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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

       꿀꺽.

       

       “이게…… 맞는 겁니까?”

       

       하얀 가운을 입은 한 남성이 두려움에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곁에 선 커다란 덩치의 사내는 피곤한듯 얼굴을 쓸어 내리며 답했다.

       

       “상급자의 명령은 반드시 따른다. 마치 군대 같은 규율이 우리 일성의 규칙 아니냐.”

       “하지만 이건…….”

       

       안경을 쓴 가운 사내는 떨떠름한 얼굴로 모니터 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곳에는 모델 같은 외형의 젊은 여인 하나가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그들은 그녀가 누구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일성의 직계 중 직계. 차세대 일성의 지배자가 될 한석구의 딸, 한유리다.

       

       ‘완전히 통제를 벗어난 느낌이야.’

       

       일성의 연구원인 사내는 지금 상황을 어찌 받아들일지 고민했다. 자신의 딸이 어마어마한 초능력자이며, 때마침 목적달성을 위해 딸을 희생해야한다면 그는 어떤 선택을 내릴까.

       

       ‘거기다 이번 프로젝트엔 ‘일성’만 발을 들인 게 아니라고.’

       

       사내는 모니터 안, 한유리의 팔다리를 봉인한 새하얀 사슬을 눈에 담았다.

       

       신성력이 깃든 사슬이다. 초능력자의 능력을 봉인할 수 있다는 그것은 분명히 일성의 작품은 아니었다.

       

       [ 물질 투여. 2회차 개시. ]

       

       “…….”

       

       그런 사내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미건조한 기계음이 연구실 내부 스피커를 통해 울렸다.

       

       “가지. 우리는 명령에만 따르면 된다.”

       “……예.”

       

       폭주하는 기관차에 올라탄 그는 흐름에 몸을 맡겨버렸다.

       

       * * *

       

       “그보다. 지금 엄청 급한 사안이 있어.”

       “급한 사안이 있다고?”

       “응! 통신이 끊겨서 혜성, 너한테 직접 전하려고 달려온 거야.”

       

       하늘의 불길한 느낌을 마구 뿜어대는 게이트 아래. 송수아가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급한 사안이라니? 평소 더 없이 해맑고 천진난만한 송수아가 그리 칭할 정도면 분명 보통 사안은 아닐 것이다.

       

       그리 생각한 나는 말 없이 송수아를 바라보았다. 답변을 요구하는 듯한 시선에 송수아는 이 자리에서 밝히는 것이 고민된 건지 한참이나 입을 우물거린 끝에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유리가 사라졌어!”

       “……뭐?”

       “사라지다니. <비를 내리는>, 그게 무슨 소리야? 학생회장이 왜 사라져?”

       “결국 그리 됐군. 욕망이 혈연을 넘어선 건가.”

       

       경악스러운 사실에 나를 비롯한 <원소술사>, <신속>까지 동요했다.

       

       현재는 아카데미 전역에 불특정 다수의 게이트가 나타난 상황. 아카데미 내부엔 히어로의 숫자 만큼이나 민간인도 많았으니, 결국엔 누군가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한유리가 사라졌다고?’

       

       그렇기에 자연히 체계적으로 조직화된 학생회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그들이 게이트를 소멸시키고 몬스터를 처치하는 것이 빨라질 수록 희생자의 수는 줄어들 테니까.

       

       헌데 그 학생회를 총지휘할 한유리가 사라졌단다. 

       

       그 녀석도 은근히 덤벙대는 구석이 있지만, 학생회장으로서의 능력이 엄청난 것은 사실. 괜히 원작에서 ‘여왕’ 따위로 불린 것이 아니다. 아마 학생회도 현재 엄청난 혼란을 겪고 있을 것이 뻔했다.

       

       “꺄아아아악!”

       

       그런 와중, 저 건물 아래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크게 울렸다.

       

       “사, 사람이 죽었다!”

       

       이어지는 굵은 목소리는 기어코 우려하던 사태가 터졌다는 걸 증명했다. 그리고 그건, 우습게도 <원소술사>를 크게 동요시켰다.

       

       “젠장!”

       “…….”

       

       그리고 그의 반응은 이미 예상 범주 내에 있던 것이었다.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원소술사>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

       

       간단하다. 그의 성격에서 기인한 독특한 성품이 그리 만든 것이다.

       

       <원소술사> 이성혁은 기본적으로 ‘히어로’라는 글씨를 빼다 박은 놈이다.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독특한 성격의 괴짜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류애가 흘러 넘치는 놈이란 소리다.

       

       “흑색 게이트와 인명 구조.”

       

       으득!

       

       혼잣말을 중얼거린 이성혁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동안 보았던 모습과 전혀 다른 반응에 나는 녀석에게 턱짓했다.

       

       “가라.”

       “……무슨 뜻이지?”

       “여긴 내가 막을 테니까, 너는 사람들을 구하라고.”

       “진심인가? 종말급 게이트는 네 상상과 다르다. 단독으로 나라 몇개는 소멸시킬 힘을 가진 놈이 나올 거란 소리다!”

       “말 많네. 가라면 가라. <원소술사>의 걱정을 한몸에 받으니 부담스럽네.”

       “이 상황에 농담을!”

       

       일순간 버럭, 소리친 이성혁은 자신의 머리가 과하게 뜨거워진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다. 그는 간단히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반드시 돌아오겠다. 아카데미 내부의 몬스터를 소탕한 이후엔 이곳으로 돌아오겠다. 약속하지.”

