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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9

    <569 – 너무 빠른 아이(4)>

     

    오크노디가 용사를 대신 죽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로 그렇잖아요?”

    “자세히 말해줘.”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을 기억하시죠?”

    “물론이지.”

    “교수님은 전성기에 많은 마인과 마족을 베었어요. 그래서 손수 죽인 마의 존재들이 품은 암흑마나가 조금씩 체내에 쌓이기 시작했죠.”

     

    ━━━

    [은퇴한 전직용사와 세계의 거악들]

    -화요일 목요일 4교시 16시~18시

    -교수 : 디스트로이어

    -모험학부, 전공

    ━━━

     

    작년 2학기에 들었던 디스트로이어 교수의 강의.

     

    이슈타르는 이를 기억하고 있었고, 오크노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깨달았다.

     

    “활동한계마력…”

    “맞아요. 용사는 성녀의 지원이 없으면 암흑마나를 정화하지 못하고, 체내의 암흑마나의 폭주를 잠재우기 위해 조금씩 마나할당량이 늘어나죠.”

    “그렇게 활동한계마나가 줄어들다 보면 신체의 변이를 각오하면서 단기접전으로 암흑마나의 오염을 각오하고 전투를 치르게 되고, 종래에는 너무 많은 암흑마나를 품어서 일상생활조차 힘겹거나 그마저도 불가능해지는 운명…”

     

    그렇다.

    모든 용사는 언젠가 암흑마나에 잠식되어 인간성을 상실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렇기에 용사란 대신 죽어주는 존재.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이 은퇴한 이유도 암흑마나 때문이었다.

    지금 아카데미로 돌아오지 못한 이유도 마찬가지로 암흑마나 때문이다.

     

    “황제는 암흑마나가 없었어.”

    “머 제가 말한 건 다른 사람이었지만요!”

    “너 설마 선황을…?”

     

    어색하게 휘파람을 부는 오크노디.

    하나마나한 딴청을 보고 깨달았다.

     

    “그런 거였구나? 이제야 알겠어.”

    “윽.”

    “네 목적은… 선황이 아니라 마왕이었어!”

    “에엣?”

    “암흑마나를 지녔으며 활동한계마력이 위협받아 용사가 사망을 각오해야 할 존재. 그런 존재는 역시 마왕밖에 없겠지!”

    “…마자용!”

    “아직도 뭔가 얼버무리는 기분이 들지만, 아무튼 네 말을 듣고 움직이지 않았으면 지금쯤 제국은 금서에 인격을 박탈당한 인형들이 즐비한 마경이 되었겠지. 도움이 된 건 부정할 수 없겠어.”

    “히히. 앞으로도 그런 일이 몇 가지 더 있어요!”

    “넌 그걸 다 어떻게 알아?”

    “엣, 엇, 그건…”

    “몰루.”

    “!”

    “또 그렇게 말할 거지?”

    “모, 몰?루…”

    “몰루여도 괜찮아.”

     

    왠지 모르게 무거웠던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이슈타르는 오크노디라는 존재를 조금은 이해한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재단밖에 없잖아. 정보를 얻었다면 재단에서 얻을 수밖에 없겠지.”

    “보통은 그렇긴 하죠?”

    “재단에 거역하고 싶었던 거지?”

    “네에?”

    “시치미 떼어도 소용없어. 내 성검은 진위판별을 구분할 수 있는 거 몰라?”

     

    오크노디의 작은 어깨가 움찔거렸다.

    모포가 손 모양으로 꼼지락거리는 것이 안에서 손을 꼬물꼬물하고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헤매는 모습이 저절로 상상되었다.

     

    “재단은 나쁘고 무서운 곳이야. 하지만 네가 벌여온 짓들은 착하고 친절했어. 용사가 용사의 행보를 이어가기에 충분할 정도로. 용사로서 부족한 것들을 깨우치고 더욱 강해지기에 충분할 정도로.”

     

    지금이라면 알 수 있다.

    이 아이는 자신의 적이 아니다.

     

    “너도 실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던 거야. 이를테면 용사 같은 존재에게.”

    “제가요?”

    “진실로도 거짓으로도 읽히지 못하는 대답이라… 스스로도 확신이 없는 걸까? 그럼 좋아. 이번엔 내가 알게 해줄 테니.”

     

    오크노디를 향해 비스듬히 누운 채로 똑바로 눈을 마주치는 이슈타르.

    그녀의 강한 시선 앞에 오크노디가 허둥지둥거리더니 모포를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

     

    잠시 후, 조심스럽게 모포를 눈높이까지 내리더니 이쪽을 힐끔 훔쳐보았다.

