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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

       "로즈메리."

         

       나는 그녀를 불렀다.

         

       지금 향하는 곳은 파라메르 수색대가 모이는 마을인 입구 마을 멜란사.

         

       하지만 그곳까지 한 번에 도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말을 타고 가도 보름이 넘게 걸리는 거리다.

         

       이참에 로즈메리의 호감도도 살짝 올려볼까. 겸사겸사 가르칠 것도 있으니.

         

       "로즈메리."

       "……"

       "어허."

       "……"

       "주인님의 말이 들리지 않느냐?"

       "…으득."

         

       말이 휙 멈췄다. 그녀가 돌아보았다.

         

       "뭐요."

       "더 예쁘게."

       "…왜요."

       "슬슬 야영하자고요."

       "벌써요?"

         

       로즈메리가 하늘을 흘깃 바라보았다. 그 말대로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다.

       하지만 느긋하게 가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일찍 도착해도, 남은 파라메르 수색대 전원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면 굳이 마을에 먼저 도착할 이유가 없었다. 가는 길에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주는 게 훨씬 낫겠지.

         

       나는 말에서 뛰어내렸다. 여전히 올라탄 로즈메리의 다리를 툭 건드렸다.

         

       "야영 준비 안 해요?

       "……"

       "안 배우고 싶나 봐요? 형상 변환."

       "…크윽!"

         

       로즈메리는 이를 갈면서도 야영 준비를 했다. 나는 그늘에 앉아 보기만 했다.

         

       아!

         

       편하다!

         

       이게 여행이지!

         

       그래도 뭐, 적당히 도와줄까. 저녁은 내가 직접 하는 게 더 맛있을 테니 말이야.

         

       몸을 일으켰다. 눈에 보이는 짐승을 하나 때려잡아 돌아왔다. 배낭처럼 생긴 포켓 안에는 먹을 것이 가득했지만 건드리지 않았다. 저건 다 쓸 곳이 있으니, 식량을 공수할 수 있을 때는 공수하는 게 낫다.

         

       고기를 굽고, 시간을 보내자니 벌써 노을이 졌다.

         

       피어오르는 연기와 붉은 태양빛이 서로 섞였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불타던 장작이 툭 하고 부러졌다. 나는 멍하니 불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라는 아직인가.

         

       -라 언니는 아직 방에 틀어박혀 있어요.

       "성흔에 대한 거 아직도 찾고 있어요?"

       -네…사실…다른 무언가를 연구하고 있는 거 같기도 해요.

         

       무언가를 연구하고 있다라.

         

       뭐, 알아서 하겠지.

         

       사슴 통구이를 한 바퀴 돌렸다. 조미료도 적당히 뿌려줬다. 하도 고기를 많이 구워서 이제는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고기 요리법(C)이 고기 요리법(B)으로 변합니다.]

         

       …진짜 많이 굽기는 했나 보네.

         

       뒷다리를 찢었다. 로즈메리에게 툭 건넸다.

         

       "자요."

       "……?"

       "독 안 탔다. 빨리 먹어라."

       "…안 먹어요."

       "그러던가."

         

       나는 뒷 다리를 우득 뜯었다. 음. 역시. 휴대용 식량하고는 맛이 틀리다니까.

       아무리 잘 만들었다고 해도, 즉석에서 만든 요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법이지. 나는 뼈에 붙은 속살까지 낼름 핥아 먹었다.

         

       "음. 맛있다."

       "……"

       "왜 이렇게 맛있지? 대체 누가 구운 걸까?"

       "……"

       "손이 떨려…하아하아…내가 나도 모르게 약이라도 탔나…"

       "……"

       "이걸 못 먹으면 진짜 평생 후…"

       "아. 시발! 먹으면 될 거 아니에요!"

         

       진작 그랬어야지.

         

       로즈메리에게 뒷다리를 하나 집어던져 줬다. 그녀는 싫어하던 것과는 달리, 막상 주니 허겁지겁 뜯어 먹었다.

         

       "로즈메리. 일단 검부터 버려요."

       "…뭐요?"

       "먹으면서 들어요. 자. 오늘부터 당신이 쓸 무기."

         

       나는 팔찌 형태의 포켓에서 물건을 꺼냈다. 따로 주문했던 무거운 도끼가 쿵 하고 떨어졌다.

       한 손으로 쥐는 도끼. 내가 가진 것과 같은 것이다.

         

       로즈메리가 들고 다니는 무기와는 정 반대의 무기지.

         

       "…도끼?"

         

       그녀가 인상을 팍 썼다.

         

       "저보고 야만인들이나 쓰는 무기를 쓰라고요?"

       "이스칸달 교단이 들으면 서운하겠는데."

       "그 교단은 애초에 야만인들이 세운 종교잖아요! 저는 쓰기 싫어요! 원래 가지고 다니는 검으로 연습할 거예요!"

       "원래 있던 건 압수."

       "누, 누구 마음대로?!"

