는다고 쳐도 최소 10년이고 그럭저럭 생활을 이어나가면서 진법을 수련하자면 20년 이상은 잡아야겠지.

         

       무엇보다 진법 수련은 은퇴를 하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혹시 별호가 마음에 안 드시는지요? 이젠 사천낭인도 아니고 낭인조차도 아니게 되셨는데 계속해서 뇌검낭인이라는 별호를 사용하는 것도 조금은 그렇네요.”

         

       별호라.

         

       확실히 은퇴를 하게 되면 별호가 바뀌긴 어렵지. 아니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무림에서 은퇴란 무슨 의미인가. 뭐 법률처럼 딱 정해진 건 없지만 보통 더 이상 제 이름과 별호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도록 조용히 지낸다는 의미가 크다.

         

       소문날 짓, 명성 퍼질 짓을 안 하겠다는 것인데 소문을 통해 지어지는 별호는 당연히 변화가 없겠지.

         

       별호를 바꾼다는건 세인들이 나에게 품은 인식을 바꾼다는 말과 같은데 지금 세인들의 머릿속에 박혀 있는 나의 모습을 바꾸려면 대체 무슨 짓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뇌검낭인도 나쁜 별호는 아니니 그냥 살지 뭐.

         

       그 후로도 한동안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보았지만 짚이는 점은 없었다.

         

       “아직 식이 끝날 때까지는 시간이 제법 남아 있지 않습니까. 여유를 가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음. 그럽시다.”

         

       그래. 중원식으로 느긋하게 생각하자. 식이 끝날때까지는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고 식이 끝난 다음에도 잠정적 은퇴를 은퇴로 바꾸는 일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또 위서련이 나에게 단서를 주었듯, 다른 이들이라면 무언가 의견이 있을 테니 들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

         

       내일은 다른 하객들에게 의견을 구해 보자.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 날을 맞이했지만 다른 하객들에게 의견을 구할 수는 없었다.

         

       “서문연 진법가님!”

         

       서문연과 제갈성찬이라는 반가운 불청객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서문연과 제갈성찬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현재 호가산장의 경비태세는 결코 불청객에게 친절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황제도 있고 고관대작도 있고 무림의 유명 고수들까지 잔뜩 있는 이 호가산장은 청접장이 없어도 어떻게든 권력자와 유명인사들에게 얼굴도장 한번 찍어보자는 목적으로 들이미는 이가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상황이니 불청객들 사이에 섞인 여문연과 제갈성찬은 나에게 소식을 전하기까지 제법 수고와 고생을 들였을 터였다.

         

       “혼인을 축하한다. 오래도 걸렸구나.”

         

       “예까지는 어찌 찾아오셨습니까. 아니 아무튼 잘 오셨습니다.”

         

       “귀찮은 일들을 피해 진법 속에 잠시 숨어 있다가 나오니 네 혼인 소식이 들려오더구나. 서두른다고 서둘렀으나 조금 늦었다.”

         

       “잘 오셨습니다!”

         

       서문연은 방방 뛰며 기뻐하는 혁기린을 보면서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뭐 서문연도 혁기린을 엄청 귀여워하던 사람이었고 그런 혁기린이 유야 공주라는 사실을 접했을 때는 크게 놀랐겠지.

         

       서문연과 아내들이 어색함을 떨치고 해후를 나누는 사이 나 역시 처음 보는 사람 제갈성찬과 마주 포권을 해 보였다.

         

       “반갑습니다. 호천안이라 합니다.”

         

       “그 위명은 익히 들었습니다. 제갈가의 진법사, 제갈성찬이라 합니다.”

         

       서문연의 남편 제갈성찬은 생각보다 미남이었다. 수염을 기른 모습이나 눈에 가득한 올곧음과 지성은 누가 봐도 유학자였고 다시 봐도 군자를 위한 길 외에는 눈길도 안 줄 것 같은 우도파였다.

         

       이런 사람이 서문연과 함께 좌도의 진법을 연마했다니 놀랍네.

         

       내 시선에 담긴 의미가 너무 빤했는지 제갈성찬은 점잖게 헛기침을 해 보이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문연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호천안 대협 덕분에 저희가 연을 되찾을 수 있었으니 은인으로 모시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도리어 서문연 진법가님께서는 저희가 큰 빚을 졌습니다. 언제고 그 신세를 갚고자 하니 혹여나 도움이 필요하신 일이 있으시다면 기탄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있자 제갈세가의 대표자로 온 장로 한 사람이 달려와 약간의 소동이 벌어졌지만 그래도 원만하게 수습되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은 제갈세가에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진법 속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던 모양이다.

