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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7

    <567 – 너무 빠른 아이(2)>

     

    오크노디가 선배가 되었다.

    이슈타르에게는 정말 치가 떨릴 이야기였다.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는데.

    숙적이라고 여겼는데.

    복학하면 이번에야말로 정정당당하게 학년수석을 따낼 거라고 다짐했는데.

     

    아예 상대로 승부조차 성립되지 않는 한 학년 위로 월반을 해버리다니, 이건 너무 악질이 아닌가!

     

    “비겁해. 결판을 뒤로 미룬 것도 모자라서 3학년으로 도망치다니.”

    “결판?”

     

    깜빡깜빡.

    호수의 별도 눈에 담을 것처럼 맑은 눈을 깜빡이던 오크노디가 아!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설마 학년수석의 자리를 두고 겨루고 싶었어요?”

    “…”

    “킥킥. 아이 귀여워. 황제까지 잡아놓고도 그런 사소한 거에 목을 매다니. 뉴비는 어쩜 이리 귀엽나 몰라.”

    “귀엽기는 네가 더 귀엽거든?! 그 쪼그만 키로 누굴 보고 귀엽다는 거야? 아카데미에서 제일 작은 꼬맹이 주제에!”

    “킥킥. 그래그래.”

     

    말렸다.

    무언가, 싸움조차도 성립되지 않는 분위기에 힘이 빠졌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3학년에 올라온 거야?”

    “방 배정부터 먼저 하고! 늦으면 <어디서나 잘 자기> 강의를 1년 내내 겪어야 할 거야!”

     

    얼떨결에 손을 잡은 오크노디를 따라 모험학부 기숙사 안으로 끌려갔다.

     

    ━━━

    [이번주 모험학부 내부시설도 안내문]

    1. 평화의 휴게실Peace Lounge

    2. 아이들의 안식처Children’s Sanctuary

    3. 도전 교실Challenge Classroom

    4. 지하 동굴Underground Caverns

    5. 지하수로Underground Tunnels

    6. 미확인지역Uncharted Area

    ━━━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아지게 만드는 안내문이었다.

     

    “휴게실과 안식처가 왜 따로 있어?”

    “아항. 여기서부터 주의사항을 알려드려야겠구나? 안내문은 기준을 잘 세워야 해요!”

    “무슨 기준?”

    “<누구>를 기준으로 하는 안내문인가!”

    “…당연히 모험학부 기숙사를 이용하는 학부생들을 위한 안내문이지.”

    “1년간 그렇게 당하고도 또 그렇게 넙죽 보이는 정보를 그대로 믿는 거예요?”

    “!”

    “잘 생각해보세요.”

     

    이슈타르는 굉장히 생각하기 싫지만, 자신도 모르게 직감이 발휘되는 답을 입에 담았다.

     

    “망자나 괴물, 인간이 아닌 존재…?”

    “정답! 정확히는 모험학부를 졸업하지 못하고 사망한 학생들을 위한 안내문이네요.”

    “어째서 같은 안내문을 봤는데 너만 그런 결론이 나와?”

    “평화의 휴게실을 안내문에선 피스 라운지peace lounge라고 적었지만, 라운지에 딸린 방들이 몸 하나 눕히면 끝일 정도로 굉장히 작죠?”

    “땅값이 비싼 제국의 노동계급이 이용하는 캡슐호텔 비슷한 느낌이긴 하네.”

    “죽은 자에게는 몸을 누일 1평 남짓한 땅이면 충분하죠. 그거랑 다르지 않아요!”

    “…비약이 심하지 않아?”

    “애초에 마법주문도 아닌데 병행표기가 왜 필요해요? 뒤의 글자는 속임수라는 뜻이죠!”

    “그, 그런 거야?”

    “휴게실은 화장실과 마찬가지로 restroom으로 쓰이기도 하죠. 변기가 있지 않으니 여기서는 휴게실. 평화의 휴게실 하면 떠오르는 마법주문 없어요? 사제들이 많이 쓰는 주문이요!”

    “분명 유피가 모험 도중에 간간히 사용했던… 아아앗! 레스트 인 피스!”

     

    레스트 인 피스Rest in peace.

    R.I.P.

    편히 잠드소서.

    고인을 향한 애도마법.

    무덤에서 시신이 스켈레톤이나 좀비로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마법이다.

    즉, 저 시설은 죽은 자를 위한 시설이다.

