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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

    손에 쥐어진 잔돈.

    예르나가 급히 계산하느라 거스른돈조차 받지 않고 나가버렸기에, 자신이 대신 받은 것이다.

    계산을 했다는건,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이겠지, 아마도.

    “거 꽤나 급했나보군. 짐도 놓고가다니.”

    루크는 양손에 가득한 짐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내용물은 그냥 식재료다. 

    채소, 통조림, 뭔지 모를 간식들.

    그러고보니 이 시대의 간식이라. 루크는 그것에도 살짝 흥미가 돋았다.

    하지만…….

    갑자기 그렇게 가버리다니.

    뭔가 숲에 급한 일이라도 생긴걸까?

    “마음이 너무 급했나. 말이라도 해주었으면 좋았을것을.”

    루크는 첼로가방을 메고, 한손 가득히 짐을 든채로 몸을 일으켰다.

    “얘, 안 무겁니? 혼자 갈 수 있어?”

    “괜찮다네. 신경쓰지 말게나.”

    “데려다줄까?”

    “마음은 고맙네만, 그럴필요 없네.”

    지금은 12시 10분.

    이미 자신때문에 가게를 닫을 시간인데도 1시간하고도 10분을 더 기다려준 것이다.

    더이상 폐를 끼칠 수 없지.

    루크는 꾸벅, 인사하고 가게를 나왔다.

    빗줄기는 여전했다.

    이 날씨에 우산도 없이 뛰쳐나간 예르나가 조금 걱정되었으나, 차를 갖고갔는지 예르나가 주차해둔 곳에 차가 없었다.

    그렇게 바빴을까.

    말도 못하고 갑자기 떠나야만 했을 정도로?

    이래서야, 이건 마치 이쪽이 버려진것같은 느낌이잖은가.

    ‘그럴리가. 말하는걸 깜빡한거겠지.’

    어쩌면, 이 시대는 ‘휴대폰’의 존재로 말을 남겨둔다거나 하는 문화따위는 사라진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것치고는, 휴대폰을 두고간건 설명이 안되지만.

    루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예르나, 그대도 가만보면 참 덜렁대는 성격이로구나.

    정말 급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 

    휴대폰도 잃어버린게 아니라 자신이 챙겼으니 괜찮을 터.

    “그런데, 버스가 안오는구나.”

    그야, 이미 막차시간을 한참 지난 상태다.

    이 시대의 마부에게도 하루의 끝은 존재하는 모양이다.

    분명 평소엔 20분쯤 기다리면 꼭 한대가 왔는데 말이다.

    이제보니 도로도 한산하다.

    촤르륵, 비가 고인 도로를 밟고 지나가는 타이어소리가 공허하게 울려퍼진다.

    그러고보니 저 하얀 승용차 말고는 지나다니는 차도 없다.

    ‘저 차는 천장에 뭔갈 붙이고 다니는군.’

    그것이 택시라고 부르는 것이지만, 지금의 루크가 알리는 없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간다는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루크가 식사를 한 곳은 학교 근처의 식당이었다.

    당장 배고픈 아이를 데리고 먼 곳을 갈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덕분에 걸어서 집으로 가는데엔 너무 멀었고, 걸어갈 수 있다고 해도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데 빗줄기를 헤치고 걷고싶지는 않았다.

    등에 맨 첼로고 손에 든 짐이고 전부 젖어버릴게 분명하니.

    “흐음……. 노숙이라도 해야하나? 하하, 이것 참 곤란하군.”

    노숙의 경험이 없는것은 아니다만, 지금은 마땅한 설비도 없는데.

    게다가, 밤의 도시는 어린아이혼자서 돌아다니기엔 상당히 위험할것이다.

    어느 시대든, 가장 무서운것은 몬스터따위가 아니라 사람이니까.

    게다가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라.

    손에는 짐도 많고, 겉보기엔 연약한 어린아이다.

    범죄의 표적이 되기엔 더할나위 없다.

    비록 성인이 몇명 달려들어도 생사를 신경쓰지 않는다면 제압할 자신이 없는건 아니지만, 일부러 살생을 저지르는것은 루크의 성향에도 맞지 않는데다 그런 상황 자체에 놓이고싶지 않았다.

    타인에게 공포가 담긴 시선을 받는것은, 이제 지긋지긋하니까.

    ‘그러면 어떻게 한다…….’

    “옳거니.”

    루크는 번뜩 드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뚜르르…….

    몇번의 착신음후에 들려오는 여자아이의 잠이 덜깬듯한 목소리.

