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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7

        

         

       몸에 달라붙은 보라색 드레스.

       명품으로 보이는 핸드백.

       그리고 호위하듯이 서 있는, 걸어 다니는 나무 두 그루.

         

       …그래.

       비유라거나 그런 게 아니다.

       정말로 나무 두 그루가, 저 여자의 양옆에서 경호원처럼 서 있었다.

         

       흙이 묻어있는 뿌리를 다리라도 되는 것처럼 꼿꼿하게 세우고, 가지를 팔이라도 되는 것처럼 쭈욱 뻗고 있었고, 관절이 없는 대신에 가지 전체를 휘게 해서 어디 길가에 있는 나무에서 강제로 뽑아다가 징수라도 한 것 같은 뾰족하고 기다란 가지를 창처럼 들고 있다.

       게다가 그냥 서 있기만 하니 몸이 찌뿌둥하다고 주장이라도 하는 듯 움찔움찔 뿌리를 움직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제 몸을 비틀어 짜기라도 하는 듯 뒤틀기도 하고, 기지개를 켜기라도 허리…인지 등인지 모를 중간 줄기 부분을 한껏 휘게 했다가 다시 꼿꼿이 서기도 한다.

       그러다가 가지에 붙어있는 나뭇잎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탈모로 고생하는 사람이 자기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기라도 하는 듯 몸을 떨었다가도, 탈모가 아니라 그냥 우연이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비어있는 다른 쪽 가지를 움직여 이파리를 스윽 쓸어 넘기기도 한다.

       그렇게 했음에도 나뭇잎이 많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본 후에야 안심이 된다는 듯 다시 경호원으로서의 본분을 다하겠다는 듯 창을 세운 채 아무 일도 없었다고 온몸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뭔가 산만하면서도 인간적으로 보이는.

       어쩌면 귀엽게까지 느껴지는 이상한 나무였다.

         

       그런 나무가 두 그루.

       건전한 차림이라고 할 수 없는 복장의 여자를 사이에 둔 채, 양옆에 서 있다.

         

       …하지만 그런 귀여운 나무를 사이에 두고 있음에도.

       그 여자에게서는 귀여움을 느낄 수 없었다.

         

       아니, 귀여움을 느끼기는커녕….

         

       “기억 안 나? 내가 비서를 보냈을 때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냐고! 분명 그랬지. 농장에서 일할 사람들을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서 농지를 축소하려고 한다고! 그래서 내가 원하는 만큼 물량을 주지 못할 거라고! 기억나, 기억 안 나?!”

         

       …오히려 그것과 정반대되는 감정을 느끼게 했다.

         

       동물로 비유하자면 육식동물이고, 식물로 비유하자면 독을 가득 품고 있는 독초.

         

       지금 나무를 양옆에 낀 채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는 여성에게는, 그만한 기세가 있었다.

         

       “물론이오. 그랬었지.”

         

       하지만 여자의 분노를 한 몸에 받는 남자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그 무엇에게도 겁을 먹지 않아야 하고 당당해야 하는- 그래. 소위 말하는 ‘꼴통’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뭔가 허술해 보이지만 위협적인 나무를 끼고 있는 여자의 분노를 한 몸에 받고 있음에도, 겁을 먹는 표정은커녕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내가 또 말했잖소. 관광 쪽에 힘을 쓰고 있고, 그 때문에 자금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고.”

         

       “그래서 내가 투자한다고 했잖아!”

         

       “그래, 나도 동의했지. 투자 싫어하는 미국인은 없으니까.”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가, 고개를 젓고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동의했’었’지. 그래, 동의했었어.”

         

       “근데?!”

         

       “하지만 말이오. 투자라는 게, 사업이라는 게 말이야. 더 좋은 조건이 있다면 당연히 그걸 선택해야 하는 게 맞지 않겠소?

         

       농장 주인은 담담하게 여자에게 말했다.

         

       “당신이 말한 것보다도 좋은, 그것도 훨씬 좋은 조건의 투자가 들어왔단 말이야. 근데 내가 왜 당신을 선택해야 해? 나는 멍청이가 아니오.”

