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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

       

       

       

       

       

       57화. 피어나다 ( 3 )

       

       

       

       

       

       “영혼의 바다요…?”

       

       

       케니스의 고개가 갸웃했다. 그런 이름의 바다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바다가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니?

       

       5호와 데모닉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5호 그게 무슨 말이지? 제깟 악마들이 아무리 용을 써도 영혼의 바다를 이용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 그렇습니다. 하지만 팔라딘님. 지금 대륙은… 유래없는 혼돈이 가득합니다.”

       

       

       5호의 말대로였다. 기나긴 대륙의 역사동안 악마들이 수작을 부린 적은 많았지만, 이토록 대륙의 곳곳에서 일시에 나타난 적은 없었다.

       북부의 몬테그라스에서, 성도 주변에서, 이번에는 제국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혼돈과 살육.

       

       때맞춰 사도들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많은 수의 사람이 죽었을 것이다. 

       

       

       ‘영혼의 바다, 대륙에 퍼지는 혼돈… 그리고 악마들.’

       

       

       데모닉의 머릿속에서 퍼즐들이 착착 맞춰졌다. 그러자 떠오르는 하나의 가설. 터무니없고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만약의 가능성도 놓칠 수는 없는 법.

       

       

       “그렇군… 그런 건가… 그래서 그렇게 된 거였나.”

       

       “… 그렇습니다.”

       

       “예? 아니, 뭐가요?”

       

       

       자기들만 아는 이야기로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5호와 데모닉. 케니스는 답답한 가슴을 퍽퍽 두들기며 외쳤다.

       

       

       “아니 이게 다 무슨 이야기인데요! 저도 알아듣게 설명을 좀 해 줘요!”

       

       “그렇군… 아직 너는 모르는 이야기인가. 곧 때가 되면 말해주겠다.”

       

       “… 아직 용사님에게는 이른 듯합니다.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영혼의 바다… 과연, 그렇군. 그래서 그런 거였나.”

       

       “으이익!!”

       

       

       듣는 사람의 속을 절로 답답하게 만드는 화법에 케니스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차라리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던가.

       모호하게 알려줄듯 말 듯 사람의 간을 보니, 속에서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후우, 후우ㅡ”

       

       

       케니스는 고개를 푹 숙이고 심호흡했다.

       그래, 둘이 자신에게 이야기 해주지 않은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때가 되면 알려주겠지.

       

       지금은 그것보다 급한 것이 있으니까.

       

       

       “그래서, 5호. 아까 악마병에 대해서도 말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 그렇습니다.”

       

       

       

       나지막하게 고개를 끄덕인 5호의 새하얀 머리카락이 어깨를 스치며 은하수처럼 흘러내렸다.

       

       

       “… 악마병은 제가 잡아 온 악마가 퍼뜨린 것입니다.”

       

       

       케니스는 처참하게 뜯겨나간 목의 흔적을 떠올렸다. 데모닉의 말에 따르면, 강력한 힘으로 목을 잡아 뜯었을 때나 생기는 흔적이었다.

       

       

       ‘저 가녀린 팔로 악마를 잡아 뜯었다고?’

       

       

       겉보기에는 한없이 여리고 얇은 팔. 케니스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5호를 바라봤다.

       

       

       “… 교전 후 생포한 악마에게 약식의 ‘교화’ 과정을 진행했습니다. 다행히 약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알아낸게 뭐지?”

       

       “… 악마병은 이들의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잘되면 좋고, 실패하면 아쉬운… 그 정도에 불과합니다.”

       

       “사람 몸속에 저주를 심는 게 수단에 불과하구요?”

       

       “… 그렇습니다. 저들의 진짜 목적은, 악마병으로 인한 혼돈. 그 혼돈과 절망이 목적입니다.”

       

       “혼돈과 절망이 목적…? 도대체, 도대체 어째서?”

       

       “… 그 이유는”

       

       “그만. 나중에 설명해주겠다. 어차피 지금 너에게는 설명해줘도 모를 테니까.”

       

       

       5호의 설명을 데모닉이 끊었다. 케니스의 원망스러운 눈초리에 데모닉은 움찔하면서 시선을 돌렸다.

