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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

       같은 시각, 프리나는 지독한 뱃멀미와 싸우고 있었다.

        세라와 아르투르 두 사람과 합류해 구명정에 탄 것까진 좋았지만 그 후에 이어진 상황은 연이어 최악이었다.

        바깥에는 폭풍우가 치고 있고 통성명에서는 화려하게 자폭해 버렸고 클락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최악인 것은 구명정에 같이 탄 이들 중 정령학파가 둘이나 있다는 점이었다.

       

        “아~ 두 분 다 문하생 대표셨구나. 어쩐지 낯이 익다 했어요. 혹시 공역에도 오셨었나요?”

        “지금은 가문의 일 보단 개인적인 취미생활이 먼저라 수련의 층에 있었다.”

        “미티어와 글레시아는 라운지 규모가 크기로 유명하죠. 저희 아가씨께서도 수련의 층에 머무는 동안 새로운 정령과 계약하셨답니다.”

        “피터, 부끄럽게 왜 그래? 그냥 정령의 회랑에서 데려온 하급 정령이에요. 어둠 속성은 희귀한 편인데 희한하게 제 위치노트에 관심을 가지지 뭐에요. 호호, 다들 연락처 교환 하실래요?”

       

        백가의 서열 13위인 셀루시아의 도로시와 그녀의 하인인 피터는 하루 종일 입을 쉬질 않았다.

        아직 마지막 테스트가 남았는데도 이미 자신들은 합격한 것처럼 자신만만했다.

        출렁이는 배 안에서 위치노트만 보고 있던 프리나는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최대한 구석에 찌그러진 채 갤러리에 올라온 글에 삐뚤어진 댓글을 다는 게 고작이었다.

       

        ====

        [나같은 찐따들은 구명정 함부로 타지 마라]

       

        (사진)

       

        7번 구명정은 거의 엠티 분위기네

        하하호호 아주 웃음꽃이 피는 게 좀 있으면 배에서 술도 따르겠어

        유일한 일행은 아까 복도에서 마주친 뭔 항해사 부인? 인가 한테 끌려가서 뭔가 쥐어짜내졌어

       

        내리고 싶다 살면서 마족 본 적도 없으면서 테스트는 왜 참가한다 했을까

       

        — 그래서 넌 지금 갤질이나 하고 있음? ㅋㅋㅋㅋ

        — 2번도 상황 비슷함

        — 짜내져? ㅗㅜㅑㅗㅜㅑ…….

        — 프리나나 : 흠, 그 와중에 아는 일행 있었다고 연막 치는 게 찐따 티 확 나거든요

         ㄴ 아니 진짜로 있었다니까? 나만 떨궈놓고 갑자기 사라졌다고

         ㄴ 프리나나 : 이써때니꼐~?

        ====

       

        “프리나 선배, 괜찮으세요?”

        “으, 응? 나, 난 괜찮은데 왜?”

        “조금 전부터 조용히 계시길래. 배 아프세요? 저 약 있는데 드릴까요?”

       

        천사같은 세라의 손길에 내면의 사악한 고닉의 마음이 다소 누그러졌다.

        한결 기분이 나아진 프리나는 슬쩍 로브를 들춰 얼마 전 자신의 몸에 새겨진 기하학적인 문양을 재확인했다.

        어차피 누구에게 보여줄 것도 아니었지만, 하필 굉장히 민망한 부위였다.

       

        저주를 쓰는 이상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고는 있었는데.

        고작 중층도 오르기 전에 발병한다는 건 그만큼 마녀로서 재능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역시 피는 못 속여.”

        “네?”

        “아무것도. 그, 그보다 클락한테 연락은 없어?”

        “클락 님이요? 몇 번 메시지를 보내 봤는데 아직 답장은 오지 않았어요. 분명 저희 방 앞까지는 같이 계셨다고 했죠? 아직도 헤매고 계시면 안 될 텐데…….”

        “아, 알아서 오겠지 뭐. 걔는 해주학파니까 어차피 나랑 평생 같이 가야 돼.”

       

        프리나는 이곳에 오기 전 클락의 손에 의해 핏속에 흐르던 마녀의 인자가 일시적으로 누그러졌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해주학파에 제 발로 찾아오는 녀석들은 하나 같이 복잡한 사정을 품고 있어 깊게 캐내진 않았으나 그에게 무슨 비밀이 있는 게 분명했다.

        돌이켜 보면 마녀가 발산한다는 특유의 매력에도 딱히 끌리는 기색이 없었다.

