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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8

   남자가 자신의 주변에 드리운 어둠을 이끌고서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에르기누스의 마법에 의해 걸린 제약을 찍어 누를 만큼 강대한 힘을 끌어 모아 내 입을 닫으려 하는 광경은 밤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 듯 경이로웠다.

   

   허나 밤은 그저 세상에 넓게 퍼져 있을 뿐 깊지도 짙지도 않았다. 나의 빛으로, 내가 직접 태양이 되어 밤을 새벽녘으로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아하핳!♡ 주인을 닮아서 허접한 어둠이네!♡”

   

   이렇게 어둠이 걷힌다 한들 여전히 남자를 상대하는 일은 버겁다.

   

   자신의 권능이 없다 한들 눈앞에 서 있는 존재는 분명한 신격.

   

   한낱 인간 따위가 상처 입히기란 쉽지 않다.

   

   허나 저의 공격을 막는 것이라면,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콰아앙!

   

   남자가 있는 힘껏 내지른 주먹은 무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리 대단찮은 공격이다. 그

   

   렇지만 신격이 지닌 압도적인 힘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방패에 직선적으로 내리꽂힌 충격이 닳고 닳은 몸을 진동시킨다.

   

   “헤에♡ 겨우 이 정도?♡”

   

   뼈를 타고서 전해지는 충격을 견뎌내며 입술을 끌어올린다.

   

   그러자 눈이 돌아간 남자가 재차 공격을 하려 하지만 그것보다 내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세 명의 검사가 칼을 뻗는 것이 빨랐다.

   

   저 무기에 깃들어 있는 것은 내가 부여한 주신의 신성! 힘을 사용하는 데 제약이 존재하는 남자 입장에선 마냥 무시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다.

   

   “쯧!”

   

   그림자에 숨어드는 것으로 공세를 피한 남자는 내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내려 했지만 이는 예측한 범주 내였다.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페이비의 신성마법이 내 그림자를 향해 쏘아진다.

   

   “이해할 수 없군. 어찌 네 년 따위가 내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거냐.”

   “당연한 걸 왜 물어봐?♡ 지능이 짐승 수준이라서 그렇지. 병신아♡”

   

   으음. 역시 평범한 도발에는 어느 정도 면역이 있어. 자신의 권능으로 상태이상에 저항하는 거려나.

   

   약점을 알기 전이었다면 상당히 껄끄러웠겠네. 약점을 알기 전이었다면 말이야.

   

   “왜 다른 애들이랑 놀아요? 저희랑 놀아요. 저희와 함께해요.”

   “젠장.”

   

   날 가만 바라보던 남자의 시선이 다급하게 옆으로 돌아간다.

   

   요정여왕이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그에게로 달려드는 게 보인다. 다섯의 팔과 세 개의 날개를 지닌 요정들의 손에는 하나 씩 가시가 들려 있었는데 덧없어 보이는 가시는 사실 위협적인 물건인지 저를 눈에 담은 남자의 미간은 잔뜩 찌푸려졌다.

   

   <요정의 창이라니!>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요.’

   <그렇겠지! 저는 요정과 함께 사라진 무기니까!>

   

   요정은 자연의 사랑을 받으며 자연과 함께하고 자연을 더욱 융성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존재다.

   

   바꾸어 말하자면 요정의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자연의 미움을 받는 것이나 다름없단 이야기.

   

   <저 창은 미움의 증거다! 결코 저기에 찔려선 안 된다!>

   

   저들이 든 가시는 요정의 분노이며 증오이며 원망이다.

   

   자신의 존재를 내걸고서 적을 배제하기 위해 꺼내드는 무기는 신격에게도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요정은 개념적인 존재니까.

   

   …

   

   음?

   

   ‘저 녀석들이 가시를 꺼내들었단 건 요정에 가까워졌단 소리네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요정은 개념적인 존재다. 저들이 어둠의 권능에 휩싸여 타락해있던 상태라면 요정만의 무기는 꺼내 들 수 없다.

   

   허나 지금 저들은 요정의 가시를 꺼내들었다.

   

   요정의 무기를 치켜 들었다.

   

   에르기누스가 어둠의 권능을 집어 삼킴에 따라 저들이 다시금 요정에 가까워 진 것이다.

   

   “거기 벌레들♡”

   

   무거운 방패를 내던지고, 횃불처럼 세상을 밝히던 메이스를 작게 만들어 목걸이에 걸고, 어깨에 자리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가볍디 가벼운 발걸음만을 가지고서 앞에 선다.

   

   내가 무얼 하려는 지 눈치를 챈 듯 나를 따라 온 조이가 내 입 앞에 자그마한 마법진을 그린다.

   

   이거 예전에 리나의 숲에서 봤던 마법이네. 분명 확성의 역할을 하는 마법이었지.

   

   잘했단 의미에서 히죽 웃어주자 조이가 조심스레 웃음을 지으며 뒤로 물러섰다.

   

   “놀아줄게♡”

   

   조이의 마법을 타고 내 목소리가 비틀린 숲에 퍼져나간다.

