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69

   베네딕 알른이 내지른 검이 대지에서 피어오른 괴물의 위에 내리 꽂힌다.

   

   대지 아래에서 피어나는 생명과 대지 위에서 태어나는 생명이 합쳐져 이도 저도 아닌 무언가가 된 괴물은 자신의 덩치보다도 더 큰 대검을 앞에 두고서도 맹렬히 목소리를 드높였지만 그 외침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베네딕의 대검이 닿은 순간 괴물의 육신이 터져나갔으니까.

   

   “좀 깔끔하게 처리를 해주십시오. 가주님. 괴물의 살갗을 뒤집어쓰는 건 기분 좋은 일이 아닙니다.”

   

   베네딕의 옆을 지키다 괴물의 피와 살갗을 뒤집어 쓰게 된 포셀은 더럽혀진 머리를 쓸어 올리며 투덜거렸다.

   

   “미안하군. 마음이 급했어.”

   “아가씨가 걱정되십니까.”

   “그래.”

   

   루시가 친구들과 함께 결계 안으로 들어가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전투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세상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마물의 무리가 숲으로부터 흘러나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괴한 모습으로 뒤틀린 이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아홉의 날개를 지녔으며 다섯의 눈을 품었고 그러면서 하나의 다리로 세상을 밟았고 애초부터 없었던 팔로 허공을 끌어안았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저주 받은 존재였다. 어둠에 침식된 요정여왕으로부터 태어난 불완전한 이들이었다.

   

   베네딕과 기사들은 불행히도 생명을 얻어버린 이들을 애도하며 그들을 물리쳤다. 계획이 끝나는 그 순간을 기다리며 전선을 지켰다.

   

   허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결계는 무너지지 않았으며 숲으로부터 걸어 나오는 마물들은 점차 기괴함을 더했다.

   

   정오를 넘어 해가 서서히 땅으로 향하는 지금까지도.

   

   “예전에 최고 위험도의 던전이 나타났을 때가 떠오르네요.”

   

   지휘관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내지르는 외침이.

   

   괴물을 마주하며 느낀 공포를 억누르기 위해 드높이는 목소리들이.

   

   수많은 무구가 뒤틀린 것과 맞닿으며 나는 지독한 소리가.

   

   무겁게 내리 앉은 전장에 느슨한 여성의 목소리는 이질적이었다.

   

   “1왕비님.”

   “그 땐 정말 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답니다.”

   

   1왕비는 약간의 당혹이 서린 베네딕을 보고 웃으며 한 손으로 든 검을 흔들었다.

   

   “당신이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했을까요.”

   “저는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예. 그렇죠. 보물을 찾아 수도에 찾아 온 용을 쓰러트렸을 때도. 갑작스런 전쟁 속에서 전선을 지켰을 때도. 당신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이루어 낸 수많은 위업에도 불구하고 베네딕 알른은 보답을 바라지 않았다.

   

   할 수 있기에 했을 뿐이라 말하며 상쾌한 웃음을 짓고는 다시 영지로 돌아갔다.

   

   “참 곤란했었답니다. 다른 귀족들은 영웅을 무시하는 거냐며 난리치고 저는 저대로 당신을 보상으로 묶을 수 없어서 전전긍긍하고.”

   “…그건 실로 죄송합니다만 그 이야기는 어째서.”

   “드디어 당신한테 빚을 지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예?”

   “아니에요. 알른 백. 지금 당신이 봐야 하는 건 제가 아니라 앞입니다.”

   

   왕비가 웃으며 말을 한 순간 베네딕의 뒤편에서 거대한 기운이 끌어 오른다.

   

   여태까지 요정의 숲을 지배하던 악신의 기운과는 전혀 다른. 하늘에 떠오른 태양보다도 더 따스하고 포근한 기운이.

   

   “주신의 신성.”

   

   과거 지하에서 떠오른 태양을 본 적 있던 베네딕은 무너져가는 결계 속에서 피어나는 태양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갈라졌던 대지에 양분이 깃든다. 말라서 비틀어졌던 나무들이 생명을 되찾는다.

   

   숲이 본래의 초록을 얻는다. 요정의 숲에서 다시금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어둠으로 물들어 다시 돌아올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숲이. 세상에서 지워지는 것만이 유일한 해답이라 여겨졌던 지옥에. 과거의 행복이 깃든다.