         

       “뭐? 아니, 얼마나 좋았길래…. 아니, 우리 쪽에 그 조건을 들이대면서 협상이라도 해 볼 수 있는 거 아냐?!”

         

       “뭐 그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니지만…. 그쪽에서 그러더군.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이 조건을 들고 반대편으로 갔다는, 이 기회가 그대로 날아가 버릴 거라고 말이야. 뭐, 그래서 어쩔 수 없었지. 솔직히 조건이 엄청 좋기도 했고…. 그리고 당신 쪽에서는 이 조건에 도저히 맞춰줄 수가 없을 것 같았거든.”

         

       여자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남자를 노려보았다.

         

       남자는 여자의 그 따가운 시선에 담긴 의미를 ‘의문’이라고 여긴 것일까.

         

       “자세하게는 말할 수는 없는데, 당신은 아마 그 조건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야. 왜냐하면 나에게는 엄청난 이득이지만…. 투자자는 수익이 거의 없는 수준이었거든. 아니, 거의 없는 수준이 아니라 손해에 가까웠지. 당신이 그 정도까지 해줄 수 있었겠소?”

         

       그는 자신이 맺은 계약에 대해서 아주 가볍게 설명해주었다.

       가볍게 말이다.

         

       “뭐?”

         

       “믿기 힘들겠지만 진짜요. 혹시 독소조항이라도 있나 살펴봤지만 그런 것도 없었고, 누구와 연결해달라는 청탁도 없었지. 그리고 뭐 청탁을 한다고 해도….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랑 알고 지내는 것도 아니니 참…. 이해할 수가 없었지.”

         

       이해할 수 없다가 아니다.

         

       이해할 수 없었다….

         

       과거형이었다.

         

       남자는 안쓰러운 눈으로 여자를 바라보고는,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당신, 누군가에게 원한 산 적 있소?”

         

       “…뭐?”

         

       “…투자자가 나에게 이득을 주기는 했지만, 하는 짓거리가 쪼잔하고 치졸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귀띔해주려고 하는 거요. 우리 농장에 투자한 작자가 말이야, 당신한테 원한이 좀 있는 것 같더라고. 당장 당신이 직접 여기에 계약 때문에 헛걸음하게 만든 것도, 그놈들이 계약 조건에 넣어서 어쩔 수 없이 부른 거요.”

         

       남자는 말했다.

       좋은 조건으로 투자를 해준 건 고맙지만, ‘사나이답지 않은’ 짓거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래서 그놈들이 한 음험한 짓거리를 당신에게 말해주는 거라고 말이다.

         

       그렇게 남자에게서 나온 것은 정말, ‘치졸하다’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 투자자라는 작자가 ‘대리인이 아니라 사장이 직접 오면 계약해주겠다.’라는 거짓말을 해서 헛걸음하게 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치졸하고, 상대방을 골탕 먹이겠다는 의도밖에 보이지 않는 짓이었다.

         

       명백한 악의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여성은, 어이가 없는지 두 눈을 깜빡거렸다.

         

       하지만 남자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말이야. 투자의 또 다른 조건이었던 농장 일부를 판매하는 것도 말이지. 귀신같이 당신과 겹치는 부분을 말하더군. 뭐, 솔직히 아무리 대단한 투자라고 해도 땅을 파는 건 좀 그렇긴 했는데….”

         

       그게 도저히 거부할 수가 있는 금액이었어야지.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냥 프리미엄을 붙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몇 배를 부르는데 그걸 어떻게 안 파나? 거기에 어마어마한 투자를. 심지어 밑지면서까지 엄청난 금액을 투자해주겠다는데…. 안 파는 게 멍청이였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안쓰러움과 고마움을 담은 눈빛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뭐, 그래서…. 그렇게 되었단 이야기지. 뭐, 그 치졸한 놈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해주는 것이기도 하고, 여기까지 헛걸음 시킨 게 미안해서 그런 거기도 하고, 그리고…. 흠. 당신 덕분에 내 아들이 명문대에 기부입학으로 들어갈 수 있는 돈을 쥐게 된 게 고맙기도 해서 주는 정보니까, 그냥 뭐. 그렇게 알고 가면 되겠소.”

