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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4

        

         

       생각해볼수록 늘어간다.

       지켜볼수록 늘어간다.

         

       죽여야 할 이유는 늘어나고, 살려야 할 이유는 찾기가 어렵다.

         

       ‘그리고, 그래.’

         

       진성은 괴물을 조종해 남자의 멱살을 들어 올린 채 분노를 터뜨리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분노를 터뜨리는 와중에도 더 터뜨릴 것이 있는지 중간중간 발작하듯 핸드백에 손을 가져가고 있었는데, 분을 이기지 못해서 핸드백 안에 있는 무언가를 사기꾼에게 집어던지려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핸드백에 손을 가져갔다가도 오른 손목에 차고 있는 황금 장미를 엮어서 만든 것 같은 아름다운 팔찌가 움직이며 손목을 자극하면, 폭발하는 화산과 비견될 것 같은 분노도 순식간에 가라앉고 적당한 수준의 분노로 돌아온다.

         

       황금 장미를 엮어 만든 듯한 팔찌.

       평소에는 자기 몸의 일부처럼 느껴져 신경을 쓰지 않지만, 그래도 금속은 금속인지라 분명히 차가움을 가지고 있는 그것.

       그것이 팔에 닿으며 이질적인 감각을 일으키는 그 순간, 그 팔찌와 얽혀있는 사람의 얼굴과 말이 떠오르면서 자제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여인은 용케 분노를 다스리고 있었다.

       아슬아슬하지만 말이다.

         

       그 모습은 진성에게는 참으로 기특해 보이는 것이라.

       회귀 전은 물론, 회귀 후에 처음 만났을 때도 자신의 성질을 이기지 못하며 온갖 곳에 짜증을 내고 다녔던 모습을 생각해본다면 그야말로 크나큰 발전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그렇기에 진성은 더더욱, 허수아비에게 붙잡혀 있는 사기꾼을 살려둘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오딜리아 A 라이히(Odilia A Reich).’

         

       지금 사기꾼을 응징하고 있는 여자는, 진성이 잘 아는 대마녀인 오딜리아였다.

         

         

         

        * * *

         

         

       오딜리아는 한참이나 더 사기꾼을 털었다.

       그리고 나서야 분이 풀렸는지 작은 한숨과 함께 머리를 감싸 쥐었고, 사나운 눈길로 사기꾼에게 ‘너는 내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라는 무언의 경고를 보냈다. 그러고 나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이라도 한잔하려다가, 주변 손님들의 시선이 전부 자신을 향해 있는 것을 느끼자 짜증 난다는 듯 입가를 살짝 비틀었다가 그대로 등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그녀가 나갔음에도 허수아비는 그대로 있었다.

         

       허수아비는 오딜리아를 따라 밖으로 나가는 대신 계속해서 사기꾼을 붙잡고 있었는데, 그 붙잡고 있는 부위라는 것이 참으로 오묘했다.

         

       “흐, 흐으….”

         

       덩굴이 뻗은 곳은 두 곳.

         

       한 곳은 사람들에게도, 사기꾼에게도 익숙한 멱살이었다.

       그리고 남은 한 곳은….

         

       “끄, 끄으윽….”

         

       …사타구니였다.

         

       코코넛 껍질처럼 변해버린 덩굴손은 남자의 사타구니를 감싸고 있었다.

       그것도 꽤 강하게 말이다.

         

       아마 이 사기꾼이 개수작을 부리려 한다거나, 도망이라도 치려고 하면 그대로…콱.

         

       아마 썩어버린 과실이 터져나가는 것처럼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버릴 것이 분명하겠지.

         

       그렇기에 사기꾼은 오딜리아가 사라졌음에도 도망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아니, 도망은커녕 얼어붙기라도 한 듯 부동자세로 서 있기까지 했다.

       조금 움직였는데 허수아비가 그것을 ‘도망’이라고 판단해서 자신의 소중한 부분을 뭉개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공포 때문에라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은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그 덕분일까?