    이슈타르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작년 한 해, 자신이 그토록 넘어서겠다고 다짐했던 아이의 본모습은 이런 부끄럼 많은 아이였다니.

    저런 애를 무찔러?

    죽이겠다고 다짐해?

    이러니 용사실격이라고 인망이 떨어졌지.

    사직서 폭탄을 받아도 전부 인과응보다.

     

    “얼마든지 맡겨줘.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러니까 그렇게 눈치 보지 않아도 돼.”

     

    경계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모포에 눈을 반쯤 걸친 모습.

    이슈타르는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충분히 많은 사람을 잃었는걸. 기숙사에 와서까지 혼자가 되고 싶지는 않아.”

     

    용사답지 못한 어리광을 부렸음을 깨닫고 흠칫 놀란 그녀였지만, 그 말이 마음을 움직였는지 오크노디는 모포를 걷고 얼굴을 내밀며 물었다.

     

    “이슈타르, 친구가 적어졌어요?”

    “친구인지 부하인지 동료인진 모르겠지만, 믿을 사람이 줄어들긴 했네.”

    “그럼 제국에서 데려온 새 친구들도 몇 명 소개해줄까요?”

    “후훗. 그럼 좋겠네.”

     

    오크노디의 친구라.

    그건 또 뭐 하는 별종들일까.

    별난 상상에 얼굴 보기도 전부터 웃음이 지어졌다.

     

    “내일 무슨 강의 들어요?”

    “마법시계로 리스트 보내둘게.”

    “그럼 강의 시간에 만날 수 있게 해둘게요!”

     

    3학년 선배 친구라도 사귀었나?

    아니면 올해 입학하는 편입생이라던가.

    뭐, 오크노디가 고른 사람이라면 분명 괜찮겠지.

    조금 괴팍할 수는 있지만.

    티토소가처럼 아주 허접할지도 모르고.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즐거운 마음에 미소 지었다.

    도저히 못 이룰 것만 같던 잠도 어느덧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오크노디의 ‘친구’다.”

    “어중칠검?!”

    “‘친구’라고.”

     

    바로 다음 날, 1대1 진검승부를 걸어도 이길 자신이 없는 괴물과 마주치기 전까지는.

     

     

    * * *

     

     

    천령산맥 서부방면 전송소 지부에서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이사장이 나타났을 때, 히스클리프는 기겁하며 오크노디를 따라왔다.

    기프트 아카데미까지 갈 생각이야 없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발을 빼면 재단의 거악이 나타난 자리에 자신만 홀로 남을 것 아닌가.

     

    예정에 없던 초과근무하기 vs 삼대거악의 필두와 하수인들이 즐비한 곳에 혼자 남기.

     

    양심 없는 벨런스 대결에서 당연히 전자를 고른 히스클리프는 그렇게 아카데미까지 따라오게 됐다.

     

    “히스클리프 씨! 기프트 아카데미에서는 교관직이라도 하나 받아두지 않으면 외부인은 체류할 수 없으니 교관 신청이라도 하고 오세요!”

    “그냥 아카데미 전송소를 이용해서 제도로 복귀하면 되지 않냐?”

    “음~ 저라면 그러진 않을걸요? 전송소를 먹었으면 전송마법진에 간섭할 수 있는데, 타이밍만 맞으면 전송마법 신호를 납치해서 엉뚱한 곳으로 이용자를 데려올 수 있을걸요?”

    “뭣?!”

    “천령산맥의 공기가 마음에 들었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0.1%의 억까라도 걸렸다간 히스클리프를 저한테 보낸 매스각키가 슬퍼할 테니까 전송소 이용은 앞으로 참아주세요!”

     

    오크노디의 말에 따르면 재단은 제국의 혼란을 틈타서 이미 세계전역의 전송소에 간섭했다.

    천령산맥 지부에 간섭했다면 다른 지부에도 어디서든 재단이 전송소를 장악했을지 모른다.

    비공정을 이용한 이동이 아니면 앞으로 전송소를 이용하는 행위는 재단에게 목숨을 맡겨놓는 짓이다.

     

    “알겠다… 그럼 당분간은 교관신청을 해두지. 어느 강의가 좋을지 생각해둔 강의는 있나?”

    “음~ 이슈타르와 같은 강의로 해주세요! 여기 어젯밤에 이슈타르가 보낸 강의리스트가 있으니까요.”

    “용사의 강의를? 어째서 네 강의에 맞추지 않고? 한번 호위를 임의로 중지하려던 입장에서 할 소리는 아니지만 너 역시 안전한 처지는 아닐 텐데.”

