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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어졌다.

       

       잊은 줄 알았던 충동이 가슴속을 두방망이질 친다. 하지만 그게 지금 당장 뭐라도 쓰겠다는 뜻은 아니다. 우선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나.

       

       길드에 보고를 마치고, 정산도 마치고, 셀리의 귓가에 한스를 제물로 바치려던 건 봐주겠다며 속삭여 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일은 대충 일단락 났다.

       

       이제 남은 건 가죽 돌돌이 신세가 편안했는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이름 모를 남자를 신전에 전해주고 수고비를 챙기는 것.

       

       “신전…가기 싫다아….”

       

       “이미 늦었어.”

       

       리디아가 쿡쿡 웃으며 우리 대신 남자를 들것에 태워 이동시키는 길드 직원 둘을 가리켰다.

       

       돈은 우리가 받지만, 어디까지나 길드에서 신전으로 부상자의 신변을 넘기는 일이기에 동행한 것.

       

       그리고 어디서 누구 뒤통수 후려쳐서 미궁에서 기절한 모험가라고 우기는 미친놈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직접 길드가 움직이는 거다.

       

       오직 저런 일만 하는 전담팀이 있다고 하니, 얼마나 길드가 모험가 서포트에 진심인지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들은 신앙에 충실하거나, 돈에 충실한 거겠지.

       

       여신은 미궁을 만들고, 여신을 모시는 자들은 모험가를 서포트하는 길드를 만들었다.

       

       그 사실 하나에 자부심 풀충전 된 신도가 한둘이겠는가.

       

       물론 사랑의 여신의 신도가 아니더라도 길드의 직원이 될 수는 있다. 그저 신도들과 똑같은 수준의 직업의식을 요구할 뿐이지.

       

       대부분은 여기서 다 떨어져 나가지만 어떻게든 끈질기게 달라붙는 이들도 존재한다.

       

       가령 길드의 고액 연봉에 눈이 돌아간 엘프라거나….

       

       길드의 접수처에 잘생긴 엘프 남자들이 많은 이유가 그래서다. …남역 세계만 아니었다면 눈나들이었을 텐데.

       

       “에휴.”

       

       “한숨 멈춰. 여기까지 와서 그만둘 건 아니잖아?”

       

       “아, 다른 이유 때문에 한숨 쉰 거예요.”

       

       “다른 이유?”

       

       “요정과 은화의 종업원 형들이 아니라 엘리랑 리디아 님이 바니걸 의상을 입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

       

       말없이 인상을 와락 찌푸리는 리디아.

       

       “그래요. 그 극혐하는 반응 때문에 안 해줄 거라는 건 알았죠. 그래도 보고 싶은데…어떻게 안 될까요?”

       

       “대체 여자가 헐벗은 게 뭐가 좋다고 그러는지.” 

       

       “하아…진짜 남자가 헐벗은 게 뭐가 좋다고 그러는지.”

       

       서로가 서로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도 잠시. 어느새 우리는 새하얀 석조 건물 앞에 도착해 있었다.

       

       길드의 본청에 버금가는 웅장한 크기. 티끌 하나 없는 순백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건물은 무수히 늘어선 기둥 위에 지붕이 놓인 형태였는데.

       

       완벽한 도리스식 신전…흔히들 말하는 그리스 스타일의 신전을 연상시켰다. 실제로 그게 모티브였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다만 저게 가장 큰 건물이라 눈에 띌 뿐이지, 비교적 평범하게 생긴 건물도 주변에 많이 늘어서 있었다.

       

       중앙의 신전이 여신을 찬미하고, 그 위대함을 설파하는 장소라면.

       

       주변에 지어진 건물들은 필요에 따라 나중에 세워진 건물들이다.

       

       다친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만들어진 치료소, 자꾸 범죄적인 수단으로 멀쩡한 남자를 창남으로 전직시키니 생긴 무료 창관(화대가 아니라 기부금을 받음), 성기사나 사제가 될 아이를 교육시키는 아카데미, 그리고 내가 자주 신세 진 무료 급식소 등등.

