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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6

   대지 위에 어둠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내자 세상에 자리하던 모든 어둠이 그의 곁으로 몰려든다.

   

   태양을 거리던 먹구름이. 나무 아래에 자리하던 그림자가. 타락해버린 요정들의 마음속에 자리하던 불온함이. 그 모든 어둠이 한 자리에 모여 들어 심연을 만들어낸다.

   

   바라보는 순간 그 안으로 끌려가버릴 듯 검고도 검은 무언가로 변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게. 어둠의 악신인가.

   

   특색 하나 없는 남자의 모습은 어디에나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위압감은 달랐다.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격의 차이를 알리는 남자는 자신이 왜 신이라 불리는 지를 존재만으로 증명했다.

   

   “여전히 세상은 토악질이 나올 정도로 밝군.”

   

   어둠이 걷힘에 따라 드러난 태양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던 남자가 손을 치켜들었지만 세상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조이가 즉석에서 마법진에 더한 것이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하.

   

   하하하!

   

   그래. 신이라고 해봐야 나한테 발린 찐따잖아! 봉인에서 풀려났다고 해봐야 저 녀석이 허접이란 사실이 바뀌는 건.

   

   “수작질을 부려뒀나.”

   

   손가락으로 느긋허니 턱을 두드리던 남자는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곤 다시금 하늘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세상이 검정색으로 물든다. 구름도 없고, 별도 없고, 달도 없는, 완연한 밤이 세상에 자리한다.

   

   “이제 좀 마음에 드는 군.”

   

   미친.

   

   저게 뭐야.

   

   *

   

   만족스럽게 고갤 주억거리는 남자의 틈을 노리고 가을을 집어삼키는 메뚜기떼처럼 거대한 요정의 무리가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어이쿠.”

   

   세상을 잠식해야 할 돌격은 남자의 긴장감 없는 목소리와 함께 어둠에 삼켜졌다. 그걸로 끝이었다.

   

   어둠에 삼켜진 요정들은 말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오랜만이군. 그 동안 한층 더 어둠에 가까워진 것 같아 기뻐.”

   “저도 당신을 뵙게 되어 기쁘답니다. 당신의 권능을 취한다면 영원히 꿈을 꿀 수 있을 테니까.”

   “하하! 그것 참 순수하지 못한 어둠이라 마음에 들지만 그건 나중에 하자고. 선약이 있거든.”

   

   자신에게로 달려드는 요정여왕에게서 등을 돌린 남자가 손가락을 튕기자 요정여왕의 모습도 어둠에 가라앉는다.

   

   “반갑군.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가?”

   

   남자의 걸음이 멈춘 곳은 한 여자아이의 앞이었다.

   

   여기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어둠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 온 몸으로 빛을 내며 친우들의 곁에 머무는 자. 벌벌 떨리는 손을 애써 다잡고 있으면서도 얼굴에선 당당함만을 드러내는 자.

   

   “처음으로 하고 싶어?♡ 나같은 꼬맹이한테 개쳐발린 게 신경 쓰이나봐?♡”

   “그럼. 당연히 신경이 쓰이지. 그런 아픔 또한 어둠인데 어찌 내가 외면할 수 있을까.”

   “말싸움을 해봐야 못 이길 것 같으니 관대한 척 하는 거야?♡ 푸훟♡ 그러는 게 더 찐따같은데♡”

   

   얼굴말고는 봐줄 것 하나 없는 어떤 여신을 연상시킬만큼 감탄스러운 외견을 지닌 여자아이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예전부터 그랬다.

   

   남자의 사도와 맞붙던 그 때도.

   

   모든 것을 불태우는 화염을 마주할 때도.

   

   세상을 공으로 되돌리려는 미치광이에게 맞설 때도.

   

   여자아이는 항시 맨 앞에 서서 빛을 발했다.

   

   어째서 주신이 자신을 사랑하는지를 증명했다.

   

   지금도 여자아이는 빛을 발하며 자신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 빛이 얼마나 밝은지 남자는 그녀의 주변에 도사리는 여러 잡졸들을 눈에 새기지도 못했다.

   

   빛밖에 보이질 않아서 오롯이 그녀에게 시선을 줘야만 했다.

   

   “나를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직접 보니 더 욕심이 나는 구나.

   

   이 빛을 검은 색으로 물들이고 싶어.

   

   어떻게든 빛으로 남으려는 이 아이를 심연 속으로 끌어당기고파.

   

   “에르기누스의 분체 따위가 만들어 낸 계획이 신을 짓누를 수 있으리라 여기나?”

   

   자신이 믿던 계획이 무너져 내릴 때 이 아이는 어떤 얼굴을 할까.

   

   “네가 네 소중한 것들을 내게서 지킬 수 있으리라 믿느냐?”

   

   지키고자 하던 이들을 잃어버렸을 때 이 아이는 또 어떤 얼굴을 할까.

