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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

     

    용사 파티가 싸워야 할 적은 마물이나 마왕군뿐이 아니었다.

     

    우리가 마왕을 토벌하면 제국의 위상이 지나치게 높아질걸 경계해 타국에서 암살자를 보내는 이벤트도 있었다.

     

    용사는 암살할 수도 없을뿐더러, 진짜 죽어버리면 대륙의 명운이 갈릴 수도 있으니 타겟은 주로 나였다.

     

    그랬다가 파티의 전력이 약해져 마왕군 토벌이 불발에 그칠 수도 있는데도 암살자를 보내는 멍청한 놈들이 있었냐 하면.

     

    진짜 있었다. 수도 없이.

     

    내가 죽은 자리에 자기네 치유사를 넣어서 공적을 올리려고 했다든지, 뭐 그런 정치적인 이유도 있고.

     

     

    찾아오는 암살자는 ‘그림자’라는 심플한 이름의 집단 소속이다.

     

    대륙 전 국가 어디에서도 활동하는 가장 실력 좋은 암살자들이다.

     

    이들에게 죽으면 [그림자의 암살자] 배드엔딩을 보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파티에 불침번을 반드시 세우는 이유였다. 전부 피곤해 쓰러진 날이면 직접 깨어있어야 했고.

     

    피하기 그렇게 어려운 배드엔딩은 아니다. 나중에야 익숙해져서 이놈들을 잡아 심문할 수도 있었다.

     

    돈만 주면 움직이는 집단이라 그때그때 보낸 클라이언트가 달랐다. 왕국, 법국, 마도국, 공국, 지저국, 수왕국.

     

    온갖 국가의 표적이 되어있더라.

     

     

    그런데, 한 번은 제국에서도 암살자를 보냈었다.

     

     

    ―크아악! 저, 전부 얘기하지! 아셀라! 아셀라 황제가 보냈다!

     

    ―구라치지 마. 제국에서 무슨 이득을 보겠다고 용사파티에 암살자를 보내?

     

    ―모, 목표는 치유사 한 명뿐이라고 했다! 마지막 알현 때 모르는 사람인 척했다고…!

     

     

    옛날 혼약자니 뭐니 얘기해도 정색하며 처형할 거면서.

     

    아셀라가 나를 지독하게도 싫어하는구나 싶었다.

     

    어쨌든, 덕분에 아셀라도 그림자와 커넥션이 있다고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지금 알겠다.

     

    아셀라는 누군가가 고용한 그림자에 암살당할 뻔한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이때 조직에 대해 알게 되고 이들을 벌하기보다 오히려 써먹을 생각을 했었나 보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해도 아셀라가 생존할 확률이야 있겠지.’

     

    [No. 101 : 마력폭주 4% → 52%]

     

    상태창이 알려주는 이 사건에서 아셀라의 사망 확률은 52퍼센트.

     

    동전을 튕겨 앞면이 나올 정도다.

     

    황실에서 승계를 노린 암투는 지겹게도 자주 일어난다.

     

    아셀라가 어떻게 살아남아서 황제까지 등극했나 싶다.

     

    10년 후는 이미 그 모든 확률을 돌파한 시간 위에 내가 있었던 거겠지.

     

     

    앞면이 나오면 죽는데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말이야.

     

    동전을 어디 호숫가로 던져버려야지, 진짜.

     

    “공자, 왜 그래?”

     

    내게 손목을 붙잡힌 아셀라는 당황하는 눈치다.

     

    “넓은 장소로 나가야 합니다. 기사들, 황녀님께서 떨어지지 말고 주변을 경계해. 암살자가 근처에 있어.”

     

    “예!”

     

    현재 곁에 붙은 월광궁 호위기사는 두 명이다. 그들은 즉시 명령을 수행해 검을 들고 있는 힘껏 눈을 부라렸다.

     

    “암살자라니.”

     

    “설명은 나중에 하지요. 어둠이 가라앉으면 위험해집니다. 밖으로…”

     

    훅!