   

   “특별히 내 춤에 어울릴 기회를 줄 테니♡”

   

   본래라면 요정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일 리 없다.

   

   저들의 주인은 요정여왕.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선한 요정들의 기원.

   

   그녀가 바로 옆에 있는데 나 같은 꼬맹이의 말에 어울려 줄 리가 있나.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순수를 잃은 요정여왕은 이제 저들의 기원이 아니다.

   

   그녀보다도 더 요정들의 사랑을 받는 존재가 나타난다면 저들은 너무나도 간단히 시선을 빼앗길 것이다.

   

   “나랑 같이 저 병신을 놀리자♡”

   

   지금처럼.

   

   “분명 재밌을 거야♡”

   

   톡.

   

   검게 물든 대지위에 신성을 담아 발을 내딛는다.

   

   나를 사지로 내몰았으니 책임을 지란 말로 주신을 독촉하며 두 팔을 펼친다.

   

   그러자 내가 발을 내딛은 장소마다 신성이 퍼져나가며 대지가 본래의 색으로 돌아온다.

   

   어둠에 오염되기 이전의 빛으로.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나대다 쭈굴이가 된 병신은 놀릴 거리가 너무 많은 걸~♡”

   

   톡.

   

   흙빛을 찾은 대지에 다시금 발을 내딛자 내가 춤을 춘 곳을 중심으로 초록이 퍼져 나간다.

   

   내가 한 일이 아님을 알기에 슬그머니 고갤 돌리면 더할 나위 없이 깊은 신뢰를 담은 페이비의 눈동자가 보인다.

   

   사도가 가는 길에 기적이 있으리라 믿는 신앙의 눈.

   

   살짝 부담스러운 눈빛에 웃음으로 답해주고 다시금 춤을 춘다.

   

   꽃의 위에서 꽃과 함께 노닌다.

   

   자.

   

   이리로 와.

   

   함께 춤을 추자.

   

   모두 함께 놀자.

   

   길고 긴 시간이 지나 찾아온 봄이잖아?

   

   – 어떤 장난을 치는 거야?

   

   춤을 추는 나의 옆에 한 요정이 날아들었다.

   

   하나의 손가락만이 있는 네 개의 팔로 가시를 든 모습은 벌레라 불러 마땅했지만 기이하게도 난 검게 물들어 보이지 않을 요정의 얼굴에서 순수한 미소를 엿봤다.

   

   “저 병신의 실패담을 잔뜩 들려줄 거야♡ 부들거리면서 버럭대는 거♡ 재밌을 것 같지 않아?♡”

   – …재밌을 거 같아.

   – 치사해! 혼자 재밌는 거 하려고 하고!

   – 나도 같이 놀 거야!

   – 나도!

   – 나도!

   “푸하핳♡ 벌레들끼리 싸우지 마♡ 먼지만도 못한 너희들이 아무리 뭉쳐봐야 무대를 채울 순 없으니까♡”

   

   톡. 꽃들 사이에 무대를 만들어낸다.

   

   요정의 숲에 수백년간 자리한 검정의 무대가 아니다. 하양의 무대다. 빛의 무대다. 태양의 무대다.

   

   “내버려 둘 성 싶나!”

   “응. 그래야 할 걸?”

   “최소한 우리는 떨치고 가도록.”

   “아가씨께는 보낼 수 없습니다!”

   

   세 검사의 검이 남자를 가로 막는다. 그를 본 남자가 이를 악물고서 어둠으로 스며들어가려하지만 그보다 조이가 어둠을 가로 막는 게 빠르다.

   

   조이. 마법이 잘못될까 무섭다더니 결국 해버렸네.

   

   – 그래서 무슨 이야기 해 줄 거야?

   – 어떻게 놀릴 거야?

   – 들려줘.

   – 새의 노래보다 더 아름다운 네 목소리로 말해줘.

   

   “있잖아♡ 저 병신은 개허접 주신이랑 비슷할 정도로 오래 산 영감탱이거든♡”

   

   비슷할 정도라는 말은 겸손일 것이다. 어둠의 악신은 주신과 같은 세월을 살아왔다.

   

   빛이 있는 곳에는 어둠이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기에. 주신이 세상에 따스함을 베풀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어둠의 악신은 그림자 아래에 자리하고 있었다.

   

   “근데 왜 쟤가 다른 찌질이의 부하 노릇을 하게 된 건지 알아?♡”

   

   그러니 모든 게 세상의 흐름에 따라 흘러갔다면 주신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어둠의 악신이여야 했다.

   

   허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악신의 중심이 된 것은 아그라. 여자애를 괴롭히고 싶어 안달난 변태 새끼다.

   

   지금 내 앞에서 발광하고 있는 병신이 아니라.

   

   “쳐발렸거든♡”

   

   어둠의 악신은 아그라에게 패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계속♡”

   

   권위를 빼앗기고.

   

   권능을 빼앗기고.

   

   신앙을 빼앗겨가면서도.

   

   계속해서 달려들었지만 어둠의 악신에게 남은 것은 패배라는 단어뿐.