       

       

       “영혼의 바다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장소. 어쩌다 벽을 넘은 몇몇 사람만이 그 발끝을 담가본 곳이지. 벽은커녕 아직 풋내기인 너는 들어도 모르고, 이해할 수 없을 거다.”

       

       “… 알겠어요.”

       

       “그리고 미리 들으면 나중에 벽을 넘을 때 방해만 될꺼다. 영혼의 바다는 네가 스스로 이해해야 한다. 너는 나중에 벽을 마주할테니, 자세히 듣지 않는 편이 좋아.”

       

       “알겠다구요.”

       

       

       케니스의 불만스러운 표정은 변함없었지만, 어쩌겠는가. 벽을 넘은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을. 입술이 삐쭉나온 케니스가 작게 툴툴거렸다.

       

       

       ‘그 영혼의 바다인지 뭔지 이야기해주는 게 얼마나 어렵다고.’

       

       

       삐쭉삐쭉 오리 주둥이마냥 튀어나온 케니스의 입. 데모닉은 쓰게 웃었다. 데모닉으로서도 별 수 없었다.

       

       영혼의 바다는 다녀온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이계의 장소. 그 자체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단련하고 무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벽을 넘어섰을 때 마주하는 장소.

       그리고 그 광활한 바다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해한다.

       타인의 생각에 대해 미리 들어봤자, 이해하는 시간만 더욱 길어질 뿐.

       

       하지만… 그곳의 풍경에 대한 것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흠, 내가 봤던 영혼의 바다는 끝도 없이 펼쳐진 검은 물의 바다였지. 끝없는 밤하늘이 가득하고 지평선 너머로 무한한 바다와 별들이 가득한 곳.”

       

       “…”

       

        

       고개를 돌린 케니스의 귀가 쫑긋하며 데모닉의 말을 주워들었다. 

       

       

       “아직 만신전에서도 논란이 있지만… 영혼의 바다가 저승의 역할을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하지.”

       

       “… 아직 망상에 불과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조용히 듣고 있던 5호가 끼어들었다. 그녀는 데모닉이 말한 가설에 동의하지 않는 모양.

       데모닉이 피식 웃었다.

       

       

       “그래, 뭐. 어디까지나 망상에 가까운 이야기지. 이제 잡담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짝ㅡ하고 박수를 쳐서 분위기를 환기시킨 데모닉이 말했다.

       

       

       “5호가 말한 게 전부 사실이라고 해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역병쥐의 둥지를 소탕하고, 악마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한다.”

       

       

       케니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만약… 악마병을 치료하기 전에 씨앗이 발아한다면…”

       

       

       무거워진 분위기. 모두가 의도적으로 말하기를 피하던, 최악의 경우.

       

       

       “그때는…”

       

       

       데모닉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치료하기 전에 씨앗이 발아한다면, 환자들은 마귀가 돼서 시민들을 죽이고 큰 혼란을 가져오겠지. 그렇게 된다면ㅡ”

       

       “… 죽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5호가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비정한 결정이다.

       누군가의 다정한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가족이였을 이들을 죽인다.

       

       저주에 걸려 마귀가 되었다는 이유로.

       과연 그것이 옳은 일인가?

       

       케니스가 입술을 꾸깃 깨물었다.

       

       

       “누구 마음대로 환자들을 죽인다는 거냐!”

       

       

       천막을 박차고 카이사르가 들어왔다. 안에서 나눈 이야기가 천막의 밖으로 흘러나간 모양. 

       천막의 입구를 지키던 성기사는 감히 카이사르를 막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성큼성큼 들어온 카이사르가 왕홀을 꽉 잡으며 말했다.

       

       

       “단 한 명도! 한 명의 환자도 죽게 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는 제국이고, 그들은 제국의 신민! 황제인 내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격양된 어조로 강하게 외치는 카이사르. 데모닉이 침착하게 카이사르를 설득했다.

       

       

       “폐하, 고정하십시오. 어디까지나 최악의 경우입니다. 지금도 루엘 사제와 제국 최고의 의원들이 노력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을 믿어야 합니다.”

       

       다만ㅡ

       

       “항상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하기에 나온 이야기 입니다.”

