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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

       나는 레비나스를 찾아 밖을 돌아다녔다.

       그녀는 나와 함께 일군 밭에서 당근을 수확하고 있었다.

       

       “레비나스, 뭐해?”

       

       “당근 뽑는다! 레비나스는 샤부샤부에 당근을 넣어 먹을 거다!”

       

       “그렇구나.”

       

       직접 키운 당근을 넣어 먹는다니.

       나쁘지 않은 발상이다.

       나는 레비나스를 돕기 위해 그녀의 옆에 쪼그려 앉았다.

       

       “왕은 샤부샤부에 뭐 넣어 먹을 거냐?!”

       

       “그, 글쎄? 그냥 있는 거 먹으면 되지 않을까?”

       

       한여름이 알아서 잘 준비해 줬을 테지.

       딱히 뭘 구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은 그때.

       레비나스가 내 등을 콩콩 두드렸다.

       

       “뭐든 넣어 먹을 수 있는 요린데?! 이런 기회 쉽게 안 오는데?!”

       

       “어···”

       

       레비나스는 샤브샤브를 대체 어떤 요리로 생각하는 걸까?

       정말로 뭐든 다 넣어 먹을 수 있는 건 아닌데.

       어른인 내가 어린 그녀의 생각을 알 순 없었기에 말없이 당근 뽑는 걸 도울 뿐이었다.

       

       “왕은 이것저것 안 넣어 먹을 생각이냐?”

       

       “으, 응. 뭘 넣어 먹어야 할지도 모르겠어. 샤브샤브에 어울리는 요리도 아니고.”

       

       “그래? 왕은 원래 뭐 먹었는데?”

       

       원래 먹었던 음식들.

       샤브샤브에 어울리는 요리는 아니었다.

       그저 레비나스가 궁금해하길래, 하나씩 짚어 볼 뿐이었다.

       

       “송사리나 민들레, 옥수수 가루 같은 거 먹었어. 정말 먹을 거 없을 땐 메뚜기도 잡아먹었고.”

       

       “응! 그럼 그거 넣어 먹자!”

       

       “아, 아니···”

       

       다른 건 몰라도 메뚜기는 한여름이 질색하는데.

       급히 거절하려는 순간, 레비나스가 눈을 빛내며 풀숲을 향해 달렸다.

       

       “메뚜기다!”

       

       “으, 응?”

       

       잔디 위에 풀무치 한 마리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날개의 형태와 다리에 돋아난 가시의 위치가 아침에 잡았던 녀석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너 아침에 그 녀석이구나.

       근데 내가 이런 걸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나?

       혼자서 감탄하는 순간, 레비나스가 풀무치를 향해 폴짝 뛰어올랐다.

       

       탓-!

       두 손으로 풀무치를 향해 달려들었으나, 녀석은 폴짝 뛰어 저만치 달아날 뿐이었다.

       레비나스의 점프력이 워낙 좋은 탓에 높이 뛰어 도망칠 기회를 준 탓이었다.

       

       “으잉?”

       

       제 손에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이 실망스러웠던 걸까?

       레비나스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래도 그녀에게 풀무치 잡는 법을 알려 줘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너무 높게 뛰면 안 돼.”

       

       “그, 그러냐?”

       

       “응.”

       

       나는 레비나스에게 시범을 보이듯 멀리 도망친 풀무치를 향해 다가섰다.

       곧바로 풀무치를 향해 두 손을 뻗자, 녀석이 간단하게 내 손에 붙잡혔다.

       오랜 기간 메뚜깃과의 곤충을 잡아온 노하우 덕분이었다.

       

       “잡았네?!”

       

       “응. 나처럼 한번에 덮쳐서···”

       

       레비나스에게 다시금 풀무치 잡는 법을 알려주려는 그때.

       근처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다급히 옆을 바라보자, 저번에 도둑을 잡아주었던 중년 남성과 처음 보는 무리가 그의 곁에 서 있었다.

       사실 처음 보는 건 아니었다.

       길드 건물을 오가며 얼굴 정도는 본 적 있는 자들이었으니까.

