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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8

        

         

       리세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좋은 공기를 부숴버린 여자가 떠나간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저 여자와 자신이 정한 여행 코스가 겹친다는 사실에 약간의 불쾌감을 느꼈고, 겹치는 건 둘째치고 등장할 때마다 분위기를 박살을 내버리는 것에 불만을 품었으며, 동시에 자신이 운이 없다는 사실에 약간의 우울한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진정했다.

         

       뭐 어쩌겠는가.

         

       천재지변은 두 번 연속 찾아올 수도 있는 법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납득을 한다고 할지라도 한 번 가라앉은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고 하는 말이 있던가.

       그렇다면 반대로, 끝이 망쳐지면 모든 일이 망쳐지는 것과 다른 것이 없으니….

         

       리세는 약간의 우울감을 안았다.

         

       카페에서 나가고.

       농장에서 나가고.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는 그 순간까지 말이다.

         

         

         

        * * *

         

         

         

       대마녀에게 너무 신경이 쏠려있기 때문일까?

         

       리세는 옆에 있던 진성의 기색을 눈치채지 못했다.

         

       카페에서 대마녀의 행동을 본 진성은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 무언가는 무엇일까.

         

       데자뷔를 보았을 때 느끼는 묘한 기분 같은 것?

       기억의 끝자락에서 아른아른하는 환상과도 같은 것?

       물이 끓을 때 하늘로 올랐다가 허공에 사라져버릴 수증기와 같은 것?

         

       진성은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것이 분명하면서도, 뭔가 중히 여기지 않았던 무언가를 떠올리려 노력하였다.

         

       그렇기에 그는 대마녀와 싸웠던 농장 주인을 보았고, 카페에서 나온 후 농장을 유심히 살펴보았고, 차가 이동하는 길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했음에도 그는 기억 속에서 무언가를 떠올리지는 못하였다.

         

       ‘흐음. 주술과 관련된 것은 분명히 아닌데.’

         

       주술과 관련된 것을 잊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그의 기억 속에서 아른아른하는 그것은.

       잠깐 피어올랐다가 사라지며 떠오를락 말락 하는 그것은 주술과 관련이 되지 않고, 용병 생활과 관련된 것도 아니고, 그와 친분을 가진 이들과도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소위 말하는 그리 중요하지도 않고, 떠올려봐야 별 의미도 없는 기억임이 분명하거늘.

         

       어찌하여 이렇게 주위를 맴도는가.

         

       어찌하여 제 원한을 털어놓기 위하여 기를 쓰는 귀신의 속삭임처럼, 끊임없이 맴돌고 맴돌며 자신의 존재감을 이리도 드러내는가.

         

       진성은 그것을 알아내기 위하여 호텔로 돌아가자마자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가만히 눈을 감고, 정신을 마음속 깊숙한 곳으로 내려보내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늪지대에 빠지는 것과 같은 것이라.

         

       가만히 있어도 아래로 내려가고, 발버둥 치면 더 빨리 내려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검게 변해버린 시야를 마음으로 삼았고, 마음을 휘저어 늪처럼 파문을 일으켰으며, 잠수를 하는 것처럼 그 아래로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파문이 일어나는 검은 공간은 흙먼지와 같이 파편화된 기억으로 뒤덮였고, 그는 그곳에서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정보를 찾아내었다.

         

       그 기억은 참으로 보잘것없는 것이면서도.

       그가 완전히 잊어버리기에는 가십거리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래. 이맘때였군.’

         

       그가 막 용병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요리 못하기로 소문난 놈이 그날의 식사 당번이었고, 그들은 이게 사람 먹으라고 만든 건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맛대가리 없는 병아리콩 수프를 살기 위해서 먹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식사 시간은 ‘사탄이 술을 마신 후에 창조해낸 토사물 수프’임이 틀림없는 빌어먹을 음식에 대해서 불평불만이 가득했고, 어떤 곳에서는 밤중에 이 빌어먹을 수프를 만들어낸 놈을 단체로 찾아가서 뒤지게 패면 요리의 맛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토론을 진지하게 나누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공간에서, 다른 주제의 이야기가 들려왔었다.

       미국에서 유적 하나가 발견되었다는 말이었다.

         

       유적.

         

       대부분은 그냥 고리타분한 고고학자나 인류학자, 역사학자 같은 작자들이나 열광하는 선에서 끝나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주물이나 보물 같은 것이 발견되며 어마어마한 잭-팟을 터뜨리는 보물상자!

         

       당연하게도 진성은 그 유적에 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진성이 용병이 된 이유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주술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당연히 주물과 주술이 튀어나오는 마법의 공간인 유적에 대해서 들었는데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겠지.

         

       그렇게 진성은 홀린 듯 유적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에게 다가갔고, 유적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들었다.

         

       트레저헌터라고 자칭한 중국인이 농장 일부를 사들였고, 거기서 유적을 발굴했다고 한다.

       그 중국인들이 말하기를 ‘그곳은 봉인이라도 한 것처럼 콘크리트로 밀봉이 되어 있었다. 한때 문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을 뚫자 넓은 공간이 나타났고, 벽면에는 알 수 없는 언어가 빼곡하게 적혀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 언어 중에는 영어와 한자가 있었는데, 이는 중화의 영향력이 이곳까지 닿았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다.’라며 발표했다고 한다.

         

       물론 그 중국인의 발표는 용병들에게는, 그리고 진성에게도 큰 의미는 없었다.

