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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

        

       

       기억을 스킵할 수 있다면, 여기서는 그냥 스킵하는게 맞다.

       

       멜리나에게 진리의 편린을 건네어 얻는 이득보다, 키엘의 의심을 살 때 생기는 손해가 더 크다.

       

       다만 문제가 되는건, 1년 동안 올리비아를 기다리고 있을 멜리나다.

       

       ‘……괜찮겠지?’

       

       진작에 돌아왔어야 할 제자가 돌아오지 않았으니, 그 충격이 만만치 않을것이다.

       

       ‘내 도움이 없으면 진리도 못 볼테고.’

       

       물론 그렇다고 ‘현재’의 멜리나처럼 정신이 아예 나가버리지는 않겠지만, 분명 크게 상심할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사람 감정 풀어주자고 이쪽이 죽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올리비아는 결정을 내렸다.

       

       [단서 #2, 제국력 992년의 기억을 스킵하셨습니다.]

       

       [단서 #2, 제국력 994년의 기억을 열람하시겠습니까?]

       – 제한 시간 : 42시간 00분 00초.

       

       올리비아는 단서 사용을 잠시 보류했다. 따져봐야 할게 한두개가 아니었다.

       

       일단 994년에 뭘 하고 있었는지부터 떠올려야 했다.

       

       ‘일단 몰살 회차 전체를 통틀어서 보면 신성 왕국이랑, 동부 연합 스토리가 이때지. 아리아랑 멜리나도 간간히 만났었고. 키엘이랑은 단서에서 노가리 깠었었지.’

       

       거기까지 생각한 올리비아가 멈칫했다.

       

       ‘……잠깐만. 지금 994년에 회귀자가 몇 명이나 엮인거냐?’

       

       제국에서 셋. 신성 왕국에서 하나. 동부 연합에서 둘.

       

       ‘여섯 명?’

       

       머릿속이 복잡했다. 단편적인 기억들만 떠올렸는데도 이정도면, 미처 떠올리지 못한 것들까지 생각하면 그보다 많을거라는 이야기다.

       

       ‘……으으음.’

       

       올리비아는 눈을 감고 몰살 회차의 세부적인 동선을 더듬어나갔다. 

       

       994년 초부터 말까지, 어디서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했었는지. 그리고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이것도 넘겨야겠는데?”

       

       아틸라 산맥에 틀어박힌 무왕(武王)까지는 어떻게 속여넘길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회귀자들까지 속여 넘기는건 불가능하다.

       

       ‘왜 이렇게 머리 잘 돌아가는 애들 밖에 없는거야!’

       

       다섯 명 다 제껴놓고 생각해도, 아리아가 문제다. 만약 단서를 사용하고 눈을 떴는데 눈 앞에 아리아가 있다면, 그대로 멸망이다.

       

       여기도 폭탄이요, 저기도 폭탄이다.

       

       단서를 사용하지 않으면 멜리나에게 진리를 알려주지 못해서 망하고, 사용하면 회귀자들을 속여넘길 수 없어서 망한다.

       

       몇 시간 정도면 어찌어찌 몰살 회차 행세를 할 수야 있겠지만, 이번 건 무려 이틀짜리다.

       

       이틀 동안 몰살 회차와 완벽히 똑같이 행동하는건 불가능하다.

       

       “단서 넘기고 싶을 때마다 넘길 수 있는거지? 막 조건 있고 그런거 아니지?”

       

       올리비아는 상태창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이 빌어먹을 상태창은 불친절함의 표상이라도 되는지, 중요한 정보들을 꼭 상황에 직면하고 나서야 뱉어냈다.

       

       ‘아무리 운영진이 미친 놈들이라지만, 그래도 게임을 못 깨게 만들 놈들은 아니야.’

       

       올리비아는 확신했다.

       

       그리고 정확히 1분 뒤, 다음과 같은 메세지가 떴다.

       

       [단서 #2, 제국력 994년의 기억을 스킵할 수 있습니다.]

       – 스킵하시겠습니까?

       

       올리비아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년을 읊는다고, 락테아 10년 경력이면 운영진의 개수작을 꿰뚫어 볼 수 있다.

