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7

   교수가 이만 쉬러 가라며 떠나간 후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릿속으로 계획을 짜 둔 상태였기에 망설임은 없었다.

   

   소울 아카데미가 시작됐을 때 유저가 해야 하는 일은 정해져 있다.

   

   우선은 수강을 할 과목을 정하는 것.

   

   소울 아카데미의 수업을 들으면 그 과목과 관련된 숙련도가 가파르게 상승하기 때문에 이 과목을 잘 짜는 것이야 말로 소울 아카데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만 했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았다.

   

   둔기계열 탱커가 들어야 할 과목은 정해져 있으니까.

   

   다음으로 해야 하는 일은 소울 아카데미의 시작 지점에서 얻을 수 있는 것 중에 유용한 것을 취하는 일이었다.

   

   소울 아카데미는 어쨌든 간에 게임이다.

   

   그래서 시작 부분부터 사기적인 아이템을 얻을 수는 없게 되어있다.

   

   당장 내가 들고 있는 루엘의 메이스만 하더라도 원래는 소울 아카데미 2학년이 되어 아카데미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 때에나 얻을 수 있는 무기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별 것 아닌 것들 중에서도 초반부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게 있다.

   

   난 지금 그것들을 챙기러 갈 생각이다.

   

   “어디 가는 거야?”

   

   뒤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흠칫 놀라 멈추고 고갤 돌리니 내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는 프레이가 보였다. 진짜 깜짝 놀랐네.

   

   얘 언제부터 내 뒤를 따라 온 거야?!

   

   <몰랐나?>

   ‘당연히 몰랐죠! 왜 말씀 안 해주신 거에요?!’

   <알고 모르는 체 하는 줄 알았다만.>

   

   할배! 내가 그렇게 몹쓸 인간처럼 보여요?

   

   스킬 때문에 험한 말투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 나쁜 인간은 아니거든요?!

   

   물론 프레이가 귀찮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그걸 대놓고 티내진 않아요!

   

   “응?”

   

   프레이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하아. 자기가 잘못했다는 생각은 조금도 못하고 있는 애한테 뭐라 그러겠냐.

   

   이게 다 할배가 안 알려준 잘못이지. 뭐.

   

   ‘도서관이요.’

   “도서관”

   

   “도서관? 네가 왜 거기가?”

   

   ‘제가…’

   “내가 도서관 가는 게 뭐가 잘못됐어?”

   

   “거기 재미없잖아.”

   

   그 소리였어?

   

   도서관이 재미가 없긴 하지.

   

   예전에 학교 도서관을 취침장소로 사용하던 입장에선 납득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그보다 나랑 같이 수련장 가자. 재밌을 거야.”

   

   ‘죄송하지만…’

   “하. 허접 검사. 난 너처럼 한가하지 않거든?”

   

   “으응. 아쉽네. 알겠어.”

   

   프레이는 그리 답을 하고는 등을 돌려서 떠나가 버렸다.

   

   쟤 걷는데 발소리가 하나도 안 나네.

   

   저러니까 뒤에 따라오고 있는데 눈치를 못 챘지.

   

   <그래서 도서관엔 무얼 하러 가는 게냐? 네가 공부를 할 위인은 아니잖냐.>

   ‘저도 공부할 땐 하거든요?’

   <그랬나? 책만 펼치면 퍼질러자던 걸 내가 똑똑히 보았다만.>

   

   그… 그거야 기반 지식이 없어서 그렇죠!

   

   나도 처음부터 잘 가르쳐 주면 공부 잘 할 수 있거든요?!

   

   <잡소리는 됐고. 도서관에 왜 가는 지가 말해 보거라.>

   ‘…아티팩트를 얻으러요.’

   <아르마디의 계시를 받은 게냐?>

   ‘네에.’

   

   사실 아르마디는 아무것도 해준 적이 없지만 할배한테는 그렇게 핑계를 댔다.

   

   내가 게임에 빙의했다는 걸 납득시키는 것보다 아르마디의 핑계를 대는 게 편했으니까.

   

   <흐음. 과연 아르마디께서 사도를 돌봐주시나 보구나.>

   ‘…네에.’

   

   나의 지식이 아르마디의 공으로 바뀌는 건 열 받지만 방법이 없었다.

   

   젠장. 언젠가는 꼭 아르마디가 허접 무능 사디 주신이라는 걸 알리고 말 거야.

   

   도서관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예전에 마법 계열 캐릭터를 키울 땐 캐릭터를 여기다 하루 종일 쳐 박아 놨었는데.

   

   탱커로 하기로 해서 다행이다.

   

   쓸데없이 머리 쓰는 직업으로 했으면 그 고행을 내가 직접 해야 했던 거잖아.