         

       “…오해입니다. 문연과 함께하여 모용세가의 진법을 설치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그리 절약된 시간만큼 문연과 함께한 것 뿐입니다.”

         

       제갈성찬은 필사적으로 변명했지만 결국 농땡이를 피웠다는 말이었다.

         

       뭐 수천리 장기 출장을 가면 일정이 틀어지는 정도야 왕왕 있는 일이고 농땡이라고 한들 부부 사이의 재결합을 위한 시간이었으니 참작의 여지는 충분하다.

         

       음.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사람이 이런 비행을 저지르다니. 이걸 타락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서문연을 만나 숨구멍이 트이며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운 것인지 모르겠군.

         

       아무튼 서문연과 제갈성찬의 방문은 여러 가지 의미로 반가운 일이었다. 서문연이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고 우리도 혼인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고 또 진법 수련 상담도 할 수 있었다.

         

       “진법을 배우시겠단 말입니까?”

         

       제갈성찬을 날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기사 화경 고수가 이제와서 진법을 배우겠다고 하니 쉽게 납득이 가진 않겠지. 그러나 필요한 일이라 하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진법의 성취가 더디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평생 가르쳐달라는 부탁은 아니고 수련하다가 벽에 막힐 때마다 상담을 받고자 합니다.”

         

       “그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제갈성찬과 서문연의 조력을 확보했으니 진법 수련을 하다가 막힐 걱정은 없겠군. 숙제에 든든한 보험을 들었기에 절로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내 마음속에 있는 미련이라는 놈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랄까.

       

       결국 진법이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만 확실히 깨달았을 뿐이었다.

         

       답답함에 뭘 알고 있는 것 같은 위서련을 찾아가 좀 단서라도 얻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제갈성찬과 서문연을 대접한 이후 몹시 바빠졌다.

         

       “뇌검낭인 대협, 죄송하지만 확인을 해주셨으면 하는 자가…”

         

       “송상철이라는 자가 대협과의 친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태동안 일괄적으로 불청객을 처내기만 하다가 서문연과 제갈성찬이라는 예외가 생겨버리니 무작정 산문을 두드리던 이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고, 단순하게 모든 불청객들을 쳐내던 경비들도 예외가 생긴 지금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혼란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불청객들 사이에 진짜 연이 있는 이들이 끼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또 막상 보고를 받아보니 불청객이라는 작자들은 나름대로 명부를 작성해 볼 만한 숫자였다. 헛바람이 들었다 해도 무턱대고 산장으로 찾아올 만한 이들은 소수고, 그 소수 중에서도 삼엄한 군기의 황군과 무림고수의 기도를 받으면서도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이들은 그 중에서도 소수였으니까.

         

       지금까지 찾아온 불청객들은 일괄 처리했고, 앞으로 찾아오는 불청객들은 경비들이 1차로 압박을 넣어 보고 그래도 버티는 자들은 나에게 보고 후 대응하기로 정했다.

         

       오늘을 제하면 이젠 피로연도 닷새밖에 남지 않은 바. 이제와서 얼굴을 들이미는 불청객은 몇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었다.

         

       “중경상단의 성수철이라는 자가 찾아왔습니다.”

         

       “돌려 보내 주시오.”

         

       그리고 내 예상대로 다음날 찾아온 불청객은 다섯 사람 정도에 불과했으니 충분히 처리 가능한 업무량이었다.

         

       미련에 대한 단서가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피로연은 아무 문제 없이 잘 돌아갔다.

         

       가끔 말다툼이 나기야 했지만 걱정했던 정사간의 칼부림이 일어나는 일도 없었고 피로연의 목적대로 하객들간의 친목 도모도 순조로웠다.

         

       사마염과 재상해가 자연스럽게 합석하여 환담을 나눈다던가, 재미가 없다며 사복설의 손에서 해방된 동기놈들이 막이와 어울리며 쓰지도 못할 정력제를 얻어먹으려 애쓴다던가. 장모님과 유사연이 여인의 몸으로 사업체를 운영한다는 공통점에 친해졌다던가.

         

       처음에 사라를 만났을 때만 해도 서공을 빼앗아갔다며 음침하게 뒤에서 노려보던 혁기린도 이젠 사라와 려아 사이에 끼어서 해맑은 웃음을 흘리며 서공을 함께 만지며 놀았다.

         

       소녀들 사이에 끼어 있어도 조금의 위화감을 느낄 수 없다니 역시 아이돌인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운종 선사와 당처인 어르신의 장기 대결을 관전하고 있을 때였다.

         

       경비 중 한 사람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대협, 도귀라는 자가 찾아왔습니다.”

         

       도귀?