       

       [단서 #2, 제국력 998년의 기억을 열람하시겠습니까?]

       – 제한 시간 : 84시간 00분 00초.

       

       1년, 2년, 그 다음엔 4년.

       

       지금 저 기억속으로 들어가면, 멜리나는 올리비아와 무려 7년만에 재회하는 것이다.

       

       ‘이쪽은 하루만에 만나는건데.’

       

       원래 계획은 994년까지 멜리나에게 모든 편린을 넘긴 다음, 마지막에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려 했다. 키엘과 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여유가 없다.

       

       멜리나를 돕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나마 마지막이 998년이라서 다행이네.’

       

       998년에는 다른 사소한 것들에 심력을 쏟을 필요가 없다.

       

       본격적으로 몰살을 시작하는 년도이기 때문이다.

       

       올리비아가 앞쪽으로 손을 천천히 뻗었다.

       

       [해당 기억에는 ‘멜리나 디비아에’의 마지막 기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그래도 열람하시겠습니까?

       

       ‘마지막?’

       

       그 의미를 깨달은 올리비아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파앗!

       

       의식이 점멸했다.

       

       

       

       ***

       

       

       

       올리비아는 눈을 감고 때를 기다렸다. 단서를 하도 많이 사용했다보니 언제쯤 적용되는지 감으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탈력감이라고 해야되나?’

       

       그 느낌이 들고 나서 눈을 떠도 늦지 않다.

       

       그런데 오늘은 무언가 달랐다.

       

       한참동안 기다려도 특유의 탈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참다 못한 올리비아가 슬그머니 눈을 떴다. 

       

       눈 앞에 알림창이 있었다.

       

       [당신은 단서 #2의 기억을 2회 스킵했습니다.]

       

       [스킵한 대가로, 스킵 시작일로부터 단서 발동 시점까지의 ‘기억 압축본’을 관전해야 합니다.]

       

       [현 시점 : 제국력 992년]

       

       ‘이건 또 뭔…….’

       

       시선 아래 멜리나가 보였다. 그녀는 초조한 얼굴로 집무실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현재 ‘멜리나 디비아에’를 관전 중입니다.]

       

       올리비아는 관전자가 되었다.

       

       

       

       

       *****

       

       

       

       992년 여름. 

       

       올리비아가 수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금탑의 수많은 마법사들이 소식을 듣고 기뻐했지만, 그 중 가장 기뻐한 사람은 단연 멜리나였다.

       

       ‘……드디어!’

       

       올리비아가 수행에 나선 기간은 기껏해야 반년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멜리나의 기다림은 그보다 배는 더 길었다.

       

       1년 하고도 몇 개월.

       

       진리의 여덟번째 편린을 넘겨받은지 자그마치 1년 반이나 흘러버린 것이다.

       

       멜리나는 편린이 적힌 종이들을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올리비아가 그녀에게 남기고 간 몇 안되는 물건. 

       

       올리비아가 그리워질 때마다, 멜리나는 이 종이를 매만졌다. 그렇게 하면 상실감을 약간이나마 이겨낼 수 있었다.

       

       – 약속할게요. 때가 되면 반드시 말해드릴게요.

       

       ‘내 제자는 거짓말을 할 아이가 아니다.’

       

       분명 피치못할 사정이 생겼으리라고, 멜리나는 생각했다.

       

       ‘돌아올거다. 내 제자라면, 반드시 돌아올거다.’

       

       이제는 자기 최면에 가까웠지만, 멜리나 본인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언제쯤 올 것 같으냐?”

       “앞으로 1시간이면 도착할 겁니다.”

       “너무 오래 걸리는구나…….”

       

       멜리나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수도로 들어오는 입구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발을 동동 구르는 멜리나를 본 비서가 헛기침을 했다.

       

       “탑주님. 체통을 지키셔야…….”

       “와, 왔다!”

       “…….”

       

       멜리나는 주변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성문을 걸어오는 올리비아에게 달려갔다.

       

       그리고는 그대로 껴안았다.

       

       “스, 스승님?”

       

       당황한 올리비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멜리나는 올리비아를 품에서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네. 괜찮아요.”

       “그……. 제자야.”

       “네, 스승님.”