       

       여신을 위한 것이 아닌 여신의 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시설들이 위성처럼 대신전을 둘러싼 형태다.

       

       우리가 가야 하는 곳도 이러한 위성 건물 중 하나고.

       

       “리디아 님. 리디아 님. 얼마나 나올까요? 지금은 저래도 사지 멀쩡하고 젊은 남자니 꽤 나올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니 무슨 범죄라도 저지르는 것 같잖아.”

       

       한숨을 푸욱 내쉰 리디아가 고개를 저었다.

       

       “1층에서 얻는 수익치고는 상당한 수준일 거야. 그래야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데리고 올 테니까. 거기에 몇 년 일하며 갚을 돈을 우리가 한꺼번에 받는 거기도 하고.”

       

       “목돈인 거군요.”

       

       “응. 다만 생각한 것처럼 많이 나오지는 않을 거야. 아까 말한 것처럼 이건 진짜 인신매매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구출에 대한 수고비니까. 거기에 몸값 측정은 그 사람의 능력에 따라 달라져.”

       

       “완전히 폐인이 됐으니 돈이 안 된다는  소린가요?”

       

       “…자꾸 그렇게 오해가는 단어만 골라 말하지 말라니까. 신전에서 각 잡고 치료하는 거니, 끔찍한 저주라도 걸린 게 아니면 전부 치료될 거야. 내가 말한 건 1층 모험가라 갚을 능력이 부족하잖아. 그래서 몸값 자체를 낮게 책정하는 거야.”

       

       “하긴. 신전이 돈에 궁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해당 층의 모험가들에게 혹할만한 금액이면 충분하지. 굳이 환자에게 빚을 족쇄처럼 씌워둘 필요도 없고.

       

       고개를 끄덕이다 보니 도착한 치료소. 주르륵 늘어선 일반 진료 줄을 지나쳐, 옆에 난 작은 문을 두드리는 리디아.

       

       콩콩.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누구십니까?”

       

       “부상당한 모험자를 데려온 사람.”

       

       “아!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무언가 철그럭 거리는 소리가 들린 뒤에야 열린 쪽문. 그곳에는 선한 인상의 여인이 순백의 사제복을 입은 채 우리를 맞이했다.

       

       “여러분의 앞날이 사랑으로 가득 차 있길. 사제 레밀리라고 합니다. 우선 안으로 들어오시죠.”

       

       “응.”

       

       고개를 끄덕이면 들어가는 리디아. 그 뒤를 따라 나와 들것을 든 길드 직원들이 따라 들어갔다.

       

       안쪽은 기다란 복도가 이어져 있었는데, 열심히 걷다 보니 도착한 끝에는 거대한 환자 집합소가 있었다.

       

       “거기! 골절상에는 뼈 먼저 맞추고 치유하랬잖아!”

       “무슨 놈의 독이…정신차리세요 모험가님! 여신께서 당신과 함께하십니다!”

       “아, 안 돼 올리! 눈을 떠!! 이제 곧 사제님이 오신단 말이야!”

       

       다크서클이 가득한 눈으로 죽어라 기도문을 읊고 신성력을 끌어올리는 사제들. 검게 죽은 피를 토하면서도 가까스로 정신줄을 붙잡는 환자. 그리고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환자까지.

       

       야전 병원을 연상시키는 장소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뒤통수를 긁적인 레밀리가 뻘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래 보여도 정말 목숨을 잃는 분은 얼마 없습니다. 저희들이 수시로 교대하며 신성력을 쏟아내고 있으니까요.”

       

       다소 피곤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레밀리의 눈과 목소리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방긋 웃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사랑의 여신님을 모시는 곳에서도 가장 힘든 곳에서 밤낮없이 일하시는 분들이잖아요? 그만큼 신앙심 깊은 분들일 테니 믿습니다. …무엇보다 비명이 들린다는 건 어찌됐건 살아있다는 증거니까요!”