       

        ‘아니, 그건 문헌일 뿐이고 실제론 나 같은 거한테 매력이 없기 때문이겠지.’

       

        어쨌든 효과가 있었으니 다음 번에는 좀 더 제대로 확인해 봐야한다.

        평소 위치노트만 보고 있는 후배는 끔찍한 대인관계 능력을 가진 프리나도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였다.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되서 좋았고 부담스럽게 관심을 갖거나 곤란한 질문을 해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학파 규칙을 내세워 무언가를 요구하면 미심쩍어 하면서도 넘어가 주는 모습에 점점 이쪽에서부터 거리를 좁히게 만들었다.

       

        유달리 주위에 여자가 많다거나 구내식당의 혼밥 존에 서슴없이 찾아오는 등 어딘가 상식이 부족한 모습은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나서서 친구도 만들어주는 등 가감없이 친절을 베풀면 금새 아싸답게 망상이나 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갤에 중계 같은 건 안 달리니까.”

        “중계요?”

        “너 같은 애는 몰라도 돼. 그, 그보다 시험은 이걸로 다 끝난 거야?”

        “아까 도로시가 자기 할아버지에게 들었는데, 시험이 하나 더 남았대요. 저희 보트에만 여섯이 탔는데 이렇게 되면 합격자가 너무 많아져 버리잖아요.”

        “하긴, 정보부도 일 년에 수십 명은 안 뽑으니까. 마족에게서도 도망치기만 하면 되는 거라 그리 어렵진 않았어.”

        “네, 그러니까 좀 더 변별력을 가를 수 있는 문제를…….”

        “꺄아아아악!!”

       

        갑자기 도로시가 비명과 함께 쓰러지자 두 사람은 즉시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대화하고 있던 그녀는 창백한 안색으로 구명정 한 쪽에 난 창문을 가리켰다.

       

        “뭐, 뭔가 있었어요……! 저 어둠 속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어두운 하늘을 모두가 바라보던 그때.

        번개가 내리치며 폭풍우 속에서 거대한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

       

        “마(魔)의 근원을 품은 종족이라니, 설마 용을 말하는 것이오?”

        “성주의 칙령 하에 마지막 개체가 숨이 끊어졌다 들었소만.”

        “그렇다면 더는 상대할 일 없는 마족이 아닙니까.”

        “클로에 교수. 입단 테스트의 총괄을 자진해서 맡은 건 좋지만 너무 흥미 본위로만 준비한 것 같소.”

        “동의합니다. 이것들도 다 조사위에서 출자한 지원금인데…….”

       

        클로에의 발표 직후 파티장이 술렁였다.

        우려와 걱정, 한편으론 미지의 생물에 대한 기대감이 교차하는 미묘한 분위기였다.

       

        나 역시 꽤 흥미를 갖고 지켜 보았다.

        마족 연구에 진심인 건 알았지만 설마 용에 대한 조사까지 했을 줄은 몰랐다.

        워낙 알려진 정보가 적어 우리도 대륙의 모든 산맥을 이 잡듯이 뒤지고 나서야 찾을 수 있었는데.

       

        저 폭풍 속에서 나타날 존재가 내가 상대한 용의 특성을 절반이라도 구현했다면 당장 프리나와 일행을 구하기 위해 이 자리에서 뛰쳐 나가야 했다.

       

        “에잇! 이미 늦었습니다! 전 연구를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으니까요! 자, 보세요! 저 웅장한 자태를!”

       

        클로에의 손짓과 동시에 하늘에 섬광이 내리꽂혔다.

        뒤이어 비구름을 뚫고 나타난 환영을 본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모든 마법을 튕겨내는 검고 번들거리는 비늘.

        튀어나온 주둥이 안에 빼곡히 찬 예리한 이빨.

        마주치는 것만으로 전의를 상실하는 샛노란 동공과.

        몸통 끝에서부터 이어지는 기다란 꼬리.

       

        그리고…… 체구에 비해 유독 짧고 앙증맞은 한 쌍의 앞다리.

        잠깐, 앞다리라고?

       

        “바로 이겁니다. 한때 제국의 절반을 불태우고 대륙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존재의 모습. 두럽지 않습니까?”

        “과연…… 가히 인간의 힘으로는 범접할 수 없어 보이는군.”

        “날개는 어디갔나? 분명 문헌에서 확인한 바로는 하늘을 날 수 있다고 들었는데.”

        “그건 고증 오류입니다. 실제로는 좀 더 주둥이가 커서 날기엔 적합하지 않았죠.”

       

        아니야.

       

        멋지긴 하지만 나랑 동료들이 목숨을 걸고 해치운 건 이딴 녀석이 아니다.