       

       “앗! 마스터다!”

       

       “···뭣들하고 있어?”

       

       “왕이랑 샤부샤부에 넣어 먹을 거 찾고 있었다!”

       

       “샤브샤브···?”

       

       마스터의 시선이 레비나스의 손에 들린 당근으로 향했다.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손에 들린 풀무치를 보고는 움찔 몸을 떨었다.

       

       “나는 당근 넣어 먹을 거고 왕은 메뚜기를 넣어 먹을 거다!”

       

       “메뚜기를···?”

       

       마스터와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입을 헤 벌렸다.

       무언가를 웅성거리기도 했는데, 굳이 신경 쓰지는 않기로 했다,

       마스터의 태도에 조금 당황스러웠던 탓이었다.

       

       “아, 음···”

       

       메뚜기를 샤브샤브에 넣어 먹으면 안 된다는 건 나 또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불가능하지는 않을 테지만, 한여름이 곤충요리는 질색하니까.

       그녀가 싫다는 건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너 원래 곤충도 잡아먹고 그래?”

       

       “네, 네에··· 정말 배고프면 먹는데, 샤브샤브에는 안 넣을 거예요. 사람들이 싫어하더라구요.”

       

       “그렇군.”

       

       입술을 턱 끝까지 내린 마스터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꺼내 들었다.

       저번에 나와 레비나스에게 주었던 초콜릿 뭉텅이였다.

       

       “초코!”

       

       “이것도 샤브샤브에 넣어 먹어.”

       

       “아! 그런 방법이!”

       

       레비나스가 폴짝 뛰며 초콜릿을 받아들였다.

       나는 그런 마스터의 행동에 자리에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장난··· 이겠지?’

       

       아무리 그래도 샤브샤브에 초콜릿을 넣어 먹는다니.

       메뚜기보다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스터가 우리한테 장난을 친 거라고 레비나스에게 알려주고 싶었으나,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바로 이 세계의 상식이 본래의 지구랑은 다르다는 거였다.

       

       ‘쌈장도 없었고, 이상한 나루 고기라는 것도 먹었지···’

       

       식문화가 다르기에 안된다며 확답을 내렸다가 망신을 살 수 있었다.

       이럴 때에는 그냥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게 최선이었다.

       적어도 반은 갈 테니까.

       

       “마스터 고맙다! 꼭 샤브샤브에 초콜릿을 넣어 먹도록 하겠다!”

       

       “그래. 이제 그만 놀고 들어가 봐. 어른들이 걱정하겠다.”

       

       “응!”

       

       

       **

       

       

       당근과 초콜릿 그리고 메뚜기.

       우리는 식재료인지 모를 것들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몸 등장!”

       

       레비나스가 큰 소리를 외치며 거실로 달려갔다.

       거실 테이블 위엔 샤브샤브를 위한 준비가 전부 다 돼 있는 상태였다.

       

       “왔니?”

       

       “네에···”

       

       “응! 샤브샤브에 넣어 먹을 거 가져왔어!”

       

       레비나스가 한여름을 향해 당근과 초콜릿을 내밀어 보였다.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당근은 넣어 먹을 수 있는데, 초콜릿은 힘들겠는데?”

       

       “그, 그러냐?”

       

       “응. 초콜릿은 다 먹고 마지막에 간식으로 먹자?”

       

       “응! 알았다!”

       

       레비나스를 향해 눈웃음을 지은 한여름이 내 손에 들린 메뚜기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웃음기 머금은 표정 그대로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왕은 샤브샤브에 메뚜기 넣어 먹는다고 했다!”

       

       “겨울아. 우리 메뚜기는 안 먹기로 했는데···”

       

       “그, 그랬죠···”

       

       억울하다.

       풀무치는 레비나스에게 못이겨 억지로 가져왔을 뿐인데.

       허나 어린 레비나스의 탓을 할 수도 없었기에, 그냥 내가 한 걸로 하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샤브샤브에 메뚜기는 안 넣어 먹어. 그러니까 겨울이가 양보하자?”