       

       “호호. 그렇게 말해주시니 조금 마음이 편해지네요! 역시 고결한 리디아 님의 동료 분이십니다.”

       

       살짝 밝아진 표정의 레밀리가 리디아를 동경의 눈빛으로 한번 바라보더니, 내 쪽을 향해 고개를 꾸벅인다.

       

       음. 역시 리디아를 알아봤구만? 혼자 틱틱대는 거야 얼마든 가능하지만, 리디아의 일행으로서 틱틱대면 리디아의 명예에 흠이 가지 않겠는가.

       

       아무리 신전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어도 지금은 잠시 내숭을 떨 때다.

       

       “…이게 내조인가?”

       

       “요나. 헛소리 말고 이리 와.”

       

       “넹.”

       

       잠시 생각하느라 뒤처진 내 팔을 잡아끄는 리디아. 그렇게 얼마나 더 걸었을까. 정말 위급해 보이는 환자와는 한참 멀리 떨어진 곳, 비교적 조용한 구석의 침대에 도착했다.

       

       길드 직원들이 익숙하다는 듯, 푹 잠든 포로를 눕히고는 우리가 길드에 보고했던 내용을 그대로 신전 측에 전달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사이에 그의 몸에 둘린 가죽을 하나씩 벗기기 시작했다. 이제 다 끝났으니 이건 우리가 챙겨가야지.

       

       아무리 홉 고블린이라도 아이언 울프를 마구 사냥하는 건 무리였는지, 혼 래빗의 가죽을 기워 붙인 것이었지만.

       

       이만한 양이면 그래도 팔았을 때 꽤 값이 나갈 것이다. 아니면 내 방바닥에 카펫처럼 깔아도 되는 거고.

       

       그런 이유로 주섬주섬 가죽을 하나씩 챙겨가는 도중이었다.

       

       간이 벽과 커튼 한 장으로 대충 구분 지은 옆 침대. 그 틈새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 이안 씨?”

       

       “누구십니까?”

       

       촤아악!

       

       내 목소리에 반응하듯 열리는 커튼.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요 며칠전에 보았던 이단심문관. 카렌이었다.

       

       정말로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기에 순간 머리가 정지했다.

       

       검은색의 단정한 사제복 위에는 빨간 피가 튀었고, 이전과 달리 다크서클 하나 없는 얼굴에는 자책과 놀람이 섞여있었다.

       

       누가 봐도 한따까리 하고 온 이단심문관 그 자체.

       

       다만 사제복에 튄 피가 적의 것만은 아니었나 보다.

       

       커튼이 걷히며 드러난 이안의 전신은 검붉은 피로 범벅되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상처는 얼추 아물어 있었다는 점 하나였지만….

       

       뭐가 문제인지 정신을 잃은 채 낑낑거리고만 있는 상태.

       

       생각보다 심해 보이는 상처에 흠칫 놀란 사이. 나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카렌. 그녀가 다짜고짜 내 어깨를 양손으로 붙잡으며 외쳤다.

       

       “도, 도와주십시오!”

       

       “네?”

       

       “제발 저를…이안을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제가요?”

       

       “여신님의 말씀을 가장 온전히 받아들이신 분 아닙니까. 분명 뭔가 방법이 있으실 겁니다!”

       

       “없는데요…애초에 전 신성력도 없단 말이에요.”

       

       당황하며 고개를 젓자 눈에 띄게 어두워지는 카렌의 표정.

       

       “아, 안돼… 그럼 이안의 저주는 대체 어떻게 해야….”

       

       “저주…?”

       

       저주라는 말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반사적으로 허리춤의 유니콘 단검의 검 자루를 만지작대며 물었다.

       

       “혹시 이안 씨는 동정이신가요?”

       

       그럼 조금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부하의 성생활을 알고 있는 상사…히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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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

EP.57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어졌다.


