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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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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솟구치는 피 분수와 바닥을 구르고 있는 노인, 당황한 듯 입을 살짝 벌린 채 노인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 구속된 채 피 분수를 보며 가르간도아를 부를까 말까 고민하는 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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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판이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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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끄윽,끄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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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숙은 나이에 비해 정정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가 몸에 이상이 있을 때마다 최고의 치료사와 신관, 마법사에게 진찰받아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왔다. 그랬기에 이런 끔찍한 고통은 익숙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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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쯧쯧, 그러게 조심 좀 하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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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속으로 혀를 차며 반숙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사실 반숙이 땅바닥을 구르며 꺽꺽거리고 있는 전부 리안의 개그 필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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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세계에서 노인이란 조금만 무리해도 허리를 삐끗해버리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특히 무리한 일을 할 땐 높은 확률로 허리가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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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으로 처발라 관리된 몸이라도 개그 필터 앞에선 공평하게 고통받을 뿐이었다. 리안은 반숙을 바라보다가 이내 당황한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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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 전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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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벅지에서 끝없이 피를 뿜어내며 하는 말이라기엔 너무나 태연했다. 반숙에게 온갖 고문을 당해 정신이 무너져 말 잘 듣는 개가 된 남자지만, 본능은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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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장면 앞에서 남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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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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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음…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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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눈앞에 있는 노인이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자신을 풀어줄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고 넋을 놓은 남자가 풀어줄 것 같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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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로 가만히 있기엔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아이리스의 모습이 눈 앞을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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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눈앞에 노약자가 쓰러져 있는데 도와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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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핑계로 자유의 몸이 되기로 결심했다. 속으로 가르간도아를 부르자 손등이 검붉게 빛나며 핏물이 솟아났다. 손목이 묶여있긴 했지만, 손으로 무언가를 쥐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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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츄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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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기가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손에는 어느새 식사 할 때나 사용할 법한 나이프가 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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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응? 파트너 너 왜 꼴이 -….자,잠깐 저,저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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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묶여있는 모습에 의문을 가지던 마검이 갑작스럽게 호통을 치며 손에서 빠져나가 허공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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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익,이이잇?! 이 녀석은 뭐냐 파트너! 설마 내가 없는 사이 다른 마검과 계약한 건가? 그건 이중계약이다! 범죄야! 사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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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자신이 꽂혀있던 자리에 다른 검이 꽂혀있으니 충격이라도 받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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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것보다 나 좀 풀어줘.’
   [ 그런 거라니! 이게 얼마나 중요한데! 파트너와 난 계약을 통해 묶여있는 상태다. 그러니, 파트너의 피는 전부 내 것이다! 그런데 파트너는 나랑 아무런 상의도 없이 처음 보는 녀석에게 내 피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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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처구니없는 떼를 쓰는 마검의 모습에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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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거 아니야. 나도 저 검을 꽂아두고 싶지도 않았고. 뭣보다 이 검은 마검도 아니야. 피도 흡수 못하잖아.’
   [ 뭐? 그게 무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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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분해서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던 건지 마검이 말을 더듬으며 내 허벅지 쪽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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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흐으음,흠…확실히 이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허접한 검일 뿐이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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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분이 훨씬 나아졌는지 목소리가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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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다고 해도 파트너의 피를 탐한 건 괘씸하다! ]
   ‘그거 뽑을 테니까 줄 좀 끊어줘.’
   [ 흥, 그런 거라면 도와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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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이 순식간에 내 손목과 발목, 허리를 고정한 벨트를 베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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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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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러자 마검이 어서 저 허접한 검을 뽑으라며 독촉했다. 나도 굳이 내 몸에 저런 칼을 박아놓을 생각은 없었기에 검 손잡이를 잡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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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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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한 번 더 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검이 심호흡하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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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츄르르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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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흘러내렸던 피와 터져 나오는 피가 허공에 날아올라 마검의 몸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 어떤 불순물도 없이 솟아난 핏물은 생각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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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욕스럽게 피를 흡수한 마검은 이내 뽑혀 나간 검과 비슷한 크기로 변하더니 피가 흘러나오는 상처에 푹하고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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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야, 뭐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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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늘에 손가락 끝이 살짝 찔린 듯한 따끔한 감각에 마검을 보자 마검이 피를 촵촵 흡수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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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흠, 상처를 이대로 두면 위험하지 않겠나? 내가 특별히 붕대 역할을 해주는 것뿐이다! ]
   ‘그런 거라면 다른 기술이 있잖아. 투명한 막 같은 걸로..’
   [ 그으…그런 게 있었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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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에게 눈이 달렸다면 미친 듯이 눈을 굴리고 있을 것 같았다. 더 이상 입씨름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그대로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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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리에서 일어나자 겨우겨우 상체를 일으켜 앉아있는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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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너헉…!”
