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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

       

       

       

       

       혹시 그냥 가는 길이 같은 건가 싶어서 일부러 중간에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걸음을 틀었지만, 실비아는 계속 쫓아왔다. 

       

       “…실비아 씨?”

       

       결국 나는 뒤돌아 서서, 나와 눈을 마주치자 아무렇지 않게 빙긋 웃는 실비아를 마주 보았다. 

       

       “네?”

       “혹시 지금 저를 따라오고 계신 건가요?”

       

       모든 게 내 착각이고 도끼병 혹은 피해망상일 수도 있으니 정중하게 물어볼….

       

       “네.”

       

       …필요가 없었고.

       

       “왜요…?”

       

       그 물음에 실비아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대답을 망설였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후, 결심한 듯한 눈으로 실비아가 입을 열었다. 

       

       “레온 씨, 제가 생각을 해 봤는데요.”

       “네.”

       “아무래도 그럴듯하면서도 거창한 명분 같은 건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네. 네?”

       “그래서 솔직하게 말할게요. 저는 레온 씨랑 앞으로도 함께하고 싶어요.”

       

       실비아는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덧붙였다. 

       

       “평생.”

       

       뎅, 뎅, 뎅.

       

       내 귓가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에에에?!”

       “쀼우?!”

       

       ***

       

       나는 손등으로 식은땀을 닦았다. 

       

       “휴우. 그런 거면 처음부터 그냥 저랑 파티 맺고 싶다고 말을 하시지….”

       

       브레이크를 아예 뜯어내고 급발진을 해 버린 실비아의 말에 심장이 내려앉을 정도로 놀랐던 나는, 실비아의 이야기를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또 저랑 결혼이라도 하자는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요.”

       “결혼도 하면 좋죠.”

       “…그런 말 아무한테나 함부로 하면 안 돼요.”

       “아무한테나 함부로 한 거 아닌데.”

       

       나는 다시 이마를 짚었다. 

       

       “어쨌든, 저희랑 쭉 파티를 맺고 의뢰든 뭐든 같이 하고 싶으시다는 거죠?”

       “맞아요.”

       

       실비아의 말로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마물과 전투도 하고 지루한 이동 시간에 마차에서 대화도 나누고 하다 보니 앞으로도 같이 다니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검사와 마법사(아님) 조합도 괜찮고, 자기 취향인 남자가 이렇게 귀여운 사역마까지 데리고 다니니 홀로 떠돌아 다니는 것보다 훨씬 좋더라는 걸 깨달았다는 모양이었다. 

       

       ‘흐음. 그러고 보면 처음 나한테 접근했을 때도 아르가 귀엽다면서 말을 걸었었지.’

       

       나는 실비아가 시선을 아르 쪽으로 흘끔흘끔 흘리는 걸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진짜 목적은 우리 귀여운 아르를 오래 오래 보고 싶은 것일 수도 있겠어.’

       

       솔직히 이쯤 되면 실비아가 아르가 드래곤인 걸 알고 위해를 가하려고 접근한 거라는 가설은 힘을 많이 잃은 상태다. 

       

       ‘애초에 나보다 전투력이 훨씬 뛰어난 검사야. 나나 아르를 어떻게 하려고 했으면 진즉 했겠지.’

       

       마이어 씨는 완전히 일반인이고, 나와 아르는 아직 3서클의 마법까지가 제대로 다룰 수 있는 한계치다.

       

       반면 실비아는 말이 4성이지, 다른 4성 검사 아무나 데려 와서 대련을 시켜도 절대 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본기가 탄탄한 검사. 

       

       게다가 캐머해릴까지 가는 동안 우리 주변엔 목격자라고 할 만한 사람이 전혀 없었으니, 실비아가 맘만 먹었다면 우리를 전부 죽이고 모든 돈과 물자를 독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용병 길드에 등록해서 정식으로 활동하고 있는 검사가 그런 범죄를 저지를 확률은 거의 없지만….

       

       ‘만약 드래곤을 죽이겠다고 마음 먹은 상태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하무트교에게든 다른 누구에게든 사주를 받았다면 용병 길드에 등록한 신상 자체가 거짓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4성치고 너무 실력이 좋은 것도 그렇게 생각하면 설명이 되고.’

       

       적당히 경계심을 불러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위장해서 접근하고 방심할 때 처리하는 게 편할 테니까. 

       

       ‘…이렇게 생각하니까 좀 무섭네.’

       

       하지만 결국 실비아는 나와 아르에게 손을 대기는커녕 전투 시 파트너로서 더할 나위 없는 힘이 되어 주었고, 이후에도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거나 아르랑 놀아 주면서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아르를 해치려고 접근한 거라기보단 오히려 귀여운 아르를 보고 싶어서 접근한 거라는 게 현 시점에서는 더 설득력이 있는 가설이었다.

       

       그리고 나한테 ‘제 스타일이셔서요’라고 한 건 아르의 보호자인 나에게 점수를 따려는 거였겠지.

       

       ‘아르랑 놀아 줄 때의 실비아 씨 표정을 생각하면…. 그래. 이런 사기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이 오직 나만 보고 접근했다고 하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현실성이 있어.’

       

       그러니까 결혼 얘기는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나 자신에게 이로울 것이다. 

       

       나는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좋아요. 파티 맺고 같이 다니는 걸로 해요. 대신, 미리 말해 두지만 저희는 그렇게 의뢰를 빡세게 할 생각은 없어요. 실비아 씨처럼 평소에 열심히 사시는 분한테는 저희가 좀 답답하게 느껴지실 수 있어서 말씀 드리는 거예요.”

       

       이건 중요한 문제였다.