   

   머리가 아픈 것보다는 몸이 고생하는 게 낫지. 암.

   

   도서관으로 들어온 나는 사서의 안내도 받지 않고 바로 원하는 곳을 찾아냈다.

   

   C62열 책장의 아래에서 3번째 줄을 살펴 보면… 있다.

   

   ‘마력의 샘에 관한 논문.’

   

   그 제목을 발견한 나는 바로 책을 펼쳐서 맨 뒷 페이지를 펼쳤다.

   

   거기엔 내가 찾던 게 있었다.

   

   [이 논문을 읽어 준 후배에게.]

   [내 바보 같은 연구를 찾아봐줘서 고마워. 너를 위해 내가 특별한 장치를 이 책에 숨겨뒀어. 이 아래의 빈칸에 어떤 단어를 적으면 놀라운 선물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이 단어에 대한 단서는 내 모든 논문의 핵심이 되는 단어라는 것! 잘 찾아봐!]

   

   – 띠링

   

   [케르타의 선물]

   [책의 암호를 풀어주세요]

   [보상 : ???]

   

   좋았어.

   

   소울 아카데미의 히든 퀘스트 중 하나인 케르타의 선물은 도서관을 뒤지고 다니다 보면 얻을 수 있는 퀘스트 중 하나다.

   

   내용만 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퀘스트지만 이 게임이 막 나왔을 당시에 이 퀘스트는 유저들에게 난제로 다가왔다.

   

   마법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케르타가 쓴 논문은 수백 개가 넘고 그 안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단어를 찾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으니까.

   

   이런 수수께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여러 의견을 내놓았지만 퀘스트는 쉬이 해결되지 않았다.

   

   그렇게 점점 사람들이 지쳐가며 이 퀘스트에 무슨 버그가 있는 것 아냐니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었을 즈음.

   

   한 사람이 이 퀘스트를 클리어 한 걸 인증했다.

   

   사람들을 놀랐다.

   

   왜냐하면 퀘스트를 클리어 한 그 사람은 고인물도 뭣도 아닌 늅늅이 중 한 명이었으니까.

   

   잔뜩 흥분한 고인물들이 뭉쳐서 그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어떻게 클리어를 한 거냐고.

   

   그러자 늅늅이는 이걸 왜 모르냐는 듯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논문의 핵심은 당연히 저자 아닌가요?’

   

   그랬다. 이 빌어먹을 문제는 학문이 아니었다.

   

   넌센스였던 거다.

   

   그 땐 진짜 허무했었지.

   

   현자타임이 오지게 와서 그 날 소주를 깠었다니까.

   

   ‘케르타 벌컨’

   

   [퀘스트 클리어!]

   [보상이 주어집니다]

   

   그 이름을 적어넣으니 책장 뒤 편에서 마법진이 빛나더니 그 한 가운데에서 반지가 튀어 나왔다.

   

   그 반지에다 감정을 쓰자 내 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케르타의 반지]

   [반지 아래에 수없이 많은 마법진이 그려진 반지입니다. 신기한 힘이 느껴집니다.]

   

   숙련도가 낮은 감정이라 설명이 제대로 나오진 않았지만 이 반지의 효과는 이렇다.

   

   모든 스킬의 마력 소모량 20% 감소.

   

   그리 대단한 효과는 아니고 실제로 스펙이 짱짱해지는 후반부에는 바로 버려지는 반지지만 초반인 지금은 다르다.

   

   아르마디의 손길 다섯 번을 쓰면 더 이상 마법을 쓸 수 없게 되는 게 지금의 나다.

   

   이런 마력 조루에게 케르타의 반지는 귀중한 물건인 것이다.

   

   뭣보다 이 반지는 나중에 중요한 퀘스트의 트리거가 되니까.

   

   

   챙겨둬야지.

   

   케르타의 반지를 엄지에 끼워 넣으니 내 손가락에 맞춰 사이즈가 줄어들었다.

   

   역시 대마법사가 만든 반지야!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만족스럽게 구경하던 나는 도서관 한 편에 걸려 있는 시계를 확인했다.

   

   조금 있으면 4시네.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가는 거 아냐?

   

   나는 가만있을 시간이 없음을 깨닫곤 다급히 발을 움직였다.

   

   *

   

   그 후로 나는 쉴 새 없이 발을 움직이며 소울 아카데미 이곳 저곳을 돌아 다녔다.

   

   받아두어야 하는 퀘스트를 받고 아카데미 곳곳에 숨겨진 아이템을 찾아내기 위해서.

   

   이 둘 중에서 퀘스트를 받아내는 과정엔 여러모로 고난과 역경이 따랐다.

   

   문제가 되는 건 내 평판과 메스가키 어투였다.