     

    말을 마치기도 전에 파티장의 모든 조명이 꺼졌다.

     

    급격히 떨어진 조도에 적응하지 못한 눈은 장님이 된 듯 새카만 어둠만을 인식한다.

     

    “꺄아아악!”

    “조명! 조명을 켜라!”

    “시종, 어디로 갔나?!”

     

    안 그래도 독살 사건 때문에 흉흉한 분위기였던 파티장은 완전히 공포에 휩싸였다.

     

    음악이 잘 퍼지도록 소리의 반사율이 높은 실내다.

    영애들의 비명이나 발소리가 시끄럽게 웅웅거려 주변을 인식하기 어려워졌다.

     

    “공자!”

     

    “황녀님, 기사들과 붙으세요.”

     

    나는 아셀라의 팔을 잡고 있었기에 그녀의 위치를 대략 인식할 수 있었다. 아셀라를 두 기사가 탄탄하게 막아선 등 사이로 밀어넣었다.

     

    “공자, 너도…!”

     

    아셀라가 반대쪽 팔로 내 몸을 끌어당기는 게 느껴졌다. 어둠 속이라 급하게 잡았는지 멱살을 끌어당기는 모양이 됐다.

     

    “온다!”

     

    호위기사들은 우수했다. 한 명이 새카만 시야 속에서도 살기나 기척을 느꼈는지 투기를 불태우며 전방위를 막아내는 방어태를 취했다.

     

    “커, 커억!”

     

    하지만 그러기도 잠깐이었다.

     

    우리와 맞닿은 기사 한 명의 몸에서 힘이 빠지고 무게가 전해져온다.

     

    아셀라의 드레스에 촤악 뜨거운 액체가 뿌려졌다. 피임이 분명했다.

     

    “배런!”

     

    동료의 죽음을 느낀 다른 기사가 더욱 검을 단단히 쥔다.

     

    “하아, 하아.”

     

    지근거리에서 아셀라의 뜨겁고 거친 숨이 느껴졌다.

    공포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지나친 흥분상태가 되어버렸다.

     

    위기 상황에선 좋지 않다. 나는 그녀의 목 뒤를 감싸며 끌어안았다.

     

    “흑…?!”

     

    “황녀님, 침착하세요.”

     

    내 말에 아셀라가 심호흡으로 진정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는 않아 보인다.

     

     

    이게 그림자의 주요 암살수법이다.

     

    이들은 어둠보다 빛이 가득한 곳에서 암살을 선호한다.

     

    당연하게 주변에 있던 빛이 갑자기 없어졌을 때 인간은 가장 무방비해지기 때문이다.

     

    독도 이들의 술수가 틀림없었겠지.

     

    샴페인을 가져다준 시종은 위장한 암살자였을 터다.

     

    황실 정도 되니 안전한 술수를 쓰려다가 결국 가장 잘 하는 수법으로 나왔다.

     

     

    그런데, 나는 수도 없이 상대해 봤거든.

     

    그림자는 기본적으로 흑마술사와 도적의 조직이다.

     

    흑마술사가 술수를 부려 강화한 도적들이 실행범이 되는 방식이다.

     

    치명적인 독도 어둠을 가라앉히는 주문도 흑마술 기반.

     

    이들의 어둠은 조금 특수해서 빛이 멀리 퍼지지 않고 안개처럼 떠다닌다.

     

    우선 이걸 없애야 한다.

     

    “황녀님, 살아남으려면 조명이 필요합니다.”

     

    “조명, 빛.”

     

    아셀라가 중얼거리더니 즉시 마법진을 그려냈다.

     

    그녀의 떨리는 손은 완벽한 원을 그리진 못했지만 시전에는 문제가 없었다.

     

    “인챈트, 라이트.”

     

    ―번쩍!

     

    쓰러진 기사의 검에서 강렬한 불빛이 뿜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흑마술을 뒤집어써, 해골처럼 변해버린 암살자의 얼굴도 보였다.

