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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6

        

         

       농장에 가는 날은 참 좋은 날씨였다.

       호텔에서 나오자마자 맞이해준 것은 정말로 산책하기 좋은 날씨 그 자체.

       하늘은 화창했고, 구름도 딱 좋았다. 내리쬐는 햇살에 조금 질릴만하면 구름이 움직여 그늘을 만들어주어 몸을 식혀주고, 다시 몸을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햇살이 내리쬐며 몸을 적당하게 데워준다.

       그 따뜻함이 어찌나 대단한지, 차에 앉았을 때 노곤함에 눈이 절로 감겼을 정도였다.

         

       도착하고 나서는 또 어떠한가.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불며 저 멀리 농장에서 실어 왔을 풀 내음을 맡게 해주었고, 이름 모를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저 멀리 숲속에서 들린다. 그리고 그 숲을 벽처럼 두른 채 넓게, 정말 경이로울 정도로 넓게 지평선 너머까지 퍼져있는 초록색의 바다는 입을 떠억 벌어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농장.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시골집에서 볼 수 있는 텃밭도 아니었고, 주말에 도시인들이 찾아가서 농사를 짓는 주말농장 같은 그런 풍경조차 아니다.

         

       바다.

       풀로 만들어진 바다가 눈앞에 있었다.

         

       바람이 한번 싸악 불면 움직이며 몸을 뉘었다가 제자리를 찾기를 반복하는 그 모습은 정말.

       풀로 만들어진 파도가 저러하지 않을까 싶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경이로운 모습에 리세는 머리에 쓰고 있던 하얀색의 모자가, 리본이 장식된 넓은 챙의 모자가 바람에 날려 벗겨지며 저 멀리 날아갈 뻔하기까지 하였다. 아니, 아마 그녀의 옆에 서 있던 진성이 재빠르게 그 모자를 잡아주지 않았다면 정말로 농장 저 멀리까지 날아가 흙투성이가 되었겠지.

         

       아름다운 순백의 모자가 흙에 뒹굴며 때가 탔을 것이다.

         

       예쁜 옷을 입은 보람도 없이 말이다.

         

       하지만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모자가 아까처럼 바람에 저 멀리 날아간다고 할지라도 얼마든지 잡아줄 테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리세는 안심하고 절경을 보았다.

       빼곡하게, 하지만 가지런하게 지평선 저 너머를 가득 메운 풀의 바다를 보았고, 절벽이나 암초라도 되는 듯 숲의 바다의 옆에 서 있는 울창한 숲의 어둠을 보았고, 그 숲에서 느껴지는 축축하면서도 싱그러운 생명의 향기를 맡았다. 그리고 아직 풋내만을 머금은 풀들이 파도를 치며 그 향기를 전해오는 것을 만끽하였다.

         

       휘이잉.

         

       그러다가 또 바람이 불어오고.

       걸림돌 하나 없이 탁 트여있는 평원을 가로지르는 바람은 가차 없이 그녀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얇고 가벼운 그녀의 원피스 자락을 펄럭이며 풍경에 감탄하고 있던 리세를 제정신으로 들게 만들고, 붉어진 얼굴로 황급하게 치마를 누르며 펄럭이지 않도록 몸을 움직이게 만든다.

         

       그렇게 리세는 자기 치마를 사수한 뒤, 혹여 진성에게 보였을까 하는 생각에 얼굴을 붉히면서 조심스럽게 쳐다보았다가도.

         

       지금 이러한 상황이, 어디서 많이 보고 듣던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무슨 옛날 드라마나 순정만화에서 볼법한 상황도 아니고.

       바람에 펄럭이는 치마, 그걸 황급히 누르는 여주인공….

         

       푸훗.

         

       리세는 정말로, 지금 상황이 드라마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것도 뭔가 달콤하고 가벼운 분위기의…. 그런 드라마 말이다.

         

       “신주님. 혹시 꽃 좋아하세요?”

         

       그렇기에 리세는 아까 전 느꼈던 당황스러움도 지우고.

       붉어진 얼굴도 그 흔적만을 남긴 채, 진성에게 권유할 수 있었다.

         

       꽃을 좋아하냐고.

       꽃밭을 보러 가자고 말이다.

         

       “이 농장, 사계절 내내 꽃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해요. 거기로 사진 찍으러 가요!”

         

       리세가 이 농장을 찾아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꽃밭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 농장은 단순히 작물을 재배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관광객을 유치하는 곳이었다.

       사계절 내내 꽃을 볼 수 있도록 구역을 정해 온갖 종류의 꽃들을 심어놓았다고 하던가.

       그래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때 가더라도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고 들었다.

         

       거기에 그냥 심어놓은 것도 아니다.

       유명한 회사들에 돈을 지불해서 캐릭터 그림을 그린다거나, 영화의 한 장면을 꽃으로 그려낸다거나 하는 등, 관광객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들었다.

         

       “올해는 다람쥐나 토끼 같은 동물을 그렸다고 해요. 게다가 듣기로는, 소환사들과 계약해서 귀여운 소환수로 공연까지 한다고 해요!”

         

       그리고 올해는 나름 평범한 작은 동물들 그림이었지만….

       대신에, 소환사를 고용하는 강수를 두었다.

         

       그것도 소환수의 주인만 귀여워하는…. 대중적으로는 호불호가 갈리는 형상의 소환수가 아니라, 정말로 누가 보더라도 귀여움에 비명을 꺄악 내지르고 말 것 같은 그런 소환수 들을 데리고 다니는 소환사들을 말이다!

       그중에는 본래도 귀여운 물개의 귀여움과 크기를 10배 늘려놓은 것 같은 귀여운 소환수도 있었고, 아동용 애니메이션에서 나올법한 귀여운 마스코트를 닮은 소환수도 있었다.