       

       “하! 비정하구나. 그들은 돌림병에 걸려서 살고자 했을 뿐이다. 그 간절한 마음을 이용한 악마들의 술수에 놀아난 것이 죄인가? 시름시름 앓아가는 피붙이를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한단 말이야?”

       

       “…”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도, 짐은 결코 그들을 죽이게 두지 않을 것이다.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야. 짐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고정하십시오, 폐하. 뜻은 알겠으니 일단 둥지 토벌에 대한 건을ㅡ”

       

       

       격양된 황제를 말리느라 잠시 소란스러워진 텐트. 시끌시끌한 소음에 5호가 조용히 미간을 찌푸렸다.

       

       작은 텐트를 가득 채운 소음에 참다못한 5호가 뭐라 말을 꺼내려는 찰나ㅡ

       

       

       “어ㅡ 실례하겠습니다?”

       

       

       텐트를 젖히고 한 사내가 들어왔다. 어딘가 어벙해 보이는 인상에 꼬질하게 묻은 땀자국, 등에 메인 큰 방패가 인상적인 사내.

       

       말을 바꿔가며 며칠을 달려온 이스칼이, 마침내 제국에 도착했다.

       

       

       “그으… 안토니오 대사제님이 저를 제국으로 보내셨습니다만ㅡ”

       

       

       이스칼의 눈동자가 뒤굴뒤굴 굴러간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잔뜩 화가 난 황제. 그 옆에 있는 사람은… 성도에 세 명뿐이라는 팔라딘. 또 그 옆에는… 용사님.

       

       작은 텐트 안에 있는 인물들이 범상치 않다.

       

       

       ‘좋아, 나가자.’

       

       

       이스칼은 빠르게 탈출을 시도했다.

       

       

       “하하, 이쪽 텐트가 아닌가 보네요. 저는 이만…”

       

       “대사제님이? 이리 오게.”

       

       

       그리고 빠르게 무산됐다.

       이스칼은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으로 발을 돌렸다.

       

       

       “대사제님이 보내셨다고?”

       

       “예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신의 무기로 방패를 받은 사람은 제가 처음이라고 하시면서…”

       

       

       이스칼은 등에 메고 있던 거대한 방패를 스윽 꺼내 보였다. 문짝처럼 거대한 방패를 손쉽게 다루는 모습에 보는 이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기를 내려주신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라고 하시면서… 저를 제국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렇군. 내가 알기로도 방패는 처음이니.”

       

       

       데모닉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신전의 주도하에 신의 무기를 받은 사도들의 훈련이 이루어지는 상황, 대부분의 사도들이 날붙이 종류의 무기를 받았다.

       

       

       “지금 같은 때에 여섯 번째 신께서 자네에게 방패를 주신 이유가 있을 테지. 기대하겠네.”

       

       “하하…”

       

       

       이스칼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는 데모닉. 이스칼의 눈동자에는 부담감이 가득했다.

       그에게 전투 경험이라고는 만무했으니, 낯선 이들의 기대가 무겁기만 했다.

       

       

       “… 폐하. 이제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5호가 작게 속삭였다. 작지만 듣는 이들의 귀에 꽂히는 미성.

       

       

       “… 악마병에 걸린 환자들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더군다나 악마들은 악마병을 통한 혼란을 이용해 더 큰 계략을 꾸미고 있습니다.”

       

       “다른 계략을 꾸미고 있다고? 그게 무슨ㅡ”

       

       “폐하!”

       

       카이사르의 말을 끊으며, 병사 한 명이 다급하게 천막으로 들어왔다. 땀을 뻘뻘 흘리며, 황망한 눈빛이 가득했다.

       

       모두의 머릿속에 불길한 직감이 스쳤다.

       

       카이사르가 다급하게 뛰어온 병사를 일으켰다. 

       

       

       “무슨 일인가 병사.”

       

       

       병사는 땀을 뚝뚝 흘리며 바닥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자신이 전할 이야기가 두려운 듯,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병사, 진정하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연신 병사를 다독인 카이사르. 병사가 어렵사리 입을 뗐다.

       

       

       “환자, 환자들의 몸이…! 환자들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씨앗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어색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늘 감사합니다!!!

    날씨가 오락가락합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독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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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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