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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

       

       교황의 첫인상은 뭐랄까.

       

       정석이라고 하는 게 가장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관상을 벗어난 사람이었다.

       

       사람에게서 우러나온 인상이 따듯한 사람.

       

       심지어는 몸주신마저 기특하다는 감정을 전해 왔다.

       

       “저를 기다렸다고요?”

       

       “그렇소.”

       

       더없이 정중한 태도였다.

       

       이 교황이라는 사람은 분명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이런 태도를 보일 것이다.

       

       “…”

       

       강신을 하며 가라앉았던 감각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제부터는 내 숙제이려나···.

       

       “은밀하게 그대를 찾고자 많은 노력을 했지만…결국은 닿지 못하였소.”

       

       교단에서 나를 찾았었다?

       

       이상한 일이다 한스와 알루어드, 그리고 클라인 영감은 이미 나와 만났었으니까.

       

       “시작은 얼마 전 아스테르 백작령이었소만…”

       

       “백작령이요?”

       

       굉장히 잘 찾은 게 맞았다.

       

       내가 자리를 잡은 곳은 그곳이다.

       

       신당이 차려진 곳이니까.

       

       외진 곳에 있다고 하지만 찾기는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파견했던 신관이 웬 엘프에게 쫓겨서 돌아왔었소.”

       

       “엘프요…?”

       

       “무려 공간 이동 스크롤까지 쓰고서야 겨우 추격에서 벗어났다고 보고를 받았…”

       

       “잠깐, 혹시…?”

       

       백작령에서의 공간 이동.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처음에 아이린을 귀인으로 점지받고 갔을 때의 일이다.

       

       이상하게도 여러 사람의 방해로 아이린과 바로 만나지 못했던 그날.

       

       분명히 아이린을 따라간 곳에 마법의 흔적이 있었다.

       

       “허…”

       

       “짚이는 게 있는가 보오?”

       

       그때는 아이린이 세계수의 의지를 따라 나를 찾아왔을 때였다.

       

       아마, 나와 연관된 수상한 사람이라면 쫓아갔을게 분명하다.

       

       엘프들은 나름 급박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그 이후로는 그대에게 사람을 보내지 않았소.”

       

       “왜죠?”

       

       “아직 때가 아니라 판단했기 때문이오.”

       

       “…?”

       

       때가 아니다라···.

       

       교황 아저씨의 표정으로 보건대,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았다.

       

       역시나 내 의문을 눈치챈 듯 아저씨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대륙전쟁의 신탁에 대해 아시오?”

       

       “…”

       

       한스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신께서는 ‘밤이 왔지만 밤이 아니리라. 여명이 밝았지만 그 또한 밤이니 길을 잃지 말라.’ 라고 신탁을 내리셨소.”

       

       “그런데요…?”

       

       “선대 교황과 성녀께서는 ‘여명이 밝았지만 그 또한 밤이니’라는 신탁을 지금의 상황이라 생각했다오.”

       

       충분히 그렇게 해석 할 수 있었다.

       

       여명이란 대륙전쟁의 끝이라 해석 할 수 있으니까.

       

       그 후를 지금으로 보아도 되고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해석에 대해 아는 사람이 적었다.

       

       당장 우리 영감님들만 해도 전쟁은 끝났다고 생각했으니까.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소만…교단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오.”

       

       그런데 말이다.

       

       “그 신탁이랑 저를 찾는 게 무슨 상관이 있나요?”

       

       교황이 푸근하게 웃음을 지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대륙전쟁이 끝나던 날, 성녀께서는 몸을 희생하여 신성력을 받아들였소.”

       

       “…”

       

       “그리고 선대의 교황과 나에게 계시를 전했다오. 그대의 뒤에 있는 저들도 모르는 이야기이지.”

       

       세간에 알려진 것 말고 조용히 전해진 신탁.

       

       흠칫.

       

       뒤에 있던 클라인 영감과 알루어드의 몸이 굳어졌다.

       

       정말로 그들도 몰랐던 비사인 것 같다.

       

       “…?”

       

       “끈이 이어졌으니, 기다리라. 푸른 종과 함께 생명이 나리라.”

       

       “…끈? 생명?”

       

       푸른 종이라고 하면 내가 쓰는 방울이 맞았다.

       

       “그리고 번개가 친다고 하시며, 대략적인 위치를 알려주었소.”

       

       뭔가 묘하게···.

       

       신탁보다는 내가 받는 공수와 닮아 있었다.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성녀가 몸을 던지며 받은 계시라 그런 걸까.

       

       “겨우 그걸로 저를 찾았다고요?”