         

       남자는 이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곤 카운터 아래에 숨겨두었던 술병을 꺼내서 그대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얼른 가게 밖으로 나가라는 듯한 손짓이 이어졌고….

         

       빠득.

         

       …당연하게도, 여자는 이를 갈았다.

         

       이렇게 골탕을 먹은 것도 열받고, 눈앞에 있는 저놈도 열받는다.

       모든 게 화가 난다.

         

       화를 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여자는 나무들에게 이곳을 난장판으로 만들라며 빼액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카페의 입구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동양인 한 쌍을 우연히 보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젊은 주술사와 비슷한 외모의 남자를 보자 눈이 커졌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주술사와는 조금 생김새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는 철렁 내려앉았던 마음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지만….

         

       “후우….”

         

       그렇게 다시 돌아왔을 때.

       당장 터져버릴 것만 같았던 분노는, 그래도 통제가 가능한 수준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오늘 일, 잊지 않을 거예요. 각오해두세요.”

         

       “그래그래, 알겠소. 누가 마녀 아니랄까 봐 마녀처럼 말하는군. 더 볼 일 없으니까 나가줬으면 하는데.”

         

       그렇게 여자는 남자의 푸대접을 뒤로 하고, 나무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콰앙!

         

       때려 부술 듯 문을 세차게 닫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여자는 사라지고, 카페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정적이 된 카페에는 이윽고 빈자리를 채우겠다는 듯 여러 소리가 퍼졌다.

       농장 주인이 꼴깍거리며 술을 마시는 소리, 비어버린 술병이 타악-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로 된 카운터 위에 내려앉는 소리, 그리고 숨을 죽이고 있던 손님들이 숨을 쉬는 소리….

         

       그리고.

         

       “이야. 무슨 마녀가 찾아오냐?”

         

       “난 무슨 영화라도 찍는 줄 알았어. 부두술로 걸어 다니게 된 나무, 벌목꾼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찾아온다…. 뭐 이런 거?”

         

       “캬, 난 이게 뭔 일인가 했네!”

         

       눌렸던 것이 풀려나듯, 폭발적으로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손님들의 말소리도 말이다.

         

       손님들은 억눌린 만큼 떠들어야겠다는 듯, 활발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Wow, 미녀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흠, 말이나 걸어볼까 했는데….”

         

       “마녀 중에 귀찮은 여자 많은 거 몰라? 결혼까지 갈 거라면 모르겠는데, 헤어지면 감당이 안 될걸?”

         

       “오, 결혼이라니. 끔찍한 소리. 이탈리아인의 피가 흐르는 나에게 그런 끔찍한 단어를 말하지 말아 주겠어?”

         

       “…너 이탈리아 가본 적도 없잖아. 그리고 흐르는 피라고 해봐야 쿼터 아니야?”

         

       “쿼터면 이탈리아인이라고 말하기 충분하잖아?”

         

       “개소리는. 넌 미국인이야, 그냥 미국인.”

         

       여자를 꾀기 위해 찾아온 것이 분명해 보이는 젊은 남성들로 이루어진 테이블에서는 조금 전 나간 마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흐음. 걸어 다니는 나무라. 저것도 무슨 소환수인 줄 알았는데….”

         

       “저런 나무 정원에 한 그루쯤 있으면 좋을 것 같지 않아요?”

         

       “그래. 한 그루쯤…. 아니, 여러 그루 있어도 멋있을 것 같은데…. 혹시 판매는 안 하나…?”

         

       딱 봐도 부유해 보이는 어떤 부부는 여자가 끌고 다니던 걸어 다니는 나무를 탐내기도 하였고.

         

       “투자라…. 내년에는 좀 더 거대한 스케일의 이벤트를 기대해봐도 되려나?”

         

       “많은 투자를 받았다고 했으니까…. 가수를 불러서 공연을 할 수도 있겠는데.”

         

       어떤 이들은 투자로 인해 바뀔 농장의 모습을 기대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

         

       리세는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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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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