       


       잊은 줄 알았던 충동이 가슴속을 두방망이질 친다. 하지만 그게 지금 당장 뭐라도 쓰겠다는 뜻은 아니다. 우선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나.


       


       길드에 보고를 마치고, 정산도 마치고, 셀리의 귓가에 한스를 제물로 바치려던 건 봐주겠다며 속삭여 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일은 대충 일단락 났다.


       


       이제 남은 건 가죽 돌돌이 신세가 편안했는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이름 모를 남자를 신전에 전해주고 수고비를 챙기는 것.


       


       “신전…가기 싫다아….”


       


       “이미 늦었어.”


       


       리디아가 쿡쿡 웃으며 우리 대신 남자를 들것에 태워 이동시키는 길드 직원 둘을 가리켰다.


       


       돈은 우리가 받지만, 어디까지나 길드에서 신전으로 부상자의 신변을 넘기는 일이기에 동행한 것.


       


       그리고 어디서 누구 뒤통수 후려쳐서 미궁에서 기절한 모험가라고 우기는 미친놈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직접 길드가 움직이는 거다.


       


       오직 저런 일만 하는 전담팀이 있다고 하니, 얼마나 길드가 모험가 서포트에 진심인지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들은 신앙에 충실하거나, 돈에 충실한 거겠지.


       


       여신은 미궁을 만들고, 여신을 모시는 자들은 모험가를 서포트하는 길드를 만들었다.


       


       그 사실 하나에 자부심 풀충전 된 신도가 한둘이겠는가.


       


       물론 사랑의 여신의 신도가 아니더라도 길드의 직원이 될 수는 있다. 그저 신도들과 똑같은 수준의 직업의식을 요구할 뿐이지.


       


       대부분은 여기서 다 떨어져 나가지만 어떻게든 끈질기게 달라붙는 이들도 존재한다.


       


       가령 길드의 고액 연봉에 눈이 돌아간 엘프라거나….


       


       길드의 접수처에 잘생긴 엘프 남자들이 많은 이유가 그래서다. …남역 세계만 아니었다면 눈나들이었을 텐데.


       


       “에휴.”


       


       “한숨 멈춰. 여기까지 와서 그만둘 건 아니잖아?”


       


       “아, 다른 이유 때문에 한숨 쉰 거예요.”


       


       “다른 이유?”


       


       “요정과 은화의 종업원 형들이 아니라 엘리랑 리디아 님이 바니걸 의상을 입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


       


       말없이 인상을 와락 찌푸리는 리디아.


       


       “그래요. 그 극혐하는 반응 때문에 안 해줄 거라는 건 알았죠. 그래도 보고 싶은데…어떻게 안 될까요?”


       


       “대체 여자가 헐벗은 게 뭐가 좋다고 그러는지.” 


       


       “하아…진짜 남자가 헐벗은 게 뭐가 좋다고 그러는지.”


       


       서로가 서로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도 잠시. 어느새 우리는 새하얀 석조 건물 앞에 도착해 있었다.


       


       길드의 본청에 버금가는 웅장한 크기. 티끌 하나 없는 순백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건물은 무수히 늘어선 기둥 위에 지붕이 놓인 형태였는데.


       


       완벽한 도리스식 신전…흔히들 말하는 그리스 스타일의 신전을 연상시켰다. 실제로 그게 모티브였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다만 저게 가장 큰 건물이라 눈에 띌 뿐이지, 비교적 평범하게 생긴 건물도 주변에 많이 늘어서 있었다.


       


       중앙의 신전이 여신을 찬미하고, 그 위대함을 설파하는 장소라면.


       


       주변에 지어진 건물들은 필요에 따라 나중에 세워진 건물들이다.


       


       다친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만들어진 치료소, 자꾸 범죄적인 수단으로 멀쩡한 남자를 창남으로 전직시키니 생긴 무료 창관(화대가 아니라 기부금을 받음), 성기사나 사제가 될 아이를 교육시키는 아카데미, 그리고 내가 자주 신세 진 무료 급식소 등등.