    “여부세요……? 루크잖아? 하암. 무슨 일이야, 이 밤중에…….”

    양 수인 여자아이, 메리였다.

    “메리, 그대는 기숙사라고 했지? 미안하네만, 나를 좀 재워줄 수 있겠는가?”

    “어? 무슨 일인데 그래?”

    무슨일이라고 설명해야할까.

    자초지종을 모조리 설명하기엔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짧게 말한다.

    “근처에 일이 있었다네. 돌아가기엔 시간이 늦어버려서, 하룻밤 신세를 져도 괜찮겠는가?”

    “음, 뭐. 하룻밤? 괜찮아. 아……. 기숙사가 어딘지 알지? 102호로 오면 돼!”

    “그거 참 고마운 일이구나. 내 금방 가겠다.”

    루크는 감사를 전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 작은 아이에게 의지해야하는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만, 달리 방법이 없는 것 같으니.

    ‘뭐, 좀 있다보면 연락이 오겠지.’

    루크는 대수롭지않게 생각했다.

    ——–

    기숙사의 앞에는 경비로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루크에게 이것저것 물었지만, 교복을 입었고 학생증도 있는데다, 짐도 많은데 축축하게 젖기까지 한 모습을 보고는 자세하게 묻지는 못했다.

    게다가 ‘친구를 만나러 왔다’따위의 말을 하니, 경비는 어휴, 하는 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다음번엔 늦게오지 마. 이번만 들여보내주는거다.”

    “물론이라네, 정말 고맙군. 보답으로……. 이거 받게나.”

    루크는 대충 손에 잡히고 자신이 먹어본적 있는 간식거리 하나를 건넸다.

    봉지 사탕이었다.

    단것을 좋아하지 않는 예르나가 먹으려고 산것은 아닐테니, 아마도 자신의 것이리라.

    갑자기 왜 이렇게 간식을 많이 산건진 모르겠지만.

    “꽤 맛있다네. 먹으면서 힘내게.”

    “어……. 그래, 고맙다……?”

    그는 봉지사탕을 받고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사탕을 받고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보내준다.

    마음같아선 짐이라도 들어주고 싶지만…….

    아무리 경비라고해도 여자 기숙사의 안쪽까진 들어갈 수 없으니까 말이다.

    결국 혼자서 깜깜한 복도를 걸어서 도착한 102호.

    루크는 망설일 것 없이 노크를 했다.

    똑똑.

    “메리, 나란다. 문좀 열어주겠느냐.”

    “루크! 잠시만!”

    안쪽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곧 문이 열리고 분홍색의 원피스 레이스 잠옷을 입은 메리가 반겼다.

    “다 젖었네! 밖에 비 많이와? 얼른 들어와!”

    “그럼 실례하지.”

    ——–

    티그아카데미의 기숙사는 훌륭했다.

    갖출것은 다 갖춰서, 사실상 예르나의 아파트랑 크게 다르지도 않을 정도였다. 아니, 오히려 더 좋았다.

    과연, 명문이라고 불릴만 하군. 루크는 중얼거렸다.

    덕분에 젖어버린 양말과 신발을 말리며 목욕까지 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역시 샤워기는 최고로군.’

    물의 온도를 실시간으로 조절할 수 있는 폭포에서 몸을 씻는 느낌.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함이다.

    꼼꼼하게 몸을 씻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면 정령이 불어주는 바람이 남은 물기를 가져간다.

    물론 모두 마법으로도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복잡한 두뇌노동없이도 간단하고 효율적일 수 있다는게 루크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헌데.

    “이건…….”

    루크가 입은것은 메리가 입은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하늘한 원피스잠옷이었다.

    게다가 분홍색.

    “역시 잘 어울려!”

    메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뭐……. 사실, 그도 이제와서 이런게 부끄럽다는건 아니었다.

    조금 밑단이 길어진 잠옷일 뿐이잖은가.

    그러나, 이 편안함이 문제였다.

    너무 편안해서 오히려 낯설다.

    원래도 이 시대의 옷감은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고급원단을 사용한 고급 잠옷은…….

    이미 혁명이었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섬세한 방직기술로, ‘잠옷’만으로 쓰기위해 개발된 원단이다.

    거기에 은은한 마력으로 느껴지는 인챈트는, 이미 그 잠옷을 일종의 마도구로 만들었다.

    부드럽고 가볍고 편하다.

    헌데 오히려 그래선지 알몸같은 느낌이들어 불편하다.