       

       화아아악!

       

       이성혁의 목소리는 중간에 끊겨버렸다. 원인은 그가 사용한 마법이다. 갑작스레 이성혁의 몸이 푸른빛에 감싸지더니 이내 모습을 감춘 것이다.

       

       “저 모습을 텔레포터가 봤으면 눈물 흘리겠네.”

       

       역시 정상 범주를 벗어난 괴물 같은 놈. 그리 생각한 나는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지, 지금 상황에 또 핸드폰이나 본다고?!”

       

       설마하니 내가 핸드폰을 볼 줄은 몰랐던 건지, 최영웅이 경악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시간 좀 보려고. 왜, 불만 있나?”

       “그, 그건 아닌데.”

       “싱거운 놈.”

       

       짧게 중얼거린 나는 최영웅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 그리로 오라는 뜻인가?”

       “어.”

       “허! 어이가 없다! 나는 ‘랭커’다. 동시에 신성교단의 이단심문관이라는 직책을 가진 히어로란 말이다!”

       

       저벅저벅.

       

       ……그렇게 억울하게 외치는 주제에 말은 잘 듣네.

       

       내 곁으로 다가온 최영웅은 불안한 얼굴로 눈치를 살폈다. 설마하니 갑작스레 때릴 줄 안 건지.

       

       “검 줘.”

       “……무슨?”

       “시험할 것이 생겼으니까 검 달라고.”

       “아! 알겠다.”

       

       철컥.

       

       고개를 끄덕인 최영웅은 순조롭게 허리춤에 걸린 검을 해제하더니 내게 슥 내밀었다.

       

       ……이놈은 검을 애진즉 버리는 게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세상 어느 검사가 대수롭지 않게 자신의 애병을 타인에게 넘긴단 말인가.

       

       아무튼.

       

       최영웅의 검…… 제법 비싼 가격을 자랑할 것이 뻔한 그것을 오른손에 든 나는 왼손 위의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

       

       [ 스톱 워치 ]

       [ 00:21:31 ]

       

       게이트 사태 발생 직후 21분 31초.

       

       “어디서 밑장빼기야?”

       

       나는 기억한다.

       

       원작 <히사있>에서 종말급 게이트가 출현했을 때…… 총학생회 건물, 통유리로 너머로 보이는 광경을 감상한 한유리의 짧은 독백을.

       

       [ 본디 차원을 찢고 발생한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나오는 것은 약 오 분 뒤. 하지만 이번 게이트는 경우가 달랐다. 여타 게이트와 달리 검은빛의 게이트는 오분이 지났음에도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검은빛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나타난 것은 약 십오분이 흐른 뒤였다. ]

       

       꽈아악!

       

       “도대체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머나먼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나는 <신속> 최영웅의 애병을 강하게 쥐고 슬쩍 웃었다.

       

       “송수아. 내게 낙뢰를 떨어트려. 지금.”

       “뭐, 뭐? 진심이야?!”

       “드디어 미친 건가?! 적잖이 돌아버린 놈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최영웅 너는 나중에 보자.

       

       “진심이야. 좋은 수가 떠올랐거든.”

       “으, 으응. 불안하지만, 혜성이가 말하는 거라면.”

       

       쿠구궁-!

       

       <비를 내리는>이라는 이명처럼, 삽시간에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참 신기한 능력이다. 기상을 다루는 힘이라니, 진짜 전력을 다하면 전세계를 빙하기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튼.

       

       송수아는 경직된 목소리로 내 안녕을 기원했다.

       

       “……조심해. 다치면 가만히 안 있을 거니까?”

       “그래.”

       

       짧게 대답한 나는 곧장 능력을 개방했다.

       

       “현상 거절.”

       

       [ 단 한번. 신체의 전도를 거절한다. ]

       

       “현상 거절.”

       

       [ 단 한번. 낙뢰에 의한 신체 손상을 거절한다. ]

       

       진언을 읊으니, 느껴지는 신체 부담은 전무한 수준이다. 예상대로 현재 사용한 능력은 패널티가 경미했다.

       

       “현상 거절.”

       

       [ 낙뢰가 부도체에 의해 튕겨나가는 것을 거절한다. ]

       

       마지막 진언을 읊는 순간.

       

       “혜성! 조심해!”

       

       송수아의 비명에 가까운 경고가 날아들었다.

       

       그리고.

       

       번쩍! 번쩍! 번쩍!

       

       눈 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뜨끈한 감각이 느껴지는 것이, 방금 번개에 맞은 것 같다.

       

       “현상거절.”

       

       빠직! 파지직!

       

       눈 깜빡할 찰나의 순간에 육체에 깃든 번개는 강렬한 스파크를 튀기기 시작했다. 마치 몸 안에 갇힌 것이 불만이라는 듯, 흉포한 에너지의 폭류는 더 없이 강렬한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어, 어이. <현상거절>, 설마…….”

       “응? 뭐야? 뭔데? 혜성이가 하려는 거?”

       

       두 사람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두 눈을 감아버렸다.

       

       지금부터는 고도의 집중을 필요로하는 이론의 영역이다. ‘현실 조작계열’ 능력자인 내가 물리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거짓된 환상을 부서주마.”

       

       차갑게 내뱉은 나는 천천히 <신속>의 검…… 아니, ‘탄환’을 들어올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방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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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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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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