   

   소울 아카데미가 게임일 적에는 상대가 누구던 간에 말을 걸면 퀘스트를 주었지만 현실이 되니까 다르더라고.

   

   나처럼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람한텐 아예 부탁 같은 걸 꺼내지도 않더라.

   

   그에 반해 아이템을 찾는 것은 편했다.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된단 사실이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그렇게 아카데미 내에서 해야 할 일을 대략적으로 끝낸 내가 마지막으로 내가 발을 옮긴 것은 소울 아카데미의 수련장이었다.

   

   입학식의 첫 날이기에 노을로 물들어가는 이 곳에서 수련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본래부터 아카데미에 재학을 하는 이들이었다.

   

   보통 신입생들은 지금쯤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 아카데미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든가 시간표를 짜느라 고민을 하고 있을 걸.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디에나 별종이 있기 마련이니까.

   

   내게 수련장에 가자고 권유를 했었던 프레이는 혼자서 수련장에 와선 구석에 자리를 잡고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얼마나 집중을 한 것인지 빛을 잃어버린 두 눈에는 오롯이 자신의 앞에서 휘둘러지는 검만이 담겨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검을 휘두르는 프레이의 아래에 그녀가 흘린 땀으로 원이 그려져 있단 사실이었다.

   

   얘 나한테 권유를 하고 거절당한 순간부터 계속 검을 휘두르고 있었던 건가?

   

   수련광이구나.

   

   조금은 동질감이 느껴지네.

   

   나도 알른 가문의 영지에서 매일 저런 일상을 보냈으니 말야.

   

   내 시선을 느낀 걸까.

   

   프레이는 검을 휘두르다 말고 멀뚱히 나를 쳐다봤다.

   

   그러다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오더니 프레이가 검을 내리곤 빠른 속도로 내게 달려왔다.

   

   “대련하러 온 거야?!”

   

   ‘내일 할 거라니까요?’

   “허접 검사. 기억력이 금붕어랑 비슷해? 내일이라니까?”

   

   “그럼 왜 여기 온 건데?”

   

   ‘만날 사람이 있어서요.’

   “허접 하나를 찾아내야 하거든.”

   

   “허접?”

   

   수련장을 처음 사용하는 주인공에게 여러 가지를 알려주는 착한 선배.

   

   그렇지만 시비를 걸어 쓰러트리는 데 성공하면 좋은 스킬을 주기 때문에 항상 유저한테 얻어맞고 다니던 불쌍한 NPC.

   

   난 소울 아카데미의 고인물답게 그 사람을 괴롭히러 왔다.

   

   지금 시간대가 저녁이니까 분명 그 사람이 수련장에 모습을 드러낼 때인데.

   

   아 저기 있다.

   

   한 가운데에서 목검으로 땅을 짚은 채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발견한 나는 즉시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내 얼굴을 보고서 뜨악한 듯 뒤로 주춤거렸지만 그가 도망치는 것보다 내가 말을 거는 게 더 빨랐다.

   

   ‘저기요.’

   “야.”

   

   “네?!”

   

   ‘3학년 선배님이시죠?’

   “머저리처럼 보여서 물어보는 건데. 혹시 3학년 선배야?”

   

   “…네. 그렇습니다만.”

   

   ‘저랑 대련해 주시겠어요?’

   “몸풀기에 적당할 것 같아서 그러는데 머저리 선배. 대련해주겠어?”

   

   대놓고 무시하는 발언에 남자의 이마에 힘줄이 새겨졌다.

   

   저 정도로 화가 났으면 물러서진 않겠네.

   

   “저기.”

   

   퀘스트가 잘 풀릴 것 같다 생각을 하던 중 내 옆을 졸졸 따라 온 프레이가 목소리를 냈다.

   

   “왜 이런 약골이랑 대련해? 재미없을 거야. 나랑 하자.”

   

   ‘싫어요…’

   “싫어. 오늘은 이 머저리 선배가 적당해 보인단 말이야. 허접 검사 넌 혼자서 놀고 있어.”

   

   “약골을 괴롭히는 건 나쁜 일. 강한 사람은 강한 사람이랑 싸워야 해.”

   

   ‘그러니까…’

   “그러니까 난.”

   

   프레이를 쫓아내기 위해 그녀를 설득하다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서 시선을 돌리니 잔뜩 열이 받아서 날 노려보는 남자가 있었다.

   

   “당신들! 1학년에 유망주면 다입니까?! 저는 3학년의 선배라고요!”

   

   – 띠링

   

   [선배의 위용 박살내기]

   [3학년 선배를 쓰러트리세요.]

   [보상 : 스킬 ‘언더독’]

   

   본의로 도발한 건 아니지만 일은 잘 풀렸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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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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