       

       “허허…교단의 정보력도 약하지 않거니와 마법이 아니고서는 맑은 하늘에 번개가 치지는 않는다오.”

       

       새삼 느끼지만, 대단한 일이었다.

       

       이 넓은 대륙에서 저것만으로 나를 특정하다니.

       

       감탄을 하는 내 얼굴을 보았을까.

       

       교황 아저씨가 어색하게 머리를 긁었다.

       

       “사실은…자연스럽게 흘러 갔소.”

       

       “…네?”

       

       “갑자기, 클라인 경의 제자가 그대와 함께하더군. 그때까지는 그대인지도 몰랐지. 위치만 알아냈을 뿐.”

       

       클라인 영감이 보고를 올렸고, 한스가 나와 함께했다.

       

       그 이후의 행적을 들으며 나라는 확신을 가졌다는 교황.

       

       딱, 나라는 걸 알아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저들의 처지에서는 혼자서 신탁을 받으며 신과 함께하는 사람이니.

       

       “그대의 할 일이 많아 보였소. 기다리라는 계시가 이해가 될 정도로. 그런데…”

       

       그리고 하는 말에 내 입에서 피식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뒤에 있는 저놈이 갑자기 가출을 하더니 그대와 함께 돌아온 것이오.”

       

       진짜 나의 느낌에서 벗어나지 않는 놈이었다.

       

       말 안 듣는 개구쟁이.

       

       철없는 어린아이.

       

       뒤에 올 놈이 빨빨 거리며 찾아올 때 알아봤다.

       

       알루어드가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죄…죄송합니다…! 그런 계시가 있는 줄 알았다면…!”

       

       아무래도 기다리라는 구절 때문에 많이 당황한 모양이다.

       

       자기가 억지로 가서 데려온 그림이 되었으니.

       

       “야.”

       

       “예, 크리스님…”

       

       “괜찮을 걸?”

       

       “…예?”

       

       분명히 아까 공수가 내릴 때 그와 관련된 건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이리로 와야 했으니, 오히려 알루어드는 잘한게 맞지 싶었다.

       

       좀 이상한 방식으로 끌려와서 그렇지···.

       

       그것도 한번은 넘어가겠다 했으니, 문제는 없을 것이다.

       

       “걱정안 해도 돼.”

       

       “…예.”

       

       알루어드가 쭈굴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다시 한번 사과를 드리겠소. 제대로 맞이하지 못해 미안하오.”

       

       “으음…”

       

       뭐, 어쨌든 아직는 별일이 없으니 문제 삼을 이야기는 아니었다.

       

       교단의 복잡한 사정이야 차차 알아가면 될 일이고.

       

       그보다 궁금한 건···.

       

       “성자와 성녀는 계시를 얼마나 자주 받나요?”

       

       “….많지는 않소.”

       

       “일반 신관과 다른 점은요?”

       

       “신안을 타고나며, 남다른 신성력을 보유하고 있소만…”

       

       “역시…”

       

       이제야 의문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계속 이상했다.

       

       당장 이곳까지 오면서도 느끼지 않았던가.

       

       이들을 향한 신의 관심을 말이다.

       

       어지간한 무당보다 더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흐음…”

       

       이렇다 할 신가물이 없는 세상.

       

       하이 엘프 역시 가물이기는 했지만, 세계수에게서 나눠받지 않았던가.

       

       심지어는 그 성능마저 좋지가 않았다.

       

       “…무당이 없을 수밖에 없었네.”

       

       무당이란 신의 말을 대신 전해주는 업을 가진 사람이다.

       

       망자와 산자를 위로하며 길을 인도하는 사람.

       

       신령의 관심을 받고 무업의 길을 가는 사람.

       

       이곳의 성직자들과는 큰 차이가 있다.

       

       나는 신가물을 가졌고, 저들은 신성력을 가졌다는 것.

       

       이곳에서 신의 영향력은 신성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엘프들에게는 자연의 조화로움으로.

       

       “…어라?”

       

       저들과는 다른 성직자.

       

       이건 마치···.

       

       “나 진짜 이단인가?”

       

       곧장 교황 아저씨의 반박이 이어졌다.

       

       “절대, 그럴 리 없소.”

       

       “…?”

       

       “이단이란 교단에서 인정하지 않는 신을 모시는 자. 그것마저 마족들을 숭배하는 자들로 굳어져 있소.”

       

       계속 나보고 이단이라고 해서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그런데 나름의 기준이 있는 모양이다.

       

       그게 당연하지만.

       

       “심지어 그대는 계시에 언급된 인물. 푸른 종을 가진 것으로 이미 확실하오.”