       “호, 혹시 수행 중에 무슨 일은 없었느냐?”

       

       멜리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일이요?”

       “그, 기억이 이상하다거나…….”

       

       멜리나는 간절한 눈빛으로 올리비아를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신경쓰지 말거라. 먼 곳에서 오느라 힘들었을텐데, 내가 괜히 붙잡아 둘 수야 없지. 일단 들어가서 쉬자꾸나. 뭐 먹고 싶은거라도 있느냐?”

       

       멜리나는 애써 태연한 행세를 했다.

       

       이 아이가 그동안 기다렸던 올리비아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막상 마주하고 보니 실망감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껴안았다. 실망한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이 아이가 커서 그 아이가 되는건 알지만…….’

       

       멜리나가 남몰래 입술을 깨물었다.

       

       가끔씩 그럴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자신 같은 인간에게 처음으로 아낌없는 사랑을 베푼 사람은, ‘올리비아’다.

       

       오랫동안 잊었던 감정을 되살려준 것도, ‘올리비아’다.

       

       – 웃으세요. 어깨도 쭉 펴시고요.

       

       일방적으로 베푼 것이 그 아이였기에, 당연히 돌려받는 것도 그 아이여야 했다.

       

       “일단 스테이크요. 향신료도 듬뿍 뿌린 걸로요.”

       

       ……이 아이가 아니라.

       

       멜리나가 눈을 질끈 감았다.

       

       해서는 안되는 생각이다. 하지만 안되는 걸 알면서도, 그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물론 자신은 두 제자를 모두 사랑한다.

       

       다만, ‘올리비아’를 더 사랑할 뿐이다.

       

       차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래. 비서들에게 미리 준비해 달라고 말해놓으마.”

       

       

       

       

       [현재 ‘멜리나 디비아에’를 관전 중입니다.]

       

       올리비아는 팔짱을 낀 채로 멜리나의 일상을 묵묵히 감상했다.

       

       이 ‘관전’이라는 상태는 참으로 모호한 면이 있었다. 육체는 없지만, 그렇다고 영혼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영혼이었다면 멜리나가 느끼지 못했을리 없다.

       

       굳이 비유하자면.

       

       ‘엄청나게 생생한 화면 너머로 보는 기분.’

       

       관전 상태에서 할 수 있는건 말 그대로 관전 뿐이었다. 

       

       ‘이게 스킵한 패널티인가?’

       

       그래도 이 정도라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올리비아였다.

       

       6년이라는 시간을 오롯이 느낀다면 또 모르겠지만, 특정 상황을 제외하면 시간은 정말로 빠르게 흘러갔으니.

       

       ‘그 잠깐 사이에 사흘이 지났어.’

       

       왜 압축본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별 감흥은 없었다.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대충 알고 있었으니까.

       

       또다시 풍경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금탑의 회의장이었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다. 다들 해산하도록.]

       

       그런 멜리나 옆으로 비서가 다가가 속삭였다.

       

       [탑주님. 지금 접견실에 키엘 공작 전하께서 와 계십니다.]

       [키엘 공작이? 용무가 뭐라더냐?]

       [그, 알려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멜리나는 곧바로 집무실로 향했다. 

       

       [이게 누구야, 키엘 공작 아니신가?]

       [그래. 물어볼게 있어서 왔…….]

       [아, 서류부터 정리하고 다시 듣지.]

       

       멜리나의 손짓에 맞춰 서류들이 제 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됐네. 이제 질문하게.]

       [혹시…….]

       

       키엘의 다음 말에, 올리비아가 눈을 부릅떴다.

       

       [마법사의 자아가 분리되는 경우가 있나?]

       

       처음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멜리나와의 첫만남을 989년에서 990년으로 수정했습니다!

    899+1+1을 992라고 계산한 과거의 저를 패고 싶습니다. ㅠㅠ

    이런 간단한 계산실수를…죄송합니다!

    ■▪︎■
    그리고 내일은 “휴재”입니다.
    추석 연휴 마지막날만큼은 소중한 가족들과 함께 보내려고 합니다.

    푹 쉬고 와서, 좋은 스토리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공지로도 써놓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Kirien 님 5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 으악!
    행보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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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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