   

   “네가 믿는 것들이 변치 않으리라 여기느냐?”

   

   한 치 의심 없이 신용하던 이들이 자신에게 검을 휘두를 때 이 아이의 표정은 어떤 식으로 바뀔까.

   

   “네가 믿는 무능한 신이 어둠 속에서 널 구원해줄 수 있으리라 믿느냐?”

   

   고통에 비명을 지를 때. 절망 속에서 구원을 바랄 때. 그 끝에 신에게 버려졌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 때에 허무한 웃음은 얼마나 먹음직스러울까.

   

   “실험을 해보자꾸나.”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남자가 어둠의 뒤로 물러나며 그 형체가 사라지고 세상에 루시와 동료들만이 남겨진다.

   

   *

   

   ‘대체 저런 걸 어떻게 이기신 거에요!?’

   

   요정여왕만 해도 답이 없다고 느껴질 만큼 강했었는데 그런 괴물을 일순간에 제압하다니! 저게 맞아!? 아무리 신이라지만 저건 도를 넘은 거 아냐?!

   

   <진정하고 신성을 끌어올려라! 현실을 봐!>

   ‘보고 있어요!’

   

   걸음을 뒤로 물리며 주변을 살핀다.

   

   숨을 쉬는 것이 버겁다.

   

   그 어느 때보다 필사적으로 신성을 내뿜고 있거늘 주변의 공기는 여전히 무겁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힘들다.

   

   주변의 어둠은 분명 아무런 실체도 없는 무언가일 지언데 기이하게도 어둠은 내 몸에 달라붙어 움직임을 가로 막는다.

   

   주변의 목소리가 흐릿하다. 모두들 필사적으로 무어라 소리치고 있거늘 귀에 닿는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알아듣기 어렵다.

   

   모든 것이. 모든 감각이. 내게 존재하는 모든 것이. 어둠에 휘감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솔라딘의 핏줄아. 모든 걸 잃어버린 아이야.”

   

   그 중에 선명한 것은 오롯이 하나. 어둠의 목소리뿐이었다.

   

   “우정놀이로 네 결핍을 달랠 수 있으리라 믿었느냐?”

   “신이란 작자가 재잘재잘♡ 이런 수작질이 아니면 자신이 없는 거야?♡”

   

   목소리에 신성을 실어가며 필사적으로 소리쳤지만 내 목소리는 어둠의 너머에 닿지 않는다.

   

   “잃어버린 것은 돌아오지 않고 미혹은 사라질 줄을 모르니 네가 한 일은 극복이 아닌 외면이 되겠구나.”

   

   허나 어둠의 목소리는 달랐다. 어둠에 새겨진 목소리는 당연하단 것처럼 사람의 귓가에 스며들어 마음에 달라붙는다.

   

   잘 들리지 않는 소리 사이로 현실을 부정하는 누군가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리다 이윽고 조용해진다.

   

   “나 같은 꼬맹이한테 쫀 거구나?!♡”

   “감정을 알지 못하는 아이야. 진정 네 머리에 새겨진 것이 마음이더냐? 마음이 맞느냐? 그리 믿고 싶은 것 뿐 아니더냐?”

   

   옆에서 쉴 새 없이 이어지던 움직임이 일순에 멎는다. 그 고요함은 어둠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처럼 차갑다.

   

   “푸하핳♡ 겁쟁이!♡ 평생 땅바닥에 박혀 있다 보니 도망치는 것밖에 못하는구나!?♡”

   “만들어진 상징아. 그대의 믿음이 굳건한 신앙이라 생각하느냐? 사실은 그저 매달리고 있을 뿐이지 않나? 이렇게라도 하지만 네 삶에 아무런 의미도 없어지니 믿는 체 하는 것은 아닌가?”

   

   뒤편에서 흘러나오던 신성의 따스함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어둠이 차지한다.

   

   “날 봐!♡”

   “기사여. 그대는 진정 자신의 모든 걸 바쳐 주인을 모시고 있는가? 그대의 꿈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여기는 것은 아니더냐?”

   

   내 앞에 흐릿하게나마 존재했던 기사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날 보라고! 이 변태 새끼야아아아!”

   

   모든 것이 사라진 곳에서 다시금 남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보란 듯 이죽거리며 내 앞으로 다가 온 남자는 내가 휘두르는 메이스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받아내며 나와 시선을 맞췄다.

   

   “신의 사랑을 받는 아이야.”

   

   이 녀석. 방금 전에 내 친구들을 먼저 제압하고 나한테 왔어. 나한테 절망을 선사하기 위해서.

   

   “진정 신이 널 아낀다고 믿느냐? 널 도구로 여긴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느냐?”

   

   근데 그렇게 생각하면 이상해. 아직 한 사람이 더 남아 있잖아. 조이가. 에르기누스의 제자가. 이 녀석이 제일 귀찮게 여겨야 할 당사자가.