         

       전혀 예상치 못한 자의 방문에 나는 눈을 껌뻑였다. 도귀, 도귀라. 인연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자였다. 아무튼 내가 도박을 대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 자이기도 했고 낙양의 도박장에서 제법 발전된 모습으로 재회하기도 했지.

         

       그 자가 하객으로 찾아왔다라. 정말로 예상치 못했던 자인지라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하객으로 초대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도경이나 위서련의 도박 상대가 되어줄 수도 있을 테고 말이야.

         

       “들어 오라 하시지요. 하객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내 승낙이 떨어졌으나 경비 무인은 돌아가는 대신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것이, 그 자는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음?”

         

       “한 사람의 도박사로서 도전장을 내밀겠다 전해달라 하였습니다.”

         

       도귀.

         

       그가 승부를 신청했다.

         

       *** ***

         

       식장의 중앙에 도박판이 펼쳐졌다.

         

       이제 삼삼오오 모여 잔잔하게 담소나 나누던 하객들은 뭔가 행사가 펼쳐질 기미가 보이자 도박판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내가 그 무대에 오르자 하객들의 기대감 역시 커졌다.

         

       “호오, 아무래도 뇌검낭인 대협께서 직접 도박기술을 보여주실 모양입니다.”

         

       “사실 궁금하기는 했습니다. 대협의 도박기술은 천하일절이라고 들었는데 견식할 기회가 없었으니까요.”

         

       분위기는 다행히도 긍정적이었다.

         

       일반적으로 무림인들은 도박기술을 천시하는 경향이 강했으나 오며가며 위서련과 당도경의 도박을 일주일 넘게 구경한 하객들은 어느 정도 그 선입견을 벗어던진 상태였으니까.

         

       “호천안 대협의 상대가 될 자가 누군지 궁금하군요.”

         

       “아무래도 소천마가 아니겠습니까. 그도 아니면 독의님일까요.”

         

       그리고 뒤이어 도귀가 내 앞에 자리했다. 당연히 하객들은 웅성거렸다. 그들이 볼 때 도귀는 무공을 익히지조차 않은 범인이었으니 나와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여길 테니까.

         

       “고명한 도박사인가…?”

         

       “으음. 도박쪽에는 견식이 짧아 잘 모르겠구려.”

         

       뭐 그러나 이 웅성거림도 판이 시작되면 사그라들 일이었다.

         

       결국 어느 분야든 자신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수단은 실력이었고 도귀는 충분히 실력이 있는 도박사였으니까.

         

       나는 수년만에 만나는 도귀의 행색을 눈에 담았다. 옷은 먼지가 잔뜩 묻었고 다리에는 수많은 대지를 밟으며 단련된, 아니 고생한 흔적이 역력했다. 사천 출신이었던 자를 낙양에서 만났던 경험을 생각해보면 도귀는 그 이후로도 계속 중원을 떠돌아다니며 자신의 실력을 높였던 모양이다.

         

       도귀의 실력이 얼마나 높아졌는가는 잘 파악이 되지 않는다. 다만 그 눈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느낌이 든다.

         

       처음 만난 도귀는 실력은 있었으나 너무 뜨겁고 물렁물렁했다. 제 목숨이 걸린 순간에도 움츠러들지 않은 것은 분명 담대하다 칭찬해 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판에서 도귀의 판돈은 무엇이었던가. 돈? 돈은 루주의 것이었으니 결국 그가 건 판돈은 자신의 목숨이었다.

         

       그러나 도귀는 내가 도발할 때마다 분노하며 제 목숨인 판돈보다 자존심을 우선하였고, 패배했다.

         

       반면 낙양에서 만난 도귀는 차게 식은 쇳덩이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나를 이기겠다고 벼리어 온 칼날이 섬뜩하게 내 목을 졸랐다. 부족했던 이성을 완벽하게 채워왔다. 그렇기에 나는 승부를 백척간두로 밀었다.

       

       도귀가 갈고 닦아 온 이성의 칼이 내 목 끝에 드리워졌음에도 판돈을 늘리며 칼날 위에서 놀았다.

         

       공포와 위험 속에서 움츠러들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마음속에 있는 열기였기에.

         

       가슴 속에 뜨거운 심지가 없었던 도귀는 결국 밀려 패했다.

         

       과연 도귀는 자신의 약점을 다시 한번 극복했을까. 극복했는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으나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도귀는 낙양에서 마주했을 때보다 더 성장했다.

         

       마주보는 도귀의 눈에서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범인과 같이 긴장과 흥분 그리고 기대감이 느껴졌을 뿐, 대단한 도박사라는 편린조차도 엿볼 수 없다.

         

       자기자신의 역량을 완벽하게 감추고 있다는 증거.

