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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

       가수와 배우들이 모두 무대 위에서 내려왔음에도 불구하고, 홀 안에는 여전히 공연의 열기에서 취해 있는 사람이 많았다.

       허리와 어깨를 씰룩이거나, 기억에 남은 가락을 콧노래로 흥얼대거나.

         

       브왈레는 아직도 무희들을 붙잡고 추파를 던지고 있는 몇몇 주책맞은 손님들에게 공연이 끝났음을 강한 어조로 전달했다.

       그중에는 평소 얌전하기로 소문난 명사도 있었다. 그런 사람도 우쭐거리게 할 만큼 장미 풍차의 환영연이 남긴 인상은 강렬했다.

         

       손님들이 제자리를 찾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그리고 그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기까지 또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반면 아직도 추도식이 끝난 것을 전달받지 못한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드는 곳도 있었다.

         

       1번 홀의 무대가 내려다보이는 스텝 석의 맨 끝단.

         

       그곳에 있는 두 소녀는 공연하는 내내 관람객으로서 훌륭한 양식을 보여주었다.

       다른 사람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도록 얌전히 앉아 조용히 무대를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미술관을 관람하는 데 어울리는 것이었다.

       카바레의 예절에 따르면 둘은 가장 불손한 관객이 되고 말았다.

         

       엘라는 언제든 자신이 이곳에서 가장 예의 바른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처한 처지만 아니었으면, 창밖으로 뛰어내려서 당장 무대 앞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만큼 이 무대에는 보는 사람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녀는 오늘의 공연을 보고 왜 사람들이 유그 마로이네에게 ‘감독’이라는 칭호를 꼬박꼬박 붙여주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단순히 완고하고 고집 센 노인이 아니었다.

       업계가 공연의 상품성이나 수익성에만 목메는 것에 불만을 토로하긴 했지만, 공연을 보는 눈 자체는 깨어 있는 사람이었다.

       안 그러면 그 나이에 이런 무대를 연출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노장이 말년을 바친, 그의 가장 젊은 시절보다 더 젊은 무대.

       그녀도 그곳의 열기를 직접 느끼며 즐기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오늘 그들이 이곳에 입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친해진 극장 사람들이 편의를 봐줬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극장 외부 사람들의 눈에 띈다면 논란이 생길 수도 있었다. 대회 시작 전부터 특정 서커스단에 특혜를 베푼 것은 아니냐고 말이다.

       그건 서커스단을 위해서도, 호의를 베풀어준 이 극장 사람들을 위해서도 못 할 짓이었다.

         

       공연을 즐기는 거야 이곳에서 충분히 할 수 있었다.

       특별히 스텝 석이 조용히 있어야 하는 공간은 아니었다.

       얼마든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도 됐다.

         

       문제는 같이 즐길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장미 풍차 쪽 사람들은 개막식이 시작되자 각자의 일을 하기 위해 방을 나섰다.

       이곳에 남은 사람은 엘라와 마야뿐이었다.

         

       그리고 마야는 절대 흥에 취할 사람이 아니었다.

       옆에서 엘라가 몇 번이나 슬쩍 권하는 데도 싸늘한 말투로 거절했다.

         

       자고로 춤도 노래도 다른 사람과 함께 해야 즐거운 법이다.

       적막한 공간에서 혼자 요란을 떠드는 건 촌극에 지나지 않았다.

       맥이 빠진 엘라도 결국 포기하곤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장미 풍차의 캉캉은 보고 듣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그러나 기획자의 의도는 직접 노래를 따라 부르고 함께 춤추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그 즐거움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는 건 반쪽짜리 공연밖에 안 됐다.

         

       ‘이럴 거면 뭐하러 개막식에 왔대.’

         

       개막식에 가지 못한 것에 마야가 크게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의외로 얘가 숨겨둔 열정과 끼가 있는 건 아닌가 기대했었다.

         

       그런데 막상 개막식에 와도 공연을 즐기기를 하나.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다니…….

         

       이는 엘라가 환상 마법을 싫어하는 이유와 비슷했다.

       그녀는 무대와 호흡하고 현장감을 느끼는 게 진짜 공연이라 생각했다.

       마법사가 준비한 영상을 바라보는 건 영 재미가 없었다.

         

       ‘역시 나랑 안 맞아.’

         

       엘라는 2년이 아니라 20년을 함께 한다고 해도 마야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공연이 끝나갈 무렵.

       처음에는 무대를 못 즐기는 데 심통이 나서 마야를 무시하고 있던 엘라는 그녀의 표정에서 뒤늦게 슬픔과 분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기대감에 젖어있던 그녀였다.