       딱히 별일이 없으면 며칠 느긋하게 캐머해릴을 돌아 보면서 아르와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닐 생각인데, 실비아 씨가 호위 임무나 마물 사냥을 빨리 나가자고 재촉하면 곤란해지기 때문이었다. 

       

       ‘파티를 맺을 거면 이런 건 확실히 하고 가야지.’

       

       4성 검사가 3서클 마법사의 계획에 따라야 되는 게 맘에 안 든다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여기까지인….

       

       “파티장은 당연히 레온 씨니까 제가 따라야죠. 레온 씨가 말하는 대로 전부 다 따를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면 마지막으로, 혹시 몰라서 말씀드리지만 지금 파티는 ‘평생’ 유지하려고 맺는 거 아니니까 너무 그렇게 기대에 찬 표정으로 보진 말아 주세요. 일단은 단기간 파티를 맺어 보고 더 유지할지 고민해 볼 거예요.”

       “좋아요! 고마워요, 레온 씨!”

       

       실비아는 말을 마치자마자 나를 와락 안았다. 

       

       “시, 실비아 씨?”

       “쀼우…!”

       

       내 어깨에 앉아 있던 아르도 함께 안은 실비아는 곧 물러나 활짝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내 얼굴이 훅 달아올랐다.

       

       뎅, 뎅, 뎅.

       

       그리고 또 다시 내 귓가에 종소리가 들려 왔다. 

       

       뎅, 뎅.

       

       “국수 드시고 가세요, 국수!”

       “…저게 진짜 종소리였네.”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 보니 국수를 파는 가게가 근처에서 호객을 위해 종을 울리고 있었다. 

       

       ‘무슨 국수 파는 가게가 저런 중후한 소리가 나는 종을 쓰는 거야.’

       

       나는 괜히 툴툴거리며 국수 가게 안쪽을 흘깃 보았다. 

       

       아직 저녁 시간이라기엔 살짝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마침 출출하긴 한데.’

       

       너무 붐비면 아르가 주목을 받을 수도 있으니, 식당을 간다면 이렇게 사람이 적당히 없을 때 이용하는 게 편하긴 했다.

       

       “일단은 뭐라도 좀 먹을까요? 국수 괜찮으세요?”

       “저는 좋아요.”

       “쀼우?”

       

       국수라는 말에 어깨에 앉은 아르가 나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고 보니 아르는 면 요리는 처음이구나. 먹기 좋은 얇은 국수로 달라고 할 테니 한번 먹어 볼래?”

       “쀼우!”

       

       뭔진 잘 모르겠지만 먹어 보겠다는 의지를 담아 아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옵쇼!”

       

       국수 가게로 들어가자 주인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메뉴는 이 위쪽을 확인해 주시고, 다 고르셨으면 편하게 주문해 주십시오.”

       

       가게 내부는 꽤 아담한 편이었다. 

       혼자 온 손님도 부담 없이 먹고 갈 수 있게 일렬로 앉도록 설계가 되어 있어, 우리는 나, 아르, 실비아 순으로 주르륵 앉아 메뉴판을 올려다 보았다. 

       

       “저는 콩국수로 할게요.”

       

       실비아는 별 고민 없이 가장 먼저 메뉴를 골랐다.

       

       “으음, 그럼 일단 아르가 먹기 가장 좋아 보이는 메밀국수를 하나 시키고….”

       

       아르가 먹기에 메밀국수 1인분은 조금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우리 아이 먹을 거니 메밀국수 조금만 낭낭하게 따로 챙겨 주세요’라고 말하는 사역맘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남기더라도 무조건 1인분을 주문할 생각이었다.

       

       ‘그럼 나는 콩국수랑 메밀국수 말고 다른 걸 시키면 좋을 것 같은데.’

       

       나는 기왕 시키는 거니 실비아나 아르와 다른 걸 시키기 위해 조금 색다른 메뉴가 없나 둘러보았다. 

       

       ‘어? 저건 뭐지? 꼬부랑매콤국수?’

       

       그러던 나는 메뉴판 구석 쪽에 추가되어 있는 신메뉴를 발견했다.

       

       ‘꼬부랑, 그리고 매콤…. 아, 저거 설마 라면인가?’

       

       이 세계엔 당연히 인스턴트 식품으로서의 라면이란 게 없을 테니, 가게에서 직접 만든다면 딱 저런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거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라면의 맛과 조금 거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한국인으로서 저걸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여기 주문할게요. 콩국수 하나랑요.”

       “예. 콩국수 하나랑.”

       “메밀국수 하나랑.”

       “넵.”

       “저기 꼬부랑매콤국수 하나 주세요.”

       “꼬부랑매콤…. 꼬부랑매콤국수 말씀입니까?”

       

       주문을 받아 적던 가게 주인은 내 메뉴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신메뉴라 혹시 뭐 재료가 떨어졌거나 그런가요…?”

       “아뇨, 아뇨! 되고말고요!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가게 주인은 주문을 받자 왠지 모르게 신이 난 듯 콧노래를 부르며 국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잘 안 팔리는 메뉴인가 보네.’

       

       하긴, 이런 판타지 세계에서 시뻘건 국물의 매운 국수라고 하면 안 팔릴 만도 하다.

       

       ‘애초에 여긴 매운 음식이랄 게 별로 없으니.’

       

       그나마 대륙 남부 쪽에는 매운 음식이 좀 있긴 하지만, 여기는 대륙 서부니까.

       

       한국인으로서는 매우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여기 식문화가 그런 걸 어쩌겠는가. 

       

       ‘라면 스프 맛을 이런 가게에서 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맛있었으면 좋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기다리자 곧 주문했던 국수가 하나씩 나왔고.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내 앞에 놓인 꼬부랑매콤국수를 본 나는,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의 먹음직스러운 모습을 보고 침을 꼴깍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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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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