   

   “자아. 자신의 기사단을 이끌고 출진하세요. 알른 백.”

   

   영원토록 끝나지 않을 듯한 봄의 정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베네딕은 1왕비의 목소리를 듣고서 정신을 차렸다.

   

   “빛이 강렬할수록 어둠 또한 짙어지는 법이죠. 이 세상은 균형에 민감하니까요.”

   “무슨 말씀을.”

   “당신의 귀여운 딸이 위험해질 거란 소리랍니다. 잘 보세요. 알른 백. 당신이라면 기적의 너머에 새겨진 그늘이 보이잖아요?”

   

   숲이 다시금 초록을 되찾았다는 건 바꾸어 말해 어둠의 악신이 저기에 서려있던 어둠을 취했다는 것.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신격은 기적의 아래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 전선은 왕국의 2, 3기사단과 협력해 유지할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런 일이 생길까봐 미리 2왕비님과 협의를 해뒀거든요.”

   

   처음 뵈었을 때부터 1왕비님은 그 속은 알 수 없는 분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이 분께서 어찌 나를 배려하는 건지 추측하긴 어렵다.

   

   다만 한 가지. 이 일이 어떤 대가를 감내하고서라도 해야 하는 일이란 것만큼은 확실하다.

   

   “1왕비의 명입니다. 알른 백. 승전보를 가지고 와주세요.”

   “알른 가문의 베네딕. 왕국의 영광을 드높이고 돌아오겠습니다. 포셀!”

   “기사다아아안! 집결하라아아아!”

   

   길고 긴 세월 동안 변경에 머무르던 알른의 기사단이 다시금 출진한다.

   

   목표는 하나.

   

   신화를 무너트리고 자신의 주인이 될 자의 웃음을 지키기 위해.

   

   *

   

   대마법사 에르기누스는 요정의 숲 한 가운데에서 피어오른 태양을 닮은 꽃을 보며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파트란 공작.”

   “예.”

   “뒤는 부탁하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위대한 대마법사시여. 당신의 지혜를 헛되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대신.”

   “걱정마라. 조이 파트란은 그대의 귀한 자식이기도 하지만 내 귀한 제자이기도 하니.”

   

   나의 뒤를 이어 이 세상을 나아가게 할 천재를 잃을 생각은 추어도 없다.

   

   그리 이야기하고서 자신의 마력을 짜낸 에르기누스가 지팡이 끝으로 대지를 내리 찍은 순간 그의 형체가 사라진다.

   

   머나먼 과거의 영웅이 남기고 간 존재는 자신의 의의를 다하기 위해 요정의 숲으로 향한다.

   

   수백년이라는 세월을 넘어 한 마디의 말을 전하기 위하여.

   

   *

   

   “요정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군.”

   

   신화의 시대를 기억하는 늑대 뮤러는 봄의 따스함을 품은 바람을 타고 울려퍼지는 웃음을 듣고서 호쾌한 웃음을 흘리다 늑대의 형태를 취했다.

   

   “수백년 전의 빚을 청산할 때가 왔다.”

   “그렇게 아름답다는 요정여왕을 볼 때가 왔네요!”

   

   가장 날카로운 송곳니를 지닌 늑대와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연기를 품은 여우가 빛의 한 가운데를 향해 대지를 박찬다.

   

   *

   

   “날 구원해준 빛인가.”

   

   세상을 재로 바꿀 불에게 붙잡혀 수십년을 불태워진 여인이 두 손을 끌어 모은다.

   

   “위대한 주신이시여.”

   

   흐트러짐 하나 없는 신앙을 품은 자들이 기적의 정경에 기도를 올린다.

   

   “터무니 없는 일에 엮였네.”

   

   언젠가는 세계마저도 베어버릴 검사가 헛웃음과 함께 숲의 중심을 향해 내달리고.

   

   “그래서 즐겁지 않습니까!? 기적의 아름다움에 손을 더할 수 있게 되었으니!”

   

   여신의 사도가 광소와 함께 그 뒤를 따른다.

   

   전장에 서 있던 모든 이들이 세상에 자리한 기적을 본다.

   

   세상의 흐름과 관계될 만큼 거대한 힘을 지닌 이들이 신화의 재현에 관심을 기울인다.