       "애초에 로즈메리. 우리 귀여운 애완고양이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고 있어요?"

       "그딴 호칭 좀 그만 불러요!"

         

       나는 약해져 가는 불꽃을 나뭇가지로 쑤셨다.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당신의 장점은 속도나 기교가 아니에요. 라다토크가 가진 걸 당신이 손에 넣을 수는 없다고요."

       "그 인간 이야기는 그만 해요!"

       "아니지. 계속 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 텐데요. 로즈메리는 은연중에 라다토크를 따라가려고 하잖아요. 왜?"

         

       불꽃이 확 일어났다.

         

       "당신은 라다토크를 질투하잖아요?"

       "그 입 닥치라고!"

         

       로즈메리가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나는 불쏘시개를 들어 올렸다.

       그녀의 머리를 향해 가볍게 휘둘렀다.

         

       깡!

         

       "아악!"

         

       로즈메리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나는 불쏘시개를 흔들었다.

         

       "규칙 하나. 말도 없이 대드는 건 금지다. 로즈메리. 적당히 해. 봐주는 데도 한계가 있어."

       "이, 이쪽이야말로…!"

       "정 나를 때리고 싶으면 하루 한 번, 대련을 해줄 테니 거기서 해. 밥 먹는 중에 드잡질은 하지 말자고. 밥맛 떨어지니까."

         

       나는 남은 고기를 입에 넣고 씹었다. 음. 이쪽 부분은 질기군.

         

       "라다토크가 어지간히 트라우마인가 보군. 하지만 멍청아. 네 장점은 그게 아니잖아. 왜 가지고 없는 걸 탐을 내?"

       "…뭐요?"

       "가지지 못한 걸 가지려 하지 말고, 들고 있는 것부터 잘 다뤄. 네 장점이 뭐야? 정말 몰라?"

       "…성력?"

         

       깡!

         

       "아, 아프다고요!"

       "아프라고 때린 거야. 성력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네 성력은 라다토크랑 엇비슷해. 네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특출난 장점은…"

         

       나는 도끼를 불쏘시개로 가리켰다.

         

       "힘이지. 무식한 년아. 그러니까 얌전히 저거나 들어. 쓸데없는 기교라던가, 발놀림 같은 거 하지 말고. 나랑 싸웠을 때도 현란하게 안 싸웠으면 네 승률이 조금이나마 높게 올라갔었을 테니까."

         

         

         

         

       . . .

         

         

         

       특훈이 이어졌다. 나는 봐줄 생각이 없었다. 로즈메리는 로즈메리. 게임 속보다 약하다고는 해도, 기초는 완벽하게 잡혀 있었다.

         

       가르치는 건 내가 가진 스킬 중 하나. '절벽을 타오르는 불 – 길로틴(Guillotine)(A)'이었다. 그녀가 나중에 홀로 익힐 형상변환은 도끼와 관련되어 있었다. 그녀가 가진 특출난 육체 강화 성법과도 잘 어울리는 무기지.

         

       게임 속에서 진행하다 보면 로즈메리와 친해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때 그녀의 특수 대사를 들을 수 있었다.

         

       「진작 제가 가야 할 길을 알았다면 어땠을까요. 지금 이것보다 훨씬 강해졌을 수 있었을 텐데…아쉬워요. 정말로.」

       

       그 아쉬움. 진짜 로즈메리에게 풀어주마. 나는 어깨에 도끼를 졌다. 수련해야 하는 건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이것도 얼른 S랭크로 만들고…창술도 S랭크로 만들어야 하니까…

         

       갈 길이 멀다. 베아트리체에게 고유 성법까지 배워야 하는데 언제 다 배우냐.

         

       …가만히 쉬고 있을 때가 아니었구만?

         

       "내, 내가…야만인들의 무기를…"

       "싫으면 지금이라도 때려치우던가."

         

       나는 도끼를 가볍게 휘둘렀다. 흠. 좋군. 역실 레벨이 깡패긴 하다니까. 50을 넘으니 어지간한 건 다 깃털처럼 가볍구만?

         

       "그런데 지금 때려치우면, 나는 물론이고 라다토크도 평생 못 이긴다."

       "……"

       "왜? 검 돌려줘?"

       "…으득."

         

       로즈메리는 도끼를 잡았다. 빽 소리를 질렀다.

         

       "뭐부터 하면 되는데요?!"

       "잡는 방식부터 배워야지."

         

       나는 로즈메리의 손을 감쌌다. 화들짝 놀란 고양이 귀가 삐죽 섰다.

         

       "뭐, 뭐 하는 거예요?!"

       "잘못 졌으니까 가르쳐 주는 거 아니야. 파지법은 이렇게. 자. 어때?"

       "…아까보다 가볍네요?"

       "드는 방법만 제대로 알아도 느낌이 달라지지. 쥐는 법부터 연습해. 그다음은 가만히 들고 있는 법. 그다음은 들고 걷는 법."

       "휘두르는 법은요?"

       "마지막이야."