     

    “당연히 뭣 모르는 뉴비들이 저기에 쉬러 가면 밤새 안식을 방해받은 망령들에게 메챠쿠챠 공격당할 거라는 말이죠!”

     

    뭣 모르는 2학년들이 때마침 줄지어 휴게실로 향하는 모습에 이슈타르가 크게 움찔했다.

    뭐라고 경고라도 전해주려나 싶었는데 딱히 친한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불러세우질 않았다.

     

    “용사친위대 대원들은 다 어딨어요?”

    “너무 약해서 기사학부나 마법학부에서 추가수련을 더 하라고 보냈어.”

    “잘했어요! 모험학부가 젤 난이도가 낮아보일진 몰라도 깊게 파면 젤 빡세기도 하거든요. 기숙사 변동도 심해서 주간이벤트가 2개 겹친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서 우린 어디 가서 쉬어?”

    “아이들의 안식처는 성스러운 성소라는 의미의 생츄어리Sanctuary로 오인하기 쉽지만, 어린 망령들의 안식처로 인지하면 위험도가 다르죠.”

    “아이들을 지키는 어른 망령들이 기습하는 거야?”

    “꿈에 어린애들이 나타나서 밤새 미친 듯이 놀자고 조르는 거죠! 지치지도 잠들지도 않는 스테미나 무한의 아이들이요.”

    “…절대로 휴식이 되진 않겠네.”

     

    어느새 꺼내든 용사의 수첩에서 1번과 2번 항목에 찍찍 일자로 줄이 그어졌다.

     

    “도전 교실은 망령들의 특별한 주문을 배울 수 있는 시설인데 영체 관련 주문이니 배워둬서 나쁘진 않을 거예요. 대신 살아있는 사람임이 발각되면 강의실이 발칵 뒤집히겠죠?”

    “…어떻게 하면 들키지 않을 수 있는데?”

    “서늘한 베일을 뒤집어써서 체온을 드러내지 않고, 유령 흉내를 잘 내야겠죠? 피가 철철 흐르고 몸이 뒤틀린 안쓰러운 생김새의 불우한 귀신들을 보고 못생겼다고 비명을 지르지도 말아야 하고요!”

    “의외로 상식적인 선의 주의사항이네.”

    “교실이니까요!”

     

    다음은 지하 동굴과 지하수로.

     

    “지하하면 뭐가 먼저 떠올라요?”

    “무덤.”

    “그럼 여기서 퀴즈! 유령들이 왜 지하에서 안 자고 지상에서 휴게실이나 안식처를 사용할까요?”

    “응? 그러게…?”

    “잘 생각해보세요. 이슈타르라면 맞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음. 음… 으으으음……

    이슈타르는 생각하기 귀찮다는 마음을 꾹 누르고 열심히 궁리해보았다.

    쪼그마한 애가 언니 할 수 있어요! 하고 기대감에 가득 차서 쳐다보는데 도저히 그 시선을 실망시킬 수가 없었다.

    그 애가 어른보다 강한 오크노디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외모와 매력이란 어쩔 수 없이 외형에 구애받도록 만든다.

    고양이들이 툭하면 책상 위의 물건들을 앞발로 툭툭 쳐서 떨어뜨리고 사방팔방 털을 흘리며 발톱으로 벽지를 찢는 못된 생물임을 알면서도 때가 되면 밥을 챙겨주는 자발적 고양이 시종들처럼 말이다.

     

    “아.”

    “어때요? 뭔가 짐작이 되나요?”

    “지하는 유령과 관련된 시설이야. 그런데도 지상에 일부 유령들이 올라왔다는 건… 영역에서 밀려나 쫓겨난 영역동물들의 행동과 이어져 보여.”

    “그래서요?”

    “아마도 지상에 있는 건 그나마 덜 위험한 유령들. 지하에 있는 건 훨씬 더 위험한 유령들이겠지.”

    “와아, 정답이에요!”

    “흥. 별거 아닌 추론일 뿐이야.”

    “그럼 오늘 잠은 어디서 자야 할 것 같아요?”

    “당연히 미확인 지역이지. 다 빼고 남은 장소가 거기뿐이니까.”

    “음, 마지막은 50점!”

     

    오크노디가 살짝 아쉬워했다.

    이슈타르가 미간을 찡그렸다.

     

    “미확인 지역이 어때서?”

    “잠을 잘 곳은 맞는데 거기가 무조건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거든요.”

