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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이 있다.

        

       무엇이든 시작이 제일 어렵고- 막상 스노우볼이 굴러가기 시작하고 나면, 생각보다 술술 흘러가는 것이다.

        

       고민 상담 또한 그러했다.

        

       강제로 물꼬를 틀어 젖힌 후에는, 생각보다 평범한 고민 상담 컨텐츠가 가능했던 것이다.

        

       ‘옆자리 부장님이 하품할 때마다 냄새가 너무 심해서 회사 때려치고 싶어요’부터 시작해서, ‘브론즈 동료였던 친구가 혼자 플레를 가고나서 하루에 한 번씩 놀려서 개빡쳐요’같은 소소한 고민에 이어서,

        

       흡족할 정도로 풍부한 도적 관련 고민들까지.

        

       다양하고 생생한 고민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자, 그러면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 고민으로 넘어가봐도 될까요?”

        

       『얘 왜 고민상담은 정상적임?』

       『왜 성의있음?』

       『뭘 기대해도 반대여서 너무 어지러워 진짜』

        

       손캠을 키고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며 성심성의껏 생각을 나누는 과정에서, 시청자들도 내 진심을 알게 된 듯했다.

        

       -ㅇㅇ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대체 무슨 지랄을 하려고 이딴 컨텐츠를 준비했나 했는데 진짜 고민상담이었다고?】

        

       -ㅇㅇ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텐련 모든 고민에 ‘도적하시면 해결돼요’같은 씹소리나 할 줄 알았는데 왜 성의있냐】

        

       『ㄹㅇ』

       『ㄹㅇㅋㅋㅋㅋ』

       『어……진짜 고민 상담을 해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누가 예상하냐고ㅋㅋㅋㅋㅋ』

       『손 진짜 이쁘네』

       『그림 왜저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카리나 연주만 안 했어도 좀 더 무난하게 갔을 것 같긴 한데.

        

       좀 참을 걸, 하는 후회도 약간 있었지만.

        

       -ㅇㅇ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시팔 시작할 때 오카리나로 지랄만 안 했어도 우리도 오해 안 했지】

        

       이런 반응이 있는 걸 보면, 나쁘지만은 않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고 마는 것이다.

        

       “오카리나……별로였나 보네요. 꼭 다음에 더 연습해서 돌아올게요.”

        

       『아냐아냐』

       『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

       『어떻게 말해야 안 할지 나 너무 헷갈려』

       『존나 잘하더라 이제 졸업해도 될 듯』

       『차라리 노래를 불러줘』

       『듣고 싶다고 해야 안 하지 않을까』

        

       오카리나라는 단어 하나에 재차 흥분한 채팅창이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흐흫, 하고 작은 웃음을 흘렸다.

        

       -ㅇㅇ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이 씹련 아무리 봐도 다 알고 하는 짓 같은데 기분 탓이냐?】

        

       ……부당한 음해다. 연습할 때까진 9할 정도의 성공은 점쳤단 말이야. 

        

       -쪼르륵.

        

       빨간 에스프레소 잔을 다시 한번 가득 채우고 카메라에 가볍게 건배하자, 채팅창은 이내 ‘짠’ ‘건배’ 따위의 채팅으로 메워졌다.

        

       불필요한 의혹은 좋지 않아요.

       

       ……진짜로.

        

       아무튼, 조금은 익숙해졌지만- 방송은 내게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다.

        

       그리고 경험상, 미지의 영역에 들어서며 두렵고 헷갈릴 땐, 일단 상대도 결코 예상할 수 없는 수만 골라서 두면 평타는 치게 되더라.

        

       ……결과적으로 돌이켜보면, 예상할 수 없는 수를 넘어서 예상해선 안 되는 수를 두기도 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선을 찾아가는 과정이니까……함께 성장하는 방송으로 이해해주길 바랄 수밖에 없다.

       

       진심을 꺼내놓고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언젠가 술먹방을 하며 취중진담이라도 하면 괜찮을지도- 따위의 생각을 하며, 빠르게 움직이는 채팅을 눈으로 훑었다.

