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57

       어디를 가건 시선이 느껴진다.

        

       어디를 가건 누군가가 나를 훔쳐보고 있다.

        

       물론 스토커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을 도저히 참지 못할 뿐이니까.

        

       단순히 소문만 도는 거라면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냥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그래서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하고 넘기는 경우도 많을 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지금 상황이 ‘그저 소문만’ 도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려 인터넷 신문에 사진과 함께 기사가 났다. 수업 시간에 당당하게 애정행각을 펼친다. 게다가, 그 소문의 애인‘들’이 어디를 가건 따라다닌다.

        

       여학생들만 모여있는 1학년 1반에서 6반 사이의 아이들은, 대부분 얼굴을 붉힌 채 우리 셋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모두 캐치할 수는 없었지만, 대충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기는 하다. 아마 우리 셋이 몸을 섞는 상상을 하고 있겠지.

        

       그게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은 사건이라고 해도, 외부에서 그저 이야기와 소문으로 들은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그러니, 우리 셋을 쳐다보는 아이들이 얼굴을 붉히는 것 정도는 당연하다. 민망한 상상을 하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겠지.

        

       반대로 거북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리는 경우도 있었다. 아마 이 경우는 동성애에 대해 별로 좋지 않은 인식이 있는 경우일 거다.

        

       표정에서 묘한 부러움이 보이기도 했다. 셋이 꼭 붙어서 복도를 걷고 있는 우리는, 대놓고 말로 표현하기는 좀 그렇지만, 아무튼 셋 다 굉장한 미소녀였으니까. 사실 ‘사귄다’라고 생각하면 이렇게 둘이 아니라 둘 중 하나만 사귈 수 있어도 세상이 다 아름다워 보일 것이다.

        

       대충 여학생들의 반응은 이렇게 세 가지였다. 나름대로 환상과 거부감, 부러움이 공존하는 분위기. 그러니까 로맨스 만화의 엑스트라들이 보일 법한 분위기였다.

        

       그렇다면, 남학생들의 반응은 어떨까.

        

       사실 나는 이 학교에서 남학생들 사이를 거닐 일이 거의 없었다. 남녀 공학이긴 하지만 성별로 분반되어있었고, 만약 남학생들이 모여있는 곳을 걸어가려고 한다면 일부러 남학생들 반이 모여있는 복도 한가운데를 걸어야 했으니까.

        

       그리고, 딱히 본의는 아니었지만— 지금 내가 그렇게 하고 있었다.

        

       “…….”

        

       하늘이와 이수아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 내 양팔을 붙들고 바닥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렇게 팔짱을 끼고 다니는 것이, 그냥 길거리나 동성들 사이를 거닐 때보다 훨씬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그리고 사실, 남학생들의 반응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남학생들은, 우리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물론 그러다가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돌리거나,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는 아이들도 몇 명 있기는 했다.

        

       그리고 대부분은, 어떻게든 우리 쪽으로 하반신을 보이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

        

       그렇다. 나도 십 대 시절을 보낸 입장에서, 대충 이해할 수는 있다.

        

       여자 셋. 그것도 서로 사귄다는 말이 돌고, 어젯밤에는 다른 학교 학생까지 끼워서 광란의 밤을 보냈고, 아침에는 속옷을 공유하기까지 했다……는 소문이 도는 셋.

        

       세 명 모두 예쁘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한 얼굴인데다, 심지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말까지 들었다면…… 역시 그렇고 그런 상상을 할 수밖에 없겠지.

        

       단순히 미소녀 세 명만 나오는 게 아니라 그사이에 자신이 끼어 있는 상상을 할지도 모르고.

        

       ……나도 어릴 때는 그런 상상을 하긴 했었는데 막상 그 대상이 되니 기분이 별로 유쾌하지는 못했다.

        

       학생회장실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이쪽이 아니었다면 굳이 오지도 않았겠지만.

        

       게다가 남학생반에는……

        

       “흥.”

        

       그래, 얘랑 마주칠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창가에 기대서서, 저 멀리서 나를 보고 있던 윤다호가 우리 셋을 보자마자 콧방귀를 뀌었다.

        

       그 주변에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아마 친구거나, 아니면 부하 비슷한 녀석들이겠지. 내 개인 자산과 비교하면 적은 돈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 중에선 두 번째로 돈이 많은 녀석이었다.

        

       게다가 일단 나는 얘랑 약혼한 상태니까.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재계에선 유명한 이야기다. 아마 교내에 있는 애 중에는 이제 모르는 애들이 없겠지.

        

       순간 멈춰서 저걸 받아줘야 하나 하다가, 나는 그냥 못 본 척하고 무시하기로 했다. 말해봐야 속 터지는 소리나 할 텐데, 굳이 어울려줄 이유야 없지.