       영향력이니 뭐니 그런 것보다는, 그 내용물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것이었으니까.

         

       이 소문을 듣고 온 용병은 진성과 다른 용병의 재촉 섞인 시선을 받았고, 약간의 뜸을 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 그 중국인들이 한자를 해석해본 결과, ‘지니고 다니는 것만으로 많은 이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을 수 있으며, 내용물을 읊는 것만으로 수많은 이들을 사로잡고 자기 친구로 만들 수 있는 귀물’이라고 하더라. 』

         

       가지고 다니는 것만으로 부러움과 존경을 받는다.

       내용물을 읊는 것만으로 수많은 이들을 친구로 만든다?

         

       무슨 신화에서나 나올법한 물건을 묘사한 것 같았다.

         

       『 무슨 최면술이라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인가? 여자 만나기엔 좋겠네. 』

         

       『 어허, 최면이란 말 듣자마자 여자 생각이라니. 저질스럽기는. 나 같으면 부하들 잔뜩 만들어서 세계 정복하겠다. 』

         

       『 세계 정복 좋지. 그러면 세계의 여자는 다 내 것이겠네. 』

         

       당연하게도 그 묘사를 들은 용병들은 그 놀라운 물건에 대해서 탐을 냈고, 동시에 그딴 게 세상에 존재할 리가 없다며 피식 웃었다. 그리곤 역시 동양인, 그중에서도 중국 놈들은 허풍 심한 건 알아줘야 한다면서 비웃었다가, 진성 역시 동양인이라는 사실을 늦게나마 떠올리고는 ‘한국인은 제외. 아, 일본인이던가? 아무튼 중국인만 허풍이 심해.’라는 말을 뒤늦게 붙이기도 했다.

         

       그때 진성은 그 물건이 혹시 정신과 관련된 주물이 아닐까 관심을 가졌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 유적에서 발견한 물건은-

         

       하.

         

       헛웃음을 터뜨리기 충분한 것이었다.

         

       『 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

         

       자본, 정치경제학 비판.

         

       세간에서는 ‘자본론’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서적이다.

         

       …그렇다.

         

       놀랍게도 농장에서 발견된 ‘유적’은 진짜 유적이 아니었다.

       그냥 저 서적을 보관하기 위해 공산주의자가 비밀리에 만들어두었던 시설이었다.

         

       벽면에 빼곡하게 적혀있던 ‘알 수 없는 글자’는 야매 트레저헌터였던 중국인들이 몰라봤을 뿐, 그냥 세계 각국의 언어였고…. 그들이 두근두근 부푼 기대감을 안고 들어가서 얻은 것은 고작 자본론 세 권, 그리고 손가락뼈로 추정되는 자그마한 뼛조각 하나였다.

         

       정말 기가 막히고 어이가 탈출해버리는.

       그런 촌극이었다….

         

       ‘나름의 가치가 있는 물건이기는 하였지…. 1권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친필 사인이, 2권과 3권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손도장이 찍혀 있었다고 하던가.’

         

       심지어 마르크스의 손도장은 공포 영화에 등장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백골만 남은 손바닥에 피를 묻혀서 찍은 손도장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책의 근처에 있던 손가락뼈는 마르크스의 뼛조각이었다고 한다.

         

       …웃기는 일이었다.

       무슨 붓다도 아니고.

       몸 곳곳이 해체되어서 세계 곳곳으로 퍼지고, 그걸 무슨 보물처럼 여기고….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며 고래고래 떠들고 다니던 놈들이 하는 짓거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우상숭배에 가까운 짓거리라니. 심지어 그 우상숭배의 대상이 마르크스라니.

         

       참…. 코미디가 아닌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진성은 이 기괴한 사건에 그냥 웃음을 터뜨리고, 그대로 이 기억을 어딘가에 처박아버렸더란다.

         

       그냥 살다 보면 별일을 다 본다고 하는 감상만을 남긴 채 말이다.

         

       ‘흐음. 그래, 이맘때쯤이었다 이거군….’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 사건에 오딜리아는 얽혀있지 아니하였을 터인데?’

         

       기이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이 웃기는 촌극에, 대마녀 오딜리아가 얽혀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고문을 했을 때 들은 정보로는-

         

       ‘흐음. 회사에 공격이 들어와서, 그것을 막느라 유럽에서 고군분투하였다고 하던가….’

         

       그래야만 했을 텐데….

         

       ‘이것 역시 미래가 바뀐 것인가, 아니면 본래의 비슷한 흐름인가?’

         

       과연 나비가 날갯짓하여 틀어진 것인가.

       보이지 않지만 지나왔던 길이었던 것인가.

         

       진성은 두 번이나 자신의 앞에 나타났던 오딜리아에 대해 흥미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마침 미국으로 온 것도 미래가 어찌 틀어지기 시작하는지 알기 위함이니. 이것 역시 길한 징조일 수도 있음이라.’

         

       진성은 그리 생각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은 새까맸고.

       하늘에는 인공위성의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인공위성에 의해 가려진 천체는 그에게 답을 내려주지 아니하였지만.

         

       ‘무엇이 바뀌었는지 알기 위해 발품을 파는 것도 중한 일이지만, 그리 발품을 팔다가 다른 풍경이 나왔으니 이를 확인하고 가는 것도 좋을 것이로다.’

         

         

         

         

        * * *

         

         

         

       그리하여 다음날.

       진성은 대마녀의 거처에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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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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