    “…또 뭔가 남았어?”

    “유령들은 인간과 다르게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무한정 싸돌아다닐 수 있는데 그런 유령들도 발을 들이기 꺼리는 장소에는 뭐가 있을까요?”

    “신의 성소.”

    “아니면 유령들을 포식하는 상위종일지도 모르죠!”

    “…….”

     

    이슈타르가 참다못해 질문했다.

     

    “기숙사에 이딴 것들이 왜 있어?”

    “<모험학부>잖아요!”

    “학부 잘못 골랐네.”

    “히히. 그렇죠? 그래서 뉴비들을 두고 와서 잘했다고 칭찬한 거예요!”

    “지젤이나 이사벨, 손오천은 안 만나러 가도 괜찮아? 즈앙이나 티토소가, 도로시, 그 밖에도 잔뜩 모험학부 왔는데.”

    “저랑 같이 놀러 다니기도 했으니까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거예요! 이슈타르는 그런 적이 없으니까 걱정이 되어서 일일 코치를 맡아준 거고요.”

     

    애한테 걱정이나 받았다는 말이군.

    불편한 감정이 고개 들다가 지하 수로를 메아리치는 귀곡성에 불만이 쏙 들어갔다.

    모르면 도움 좀 받을 수도 있지.

    이슈타르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 꾹 닫고 오크노디의 뒤만 따라다녔다.

    바닥에 고인 물을 밟지 않고 경계석만 딛는 오크노디를 따라 두 팔을 벌리고 발로만 경계석을 딛고, 심심하면 점프해서 벽이나 천장을 딛고 자리로 돌아오는 행동도 따라 하고, 버튼이나 함정에 단검을 던지는 행동도 꼬박꼬박 따라서 하면서.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는 거야?”

    “기능훈련인데요?”

    “…물웅덩이를 피해가는 이유도?”

    “앗, 거긴 피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투명모기들한테 알을 낳게 시켰거든요.”

    “…….”

     

    다음 주쯤 되면 알에서 깨어난 모기들이 오크노디의 피마법에 필요하다고 모험학부 학생들의 피를 빨려고 날마다 습격해오는 건 아닐까.

    지금이라도 학부의 평화를 위해 오크노디를 쓰러뜨려야할지 고민하던 이슈타르의 다리를 오크노디가 덥썩 붙잡았다.

     

    “60초만 숨 멈추세요!”

    “…?”

     

    왜 그러는데.

    물어보기도 전에 오싹한 기척이 통로 저편에서 대거 느껴지더니, 수를 헤아리기 무서운 망령들이 통로를 가득 메우며 좌에서 우로 질주했다.

    망령들이 모두 지나가고도 오크노디는 60초가 지나기까지 숨을 참았는데, 마지막쯤에야 둥실둥실 느릿하게 떠다니는 유령 하나가 보였다.

     

    <작은 여자아이 유령>

     

    암만 봐도 오크노디가 반지 속에 키우는 유령처럼 작고 약해 보이는 유령이 지나간 뒤에야 오크노디가 파하, 하고 숨을 쉬었다.

     

    “마지막에 그건 뭐였어?”

    “망령들을 도망 다니게 만드는 포식자요!”

    “그 작은 것이?”

    “기억하세요. 모험학부 기숙사에서는 아이와 여자, 노인을 조심할 것!”

    “왜?”

    “이런 살벌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은 아이와 여자, 노인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겠어요? 심지어 방금 유령은 셋이 다 해당되는 ‘밤의 사감선생님’이라고요!”

    “…어떻게 아이이면서 동시에 노인일 수가 있어?”

    “마나연공을 익히면 근육이 압축되면서 몸이 작아지죠?”

    “그렇지.”

    “극에 달한 마나연공은 사람을 어린이로 만들어요! 어린이이자 동시에 노인일 수 있는 거죠. 반로환동의 노고수도 그렇고, 일찍 죽었는데 오래 산 유령도 그렇죠. 그러니 모든 아이는 연령을 관측하기 전까진 노인일지도 몰라요!”

     

    이슈타르가 굉장한 의심이 담긴 시선으로 오크노디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여기 세상에서 가장 수상한 어린이가 있는데 유령 귀신 사감선생님이 중요할까.

    그러거나 말거나 오크노디는 씩씩하게 미확인 지역까지 안내했고, 이슈타르는 하룻밤을 보낼 잠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기숙사부터 위험해진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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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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