   “괜찮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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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이 허리를 삐끗하게 된 건 어느 정도 제 탓이기도 했기 때문에 노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노인이 이를 악물며 무어라 소리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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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까짓 게…! 아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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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소리를 내자 허리가 울리는지 노인이 울상을 지으며 허리를 붙잡았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함부로 만지면 더 크게 다치게 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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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럴 땐 내가 직접 손을 쓰기보단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는 게 나았다. 내밀었던 손을 거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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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할아버지께서 허리가 많이 아프신 거 같은데 모셔다드리는 게 어떻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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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쪽에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굳어있는 남자에게 말을 걸자, 남자의 얼굴이 아까와 같은 당황으로 물들었다. 노인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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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리 와서 나를 부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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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의 명령이 떨어지고 나서야 남자는 후다닥 노인에게 다가가 몸을 세워주려 했다.허리 통증이 남아있어 노인은 눈가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겨우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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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어느새 자유의 상태가 된 리안을 바라보며 이를 으드득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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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있었던 수모는 반드시 갚아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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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장하는 빌런같은 대사를 남긴 노인이 남자와 함께 방을 빠져나갔다. 혼자 남은 리안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그들을 따라 방을 나가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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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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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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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문이 잠겨있었다. 리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마검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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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르간도아 잠시만 형태 좀 바꿔봐.”
   [ 나는 굉장히 바쁘다. ]
   “계속 그러면 저녁 안준다?”
   [ 크흑…먹는 걸로 그러는 거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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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서도 스르륵 하고 허벅지에서 뽑혀나오는 모습을 보니 저녁을 굶긴 싫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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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마검에게 내 의지를 전달하여 어떠한 형태로 바꿔줄 것을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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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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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은 긴 철사의 형태로 몸의 형태를 바꾸었다. 그 어떤 문도 열 수 있는 마법의 열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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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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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반숙의 감옥에서 고생하고 있을 때, 아이리스는 초조하게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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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 언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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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을 끝없이 중얼거리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리안과 함께 쓰는 방으로 향했다. 방 한쪽에 있는 옷장을 덜컹하고 열더니 곱게 접혀있는 리안의 옷을 품에 가득 안아 들고 침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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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새가 둥지를 트는 것처럼 아이리스는 리안의 옷가지를 품에 안고 얼굴을 문질렀다. 그를 보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그를 찾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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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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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리라고 했어. 집 잘 지켜달라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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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안된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 아이리스는 잔혹한 상황을 버티기 위해 리안을 구명줄 삼았다. 그가 하는 말이 전부 옳으니 따라야 한다고 단정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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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에 그녀는 아무리 그가 보고 싶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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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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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눈을 감은 채 리안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려보았다. 손에 잡힐 듯 말 듯 한 느낌. 리안은 항상 곁에 있음에도 언젠가 가루가 되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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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서인지는 아이리스도 몰랐다. 그저 그런 느낌이 아이리스를 초조하게 만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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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리안에 관한 다른 기억도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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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에 나가도 상처 하나 없이 돌아오는 리안에게 항상 희미하게 맡아지는 피 냄새,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늘어나는 작은 흉터, 손이 베이거나 어딘가를 다쳐도 별일 아니라며 넘기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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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금방 아물어 상처의 흔적도 남지 않았던 리안의 손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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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제 몸이 금방 회복된다는 이유로 얼마나 쉽게 몸을 함부로 굴렸을까? 얼마나 많은 상처와 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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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어느 순간 툭하고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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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리안이 기다리라고 했어. 집을 잘 지키라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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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자신을 심연으로 끌어당기는 생각을 머릿속에 하얗게 지워버리고 다정한 리안의 목소리를 몇 번이고 머릿속에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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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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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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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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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현관 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리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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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 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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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릿속에서 그리워하던 다정한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드는 것과 동시에 피 냄새가 그녀의 코를 마비시켰다. 은은한 미소가 맴돌던 그녀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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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 생각보다 늦어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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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피범벅이 된 채 웃고 있었다.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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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후원해주신 혈소연님! Moas님! 익명A님! 익명B님! 후원감사합니다! 연재 열심히 하겠습니다 ‘0’9
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3