        

       『근데 진짜 노래방 한 번 하면 안 됨?』

       『목소리가 사기라 노래도 좋을 거 같은데』

       『음색 개지릴듯 ㄹㅇ』

        

       “노래……노래는, 생각해볼게요. 아는 노래가 있으려나.”

        

       평소에도 노래를 자주 듣는 편은 아니었지만, 나름 노래방 레퍼토리는 있었는데.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아는 노래가 하나도 없는 노래방기기를 허탈하게 조작하며 홀로 남겨진 기분에 침잠하는 상황은, 정말로 겪고 싶지 않아서.

        

       아. 쓸데없는 생각.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옅은 우울감을 털어내고, 게시글을 클릭하며 말했다.

        

       “그러면 우리 고민상담 마지막으로 한두개만 더 보고……랭크 좀 돌릴까요?”

        

       『마 참 내!』

       『난 방장 믿었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찐- 상담 역겹다고 개미털기 당한 흑우새끼들 없제?』

       『와ㅏㅏㅏㅏㅏㅏㅏㅏㅏ』

       『기사도 해주세요 23트』

        

       이 내밀한 고민상담을 함께 해준 전우들이다.

        

       기사도 보고싶다는 말을 할 정도 자격은 있겠지. 하진 않을 거지만.

        

       백그라운드에서 나오나를 미리 실행하며, 화면에 떠오른 게시글을 읽어내렸다.

        

       서울에 사는 20살 남자라며 스스로를 소개한 작성자는, 풋풋한 연애에 관한 고민을 상담하는 척하다가 급격하게 드리프트를 하더니,

        

       그럴 리가 없는데 대회 섭외 안 온 거냐, 설마설마 하지만 이메일 안 읽고 있는 거냐 같은 일방적인 비난을 이어 나갔다.

        

       단 두 개 남은 고민상담 중 하나가 이렇게 되다니. 마지막이라도 좋은 고민이어야 할 텐데.

        

       “……이번 고민은, 딱히 고민은 아니네요. 킹갓황따먹님은 아이디 메모장에 적어 둘게요.”

        

       ‘지정 국선변호인 명단’ 메모장 파일을 켜서 아이디를 옮겨 적으며, 남은 술을 들이켰다. 냉장고에 뭐가 남았더라……맥주, 조금 있었던 것 같은데.

        

       “잠시만요.”

        

       시원한 캔맥주를 가지고 올 때까지도, 채팅창에서는 이메일, 대회, 섭외 등의 단어가 오가고 있었다.

        

       이메일. 이메일이라.

        

       이메일은, 꾸준히 확인하고 있다. 늦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지난 주에 받았던 이메일 제목에 무슨무슨……뭐였더라. 언터처블스? 아무튼, 대회 관련 이메일이 있었던 걸 기억할 정도로, 제목만큼은 성심성의껏 훑어보고 있다.

        

       당시엔 몸도 너무 안 좋았고, 방송 컨텐츠에 대해 골머리를 앓는 중이기도 했던 데다가, 스트리머 대회에 나갈 생각은 없었던 탓에 자세한 내용은 확인하지 않고 그냥 넘겼지만.

        

       “그래도 물어보셨으니 답변 드리자면, 이메일은 제 매니저가 확인하고 있어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매니저?』

       『매니저 뽑았음?』

       『완장 없던데』

       『매니저 언제 뽑음?』

       『매니저까지 뽑아놓고 방송을 이지랄로 했다고?』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하더라도, 이메일을 직접 읽는다고 이야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이미 내 수신함은 이런 저런 괴악한 이메일로 가득 차고 있었으니까.

        

       평생 챙겨본 적 없던 남성기 사진과 5번째로 직면한 날 이후로, 나는 첨부파일이 담긴 이메일은 더 이상 읽지 못하게 되었다. 국내 유명 포탈사이트가 아닌 도메인에서 온 이메일도 읽지 않게 되었고.

        

       겨우 일주일 사이에도 은근 쌓이는 그런 이메일들을 제목만 보고 삭제하는 것도 일이다. 읽어선 안 되는 이메일일수록, 제목은 매력적으로 적어 놓는 경향이 있으니까.

        

       가장 인상깊었던 놈은, ‘은밀 도적 특성 질문 하나만 해도 되나요ㅠㅠㅠ 같은팀 사제한테 욕 먹었……’으로 중략된 제목으로 사진을 보낸 놈이었다.

