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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

       

       

       “···있지, 스피라.”

       

       “네?”

       

       “나 너무 무서워.”

       

       “···저도요.”

       

       

       아르테의 명에 따라 사건의 전말을 멀리서 지켜보던 라이라와 스피라는 당황했다.

       

       협회의 수사관이다. 심지어 초인범죄 담당.

       

       초인범죄는 위험하다. 조금이라도 실수한다면 대형 참사로 이어지기 쉬우니까.

       

       그렇기에 초인범죄 담당 수사관들은 전투, 시민 보호, 수사 등의 업무를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엘리트들이다.

       

       최전방 경험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데다가, 상층부에도 인정받는 유능한 인재.

       

       그런 사람의 앞에서 대놓고 정체를 드러내며 회유를 시도하다니, 무모했으니까.

       

       제압했을 시점에 죽인다면 모를까,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주고 회유를 하다니.

       

       아르테가 잡혀가서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둘은 잠깐이나마 행복한 상상을 했다.

       

       ···상상이라는 말을 했다는 점에서 알다시피, 보란 듯이 수사관과 함께 돌아왔지만.

       

       

       “잘 부탁합니다. 아라크네의 신입이지만, 당신들과 함께하게 될 예정입니다.”

       

       “네, 네엣···.”

       

       

       어색하다. 아니, 어색한 수준을 넘어 무섭다···.

       

       매일같이 빌런들을 쫓아다니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왜, 왜 넘어온 거야?!

       

       엄청 유능한 거 아니었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무력도 필요하고, 격무를 수행하기 위해 정의감도 필요한 수사관이, 어느새 우리 곁에 같이 서 있었다.

       

       이 무능한 협회 놈들아···!

       

       

       “···그런데 그 모습, 당신들. 혹시 위버멘쉬와 관련이 있습니까?”

       

       “히, 히익! 저, 저희 위버멘쉬 아니에요!”

       

       “그, 그래. 맞아. 어, 음···. 어, 어떻게 증명하지?!”

       

       “어, 그게···. 아, 아라크네 만세! 빌런 죽어라! 아르테 님 만세! 주인님 만세!”

       

       “마, 만세! 야호! 위버멘쉬 죽어라! 쓰레기들!”

       

       

       순식간에 찔러 들어오는 날카로운 질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허둥지둥거렸다.

       

       나는 늑대 귀와 꼬리. 스피라는 하반신이 뱀.

       

       누가 봐도 위버멘쉬다. 반박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최대한 손을 씻었다는 어필을 하자!

       

       그렇게 다짐하던 찰나, 아르테가 우리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수사관님. 저들은 일부러 조직에 잠입했던 사람들이니까요.”

       

       “···그렇습니까?”

       

       “네에, 그렇고 말고요.”

       

       

       아르테가 우리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그, 그렇구나···!

       

       원래부터 스파이였다는 이야기로 넘어가려는 건가?!

       

       

       “뭐든지 알아낼 수는 없으니까요. 누군가는 희생을 통해 빌런 조직에 잠입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과, 과연···.”

       

       

       ···뭔가 능숙한데. 설정 같은 걸 한두 번 짜본 솜씨가 아니었다.

       

       이런 거 많이 해봤나?

       

       하긴, 나는 아르테가 뭘 해봤다고 해도 납득할 수 있을 자신이 있었다.

       

       

       “미안합니다. 제가 실수를···.”

       

       “아, 아니에요.”

       

       “그래. 우린 괜찮아.”

       

       

       고개를 꾸벅 숙이는 모습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우리가 부끄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수사관이라고, 수사관!

       

       그것도 아르테가 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무려 십 년 넘게 계속 이 일을 해왔던 베테랑!

       

       아무리 베테랑이라고 해도 초짜 수사관은 무섭지 않다.

       

       재능이 넘쳐도 고꾸라지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하지만 십 년 넘게 수사관을 해온 사람은 무섭다 못해 경외심이 든다.

       

       도대체 얼마나 유능하길래 빌런들과 부대끼면서 그렇게 오래 버티는 거지?

       

       ···아니, 애초에 그런 사람을 어떻게 회유한 거야?

       

       

       “자, 새 동료도 들어왔으니 이 기세를 몰아 빌런의 정리를···.”

       

       “그건 힘들겠습니다.”