       


       여신을 위한 것이 아닌 여신의 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시설들이 위성처럼 대신전을 둘러싼 형태다.


       


       우리가 가야 하는 곳도 이러한 위성 건물 중 하나고.


       


       “리디아 님. 리디아 님. 얼마나 나올까요? 지금은 저래도 사지 멀쩡하고 젊은 남자니 꽤 나올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니 무슨 범죄라도 저지르는 것 같잖아.”


       


       한숨을 푸욱 내쉰 리디아가 고개를 저었다.


       


       “1층에서 얻는 수익치고는 상당한 수준일 거야. 그래야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데리고 올 테니까. 거기에 몇 년 일하며 갚을 돈을 우리가 한꺼번에 받는 거기도 하고.”


       


       “목돈인 거군요.”


       


       “응. 다만 생각한 것처럼 많이 나오지는 않을 거야. 아까 말한 것처럼 이건 진짜 인신매매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구출에 대한 수고비니까. 거기에 몸값 측정은 그 사람의 능력에 따라 달라져.”


       


       “완전히 폐인이 됐으니 돈이 안 된다는  소린가요?”


       


       “…자꾸 그렇게 오해가는 단어만 골라 말하지 말라니까. 신전에서 각 잡고 치료하는 거니, 끔찍한 저주라도 걸린 게 아니면 전부 치료될 거야. 내가 말한 건 1층 모험가라 갚을 능력이 부족하잖아. 그래서 몸값 자체를 낮게 책정하는 거야.”


       


       “하긴. 신전이 돈에 궁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해당 층의 모험가들에게 혹할만한 금액이면 충분하지. 굳이 환자에게 빚을 족쇄처럼 씌워둘 필요도 없고.


       


       고개를 끄덕이다 보니 도착한 치료소. 주르륵 늘어선 일반 진료 줄을 지나쳐, 옆에 난 작은 문을 두드리는 리디아.


       


       콩콩.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누구십니까?”


       


       “부상당한 모험자를 데려온 사람.”


       


       “아!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무언가 철그럭 거리는 소리가 들린 뒤에야 열린 쪽문. 그곳에는 선한 인상의 여인이 순백의 사제복을 입은 채 우리를 맞이했다.


       


       “여러분의 앞날이 사랑으로 가득 차 있길. 사제 레밀리라고 합니다. 우선 안으로 들어오시죠.”


       


       “응.”


       


       고개를 끄덕이면 들어가는 리디아. 그 뒤를 따라 나와 들것을 든 길드 직원들이 따라 들어갔다.


       


       안쪽은 기다란 복도가 이어져 있었는데, 열심히 걷다 보니 도착한 끝에는 거대한 환자 집합소가 있었다.


       


       “거기! 골절상에는 뼈 먼저 맞추고 치유하랬잖아!”


       “무슨 놈의 독이…정신차리세요 모험가님! 여신께서 당신과 함께하십니다!”


       “아, 안 돼 올리! 눈을 떠!! 이제 곧 사제님이 오신단 말이야!”


       


       다크서클이 가득한 눈으로 죽어라 기도문을 읊고 신성력을 끌어올리는 사제들. 검게 죽은 피를 토하면서도 가까스로 정신줄을 붙잡는 환자. 그리고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환자까지.


       


       야전 병원을 연상시키는 장소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뒤통수를 긁적인 레밀리가 뻘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래 보여도 정말 목숨을 잃는 분은 얼마 없습니다. 저희들이 수시로 교대하며 신성력을 쏟아내고 있으니까요.”


       


       다소 피곤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레밀리의 눈과 목소리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방긋 웃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사랑의 여신님을 모시는 곳에서도 가장 힘든 곳에서 밤낮없이 일하시는 분들이잖아요? 그만큼 신앙심 깊은 분들일 테니 믿습니다. …무엇보다 비명이 들린다는 건 어찌됐건 살아있다는 증거니까요!”