        

       내가 반드시 클릭할 수밖에 없는 제목을 세심히 고민한 티가 난다는 점이, 특히 괘씸했다. 방송도 챙겨볼 만큼 챙겨봤을 놈이 말이야.

        

        

        

        

       잠시 이메일에 대해 생각을 하는 사이에 매니저의 실존 여부에 대해서 갑론을박을 하던 채팅창은, 한 도네이션을 기점으로 다시 대회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ㅇㅇ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근데 대회에서 도적으로 캐리하는 것만큼 확실한 홍보가 있나? 대회 왜 안 나감?】

         

       하기사, 플랫폼 내에서 대회는 일종의 축제니까.

        

       내가 보는 스트리머가 축제에서 홀로 소외되기보다는, 당당하게 앞에 나서기를 바라는 시청자들도 있기 마련인 것이다.

        

       다만, 나는 어지간하면 대회에 나갈 생각은 없었다.

        

       “대회……프로게이머도 아니고. 굳이 대회에서 뭔가를 입증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이제 와서 프로게이머가 될 생각은 없음에도, 마음 어딘가에 진정한 대회란 프로게이머들의 것이라는 미묘한 인식이 남아있는 탓이다.

        

       무엇보다,

        

       대회에 참여하면 필연적으로 온갖 어그로가 끌리기 마련이다.

       

       지금, 천 명 이쪽저쪽을 오가는 수준의 시청자 수에서도 충성층을 다져 나가는게 쉽지 않은데.

         

       과연 그 정도의 메리트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제일 확실하잖아 그래도』

       『이번 대회 누구 나오려나』

       『대회 룰도 홍보 최적환데』

       『룰을 확인했을리가 없지』

       『홍보는 좆이나 ㅋㅋㅋㅋㅋ 하꼬들이나 잔뜩 모일 좆망 대회겠던데』

        

       룰. 룰……은 확인 안 하긴 했지만-

        

       나오나 대회면, 그냥 적당히 어떻게 6명 모아서 서로 붙이는 것 아니겠는가.

        

       그걸 트위트에서 6명, 아프리카에서 6명 뽑아서 플랫폼 대전이라고 이름 붙이나, 매물 모아 놓고 포인트 경매로 뽑아서 경매대전이라고 이름 붙이나,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진 않은데.

        

       “룰, 은 확인 안 하기는 했어요.”

        

       『내 이럴 줄 알았다』

       『이제 놀랍지도 않음』

       『오히려 확인했으면 놀랐을 거 같은데』

       『뭘 그렇게 당당하게 말해 씹년아』

       『도제식이었나 그랬던거 같은데』

        

       -ㅇㅇ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선생님 신청 내일부터라던데 대회 설명이라도 한 번 보시죠】

        

       이렇게까지 한 마음 한 뜻으로 룰이라도 보라고 하니, 못 본 척 큐를 돌려버리고 싶은 유혹이 피어올랐지만-

        

       참아야지. 일부러 불을 지르는 취미까지는 없다.

        

       침음성을 흘리며, 이메일에 접속하여 ‘대회’를 검색했다.

        

       머리에 대회전킥 날리고 싶다……대회룰로 붙으면 쳐 발릴……아, 여깄네.

        

       “Untouchable- 상위 1%와 하위 1%가 만난다……이거 표절 아닌가.”

        

       참지 못한 불만을 중얼거리며, 이메일에 적힌 대회 요지를 읽어나갔다.

        

       다이아 티어 이상의 스트리머 12인, 브론즈 티어 이하 스트리머 12인으로 총 24명이, 4개 팀을 이룬다……라.

        

       “저는 절대 나가면 안 되는 대회네요.”

        

       어떤 발상에서 기획된 대회인지는 이해가 됐지만-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과 게임을 할 자신은 없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못 참을지도 몰라.

        

       이미 마음 속으론 불참을 결심한 채,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스크롤을 대충 내리던 그 때.

        

       

       한 가지 문구가, 빨려들듯 눈에 들어왔다.

       

       “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대존잼맨님, 5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Acedia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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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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