     

    ―채앵!

     

    그의 흉악한 단검이 기사의 검과 부딪치는 장면도 함께.

     

    “흐, 으으…!”

     

    암살자를 목격한 아셀라가 눈을 질끈 감으며 손을 벌벌 떨었다.

     

    그 바람에 시전된 주문이 흔들리고 불빛이 미약해진다.

     

    ‘아셀라가 암살자를 무서워해?’

     

    내게는 조금 의외였다.

     

    비무대회에서 봤던 사룡이야 뭐, 그럴 수 있다 치자.

     

    마물이야 평범하게 도시에서 지내면 그렇게 자주 볼 일이 없는 것도 사실이고.

     

    평범한 마물도 아닌 드래곤이었으니.

     

    하지만 이번 상대는 암살자, 사람이다.

     

    물론 지금이 위험한 상황이긴 하지만.

     

    내가 여태 봐온 황제 아셀라는 매사에 오만하고, 거만하며, 당당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아셀라는… 갑작스런 위기에 특기인 마법조차 제대로 쓰지 못할 정도로 겁을 먹은.

     

    평범한 그 나이 대의 소녀 같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감상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야.’

     

    나는 아셀라가 발광 마법을 건 검을 집어 들었다.

     

    점점 빛이 사그라들어 꺼져간다.

     

    ‘검날 표면을 발광체로 바꾼 마법인가.’

     

    마법은 내가 이해하기 어렵지만 화학식으로는 알 수 있다.

     

    마나가 작용하는 원리까진 파고들 수 없어도, 연금술로 발광체의 특성을 강화할 수는 있다.

     

    “커억!”

     

    마지막 호위기사까지 암살자에게 당했다. 짧게 긁는 소리를 내며 쓰러진다.

     

    다음으로 노릴 건 아셀라일 터.

     

    “라스!”

     

    그녀가 외침과 동시에 나는 검을 휘두르며 주문을 시전했다.

     

    도형은 64각형. 아셀라가 가르쳐준 대로.

     

    “강화!”

     

    ―번쩍!

     

    눈이 멀 정도로 강력한 섬광이 쏟아지며 암살자의 복부를 강타했다.

     

    “윽.”

     

    암살자가 짧게 신음을 내뱉었다. 실질적인 피해는 입히지 못했지만 눈에서 피를 흘리며 괴로워한다.

     

    이들은 어둠 속에서 목표를 식별하기 위해 눈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늘려놓는다.

     

    때문에 강한 불빛이 약점이다.

     

    노출량이 과해져 피를 흘릴 정도로 고통스러워하게 된다.

     

    애당초 저 얼굴부터 신체 자체가 흑마술로 재구축된 기믹 퍼핏이나 다름없으니.

     

    “황녀님, 뛰세요!”

     

    오른손에는 번쩍이는 검을 쥔 채, 왼손으로 아셀라의 손을 잡고 달린다.

     

    우리에게는 딱 적당한 조도였다. 건물 출구까지 향하는 길이 보인다.

     

    ―사삭!

     

    멈칫했던 암살자도 즉시 우리를 쫓아온다.

     

    아직 무도회장은 어둠 속에서 혼란으로 가득 찼다. 도움을 요청할 이는커녕, 암살자의 존재를 눈치챈 사람도 없다.

     

    “더 빨리!”

     

    필사적으로 다리를 움직인다. 허벅지 근육이 터져버리더라도 지금은 속도를 더 내야만 했다.

     

    “에이!”

     

    출구까지 루트를 확인하고는 암살자를 향해 검을 던져버렸다.

    한 번 더 시야가 혼란스러워진 놈이 당황하는 틈을 타 코너를 꺾는다.

     

    출구까지는 10미터.

     

    “라스…!”

     

    “거의 다 왔어요!”

     

    점점 발걸음이 빨라지고, 마침내.

     

    쿠웅!