       

       “어째서죠?”

       

       “지금쯤 협회에서 지정한 위치에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서요. 어서 가봐야···.”

       

       “아,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그게 저니까.”

       

       “···네?”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듯 의문을 표하는 수사관을 향해, 아르테가 싱긋 웃었다.

       

       

       “하율 수사관님은 조금만 생각해보시면 알 텐데. ···협회에서 지정한 위치 주변에 아라크네와 위버멘쉬가 같이 있는 게 과연 우연일까요?”

       

       “서, 설마···.”

       

       “윗선에서 아라크네를 추적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랍니다.”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좋아요. 마침 사람도 넷이겠다, 한 명씩 맡으면 되겠네요.”

       

       

       아르테의 입에서 나온 폭탄 발언을 덤덤히 받아들인 사람은 수사관뿐이었다.

       

       나와 스피라는 도대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뭐? 윗선에서 아라크네를 추적하지 말라고 했다고?

       

       게다가 협회에서 지정한 사람이 아르테라는 건 설마···.

       

       

       “혀, 협회에서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빌런을, 묵인하고 있다고···.”

       

       “어허. 말조심해주세요? ···사람이 아니라, 빌런이에요?”

       

       “힉. 네, 네···. 비, 빌런이죠! 물론이에요!”

       

       

       스피라가 내뱉은 추측성 발언을 통해 확신했다.

       

       혀, 협회다···.

       

       아르테가 저렇게 활개 치고 다니는 배경은 협회가 있기에 가능한 거였어.

       

       골치 아픈 빌런들을 죽여버리려고 협회에서 물밑작업을 하고 있던 거야!

       

       

       “···아, 맞다. 라이라.”

       

       “응?! 왜, 왜.”

       

       “잠깐만요.”

       

       

       내게 다가와 목을 쓰다듬는 아르테가 더더욱 어렵게만 느껴졌다.

       

       그냥 미친 살인마인 줄 알았더니, 협회에서 반쯤 사람 죽여도 된다고 허락받은 인간 도살자였다.

       

       

       “···됐다. 자아, 어때요? 편한가요?”

       

       “으, 응···?”

       

       “목이요, 목. 만져봐요. 어때요?”

       

       

       모, 목···?

       

       아르테의 말에 목에 손을 가져다 댔더니, 어느새 익숙해졌던 목걸이의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서, 설마 새로운 동료를 손에 넣었으니 빌런이었던 나는 필요 없다던가···?

       

       

       “슬슬 배신할 시기는 지난 것 같아서요. 굳이 불편하게 목걸이를 채울 필요는 없죠. 그렇죠?”

       

       “그, 그렇지···.”

       

       

       그래.

       

       아르테의 말이 맞아. 이제 배신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한다.

       

       처음 그녀를 따른 건 목숨의 위협을 받아서.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따른 것도 역시 내 신변의 안전을 위해서.

       

       만약 도망칠 기회가 생겼다면 당장 도망쳤겠지.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는 도망칠 수 없다.

       

       열등감을 품었던 상대가, 사실은 이렇게나 강대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어디로 도망쳐도 결국에는 그녀가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버렸으니까.

       

       이제 열등감 같은 건 들지 않았다. 그런 게 생길 리 없지.

       

       열등감이라는 건 자신보다 나은 사람에게 생기는 감정이다. ···그렇지만, 아득하게 먼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열등감은 생기지 않아.

       

       그저 경이로울 뿐.

       

       

       “마침 간부도 넷. 그리고 저희도 네 명이네요.”

       

       “한 명당 간부 한 명을 맡으면 딱 맞겠군요.”

       

       “바로 그거에요. 할 수 있겠죠?”

       

       “네, 네엡! 마, 맡겨만 주세요!”

       

       “···.”

       

       

       나를 바라보는 아르테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느냐.

       

       이제 그런 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에게는 계획이 있을 터니,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을 게 분명하다.

       

       불가능했다면 애초에 물어보지도 않았겠지.

       

       이날, 동급생에게 열등감을 품었던 라이라는 그녀에게 굴복했다.

       

       품에 넣고 다니던, 이전에 아르테가 줬던 환약이 문득 생각났다.

       

       역시 아르테는 다 생각이 있는게 분명해.

       

       

       

       ***

       

       

       

       “···후우.”