       

       “네에···”

       

       나도 잘 알지.

       샤브샤브에 메뚜기 안 넣어 먹는 거.

       너무 억울해서 어깨가 축 가라앉았다.

       

       “그, 그래도 샤브샤브 엄청 맛있다? 겨울이 샤브샤브 먹어 봤어?”

       

       “아뇨, 처음 먹어 봤어요.”

       

       샤브샤브를 먹어 본 사람이 메뚜기를 넣어 먹진 않을 테니까.

       오늘도 나는 모든 걸 처음 해본 사람이 되고 말았다.

       

       

       **

       

       

       정유나의 모든 설명을 들은 상담사는 두 눈을 꼭 감았다.

       지옥을 경험한 아이의 상황에 충격을 받은 탓이었다.

       

       “뿔토끼 하나 못 잡는 한심한 어른인 줄 알았다는 거군요.”

       

       “네···”

       

       어른이 뿔토끼 한 마리도 못 잡으면 황당하긴 하겠다.

       성격 나쁜 사람이라면 충분히 놀림감이 되기도 하겠지.

       상담사는 최대한 정유나의 편에 서서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놀릴 것 같지는 않았지만.

       

       “유나 님도 아이를 놀린 건가요?”

       

       “뿔토끼한테 쫓기는 걸 보고 웃은 적이 있어요···”

       

       “아···”

       

       정말로 뿔토끼한테 찔려 죽을 수 있는 육체인지는 몰랐을 테니까.

       아이의 처지를 모르는 사람에겐 웃긴 장면처럼 보일 수도 있을 터였다.

       진실은 보다 더 끔찍했을 테지만.

       

       “아이에게 손찌검을 한 사람도 있다고 했죠?”

       

       “네. 초보자 던전에서···”

       

       정유나는 말을 잇다 말고 자리에서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대화를 통해 무언가 이질감이 느낀 탓이었다.

       

       ‘겨울이한텐 마나가 없었지···’

       

       마나가 있는 사람끼리는 뒤통수를 맞아도 크게 괴롭지는 않을 터였다.

       허나 문제는 아이에게 마나가 일절 없었다는 거였다.

       

       마나가 없는 아이가 뒤통수를 맞았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정유나는 마법사 특유의 계산 능력을 통해 금세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이었을 거라고.

       

       “아.”

       

       가볍게 뒤통수를 친 것.

       가볍게 몸을 밀친 것.

       왜 앞에다가 ‘가벼운’이라는 수식어를 함부로 붙였을까.

       마나가 없던 겨울에겐 절대로 가벼운 충격이 아니었을 텐데.

       

       정유나는 창백해진 안색을 숨기려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내 기준으로 생각해 버렸다.’

       

       아이에겐 사람의 가벼운 손찌검조차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사람이 곁에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그리 기겁을 하며 피해왔던 걸 테지.

       겨울의 세상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괴물인 셈이었다.

       

       ‘그럼에도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는 거지···?’

       

       솔직히 그런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긴 했다.

       자신들이 잘하고 있어서 겨울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는 거라고.

       허나 겨울이 겪었을 고통을 진정으로 깨닫게 되니, 자신이 얼마나 한심한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상상조차 불가능한 고통을 겪어 왔음에도, 고통을 준 이들에게 마음을 열어 주었다.

       자신들이 잘해서가 아닌, 겨울이 먼저 자신들을 ‘용서’해 줬을 뿐이었다.

       

       “······.”

       

       나라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비웃던 자들을 용서해 줄 수 있을까?

       정유나는 고민조차 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분명 불신에 가득 찬 복수귀가 되었을 테니까.

       

       ‘겨울이가 성녀였구나.’

       

       세상에 이보다 착한 아이가 어디 있을까.

       정유나의 죄책감이 전보다 더 거대해지고 말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추천 또한 정말 감사합니다! 언제나 힘이 되네요!
    ───

    여러분은 샤브샤브에 메뚜기 넣어 먹으면 안 돼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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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최강 길드에 납치당했다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When I opened my eyes, I was in a den of mon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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