슬슬 전개를 팍팍 나가야 할 것 같으니 아이리스의 멘탈을 빠그라트리겠습니다!

핫 핫 핫 !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솟구치는 피 분수와 바닥을 구르고 있는 노인, 당황한 듯 입을 살짝 벌린 채 노인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 구속된 채 피 분수를 보며 가르간도아를 부를까 말까 고민하는 리안.

개판이 따로 없었다.

“끄윽,끄흐흑…”

반숙은 나이에 비해 정정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가 몸에 이상이 있을 때마다 최고의 치료사와 신관, 마법사에게 진찰받아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왔다. 그랬기에 이런 끔찍한 고통은 익숙하지 않았다.

‘쯧쯧, 그러게 조심 좀 하시지.’

리안은 속으로 혀를 차며 반숙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사실 반숙이 땅바닥을 구르며 꺽꺽거리고 있는 전부 리안의 개그 필터 때문이었다.

개그 세계에서 노인이란 조금만 무리해도 허리를 삐끗해버리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특히 무리한 일을 할 땐 높은 확률로 허리가 나간다.

돈으로 처발라 관리된 몸이라도 개그 필터 앞에선 공평하게 고통받을 뿐이었다. 리안은 반숙을 바라보다가 이내 당황한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기, 전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나요?”

“…!”

허벅지에서 끝없이 피를 뿜어내며 하는 말이라기엔 너무나 태연했다. 반숙에게 온갖 고문을 당해 정신이 무너져 말 잘 듣는 개가 된 남자지만, 본능은 남아있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장면 앞에서 남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얼어붙었다.

***

‘으음…어쩌지?’

나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눈앞에 있는 노인이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자신을 풀어줄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고 넋을 놓은 남자가 풀어줄 것 같지도 않았다.

이대로 가만히 있기엔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아이리스의 모습이 눈 앞을 아른거렸다.

‘그래, 눈앞에 노약자가 쓰러져 있는데 도와드려야지.’

그 핑계로 자유의 몸이 되기로 결심했다. 속으로 가르간도아를 부르자 손등이 검붉게 빛나며 핏물이 솟아났다. 손목이 묶여있긴 했지만, 손으로 무언가를 쥐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츄르륵.

물기가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손에는 어느새 식사 할 때나 사용할 법한 나이프가 들려있었다.

[ 응? 파트너 너 왜 꼴이 -….자,잠깐 저,저저…! ]

내가 묶여있는 모습에 의문을 가지던 마검이 갑작스럽게 호통을 치며 손에서 빠져나가 허공에 떠올랐다.

[ 이익,이이잇?! 이 녀석은 뭐냐 파트너! 설마 내가 없는 사이 다른 마검과 계약한 건가? 그건 이중계약이다! 범죄야! 사기다! ]

평소 자신이 꽂혀있던 자리에 다른 검이 꽂혀있으니 충격이라도 받은 듯했다.

‘그런 것보다 나 좀 풀어줘.’

[ 그런 거라니! 이게 얼마나 중요한데! 파트너와 난 계약을 통해 묶여있는 상태다. 그러니, 파트너의 피는 전부 내 것이다! 그런데 파트너는 나랑 아무런 상의도 없이 처음 보는 녀석에게 내 피를…! ]

어처구니없는 떼를 쓰는 마검의 모습에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그런 거 아니야. 나도 저 검을 꽂아두고 싶지도 않았고. 뭣보다 이 검은 마검도 아니야. 피도 흡수 못하잖아.’

[ 뭐? 그게 무슨.. ]

흥분해서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던 건지 마검이 말을 더듬으며 내 허벅지 쪽으로 다가갔다.

[ 흐으음,흠…확실히 이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허접한 검일 뿐이군! ]

기분이 훨씬 나아졌는지 목소리가 가벼웠다.

[ 그렇다고 해도 파트너의 피를 탐한 건 괘씸하다! ]

‘그거 뽑을 테니까 줄 좀 끊어줘.’

[ 흥, 그런 거라면 도와주지! ]

마검이 순식간에 내 손목과 발목, 허리를 고정한 벨트를 베어버렸다.

투둑.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러자 마검이 어서 저 허접한 검을 뽑으라며 독촉했다. 나도 굳이 내 몸에 저런 칼을 박아놓을 생각은 없었기에 검 손잡이를 잡아 뽑았다.

푸하학!

다시 한 번 더 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검이 심호흡하는 소리가 들렸다.

츄르르릇!

흘러내렸던 피와 터져 나오는 피가 허공에 날아올라 마검의 몸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 어떤 불순물도 없이 솟아난 핏물은 생각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탐욕스럽게 피를 흡수한 마검은 이내 뽑혀 나간 검과 비슷한 크기로 변하더니 피가 흘러나오는 상처에 푹하고 박혔다.

“아야, 뭐 하는 거야?”

바늘에 손가락 끝이 살짝 찔린 듯한 따끔한 감각에 마검을 보자 마검이 피를 촵촵 흡수하며 말했다.

[ 크흠, 상처를 이대로 두면 위험하지 않겠나? 내가 특별히 붕대 역할을 해주는 것뿐이다! ]

‘그런 거라면 다른 기술이 있잖아. 투명한 막 같은 걸로..’