        

       게다가 이 결혼은 내 쪽이 너무 손해인 결혼이다. 솔직히, 이쪽에서 그냥 약혼 끊어버려도 저쪽에서 할 말도 없을 거다. 약혼 따위야 뭐 법적인 효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게다가 둘 다 미성년자이니 더더욱 의미 없고.

        

       “그러니까, 결국엔 ‘그쪽’이었다는 소리군.”

        

       그런데 그냥 지나가기에는 너무 웃긴 소리를 들어버리고 말았다.

        

       윤다호 앞을 한 걸음 정도 지나던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뒤로 돌았다. 하늘이와 이수아가 내 말에 맞춰서 옆으로 회전하는 모습이 솔직히 조금 유쾌하게 느껴졌다.

        

       두 사람은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다. 아마 내가 무시하고 지나갈 거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뭐라고?”

        

       천천히 돌아선 내가 윤다호에게 되묻자, 윤다호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그쪽’이기 때문에 남자에게 관심이 없다는 말이지.”

        

       흠.

        

       나는 윤다호를 삐딱하게 올려다보았다. 윤다호 본인은 별다른 타격이 없는 모양이었지만, 윤다호 주변의 애들이 조금 거리를 벌린다. 아무래도 예사라 특유의 눈매가 조금 살벌해 보인 모양이다.

        

       사실 눈매가 좀 날카롭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미소녀인 애가 좀 삐딱하게 올려다보는 것이 뭐가 그리 무서운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사라 본인이 무서운 게 아니라 예사라 뒤에 있는 그 막대한 자본이 무서운 건가?

        

       “그러니까, 내가 레즈비언이라 너한테 관심이 없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그럴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었던 거지.”

        

       윤다호는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역시 남자에게는 관심이 없는 건가?”

        

       당연히 관심 없다. 남자랑 결혼해서 평생 살아야 한다고 하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니까. 애초에 나는 몸만 여자지, 내용물은 평범한 20대 남성이었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상대 속을 박박 긁어놓으려고 생각한다면 그냥 인정해서는 안 된다.

        

       “남자한테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너한테 관심이 없는 거야. 추남아.”

        

       “……뭐?”

        

       윤다호의 미간이 확 좁아진다.

        

       평생 이런 소리를 들어볼 기회가 있었을까? 아니, 절대로 없었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다. 예사라를 만나기 전까지는, 주위에서 만날 수 있는 아이들은 전부 자신보다 돈이 없는 아이들 뿐이었을 테니까. 물론 잘생기긴 했다. 누가 함부로 깎아내리지 못할 정도로 잘생기긴 했지.

        

       그런데 그 잘생김은 내 앞에선 아무런 의미도 없다.

        

       “얼굴도 못생기고, 성격도 구리고. 너, 여자랑 대화해 본 적은 있어? 대체 어떤 미친놈이 자기 약혼자를 돼지라고 불러? 지금 내가 너를 싫어하는 이유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가 본데, 나는 너가 남자라서 싫어하는 게 아니야. 성격 나쁘고 못생겨서 싫어하는 거지. 애초에 돈도 없고.”

        

       “…….”

        

       윤다호가 나를 노려본다.

        

       “노려보면 뭐 어쩌려고? 날 노려보면 너희 집 돈이 갑자기 200조가 돼? 아니잖아. 애초에 돈 보고 약혼한 주제에 그 돈 많은 약혼녀를 보고 돼지라느니 뭐라느니 하는 쪽이 오히려 정신 나간 거 아니야? 다시 생각해보니 성격 나쁘고, 못생기고, 돈도 없는 데다, 멍청하기까지 한 모양이네.”

        

       “그렇다면, 어째서 너는 나와 약혼한 거지?”

        

       나의 말을 들은 윤다호가 물었다. 의외로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감정을 컨트롤하고 있었다. 뺨이라도 한 대 때리려고 할 줄 알았는데, 그 정도는 아닌 모양이다.

        

       아니면 나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바꾸려고 한 건가?

        

       뭐, 그 접근 방법이 ‘상냥하게 굴어서 마음을 돌린다’ 아닌 모양이지만.

        

       “내가 하겠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어. 회장님이 시켜서 한 거지. 너야말로 나랑 왜 약혼한 건데?”

        

       “…….”

        

       대답이 없는 것을 보면 이쪽도 똑같을 것이다. 하긴, 좋아서 한 약혼의 약혼자에게 그런 폭언을 할 이유가 없겠지.

        

       예사라랑 약혼한 게 왜 싫었던 건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아니, 그보다 하나 물어나 보자. 왜 굳이 말을 건 거야? 지난번에도, 지지난번에도 제대로 대화라는 걸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이잖아. 말 섞어봐야 서로 분통 터질 뿐이고.”

        

       “……나는.”

        

       윤다호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마치 화를 진정시키려는 듯.

        

       “나는, 제안을 하나 하려고 했어.”