   

   “푸하핳♡ 너무 멍청하지 않아?♡ 자기 자존심만 조금 포기했어도 이딴 꼴이 되진 않았을 텐데♡”

   

   그렇게 어둠의 악신은 아그라의 권속이 되고 말았다.

   

   “정말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려나?♡”

   “닥쳐.”

   “어느 순간 찌질이한테 얻어맞는 게 너~무 좋아서 참을 수 없게 된 건 아닐까?♡”

   “닥쳐!”

   “사실은 찌질이의 멍멍이가 되고 싶었던 걸 수도 있고♡”

   “닥치란 말이다! 이 빌어먹을 꼬맹아아아!”

   

   별빛 하나 보이지 않는 밤이 되어버린 남자가 세 명의 검사를 떨쳐낸 채 내게로 달려든다.

   

   “푸하핳♡ 봐!♡ 멍멍이가 왈왈대면서 달려들잖아♡ 완전 재밌지?♡”

   

   톡.

   

   멍청한 악신아.

   

   뭔가 잊고 있지 않아?

   

   – 푸핳!

   – 키힣. 완전 한심하네!

   – 생긴 건 별로지만 반응은 재밌어!

   – 놀자!

   – 같이 놀자!

   – 장난감을 가지고 놀자!

   

   여긴 아직 요정의 꿈속이라고.

   

   – 멍청해!

   – 약해!

   – 멍멍이!

   – 한심해!

   

   네가 아무리 발광해봐야 요정의 장난감이 되어버릴 뿐이야.

   

   “시끄럽다! 버러지 놈들!”

   – 질 때 기분이 어땠어?

   – 슬펐어?

   – 사실 즐거웠지?

   – 질 줄 알면서 달려든 거지?

   – 이런 사람을 뭐라고 하더라?

   “마조 변태♡”

   – 마조!

   – 마조구나!

   

   요정의 숲 이곳저곳에서 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를 흉내내는 요정들의 목소리가 남자를 향해 쏘아진다.

   

   어른을 업신여기는 메스가키의 비웃음이 숲을 가득 채운다.

   

   “닥쳐라!”

   – 시이잃어!

   – 내가 왜?

   – 막아봐!

   – 못하지?

   “닥치란 말이다!”

   – 숨기고 싶었던 게 밝혀져서 부끄러운가봐.

   – 순수하네!

   “내 과거를 제멋대로 재단하지마라! 버러지들 주제에! 주제를 알고 닥치란 말이다!”

   “키하핳♡ 닥치라는 말밖에 못하는 거야?♡ 앵무새가 따로 없네♡”

   

   남자의 눈이 닿는다. 검은색 해일이 넘실거리는 눈동자가 나를 담으려 한다.

   

   “아니♡ 아니다♡ 이건 앵무새한테 실례네♡ 걔네는 너랑 달리 목소리는 예쁘니까♡”

   

   남자의 목소리가 멈춘다.

   

   그의 움직임이 멎는다.

   

   그걸 본 몇몇 요정들이 자신의 창을 가지고서 달려들지만 남자는 반응하지 않는다.

   

   그런 자잘한 것에 반응할 가치가 없단 듯이.

   

   “왜?♡ 범하게?♡ 해보든가♡ 너 같은 찐따병신한테 그럴 용기가 있다면 말야♡”

   

   자신의 존재를 담아 공격하고 흩어져가는 요정들의 사이에서 남자가 입을 여는 게 보인다.

   

   그의 목소리는 입 바깥으로 나오자 맞아 어둠으로 스며들어갔다.

   

   어둠은 자신이 주인이 꺼낸 명령에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어둠이 모여든다.

   

   밤이 되어버린 남자를 중심으로 몰려든다.

   

   빛 하나 허락하지 않을 어둠을 완성하기 위해 서로를 붙잡는다.

   

   대지에 자리한 어둠도.

   

   나무에 달라붙었던 어둠도.

   

   요정에게 스며들었던 어둠도.

   

   하늘을 가리던 어둠도.

   

   다시 하나가 되어 본래로 돌아가고자 한다.

   

   “영애님!”

   “돼지마냥 빼액대지 않아도 알아. 허접성녀.”

   

   어둠이 태초의 모습을 갖추려하는 이 순간이야말로 우리의, 에르기누스의, 나의 계획의 종점.

   

   품 안에서 유리병을 꺼내 부순다.

   

   주신과 악신이 맞붙은 자리에 남은 흙. 모든 걸 포용하는 바다와 같은 성물. 그 힘을 빌려 하늘에 기도를 올린다.

   

   정화의 기적이 버려졌어야 할 이들에게도 닿게 하기 위하여.

   

   “다시 춤을 추자.”

   

   어둠이 끝나고.

   

   “봄날의 꽃에 기대어서.”

   

   봄의 푸르름이 다시금 숲에 닿으니.

   

   “그 때처럼 웃음을 흘리자.”

   

   모든 걸 잃은 요정에게도 구원이 찾아오리라.

   

   “뭐하고 있어. 빨리 일 해. 개허접 주신.”

   

   기적을 펼칠 시간이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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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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