        어찌 보면 이 세계엔 존재할 리 없는 고대 생물을 제한된 정보로 묘사해낸 클로에가 대단했지만 그녀의 연구가 틀린 방향으로 나아갔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갤러리를 켜서 관리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

        — 관리자 : 혹시 자기가 현재 23층에 있다 거수

        ====

       

        파딱들 중 아무도 극채색에 지원한 이는 없었다.

       

        ====

        — 관리자 : 아니면 자기가 환영 마법에 대해 좀 잘 안다, 혹은 백가 출신이다 거수

        — 관리자 : 비밀은 지킴

        — 초천재금발미소녀 : 거수하면 비밀이 아니어요

        ====

       

        하다 못해 하층 지나다니다 보면 발에 채인다는 빛 원소 전공 혹은 백 개가 넘는 마도가문 출신도 하나가 없었다.

        누군 바쁘게 VPN 잡으러 돌아다니는데 니들은 갤 관리는 안 하면서 탱자탱자 놀기만 하는구나.

        잠시 낙담하고 있던 찰나, 당축이로부터 개인 메시지가 도착했다.

       

        ====

        — 당신께축복을 : 혹시 무슨 일 있으신가요? (੭˙ ˘ ˙)੭

        — 관리자 : 너 환영 마법 쓸 줄 알아?

        — 당신께축복을 : 그쪽은 잘 모르지만 기청으로 비슷한 흉내는 낼 수 있어요 (›  ᴗ  ‹⋆)

        ====

       

        아, 그렇군.

        성신께 소원을 비는 기청은 ‘부존재의 존재’를 행하는 기적이란 측면에서 환영 마법과 꽤 유사하다.

        실제로 루스리아 계통의 원소술사들이 가장 많이 전과하는 쪽이 신성학파이기도 하고.

       

        ====

        — 관리자 : 지금 VPN 쓰는 녀석이 있어서 좀 잡아야 하는데, 환영 마법으로 보여줘야 할 이미지가 있거든?

        — 당신께축복을 : VPN? 그게 뭔가요? ( ˙o˙ )?

        — 관리자 : 니가 옛날에 하고 다녔던 가면분탕질 

        — 당신께축복을 : 세상에! 그런 나쁜 짓을 일삼는 유저는 절대 용서할 수 없어요! (・`ヘ´・;)

        — 당신께축복을 : 전 성신께 맹세코 한 번도 그런 적 없지만요

        ====

       

        얘는 대화할 때마다 시끄러워서 도무지 집중이 안 되네.

       

        클로에가 만든 VPN은 분명 내버려둘 수 없는 기술이었다.

        허나 독자적인 연구 성과라고 말했던 만큼 그녀만 갤러리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더는 퍼져나갈 일이 없기도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용에 대한 정보를 대가로 해당 기술을 완전히 폐기시키는 게 가장 온건한 해결책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거절하면 그때 살살이에게 맡기지 뭐.

       

        ====

        — 당신께축복을 : 어떤 이미지를 말하시는 건가요? (°ㅂ° )

        — 관리자 : 마룡

        — 당신께축복을 : 예???

        — 관리자 : 내 기억을 추출해서 보여주면 될 거야 기청이면 추출 과정도 건너 뛸 테니 더 쉽네

        — 관리자 : 근데 너 제대로 할 수 있어? 구현 제대로 못 하면 곤란하거든

        — 당신께축복을 : ……당신께서 마룡에 대해 어떻게 아시는 지는 묻지 않아야겠죠

        ====

       

        유일하게 걱정되는 점이라면 딱 하나.

        당축이의 기청이 과연 백가의 서열 1위에게도 통할 만큼 강한가였다.

        자연스럽게 성신 팔아먹는 거 봐선 실패할 확률이 높아 보이는데…….

       

        ====

        — 당신께축복을 : 그 분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제 기청으로 4대 재앙 같은 걸 보면 미쳐 버릴지도 모르는데 괜찮으시겠어요?

        ====

       

        메시지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자신이 있는 것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ㅠㅠ
    당축이는 이모티콘 매번 다른 거 쓰기 힘드네요. 노피아 뷰어는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되도록 구현이 다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논문자판기 님 후원 감사합니다.
    이렇게 많이 주시다니…. 후원 메시지가 고정되긴 했지만 아니었더라도 캐릭터가 매력 있다는 칭찬을 해주셨을 것 같아 기쁘네요.

    설날에 이틀이나 쉬어 버려서 이번주는 화요일도 업로드 했습니다.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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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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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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