       갑자기 슬픔과 분노라니.

         

       엘라는 한 가지 이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게 그만큼 충격이 컸나?’

         

       아무리 봐도 침실 안에서 뭔가 일(?)을 치른 원더스타인과 자작.

       마야의 관찰이 정확하다면, 뭔가 찐한 육체적 접촉은 있었던 게 확실했다.

         

       눈물 젖은 눈으로 원더스타인을 껴안는 자작과 특유의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몰아붙이는 그의 모습이 상상됐다.

       둘 다 옷을 벗은 채로 했을 것이다.

       자작의 날씬한 몸과 원더스타인의 탄탄하고 잘 빠진 몸이 겹치며…….

         

       엘라는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어깨에 앉은 찍순이가 주인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 게 뭐야.

       내가 알 게 뭐냐고.

       둘 다 어른이잖아.

         

       후원자랑 예술가랑 서로 정이 통하는 게 뭐 이 업계에 드문 일도 아니고.

       사실 그래.

       돈이 넘치는 사람은 여흥에 목이 마르고, 예술가들은 돈이 고프니 서로 짝짜꿍하기 마련이지.

       흔한 일이야.

       별거 아니라고.

         

       그런데 둘이 언제부터 그 단계까지 가게 된 거지?

       둘이 자주 붙어 다니긴 했는데…….

       설마 호텔에서도 그 짓(?)을 한 걸까?

         

       이러면 열애설이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이잖아.

       설마 공식적으로 발표할 생각은 아니겠지?

       다행인가? 아까 내 입방정은 묻힐 테니.

         

       그건 그렇고 이 인간은 무관심한 척하더니 할 건 다 하네!

       흥. 누구는 일 시켜놓고, 여자랑 뒹굴고 다니다니.

       서커스 그랑프리에 전력을 다한다더니.

       하여간 입 발린 말만 늘어놓는 데는 도사라니까.

         

       잠깐.

       그 악마 놈이 정말 사람이랑 몸 섞는 데 맛 들인 거면, 마야를 영입한 것도 그런 목적 아냐?

       쟤가 예쁘긴 하니까.

         

       아냐. 그래도 저 인간은 단원들은 안 건드리잖아.

       거기다 설마 10살 넘게 차이나는 애 몸에 손을 댈까.

         

       지금까지 나를 안 건드린 것만 봐도…….

       어, 나도 꽤 예쁘니까.

       사실이잖아?

       크흠.

         

       아니면…….

       단순히 내 얼굴이 눈에 안 차는 건가.

       또 그렇게 생각하면 열 받네.

         

       그녀는 자신을 향해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는 원더스타인을 떠올렸다.

       확실히 잘생기긴 더럽게 잘생긴 얼굴이다.

         

       저 정도 외모면 나도 충분히 사귈 만한데…….

         

       ……?

       ……?

         

       “으힉!”

         

       앨라는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쥐가 놀라 미끄러졌다.

       찍순이는 다행히 어깨의 견장을 간신히 붙잡아 바닥에 떨어지지는 않았으나, 성난 목소리로 ‘찍찍!’거리며 주인의 돌발행동에 항의했다.

         

       마야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왜 그래?”

       “아냐! 아니라고! 묻지 마! 묻지 말라고! 으히익…….”

         

       머리를 감싸 쥐고 신음을 반복하던 엘라는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더니 품에서 단검 다섯 자루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들을 벽을 향해 휙휙 던져대기 시작했다.

         

       나무 벽이라 그런지 단검은 쉽게 박혀 들어갔다.

       두 번째 단검은 첫 번째 단검의 자루에 박혔고, 그다음 단검은 또 이전 단검의 자루에 박혔다.

       애초에 ‘중첩 꽂기’ 용으로 만든 단검이라 퍼즐이 맞춰지듯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그렇게 연달아 다섯 자루의 단검을 내던져 하나로 쭉 연결한 엘라는 숨을 씩씩 내뱉었다.

       그리곤 여기 있는 유일한 관객을 향해 두 팔을 활짝 펼치며 미소를 지었다.

         

       “짜잔! 단검 던지기의 묘기! 어떤가요!”

         

       그 모습을 보고 마야는 속으로 생각했다.

         

       서커스에 보통 미친 게 아니구나.

       그만큼 안달이 났던 걸까.

         

       “미안해. 같이 못 즐겨서.”

         

       마법이나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방식을 따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함께 떠들고 웃고 즐기는 게 예의인 공연장에서 자신과 같은 목석이 무례하게 비추어질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부단장이 공연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엉겨 붙듯 따라와서 분위기를 가라앉힌 게 자신이었다.