        

       “제안?”

        

       이 꼴통 머리에서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해보지 못한 생산적인 단어에, 나는 나도 모르게 대답해버리고 말았다.

        

       “그래. 만약 네가 남자……가 아니라,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한다면.”

        

       윤다호는 이를 한번 악물었다가 말을 이었다.

        

       “서로 그냥 갈 길 가자는 말을 하려고 불렀지.”

        

       “그 말은, 파혼하자는 뜻?”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어보자, 윤다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결혼은 하되, 생활은 따로 하자는 말이다. 너나 나나,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사실이니, 서로 떨어져 살면서……”

        

       윤다호의 시선이 하늘이와 이수아를 한 번씩 훑었다.

        

       “서로 마음에 드는 이가 있으면 불러서 같이 살건, 뭘 하건, 상관하지 말자는 소리야.”

        

       허.

        

       크나큰 발전이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윤다호는 본인이 원해서 예사라와 약혼한 것은 아닐 테니까. 분명 본인이 파혼하고 싶다고 해서 파혼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닐 거고. 그러니 본인이 물러날 수 있는 한 최대한 물러난 것이, 이 제안일 것이다.

        

       서로 결혼은 한다. 법적으로 결혼하되, 각자 그냥 따로 살면서, 원한다면 애인을 만들어도 별다른 간섭은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무슨 중세시대식 결혼이냐. 결혼 따로 하고 정부 따로 두게.

        

       “난 싫은데.”

        

       “나와 살고 싶다는 말인가?”

        

       그 말에 나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아니, 그거 말고. 나는 ‘너랑 결혼하고 싶지 않다’라고 하는 거야. 애초에 결혼 자체가 나한테 불리한데 굳이 결혼해야 할 이유가 없잖아.”

        

       “이 약혼은 오히려 유진 그룹 측에서 제의한 거라고 알고 있는데.”

        

       “그럼 회장님이 너희 돈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지. 나는 굳이 거기까지 손을 댈 생각은 없는 거고.”

        

       애초에 몇 번을 생각해도 굳이 그렇게 약혼시켰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정말로 호명 그룹을 통째로 집어삼키려고 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할수록 굳이 삼킬 이유가 없다. 삼키고 싶다고 삼킬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국제적으로는 상관없어도, 국내에서는 대놓고 독점체제로 가겠다는 선언인데, 아무리 한 나라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기업이라도 그런 행패를 부렸다간 정부에 의해서 찢어져 버리는 수가 있다.

        

       찢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이 갈 거고.

        

       나는 하늘이와 이수아에게 작은 목소리로 “잠깐만.”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순순히 내 팔에서 손을 뗐다.

        

       나는 자유로워진 손으로 두 사람의 허리를 잡아 내 쪽으로 끌었다.

        

       “앗.”

        

       “사, 사라…….”

        

       윽, 솔직히 조금 쪽팔린다. 이 상태로 조금만 오래 있어도 얼굴이 새빨갛게 변할 것 같아서, 나는 얼른 입을 열었다.

        

       “내가 너한테는 관심이 없어도, 내 주변에 관심이 없는 건 또 아니라. 기왕 결혼할 거면, ‘내 마음에 드는 애’랑 하고 싶거든.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자.”

        

       옆구리에 찰싹 붙은 두 사람의 체온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아무런 매력도 없는 결혼 제안은 이쪽에서 사양이야.”

        

       “……그쪽 회장님께서는 동의 하시는 건가?”

        

       “……동의 안 하면 동의하게 만들 생각이야. 이번 주에 만날 예정이거든.”

        

       “……그런가…….”

        

       윤다호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뭔데.

        

       뭔데 기분 좋아 보이냐. 내 기분 더럽게.

        

       “뭐야?”

        

       “아냐,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애써보라고.”

        

       아니 뭐냐고. 찝찝하게.

        

       내가 미간을 찡그리자, 윤다호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야, 너희들은 집에 안 가냐? 슬슬 집에 가자고.”

        

       그렇게, 자기 옆에 서 있는 애들한테 그렇게 말했다.

        

       “어? 어어.”

        

       양손으로 여자를 껴안고 있는 나를 조금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던 녀석 중 하나가 당황해서 대답했다.

        

       “아니, 야! 말해 주고 가! 왜 그러냐니까!”

        

       “그러니까, 나는 말 했다. 한번 힘 내보라고.”

        

       윤다호는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휙 돌려서 가버렸다.

        

       아니, 진짜 뭐냐고!

        

       물론 지금 걸어가는 윤다호를 잡는 것이 엄청나게 찌질해보일 거라는 걸 잘 알았기에, 나는 차마 붙잡고 물어보지는 못했다.

        

       아니 진짜 찝찝하네. 젠장.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휴 기간 동안에는 매일 13시에 두 편 모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