[ 그으…그런 게 있었던가? ]

마검에게 눈이 달렸다면 미친 듯이 눈을 굴리고 있을 것 같았다. 더 이상 입씨름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그대로 두기로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겨우겨우 상체를 일으켜 앉아있는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너,너헉…!”

“괜찮으세요?”

노인이 허리를 삐끗하게 된 건 어느 정도 제 탓이기도 했기 때문에 노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노인이 이를 악물며 무어라 소리치려 했다.

“네까짓 게…! 아흐흑…”

큰소리를 내자 허리가 울리는지 노인이 울상을 지으며 허리를 붙잡았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함부로 만지면 더 크게 다치게 할 수도 있었다.

이럴 땐 내가 직접 손을 쓰기보단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는 게 나았다. 내밀었던 손을 거둬들였다.

“저, 할아버지께서 허리가 많이 아프신 거 같은데 모셔다드리는 게 어떻습니까?”

“…?!”

한쪽에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굳어있는 남자에게 말을 걸자, 남자의 얼굴이 아까와 같은 당황으로 물들었다. 노인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리 와서 나를 부축해!”

노인의 명령이 떨어지고 나서야 남자는 후다닥 노인에게 다가가 몸을 세워주려 했다.허리 통증이 남아있어 노인은 눈가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겨우 일어났다.

그는 어느새 자유의 상태가 된 리안을 바라보며 이를 으드득 깨물었다.

“오늘 있었던 수모는 반드시 갚아주마…”

퇴장하는 빌런같은 대사를 남긴 노인이 남자와 함께 방을 빠져나갔다. 혼자 남은 리안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그들을 따라 방을 나가려 했다.

철컥.

“…어?”

그런데 문이 잠겨있었다. 리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마검에게 말했다.

“가르간도아 잠시만 형태 좀 바꿔봐.”

[ 나는 굉장히 바쁘다. ]

“계속 그러면 저녁 안준다?”

[ 크흑…먹는 걸로 그러는 거 아니다! ]

그러면서도 스르륵 하고 허벅지에서 뽑혀나오는 모습을 보니 저녁을 굶긴 싫었나보다.

나는 마검에게 내 의지를 전달하여 어떠한 형태로 바꿔줄 것을 부탁했다.

스르륵.

마검은 긴 철사의 형태로 몸의 형태를 바꾸었다. 그 어떤 문도 열 수 있는 마법의 열쇠였다.

***

리안이 반숙의 감옥에서 고생하고 있을 때, 아이리스는 초조하게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리안, 언제와?’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을 끝없이 중얼거리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리안과 함께 쓰는 방으로 향했다. 방 한쪽에 있는 옷장을 덜컹하고 열더니 곱게 접혀있는 리안의 옷을 품에 가득 안아 들고 침대로 향했다.

마치 새가 둥지를 트는 것처럼 아이리스는 리안의 옷가지를 품에 안고 얼굴을 문질렀다. 그를 보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그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안된다.

‘기다리라고 했어. 집 잘 지켜달라고 했어.’

그러니까 안된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 아이리스는 잔혹한 상황을 버티기 위해 리안을 구명줄 삼았다. 그가 하는 말이 전부 옳으니 따라야 한다고 단정 지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아무리 그가 보고 싶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리안,리안…’

아이리스는 눈을 감은 채 리안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려보았다. 손에 잡힐 듯 말 듯 한 느낌. 리안은 항상 곁에 있음에도 언젠가 가루가 되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어째서인지는 아이리스도 몰랐다. 그저 그런 느낌이 아이리스를 초조하게 만들 뿐이었다.

리안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리안에 관한 다른 기억도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경기에 나가도 상처 하나 없이 돌아오는 리안에게 항상 희미하게 맡아지는 피 냄새,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늘어나는 작은 흉터, 손이 베이거나 어딘가를 다쳐도 별일 아니라며 넘기는 태도.

아이리스는 금방 아물어 상처의 흔적도 남지 않았던 리안의 손을 떠올렸다.

그는 제 몸이 금방 회복된다는 이유로 얼마나 쉽게 몸을 함부로 굴렸을까? 얼마나 많은 상처와 피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어느 순간 툭하고 끊어졌다.

‘리안,리안이 기다리라고 했어. 집을 잘 지키라고 했어.’

아이리스는 자신을 심연으로 끌어당기는 생각을 머릿속에 하얗게 지워버리고 다정한 리안의 목소리를 몇 번이고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다.

달칵.

“…!”

그때 현관 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리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아이리스 나왔어.”

머릿속에서 그리워하던 다정한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드는 것과 동시에 피 냄새가 그녀의 코를 마비시켰다. 은은한 미소가 맴돌던 그녀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갔다.

“미안, 생각보다 늦어버렸네.”

리안은 피범벅이 된 채 웃고 있었다.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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