       

       “…”

       

       “그 외에도, 그대는 성자를 보듯 규격 외의 인물이니.”

       

       저렇게 말하니까 내가 되게 중요한 인물 같지 않은가.

       

       팔자가 꼬여 있는 건 알았지만, 내 생각보다 본격적으로 꼬여 있는 기분이다.

       

       그것도 제법 오래전 부터···.

       

       “우리와 같이 신을 섬기는 사람일 줄은 몰랐지만 말이오.”

       

       저들이 받는 신탁이라는 것이 상당히 모호하니 만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대마법사일 수도 있고, 소드 마스터 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교황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나에게 물었다.

       

       “혹시, 어느 신을 섬기는지 물어도 되겠소?”

       

       “….”

       

       고개를 돌리니 클라인 영감이 슬쩍 내 눈을 피하는 게 보였다.

       

       차마, 이건 보고를 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어쩌면, 교황 정도 되면 내 몸주신을 특정할 수 있지 않을까?

       

       “….?”

       

       “왜 그러시오?”

       

       “….?”

       

       입이 열리지가 않았다.

       

       나는 분명 할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내 입은 딱 그 시점부터 붙어 버린 듯 벌어지지가 않았다.

       

       그 단어를 말하려고 할 때마다 같은 현상이 반복되었다.

       

       “이거…설마…이것도 숙제인가…?”

       

       아직은 신령님이 나에게 이름을 허락하지 않은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게 먼저가 아닌가?”

       

       이 생각이 맞는 것 같다.

       

       잘했다는 듯 쳐다보는 신령님의 시선이 느껴졌으니까.

       

       하마터면, 신령님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시간을 쓸 뻔했다.

       

       “그럼…여기 온 이유가 먼저인데…”

       

       숙제라면 보통 그 목적이 확실하다.

       

       엘프의 숲에서는 세계수 안의 검은 것.

       

       이번에 갔던 산에서는 박수 무당으로써 받는 질문.

       

       그렇다면 이번에는···.

       

       순간, 오면서 내뱉었던 공수가 떠올랐다.

       

       클라인 영감과 알루어드를 꾸짖던 말과는 달리 목적지가 없었던 말.

       

       나를 향한 공수였다.

       

       “눈 가린 놈 걷어 주고…다른 놈 입을 열어 줘…?”

       

       교황 아저씨의 어리둥절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 신탁 언제 받아요?”

       

       “머지않은 날에 받을 예정이오만…”

       

       “그거, 받을 수 있는 거 확실해요?”

       

       “…성자와 성녀가 없어 확실하지는 않소.”

       

       이게 맞는 것 같은데 애매했다.

       

       이거다 하는 확신이 들지가 않는다.

       

       도대체 뭘 해야 하는 숙제일까.

       

       신령님의 시선도 고요했다.

       

       마치 저번에 질문을 던질 때와 느낌이 비슷하다.

       

       질문 없이 질문을 던졌다면, 내가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

       

       “안 죽을 아이들이 죽었으니, 책임은 져야지.”

       

       죽지 않았어야 할 아이들.

       

       그들이 죽은 이유.

       

       나에게 뭐라 말을 걸려는 교황 아저씨.

       

       단호하게 막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만요. 지금 중요한 상황이라…”

       

       나에게 온 손님은 두 명이었다.

       

       결국은 둘 다 그 산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네크로맨서들이 오래전부터 무언가 준비를 끝낸 산으로.

       

       그곳에서 나는 사람을 살리는 선택을 했다.

       

       “…”

       

       결국은 이곳에 먼저 왔어도 그곳으로 가는 점사였다.

       

       그리고 나는 똑같이 사람을 살리는 선택을 했겠지.

       

       “안 죽을 아이들…책임…입을 열어 준다…”

       

       산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질문을 어떻게 받았었더라···.

       

       “산 위의 네크로맨서. 산 밑의 사람들.”

       

       그리고 그것들 보다 먼저 보였던 알루어드.

       

       순간, 모든 게 맞아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어느 곳으로 먼저 갔어도 이들이 했어야 할 일.

       

       하지만 하지 않아서 책임을 져야 할 일.

       

       “야, 알루어드.”

       

       “…예! 크리스님.”

       

       “너희 큰일 난 것 같다?”

       

       “예…?”

       

       죽어라 말을 듣지 않은 놈들의 결과였다.

       

       “아까, 나 끌고 온 새끼들 지금 어디 있냐? 그거 사주한 새끼들도.”

       

       어쩐지, 할아버지가 자랑하는 사람이 딱 정해져 있더라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몸 주신 누구인지 아시겠나요?

    아직 많이 안 풀기는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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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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