       


       “호호. 그렇게 말해주시니 조금 마음이 편해지네요! 역시 고결한 리디아 님의 동료 분이십니다.”


       


       살짝 밝아진 표정의 레밀리가 리디아를 동경의 눈빛으로 한번 바라보더니, 내 쪽을 향해 고개를 꾸벅인다.


       


       음. 역시 리디아를 알아봤구만? 혼자 틱틱대는 거야 얼마든 가능하지만, 리디아의 일행으로서 틱틱대면 리디아의 명예에 흠이 가지 않겠는가.


       


       아무리 신전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어도 지금은 잠시 내숭을 떨 때다.


       


       “…이게 내조인가?”


       


       “요나. 헛소리 말고 이리 와.”


       


       “넹.”


       


       잠시 생각하느라 뒤처진 내 팔을 잡아끄는 리디아. 그렇게 얼마나 더 걸었을까. 정말 위급해 보이는 환자와는 한참 멀리 떨어진 곳, 비교적 조용한 구석의 침대에 도착했다.


       


       길드 직원들이 익숙하다는 듯, 푹 잠든 포로를 눕히고는 우리가 길드에 보고했던 내용을 그대로 신전 측에 전달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사이에 그의 몸에 둘린 가죽을 하나씩 벗기기 시작했다. 이제 다 끝났으니 이건 우리가 챙겨가야지.


       


       아무리 홉 고블린이라도 아이언 울프를 마구 사냥하는 건 무리였는지, 혼 래빗의 가죽을 기워 붙인 것이었지만.


       


       이만한 양이면 그래도 팔았을 때 꽤 값이 나갈 것이다. 아니면 내 방바닥에 카펫처럼 깔아도 되는 거고.


       


       그런 이유로 주섬주섬 가죽을 하나씩 챙겨가는 도중이었다.


       


       간이 벽과 커튼 한 장으로 대충 구분 지은 옆 침대. 그 틈새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 이안 씨?”


       


       “누구십니까?”


       


       촤아악!


       


       내 목소리에 반응하듯 열리는 커튼.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요 며칠전에 보았던 이단심문관. 카렌이었다.


       


       정말로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기에 순간 머리가 정지했다.


       


       검은색의 단정한 사제복 위에는 빨간 피가 튀었고, 이전과 달리 다크서클 하나 없는 얼굴에는 자책과 놀람이 섞여있었다.


       


       누가 봐도 한따까리 하고 온 이단심문관 그 자체.


       


       다만 사제복에 튄 피가 적의 것만은 아니었나 보다.


       


       커튼이 걷히며 드러난 이안의 전신은 검붉은 피로 범벅되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상처는 얼추 아물어 있었다는 점 하나였지만….


       


       뭐가 문제인지 정신을 잃은 채 낑낑거리고만 있는 상태.


       


       생각보다 심해 보이는 상처에 흠칫 놀란 사이. 나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카렌. 그녀가 다짜고짜 내 어깨를 양손으로 붙잡으며 외쳤다.


       


       “도, 도와주십시오!”


       


       “네?”


       


       “제발 저를…이안을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제가요?”


       


       “여신님의 말씀을 가장 온전히 받아들이신 분 아닙니까. 분명 뭔가 방법이 있으실 겁니다!”


       


       “없는데요…애초에 전 신성력도 없단 말이에요.”


       


       당황하며 고개를 젓자 눈에 띄게 어두워지는 카렌의 표정.


       


       “아, 안돼… 그럼 이안의 저주는 대체 어떻게 해야….”


       


       “저주…?”


       


       저주라는 말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반사적으로 허리춤의 유니콘 단검의 검 자루를 만지작대며 물었다.


       


       “혹시 이안 씨는 동정이신가요?”


       


       그럼 조금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부하의 성생활을 알고 있는 상사...히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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