       오딜리아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음에도 손님들은 많이 빠지지 않았다.

       도리어 아까 있었던 일을 안주로 삼아 떠들기도 했고, 남극의 차가운 바람을 정통으로 맞아 만들어진 얼음 동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서 있는 남자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비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조용히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는데, 흥이 깨져버린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 중에는.

         

       “….”

         

       리세도 있었다.

         

       리세는 좋은 분위기가 갑작스럽게 난입한 대마녀 때문에 깨져버리자 불만이 생긴 듯 살짝 볼을 부풀리고 있었다. 그리고 원망 섞인 눈으로 오딜리아가 나갔던 문을 바라보기도 하였고, 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 사기꾼을 찌릿 째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원망한들 어쩌랴.

         

       좋은 분위기는 이미 깨져버린 것을.

       그것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리세는 진성이 시켜준 칵테일만 홀짝홀짝 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모금이나 마셨을까?

         

       음료수처럼 목 넘김이 좋고 맛도 좋은 칵테일이었지만….

       그래도 칵테일은 칵테일.

       칵테일을 계속해서 마시다 보니 정신이 고양되고 몸이 따끈따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신주님. 이 칵테일, 도수가 얼마나 되나요?”

         

       “도수가 없는 칵테일이니라.”

         

       “네에….”

         

       …기분 탓이었나보다.

         

       리세는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인 채 ‘알코올이 하나도 없는’ 칵테일을 홀짝홀짝 마셨다.

         

       참 이상한 일이다.

       알코올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은 칵테일인데.

       좋은 분위기일 때에는 이런 기분을, 이런 생각을 떠올리지도 않았는데.

       대체 지금에 와서야 왜 몸이 이렇게 따끈따끈하고 얼굴이 붉어지는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분위기가 깨졌다는 생각 때문에 화가 나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아까 전 ‘좋은 분위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뒤늦게 부끄러움이 몰려왔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분위기에 휩쓸려서 약간은 야릇한 생각을 했던 후유증이 뒤늦게 찾아온 것일까.

         

       리세는 칵테일을 조금씩, 조금씩 마시다가.

       진성을 슬쩍 훔쳐보고는.

         

       칵테일 잔을 잡고 있던 손을.

       시원한 칵테일 때문에 차갑게 변해버린 손을.

       자신의 볼에 얹었다.

         

       ‘차가워.’

         

       손은 차가웠다.

         

       ‘그리고, 뜨겁네.’

         

       볼은 왠지 따끈따끈했다.

       겨울철 손난로에 잘 데워진 주머니에 얼어붙은 손을 넣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따끈따끈하고, 뜨거웠다.

         

         

         

         

        * * *

         

         

         

         

       리세가 칵테일을 마시며 드라마를 찍고 있을 무렵.

       그녀와 함께 바에 발을 디뎠던 남자, 진성은 다른 것을 찍고 있었다.

         

       영상물에 비교한다면…. 그래.

       공포 장르에 가까운 것이리라.

         

       토옥.

         

       장난기 많은 요정이 내려앉아 얄미운 표정으로 딱밤을 때린 것처럼 미미하고 가벼운 느낌과 함께 머리카락이 세 가닥 뽑힌다. 그리고 그렇게 뽑힌 머리카락은 진성의 손가락 사이에 끼었다가 식탁으로 나풀나풀 내려앉고, 근처에 있었던 정이라도 있는 것인지 한데 모인 채 쓰러진다.

         

       그리고 그렇게 쓰러진 머리카락 위에 진성의 손가락이 닿는다.

         

       길게 뻗은 하나의 손가락.

       진성의 검지는 마치 테이블에 남은 물기로 그림을 그리는 장난을 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것도 아니면 테이블의 청결을 의심해 손가락으로 테이블의 표면을 훑어 그 더러움을 가늠이라도 하려는 듯 가볍고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닿는 머리카락이 하나. 둘. 셋.