       왠지 미안했다.

         

       엘라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사과에 당황했다.

         

       “어어? 괘, 괜찮아. 미안할 것까지야……. 사람마다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할 수도 있지 뭐. 어차피 혼자 왔어도 못 즐기는 건 마찬가지인데…….”

         

       엘라는 서둘러 다음 화제를 찾았다.

       어색한 침묵도 침묵이지만, 자신이 돌출행동을 했던 이유에 대해서 더 떠올리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너 어딘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더라.”

       “……그렇게 보였어?”

       “응. 며칠밖에 안 됐지만, 나 네 표정 제법 읽을 수 있게 됐거든.”

         

       여기서 마야는 살짝 놀랐다.

       몇 년이나 함께한 아카데미 친구들도 그런 경지(?)에 오른 애들은 거의 없는데.

         

       “역시 아까 그 일 때문이야?”

       “응.”

         

       눈치 빠른 아이.

       마야는 부단장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수정했다.

         

       “그 사람이 마음에 걸려?”

       “맞아.”

         

       마야가 순순히 인정하자 엘라도 조금 당혹스러웠다.

       얘가 자기의 감정을 이렇게 솔직하게 드러내는 애였나?

       대놓고 원더스타인을 좋아한다고 시인하다니.

         

       “검은 마도사.”

         

       그러나 마야의 입에서 나온 것은 전혀 다른 이름이었다.

       그제야 엘라는 자신이 잠깐 착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어머니도 환상 마법사셨어. 은막의 서커스단이라고 알아?”

       “알지.”

         

       환상 마법의 대가 은막 아르노가 단장으로 있는 곳.

       엘라가 좋아하는 서커스단은 아니지만, 그 실력은 최고라고 들었다.

         

       “엄마와 아빠가 있던 곳이야. 두 분은 초회 서커스 그랑프리 본선에도 올랐다고 들었어.”

       “그거 대단…….”

         

       감탄사를 내뱉으려던 엘라는 곧 입을 다물었다.

       검은 마도사.

       그녀가 그걸 언급했다는 건 그 뒷이야기가 있다는 거다.

         

       2회 서커스 그랑프리에서 일어난 비극.

         

       “엄마는 나를 낳으시고 얼마 안 있어서 급하게 들어온 일 때문에 히포드롬으로 가셨어. 그리고……사고를 당했지.”

       “그렇구나…….”

         

       마야는 품에서 아기의 손바닥만 한 크기의 도넛 형태의 금속 원반을 꺼냈다.

       엘라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환상 마법사들이 자신의 상을 담는다는 메모리 디스크였다.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엄마의 시신이 이걸 꼭 쥐고 있었대.”

         

       마야는 메모리 디스크를 뒤집어 거기에 적힌 글씨를 보여주었다.

         

       ‘사랑하는 딸에게.’

         

       “엄마가 무슨 메시지를 남겼는지 보고 싶어. 내 환상 마법으로 직접. 하지만 나는 보통의 환상 마법을 익히기 힘들었어. 그러던 와중에 단장님이 나를 도와주었던 거고.”

       “아.”

         

       엘라는 지난 며칠 동안의 자신을 반성했다.

       이런 아이를 그저 원더스타인에게 반해서 쫓아온 멍청이 취급을 했다니.

         

       “그래서 그랑프리에 참여하고 싶었어. 개막식에도 와보고 싶었고. 함께 공연을 즐기지 못해서 미안해.”

       “아니, 괜찮대도…….”

         

       엘라가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단검을 던진 것도 그래서 아니야? 몸이 근질거려서 못 버텨서.”

       “사람을 서커스 변태로 만들지 마.”

         

       마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소리는 왜 지른 거야?”

       “제발 그걸 묻지도 말아줘…….”

         

       엘라는 다시 머리를 감싸며 신음을 흘렸다.

       마야는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살짝 젓고는 창밖을 바라봤다.

         

       마침 계단을 통해 그녀가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내려오고 있었다.

         

       “단장님이야.”

       “이제 선서식과 후원자 소개를 할 모양이네.”

         

       엘라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괜히 그의 얼굴을 보면 아까의 기억이 또 떠오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야의 목소리가 변했다.

       조금 심각한 톤이었다.

         

       “아냐.”

       “응?”

       “경찰들.”

         

       엘라가 고개를 들었다.

         

       계단으로 내려오는 원더스타인과 베르그송 자작.

       그 뒤를 따르는 총사 포르슈 경.

       그들을 푸른색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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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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