    “저야 안 죽고 알아서 잘 다닐 수 있는데 이슈타르는 몰?루겠거든요. 혁명가와 황태자부터 날려버린 회차는 이번이 처음이라 용사가 억까에 너무 크게 노출되었어요. 원래라면 제국귀족과 선황이 혁명군과 양패구상해야 하는데 적이 너무 많이 남았어요!”

    “네 꿍꿍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길이 없군… 그래도 하나는 알았다. 용사를 싫어한 건 아니었어.”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호위까지 붙일 사람은 없지.

    오크노디가 방실방실 웃으며 긍정했다.

     

    “해피엔딩을 위해 대신 죽어줄 사람을 싫어할 플레이어가 어딨어요?”

    “…뭐?”

    “앗, 방금 이야기는 비밀이니까 어디 가서 말하시면 곤란해요?”

    “…”

     

    몹시 불순한 방향으로 마무리되었던 오크노디와의 대화였지만 히스클리프는 복잡한 사정, 어려운 이야기는 머릿속에서 모두 지웠다.

    호위란 지켜야 할 자의 안전만 염두 하면 된다.

    그의 판단에 지금 이슈타르가 가장 위험에 처한 강의는 인명사고가 나기 쉬운 고난이도 강의임과 동시에 그녀의 적이 많이 수강한 강의였다.

     

    ━━━

    [오경보 긴급사태의 대응 전략]

    -수요일 2교시 11시~13시

    -교수 : 로버트 엘라임

    -행정학부, 교양

    ━━━

     

    이 강의는 대단히 특수한 강의였다.

    우선, 매년 수강생이 5명 이하의 비인기강의다.

    사유는 지나친 난이도 및 사망자 발생 강의.

    꿀 빨려고 들어가는 행정학부 내에서 사망위험이 있는 강의를 듣는 학생은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도 이슈타르가 자신의 모험학부도 아닌 타 학부의 교양강의를 듣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렇게 날 노리고 싶다면 어디 따라와라.

     

    수강신청을 이용한 사실상의 선전포고!

    실수를 가장해 그녀를 죽이기 쉬운 자리를 깔았지만, 주목적은 그녀 또한 자신을 노리는 수강생들을 하나로 모아 한 번에 처리할 판을 만들었다.

    황제조차도 토벌한 용사답게 대담한 계획이지만 그렇기에 히스클리프는 이 강의의 교관직에 자원했다.

     

    ‘마갑이 활성화된 제국귀족가문의 후계자들의 전투력은 최전선 상급기사단의 정예 기사에 비견되지.’

     

    그런 놈들이 작정하고 이슈타르를 묻어버리려고 든다면 현장에서 그녀를 도울 사람이 한 명이라도 필요할지도 모른다.

     

    ‘내 판단이 옳았군.’

     

    행정학부 특별강의실로 향하자 삼대공신가문과 제국파의 입김이 닿은 교관들이 날카로운 기도를 감추지도 않은 채, 히스클리프를 일제히 노려봤다.

    이놈들은 무조건 사고 친다.

    그러기 위해 이 강의실에 교관직으로 배속받았다.

    이슈타르 외의 학생들 또한 홀로 벽에 등을 기댄 이슈타르를 노려보며 마갑을 활성화하고 무장을 정비하는 태도가 하나같이 살벌하기 그지없다.

    모두가 적은 아니다.

    악명을 듣지 못했는지, 수강신청을 실수했는지.

    우리 올해도 수강신청 잘못한 거 아니냐고 묻는 변방귀족들도 있었다.

    제국귀족들이 잔뜩 수강하니까 엉겁결에 따라온 변방귀족들인가.

    안목이 없는 것은 딱하지만 저들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겠지.

     

    ‘구해야 할 건 하나, 이슈타르뿐이다.’

     

    다른 학생들이 인질로 잡히더라도, 그래서 이슈타르의 신경이 그들에게 쏠리더라도 히스클리프만큼은 이슈타르 한 명만을 주목해야 한다.

    설령 자신에게 호위임무를 맡긴 오크노디 또한 도시락을 욤뇸뇸 까먹으면서 맛있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어도 말이다.

     

    “…”

     

    아니, 근데 오크노디는 왜 이 강의에 신청했지.

    역시 용사를 구하려고 찾아온 건가?

    잘 보니 도시락을 먹는 오크노디 주변의 학생들이 복스럽게 도시락을 먹는 그녀를 보며 주린 배를 움켜쥐고 짜증을 드러내고 있었다.

    과연.

    이슈타르를 향한 어그로를 분산하려는 작전인가.

    제법 효과적인 전략이다.

    다음 강의 시간부터는 자신도 이 강의에 대비해서 도시락을 싸야겠다며 히스클리프는 다짐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지뢰 중의 핵지뢰 강의에 자연스럽게 들어온 안데르센과 서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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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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