         

       나는 도끼를 허공에 던졌다가 잡았다. 번개처럼 휘둘렀다.

       거대한 나무가 우드득하며 꺾였다. 굉음을 내며 쓰러졌다.

         

       "다 배우면 성력이 없어도 이렇게 만들 수 있지. 어때? 흥미가 좀 생겨?"

       "……"

         

       로즈메리가 입을 뻐금거렸다. 자신이 쥔 도끼를 내려다봤다.

       인상을 쓴 건 여전했다. 하지만 말없이 도끼를 든 손에 힘을 주는 게 보였다.

         

       불평불만은 많아도 결국엔 하는 녀석이다. 강함에 목메는 녀석이지.

         

       그럼 어디 나도 한 번 해볼까.

         

       베아트리체의 영체가 뿅 하고 튀어나왔다. 내 어깨에 앉아 속삭였다.

         

       【도와줄까요?】

       “자세 봐주면 고맙죠.”

         

       베아트리체는 언젠가부터 선뜻 먼저 도와주겠다고 말하고는 했다.

         

       흐음. 혹시 나…

         

       조련사에 소질 있나?

         

         

         

       . . .

         

         

         

       작은 선술집은 언제나 시끌벅적했다. 일을 끝마친 농부들이 돌아와 빈속에 술부터 집어넣는 게 일상이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조용했다. 멜란사의 선술집의 사장은 손님들의 눈치를 봤다.

         

       평소의 손님들이 아니다. 보기 힘든 기묘한 조합.

         

       말없이 안주를 집어 먹고 있는 기사들.

       열띤 토론을 나누고 있는 마법사들.

       자신들끼리 떠들다가 테이블에 머리를 박는 용병들.

       신기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엘프들.

       쭈뼛거리며 서로의 눈치만을 보고 있는 사제들.

         

       카운터 밑에 숨은 사장은 근처에 파라메르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날짜가 되기는 했지. 그렇다면 저들이 이번 희생양들인가.

         

       시선이 바뀌자 안타까움이 뒤따랐다. 가게 사장은 한숨과 함께 서비스로 줄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고작 교단 주제에…"

         

       기사들이 앉은 테이블에서 사나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국 기사를 기다리게 하는 건가?"

       "혹시 도망이라도 간 거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파라메르 수색대는 사망확률이 높은 걸로 유명하니까요."

       "라의 교단에 전서구를…"

         

       쾅!

         

       용병들이 앉은 테이블에서 술잔이 큰 소리를 냈다.

         

       "늦은 걸로 따지자면 그쪽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기사 나리들?"

       "…지금 뭐라고 했지?"

       "아니, 뭐. 틀린 말도 아니고. 그렇지 않나? 어차피 도착은 오늘 자정까지잖아? 따지고 보면 지각도 아니지."

       "한 시간 남았네."

       "역시 이상한 부분에서 깐깐하다니까. 기사들은."

       "이 개새끼들이…뚫린 입이라고 잘도…"

         

       마법사가 휙 일어섰다.

         

       "지, 진정하세요! 두 분 모두! 여기서 싸우시면 안 돼요!"

       "그럼 밖에서 싸우란 말입니까? 마법사님?"

       "그, 그런 소리가 아니라! 아무튼, 싸우지 말라는 소리예요!"

         

       엘프들이 콧방귀를 꼈다.

         

       "인간들이란."

       "여차할 때 버리는 게 나아 보입니다. 플로라님."

       "도착하기도 전에 내분이라니…정말 형편없네요."

         

       사제들은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 그저 눈치만 보고 있었다.

         

       기사가 일어섰다.

         

       와장창!

         

       용병들의 테이블이 뒤집혔다.

         

       "따라 나와라."

       "시발. 밥 먹고 있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던데.“

       "개새끼만도 못한 새끼네."

       "…이 천한 것들이!"

       "싸, 싸우지 말라니까요!"

         

       일촉즉발의 상황. 사장은 가게 안의 물건이 많이 부서지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아무 신이든 상관이 없으니 제발 기적을.

         

       쾅!

         

       기적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앞서 들어온 소년이 어깨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냈다. 입고 있는 옷은 성한 곳 없이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분위기가 굳었다. 모두가 말을 멈추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수색대원을 쳐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검은 머리의 소년이 한숨을 내쉬었다. 중얼거리는 혼잣말은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이번에도 개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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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성기사가 성물을 독차지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 world where magic reigns supreme and the influence of gods wanes, a young boy finds himself unexpectedly thrust into the role of an acolyte in the declining Sun God’s Temple. Blessed with the divine stigma of the Sun God, he must navigate the temple’s internal politics, the hostility of his fellow acolytes, and the challenges that come with his newfound powers.

As he delves deeper into the mysteries of the temple, he discovers hidden secrets and powerful artifacts that could change the course of his destiny. With the guidance of an enigmatic senior acolyte and the unwavering faith in his own abilities, he sets out to prove his worth and carve his own path in a world that has all but forgotten the true power of the di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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