       

       그리고 소문으로는 오리 부리를 가지고 있는, 5m가 넘는 크기의 너구리도 있다고는 들었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어떻게 너구리가 오리 부리를 가질 수 있으며, 그 크기가 5m가 넘을 수 있겠는가.

       심지어 듣기로는 싸울 때는 독침을 사용해서 싸우는 데다가, 전기를 감지할 수 있다고까지 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제외하더라도….

       충분히 갈 가치는 있을 것이다.

         

       엄청나게 큰데다가 어마어마하게 귀여운 물개라니!

       아동용 애니메이션에서 나올법한 귀여운 마스코트가 뽀짝뽀짝 걸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니!

         

       그 옆에서, 혹은 그 위에 탄 채 사진이라도 찍기라도 한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다.

         

       물론 그 사진을 찍을 때, 옆에….

         

       “….”

         

       …지금 이 농장에 동행해준, 신주가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았고.

         

       리세는 슬쩍 한 손을 들어 자신의 볼에 가져다 댔다.

         

       햇빛 때문일까?

       모자를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볼이 따끈따끈했다.

         

       분명 햇볕에 데워진 것이겠지.

       분명히.

         

       “신주님. 저쪽이에요.”

         

       리세는 배시시 웃으면서 볼에서 손을 떼고는, 한쪽을 가리켰다.

         

       다른 관광객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방향.

       소환수와 꽃밭이 있는, 바로 그곳으로 향하는 차가 있는 곳이었다.

         

       부르릉.

         

       미국의 이미지답게 큼직하고 뭔가 마초스러워보이는 디자인의 차는 그 생김새만큼이나 많은 사람을 태웠다. 각국에서 온 개성적인 사람들을 태운 채 빠르게 움직였고, 때로는 비포장도로 특유의 덜컹거림의 참맛을 탑승한 사람들에게 안겨주었다.

       그때마다 어떤 사람들은 인상을 썼고, 어떤 사람들은 이 속도감과 감각에 취하기라도 한 듯 탄성을 내질렀고, 어떤 사람들은 차량이 구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작게 비명을 지르기도 하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차는 아무런 문제 없이 목적지에 도착했고….

         

       “오, 신이시여!”

         

       목적지에 도착한 이들은, 소환수가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김새의 무언가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것은 정말로 이국적이고 이질적이고- 아무튼 익숙하지 않은 모습을 한 녀석이었다.

         

       미국 곳곳에 널려있는 2층짜리 주택 크기는 될 듯한 거대한 크기!

       단단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말랑해 보이는 부리!

       손발에 나 있는 물갈퀴!

       덥수룩한 털에, 뭉툭하면서도 뭔가 폭신할 것 같은 꼬리까지!

         

       놀랍고도 놀라우며…아무튼 놀라운 생물이 있었다.

         

       “여러분! 저 소환수를 만지시면 안 됩니다! 가까이 가지도 마세요! 순한데다가 훈련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독침이 있습니다! 가까이 가시면 쏘일 수도 있어요!”

         

       “What?! 독침?! 맙소사! 어떻게 그런 동물이 있을 수가 있지!”

         

       “저건 외계에서 온 생물이 분명해! 그냥 소환수가 아니야! 외계인의 애완동물일 거라고!”

         

       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조금 과장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놀라고 있었다.

       아니, 정말로 몇몇 사람들은 저 소환수가 외계에서 온 증거를 찾아야 한다며 접근하려고 했다가 직원에게 제지당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제지당한 사람은 외계생물 구경 좀 하겠다는데 왜 막냐고 항의했으나….

         

       “…저기, 손님. 저 소환수의 크기가 커서 그렇지, 지구에 있는 생물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냥 거대 오리너구리라고요.”

         

       “뭐? 지금 나 무식하다고 놀리는 거야? 내가 아무리 무식하다지만, 그딴 말에는 안 속아! 저런 생명체가 지구에 있을 리가 없잖아!”

         

       “아니 진짜로 있다니까요! 오리너구리 몰라요?!”

         

       “오리도 알고 너구리도 알지! 근데 그 두 개가 합쳐진 동물이라고? 개소리 집어치워! 난 저걸 봐야겠어! 난 저걸 살펴볼 자유가 있다고!”

         

       “…손님! 저 소환수를 만졌다간, 주인에게 고소당할 수도 있습니다!”

         

       “오 이런! 고소는 안 되지. 좋아, 포기하지! 하지만 잘 들으라고! 나는 당신의 그 멍청이도 속지 않을 거짓말에 속아서 물러나는 게 아니야! 저 외계에서 온 게 분명한 에일리언 주인의 자유를 존중해서 물러나는 거라고! 알았어?!”

         

       “…예. 알겠으니까, 뒤로 물러나시죠.”

         

       ‘고소’라는 마법의 단어를 듣자마자 뒤로 물러났다.

       물론 끝까지 오리너구리의 존재를 부정하는 건 덤이었고.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리세는 이런 촌극이 즐거운 것인지, 아니면 저 거대 오리너구리가 귀여운 것인지, 아니면 오리너구리의 뒤로 흐드러지게 꽃이 만발해있는 것이 아름다워서 그런 것인지.

         

       “그러고 보니 크기가 클 뿐이지, 정말 오리너구리네요. 귀엽지 않나요?”

         

       생글생글.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가지를 않았다.

         

       그리고 이런 즐거운 기분은 꽃밭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난 뒤, 농장 주인 가족이 직접 운영한다는 카페까지 이어졌으나….

         

       이내 그 카페 안에서 마주한 익숙한 얼굴을 보고.

         

       “장난쳐?!”

         

       …그리고, 어제 보았던 그 익숙한 얼굴이 농장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을 보고는.

         

       “….”

         

       순식간에, 가라앉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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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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