     

    나와 아셀라는 무도회장 밖으로 나가는 데 성공했다.

     

    밖은 횃불이 듬성듬성 깔렸지만 밤이라 어두운 건 다름이 없다.

     

    한여름의 매미 소리가 시끄럽게 고막을 때려댄다.

     

    “조금만 더!”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그러기도 잠시, 암살자가 등 뒤까지 쫓아온 걸 직감했다.

     

    “큭.”

     

    ―홰액!

     

    몸을 비틀며 아셀라의 어깨를 잡아 풀숲으로 다이빙하듯 함께 쓰러진다.

     

    동시에 내 귓가를 암살자의 날카로운 단검 끝이 스쳐 지나갔다.

     

    “좋은 반응속도군. 이렇게까지 애를 먹을 줄이야.”

     

    암살자가 비쩍 말라빠진 얼굴을 늘어뜨리며 나와 아셀라를 노려본다.

     

    “암살은 실패다. 호위기사들이 바로 몰려올 거야. 네 목숨은 부지하지 못할 텐데?”

     

    “그 말이 맞다. 하지만 우리의 임무는 완수할 수 있겠지.”

     

    암살자가 망설임 없이 우리를 향해 단검을 휘두른다.

     

    자신이 잡혀 죽더라도 그림자 조직을 위한 임무를 끝낼 생각이다.

     

    “라스!!”

     

    아셀라가 내 옷깃을 부여잡으며 질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딸그랑!

     

    “으… 허억…!”

     

    암살자가 단검을 놓치고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아셀라가 천천히 눈을 떴다.

     

    “라스? 어떻게 된 거야?”

     

    “여기까지만 오면 됐습니다. 아슬아슬했네요.”

     

    나는 머리 위의 여신상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크으윽!”

     

    암살자가 천천히 뒷걸음질 친다. 이 이상 우리에게 다가올 순 없다.

     

     

    [부상 상태 : 화상]

    [부상 위치 : 전신]

     

     

    온몸이 닭고기처럼 익어버릴 테니까.

    어마어마한 고통이겠지.

    그림자의 공략법은 간단하다.

    흑마술로 몸을 강화해 움직이기에 해주 효과를 받으면 완벽히 무력화된다.

     

    여신상의 근처에서는 몇 가지 이로운 효과가 발생하며, 낮은 등급 흑마술 해주도 포함되어 있다.

    나는 이들의 존재를 알고부터는 해주 능력이 있는 아티팩트를 늘 소지했었다.

    “저기 있다!”

     

    기사들이 철그럭거리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암살자가 그 소리에 허겁지겁 도주한다. 기사들이 그를 쫓았다.

     

     

    [No. 040 맹독함정            86% → 0%]

    [No. 086 그림자의 암살자 75% → 0%]

    [삭제됨]

     

    [No. 101 마력폭주            52% → 4%]

     

     

    위기는 넘어갔다.

     

    힘이 다 빠졌다. 나는 풀숲에 머리를 베고 드러누워 버렸다.

     

    “라스, 라스.”

     

    “조금만 잘게요. 좀 지쳐서.”

     

    “뭐? 잠깐만. 얘, 라스!”

     

    아셀라의 외침을 자장가 삼아 눈을 감았다.

     

    시끄러워서 그렇게 도움은 안 됐다.

     

     

     

    ***

     

     

     

    “흠.”

     

    눈을 뜨니 익숙한 광경이었다.

     

    내 방, 내 침대.

     

    정확히는 월광궁의 방이지만 이제는 꽤 친숙해서 편하다.

     

    “아닌데, 안 편하네.”

     

    뭔가에 짓눌린 듯 온몸이 무거웠다.

     

    암살 사건이 있었지.

     

    독에라도 당했나?

     

    그렇게 생각하고 고개를 들어 시선을 아래로 내리다가, 나는 굉장히 이상한 광경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셀라가 나를 껴안은 채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공모전 본선이 오늘까지래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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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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