   

   누군가는 환희하고.

   

   누군가는 감격하고.

   

   누군가는 탄성을 지르고.

   

   누군가는 미간을 찌푸리고.

   

   누군가는 머리를 쥐어싸매고.

   

   누군가는 씁쓸한 미소를 짓고.

   

   그리고 또.

   

   수백 년이 지나 광증에서 풀려난 한 여자는.

   

   자신의 사랑이 남기고 간 꿈 속에서 꿈이란 것을 알면서도 그를 기다리며 길고 긴 세월을 인고했으며, 어느 순간 체념해버렸다가, 자그마한 여자아이에게 구원을 받은 요정은.

   

   드디어 꿈에서 깨어난 여왕은.

   

   꽃밭에서 요정들과 함께 춤을 추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여자아이의 곁을 지키던 기사가.

   

   세상 그 무엇보다도 여자아이를 소중히 여기는 검을 든 여자아이가.

   

   십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야 저주에서 풀려나고 있는 남자아이가.

   

   여왕이 사랑하는 이에게서 마법을 배운 여자아이가.

   

   위대한 주신의 애정을 받는 여자아이가.

   

   춤을 추는 여자아이를 지키기 위해 여왕의 앞을 가로 막는다.

   

   저들이 공포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두려움을 잊은 것이 아니다.

   

   생명을 내다버리려 하는 것 또한 아니다.

   

   그저 저들은 그 모든 망설임을 뛰어넘을 각오를 했을 뿐이다.

   

   머나먼 과거 요정의 숲을 찾았던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꿈 속에서 수도 없이 보았던 광경을 겹쳐보고서 가벼운 웃음을 흘린 요정여왕은 자세를 다잡고 대뜸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사과를 전했다. 체념하고 어둠에 모든 걸 맡긴 자신이 했던 일을 사죄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감사를 전했다. 수백년이란 세월 동안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를 다시금 만날 수 있게 해준 이들에게 진심 어린 고마움을 드러냈다.

   

   그 두 마음을 듣고서도 여자아이를 지키려 하는 이들의 경계는 풀리지 않았지만 여왕은 그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지금의 저에겐 작은 영웅 분의 곁에서 춤을 출 자격 따윈 없으니.”

   

   계속 저 옆을 지켜달란 말을 남긴 여왕은 훌쩍 몸을 틀어서 빛의 반대편을 바라봤다. 기적의 아래에 드리운 그림자를 마주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 오랜만이군. 순수를 잃은 요정이여.”

   

   어둠의 안에서 번들거리는 붉은 색의 눈동자가 여왕을 담는다.

   

   “이제와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네 타락한 마음이 사랑을 놓아줄 수 있으리라 여기나?”

   “아뇨. 전혀요. 그 때로부터 수백년이란 시절이 지나버린 걸요. 그 날의 순수를 되찾을 순 없죠.”

   “그럼 움켜쥐어라. 마음에 충실해라. 쟁취해라.”

   “싫어요.”

   

   과거의 여왕이라면 결코 담지 않을 단호한 거절의 말과.

   

   “요정여왕이라도 요정은 요정이랍니다. 장난을 좋아하고 심술궂기도 하죠.”

   “그게 뭐 어쨌단 거지?”

   “놀리기 좋은 상대한테 쉬이 고갤 끄덕이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 패배자님.”

   

   장난스러운 웃음 앞에 어둠이 다시금 기세를 올린다.

   

   서서히 어둠을 가두어두던 제약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힘이 강대한 어둠 앞에 무너져간다.

   

   “한 번 어둠에 물들었던 자는 쉬이 어둠에 잠식되지. 순수를 되찾았다 생각해도 마음 한 켠에는 어둠이 자리하거든.”

   

   서서히 커져가는 어둠에 한 아이가 일으킨 기적이 밀려난다. 당연한 일이다. 신이란 것은 기적을 일으키는 존재이니까.

   

   “그 때엔 돌아오지 못 할 거다.”

   “들을 필요 없는 말이군.”

   

   대지의 맥을 타고서 나타난 남자의 검은 머리칼이 봄바람을 따라 휘날린다.

   

   “그 때 같은 건 찾아오지 않아.”

   

   그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얼굴은 분명.

   

   “절대로.”

   

   여왕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