       

       

       작게 입 안의 연기를 내뱉으며 눈앞의 쓰레기들을 바라보았다.

       

       

       “치, 침입자다! 어서 경보를···!”

       

       

       -삐이이이이익! 삐이이이이익!

       

       “뭐, 뭐지!?”

       

       “···시작됐군.”

       

       

       쓰레기들이 당황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기들이 경보를 울리지 않았는데도 울려서 당황한 모양이군.

       

       ···저승으로 가는 마지막 길이니, 선물삼아 알려주기로 하였다.

       

       

       “침입자가 나 혼자라고 생각하는 거냐?”

       

       “서, 설마···!”

       

       “이곳은 오늘, 빌런들의 무덤이 될 거다.”

       

       

       두 눈을 살며시 감으며 실소를 지었다.

       

       설마 내가 이런 짓을 하게 될 줄이야. 쫓던 사람에게 감화되어 똑같은 짓을 벌이고 있다니, 웃기기도 하지.

       

       분명 클레어와 이미 죽어 나자빠진 그 녀석이 본다면 기겁을 하며 말릴 게 분명했다.

       

       하지만 더는 멈출 수 없었다.

       

       그 녀석을 죽인 빌런이, 또다시 누군가를 해치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때, 내 안의 무언가가 망가진 기분이 들었다.

       

       그건 과연 죄책감일까, 아니면 사명감일까.

       

       어쩌면 망가진 게 아니라 다시 불이 붙은 걸지도 모른다.

       

       그때 당시 포기했던, 복수를 원하는 내 감정이 이제서야 타오르는 걸지도 모르지.

       

       뭐, 이제와서 그런 걸 생각하기에는 늦었나.

       

       협회도 원하는 행위다. 그렇다면 협회의 월급을 받아먹는 나로서는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아주 기본적인 상식이니까.

       

       ···무언가가 내 몸을 가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 어째서! 공격이 통하지 않아···!”

       

       “그런 기습은 이미 여러 번 겪어봤다. 수사관이 그 정도에 당하면 쓰나.”

       

       “수, 수사관?! 그런 놈이 왜 여기에!”

       

       

       입에 물고 있는 담배의 연기가 흩날리며, 나의 몸도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땅을 딛고 있던 발의 감각이 사라지고, 손의 감각이 사라지고, 마치 전신이 물에 젖은 솜이 된 것 같은 기분.

       

       ···이건 언제 써도 익숙해지지 않는다니까.

       

       

       “미안하지만, 조금 아플 거다. 너희들은 모두 사람 한 번쯤은 죽여봤을 테니 딱히 불평은 없을 거라 믿는다.”

       

       

       잠깐은 무적이나 다름없는 능력이지만, 오래 사용할수록 정신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지기에 오래 사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만은, 이번만은 한계까지 사용하기로 했다.

       

       그 광경을 보았더니 화풀이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만약 정신을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오래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아지랑이처럼 사라져버릴까?

       

       어느새 목 아래가 모두 안개처럼 흩날리고, 목까지 안개화하기 직전.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선언했다.

       

       

       “···육지에서 익사하는 기분을, 마음껏 즐겨줬으면 좋겠군.”

       

       

       그들이 안개를 걷어내려 자신들의 무기를 휘두르는 모습이 웃겼다.

       

       이렇게까지 악의적으로 사람을 죽이려고 한 적은 없었는데.

       

       마수들에게는 그저 순간 회피용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능력이, 사람에게는 이렇게까지 효율적일 줄이야.

       

       이래서 다들 빌런 짓을 하는 건가.

       

       문득 학창 시절에 클레어와 나, 그리고 그 녀석까지. 셋이서 떠들던 기억이 떠올랐다.

       

       

       ‘야, 너는 능력이 왜 이렇게 빌런 같냐?’

       

       

       이미 땅에 묻힌 그 녀석의 말이 다시금 귓가에 파묻히는 것 같았다.

       

       소리가 되다 말고 흩날리는 안개를 보며 생각했다.

       

       그러게.

       

       ···진짜 빌런 같다.

       

       그때는 헛소리하지 말라고 짜증 냈는데.

       

       안개가, 전장을 뒤덮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제 공지쓰고 드러누웠더니

    눈뜨니까 13시간이 지나있었어요

    덕분에 멀쩡해졌슴다 에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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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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