   

   “생각해보거라. 자신이 진정 아끼는 것을 사지로 밀어 넣는 자가 어디에 있더냐.”

   

   못 보는 거구나. 에르기누스가 만든 마법을 파훼하지 못한 거야. 이건 수백년 간 동정을 지킨 대마법사의 마법은 틀리지 않았단 증명이야.

   

   “그 자는 너를 도구로 보고 있다. 네가 사라지면 또 다른 도구를 찾아 나설 테지.”

   

   그렇다면 방법은 있어. 내가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뒤로 훌쩍 물러서자 남자의 입꼬리가 반달을 그린다.

   

   “도망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주변은 어둑하고 감각은 흐릿하고 뭐 하나 제대로 된 건 없지만 그딴 건 아무 상관없어. 감각 따위 경험으로 보충하면 그만이잖아.

   

   “폴짝거리는 게 귀엽긴 하다만.”

   

   생각해. 떠올려. 네가 찾는 게 어디에 있을지 그려내. 머릿 속에 그려진 지도 속에서 원하는 걸 찾아내는 거야!

   

   “난 그런 식으로 놀고 싶진 않아서.”

   

   필사적으로 움직이던 내 몸이 어둠에 가로 막히고 그 안에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기겁과 함께 뒤로 물러서려던 발을 억지로 움직인다. 남자의 다리 사이를 파고 들어 그 너머로 향한다.

   

   “자아. 네 비명소리가 하늘에 닿을지 보자꾸나. 정말 그 자가 널 아낀다면 필사적으로 널 구하려 하지 않겠느냐?”

   

   어느새 내 팔목에 닿은 남자의 손에 힘이 더해지자 빠각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신경을 타고서 고통이 올라왔다.

   

   아픔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비명을 질러야한단 뇌의 신호조차 움직이지 못할 만큼 통증이 거셌다.

   

   “꺽. 꺼억. 끅.”

   “아아. 미안하구나. 인간은 너무 아프면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지. 잊고 있었어.”

   

   남자는 웃으며 말을 하고서 피부에 닿은 손가락에 힘을 더했다. 그러자 모래를 파고 드는 것처럼 너무도 간단하게 손가락이 피부를 꿰뚫는다.

   

   “끄흑. 끅. 끄아아아악!”

   “이제야 좀 듣기가 좋군. 자. 하늘에 들리도록 연주를 해볼까?”

   

   남자의 콧노래와 내 비명소리가 뒤섞인다.

   

   살갗을 파고드는 손가락에 묻어나오는 혈액이 질척하고 기분 나쁜 소리를 더한다.

   

   고통 속에서 몸부림을 쳐 보지만 남자의 손은 내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나의 발악이 아픔을 더 늘릴 뿐.

   

   그를 깨달았다 한들 몸부림을 멈출 순 없다.

   

   내 몸은 이미 통제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쯤하면 됐나?”

   

   남자가 내 팔에서 손을 뗀 순간 내 몸이 앞으로 무너져 내린다.

   

   입술에 난 상처에서 새 나온 피가 침과 뒤섞여 바닥에 떨어지고 어느새 새 나온 눈물이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고 가빠진 숨이 온 몸을 진동시키고 그 와중에 바닥을 기어 도망치려는 나의 목덜미를 우악스런 손이 붙잡아서 들어올린다.

   

   히죽 웃음을 지은 남자는 보란 듯 손을 펼치며 목소리를 냈다.

   

   “보거라. 네가 필사적으로 소리쳐도 구원은 오지 않는 구나.”

   “죄송해요.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죄송해요.”

   “음? 벌써 망가졌다고? 그럴 리가. 아아아. 기이한 저주가 걸려있구나. 쯧. 누가 이런 저주를 건 것인지. 미학을 모르는 녀석이군.”

   

   남자가 내 이마에 손가락을 올린 순간 머리에 가득 찼던 공포가 걷히고 이성이 자리한다.

   

   덕분에 난 검은 눈동자에 비춰지는 내 몰골을 볼 수 있었다.

   

   “대답해 보거라. 아직도 너는 네 신을 믿느냐? 그 자가 구원을 해주리라 생각하느냐? 널 도와주러 오리라 믿느냐?”

   “…아니. 그딴 새끼 필요 없어.”

   “호?”

   “허접 주신이 오면 네가 튀어버리잖아♡ 그럼 곤란하지♡ 넌 내 발밑에서 기어 다녀야 하거든♡”

   

   눈동자에 비친 내 입가가 끌려 올려지자 남자의 눈초리가 사납게 변한다. 그의 신경이 내게 집중된다.

   

   “오냐. 알겠다. 더 노래를 부르고 싶다니 내가… 허?”

   

   내 도발에 걸린 남자는 바닥의 마법진이 발동되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허~접♡”

   

   내 망가진 얼굴이 그렇게나 매력적이었나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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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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