         

       아직 판이 시작하기도 전이니 그저 탐색전에 불과한 일이었지만 적어도 그 탐색 싸움에서 나와 대등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 마지막 승부를 걸만한 자격은 갖추었다는 거겠지.

         

       내가 도귀와의 일전을 왜 마지막 승부라고 칭하는가.

         

       판돈 때문이었다.

         

       결국 도박사란 족속은 판에 걸린 것이 크면 클수록 더욱더 제 역량을 극한으로 짜내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와 도귀의 인연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치더라도 이 이상의 판은 벌어질 수가 없다.

         

       황제, 고관대작들, 그리고 수많은 무림명사들이라는 관객들 앞에서 펼쳐지는 판이었고.

         

       동률의 전적에서 누가 진정 승리를 가져가는지를 정하는 판이었으며.

         

       나에게는 소문만 무성한 도박 실력을 만천하에 증명할 수 있는 기회였고, 도귀에게는 단번에 이름을 날릴 수 있는 기회거나 나에게 승리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이상 가는 판은 없을 터였다.

         

       무림에서 활동하지 않는 나는 점차 명성이 스러질 터였고 도귀 역시 이번 판의 승패와 관계없이 명성을 얻을 터. 훗날 다시 겨루게 될지라도 이 이상의 규모나 극적인 구도가 연출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 이상의 승부는 없을 터였다.

         

       그렇기에 나는 피로연이 진행되는 와중임에도 이번 판을 수락했다. 그저 피로연이라는 핑계를 대고 승부를 미루었다면 이 승부를 미루었다는 사실 자체가 또 다른 미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아직 나도 모르는 미련이 강호에 남아 있었거늘 또 미련을 늘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승부를 받아 주어서 고맙소.”

         

       “알긴 아는군.”

         

       “혼인식을 치르는 와중 승부를 청한 내가 큰 무례를 범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소.”

         

       가볍게 힐난을 해 보았지만 도귀는 전혀 흔들리지 않은 채 답했다.

         

       “허나, 사과는 이 승부가 끝난 뒤에 하리다.”

         

       그것이 너의 각오인가.

         

       나는 말없이 그 각오를 받아들이고는 선공을 정하기 위해 주사위 대신 가전을 집었다.

         

       “장기전이 될 것 같은데 힘 빼지 말고 동전의 앞뒤로 승부를 정하는 게 어떻겠나.”

         

       주사위를 굴리는 대신 동전을 던지자는 의미는 괜히 선공권을 쥐고자 시작도 전에 기운을 빼지 말자는 뜻이었다. 즉 아무 기교도 부리지 않고 순수하게 운에 의지하여 가전을 던지겠다는 뜻이었다.

         

       도귀 역시 내 뜻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나는 전면에 걸겠소.”

         

       “그럼 난 후면이군.”

         

       타앙!

         

       손가락 위에 올려진 둥근 가전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무림인조차도 식별하기 힘들 정도의 높이까지 치솟은 동전은 결국 중력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멈추고 이내 빠른 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티이잉!!

         

       그리 떨어진 가전은 도박판에 충돌한 뒤 요란하게 회전하며 튀어 올랐고 다시 한번 추락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가전을 던진다는 행위를 성립시켰다는 시점에서 나는 유리해졌다.

         

       사실은 몰래 동전에 수작을 부렸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행운]이 있었으니까.

         

       선택권이 있는 쪽이 유리하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

         

       정말로 전귀의 실력이 나와 백중세를 이룰 수 있을 정도라면 필시 행운이 작용하여 나에게 선택권을 가져와 줄 것이다. 만약 전귀의 실력이 내가 실력으로 이길 만한 수준이라면 행운이 작용하지 않을 것이고 전귀가 선공권을 가지게 되겠지.

         

       선공권을 빼앗길지라도 전귀가 내 실력에 못 미친다는 정보를 쥐게 되니 나는 어떤 식으로든 조금 앞서갈 수 있다는 것이다.

         

       조금 치사한 짓이라는 자각은 있었지만 뭐 본래 승부의 세계는 냉혹한 법이 아니겠는가.

         

       티잉!

         

       그리 생각하며 두 번째로 작게 튀어오른 동전을 눈으로 쫓았다.

         

       자 결과는 어느 쪽일까.

         

       그리 생각하며 내심으로 웃던 나는 이내 표정을 관리할 수밖에 없었다.

         

       빙글빙글 돌던 가전이 어느 쪽으로도 쓰러지지 않은 채 우뚝 서버렸기에.

         

       [행운]을 보유한 내가 던진 가전이 그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았다. 그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도귀 역시 [행운]을 지니고 있다.

       

       

       즉.

         

       도귀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도박 기술을 대성한 자라는 뜻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독자닉네임]님 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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