         

       톡, 톡, 톡 닿는다.

       검지의 끝에, 손톱의 끝에 머리카락이 닿는다.

       그리고 물기라도 있는 것처럼, 끈끈이라도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진성의 손끝에 머리카락들이 달라붙는다. 그렇게 머리카락은 손끝에 붙은 채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허공을 유영하였고, 자신이 조금 전까지 있었던 그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는 듯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진성은 그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다른 손가락을 움직여 그 머리카락을 붙잡고, 흔들흔들 손을 움직였다.

         

       흔들흔들.

         

       너무 느릿해서 잔상이 남을 정도로.

         

       흔들흔들.

         

       그리고 그 흔들거림이 이어질수록, 머리카락은 점차 빳빳하게 굳어간다.

       마치 바람에 잠시 휘어졌던 식물이 똑바로 일어서기라도 하는 것처럼.

       검고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솟구친다.

       그리고 마침내 직선으로 변하고, 바늘이라도 되는 것처럼 날카롭게 끝을 세운다.

         

       머리카락의 바늘.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진 가시.

         

       진성은 그것을 쥔 채 다시 한번 손을 움직였다.

         

       아까는 마치 머리카락을 달래듯, 신호를 주기라도 하는 움직임이었다면.

       이번에는 느릿하지만, 원을 그리며.

       마치 아주 작은 소용돌이라도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소용돌이가 만들어지자, 허공에 유영하던 에너지가 반응하기 시작한다.

       미량의 에너지.

         

       무인들이 기(氣)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그렇게 모인 기는 소용돌이에 물건이 빨려 들어가듯 진성의 손안으로 움직였다.

       물론 모인 것이 너무나 극미량인지라, 무인의 축기와 비교한다면 ‘움직인다’라고 표현하기조차 민망한 수준이었다. 무인의 축기로 모이는 기(氣)가 가전제품에 쓰이는 전기를 연상케 하는 것이라면, 진성이 행한 것은 정전기만도 못한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미미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쓰임새는 있는 법이다.

         

       너무 미미해서 모은다고 하더라도 의미가 없고, 주술을 익힌지라 몸에 모을 수도 없고 모아서도 안 되는 에너지였지만.

       그런 에너지라고 할지라도, 이런 머리카락에 기를 불어넣으면….

         

       자그마한 장난질을 하는 데에는 쓸모가 있었다.

         

       핏.

         

       진성의 손안에 있던 머리카락이 튀어 나갔다.

       마치 자그마한 자갈을 딱밤으로 토옥 날려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손안에 있던 가시처럼 변했던 머리카락이 그의 손에서 빠져나가 하늘을 날아갔다.

       그렇게 날아간 머리카락은 땀에 범벅이 되어버린 남자를 향해 쏘아졌고, 그의 굳어버린 몸에 박혔다.

         

       물론 사기꾼은 자기 몸에 머리카락 세 가닥이 박힌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과한 긴장 상태 때문에 몸이 빳빳하게 굳어 있어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이리라.

       물론 긴장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가느다란 머리카락 세 가닥이 꽂힌 것이니 그냥 벌레가 물었나 싶어질 정도였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머리카락은 너무나도 손쉽게 사기꾼의 몸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진성의 손짓과 함께, 빳빳하게 굳은 몸이 풀어지며 추욱 늘어지고.

         

       꿈틀거렸다.

         

       꿈틀.

       꿈틀.

         

       바람에 흔들거리는 것과는 명백하게 다른.

       살아있는 것들만이 낼 수 있는 그 기괴하고 매끈거리는 꿈틀거림.

       머리카락은 징그러운 벌레가 꿈틀대는 것처럼 몸을 움직였고, 자신이 박힌 곳을 향해 파고들었다.

         

       날카로운 끝으로.

       파고든다.

         

       그렇게 순식간에 머리카락들은 자취를 감추고, 남자의 몸속을 유영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모습은 마치, B급 공포 영화의 초반부에 나오는 전조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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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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