    “이것 말고 다른건 없느냐……?”

    “소매가 거치적거리면, 민소매도 있어!”

    “됐다. 그냥 이걸로 하지…….”

    -에레……!

    파이는 굉장히 만족한듯 보이니…….

    “에레가 아니라, 루크 이루시래도.”

    “응? 알아. 루크 이루시. 갑자기 왜 그래?”

    루크는 정령에 대해 말해줄까, 하다가 그만둔다.

    정령소녀가 어쩌고 하는것은 이제 사양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

    잘 준비를 위해 루크는 메리에게 받은 뿔 덮개를 뿔 끝에 끼운다.

    시험삼아 꾹꾹눌러보니 말랑말랑해서 잠꼬대로 다칠일은 없어보인다.

    “잘 자게, 메리.”

    루크는 불을 끄고 어린아이 혼자 쓰기엔 좀 큰게 아닌가 싶을정도인 침대의 왼편에 앉는다.

    그러자 푸욱, 하고 몸이 침대에 먹힌다.

    ‘이거, 정말로 푹신하군. 말도안될정도로…….’

    온전히 몸을 눕히니 침대는 완전히 루크의 모양으로 변형되어, 마치 공중에 떠있는듯한 안락함을 제공한다.

    덕분에 눈만 감으면 순식간에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양호실에서 너무 푹 잔걸까, 아니면 예르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어서일까.

    잠이 오질 않았다.

    “루크, 자?”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것은 메리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왜 그러지?”

    “안자는구나. 지금 졸려?”

    “별로 졸리진 않다. 낮잠을 너무 길게 잔 터라…….”

    “사실은 나도 그래. 중간에 깼더니, 양을 세도 잠이 안와.”

    “내 탓이로군. 미안하게 됐다.”

    “아니, 그런건 아니고! 옆에 루크가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들떠서.”

    “역시 내탓이잖은가.”

    “그런가?”

    헤헤, 메리는 조금 실없이 웃어버리고는, 고개를 돌려 루크의 옆모습을 보았다.

    옆으로 눕다니.

    루크는 할 수 없는 행동이어서, 그저 눈동자만 돌렸다.

    “어차피 내일은 휴일이고……. 우리, 밤 샐까?”

    “메리, 아이는 밤에 자야한다네. 그래야 쑥쑥 크는게야.”

    루크의 말에 메리는 삐친듯이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킨다.

    “할머니같은 말이나 하고……. 밤새기 싫어?”

    “…….”

    사실은 루크도 잠이 안오는것은 맞았기에, 상체를 일으켰다.

    뭐, 잠깐 놀아준다면 금방 또 졸리다고 하겠지.

    루크는 하아,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래, 대체 뭘 하고싶은겐가.”

    “이것저것? 밤새 수다를 떤다거나, 아니면 영화본다거나?”

    “영화가 좋겠구나.”

    아무래도 아이와 수다를 떠는건 제대로 못해줄것 같으니, 영화나 보는게 낫겠다.

    ———

    “아.”

    예르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쩌다 정신을 잃었더라.

    예르나는 벌떡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경찰서다.

    “아…….”

    “예르나, 이제 정신이 들어?”

    “여긴?”

    “기억안나? 네가 뭘 했는지?”

    “내가……?”

    찰칵, 손목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수갑이었다.

    이제보니 눈을 뜬것도 유치장이었다.

    “어라? 시에나, 이게 뭐야?”

    어느새 예르나의 앞에서 팔짱을 낀채로 한숨을 쉬고있는 다크엘프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네가 갑자기 쳐들어와서 난동피웠잖아.”

    예르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러고보니, 몇몇 경찰관이 이쪽을 보면서 찌릿하게 째려보고 있었다.

    각자 어디 한부분씩 문지르면서…….

    “내가?”

    내가 경찰을 때렸을리가.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네가 그랬다고. 정신좀 차려. 너, 거의 정신이 나갔던데…….”

    정신이 나가? 내가 왜? 예르나는 자신이 왜 그랬던건지 곰곰히 생각해본다.

    창문 밖을 바라보니, 비는 아직도 한창 내리는 중이었다.

    “아…….”

    타닥, 타닥, 타닥, 빗줄기가 굵어졌다.

    그것을 보니 뇌를 강타하는 기억.

    “루크가 사라졌어, 찾아야해. 도와줘.”

    “……그럼 실종신고부터 해, 이 바보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애가 없어지면 당연히 경찰서부터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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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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