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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0

   “에르기…누스님?”

   

   수백 년이란 세월이 지나 숲에 자리한 따스한 바람을 타고 요정의 목소리가 전해진다.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감미로운 미성에 홀려 고갤 돌린 에르기누스는 주변의 봄마저도 덧없게 만드는 여인을 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고장나버린 인형처럼 입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는 그는 기적에 기적이 겹쳐 만들어진 재회를 촌극으로 만들고 있었다.

   

   “후후. 그 분이 맞네요.”

   

   도저히 멋있다고는 말하지 못할 모습에 가벼운 웃음을 흘린 요정여왕은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가 갈 곳을 잃은 에르기누스의 손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여. 여왕님!? 자. 잠. 이건.”

   “죄송하지만 놓아 줄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더 이상 순수한 어린아이가 아닌 걸요.”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 살갗을 만지작거리는 여왕의 부드러운 손에 위대한 대마법사가 침몰되어 간다.

   

   “여왕님. 스승님을 벌써 망가트리시면 곤란합니다.”

   

   삐거덕대는 에르기누스가 최초의 당당함을 완전히 잃어갈 무렵. 스승의 한심한 모습에 경계심을 놓아버린 조이가 한숨과 함께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직 어둠의 악신은 저 곳에 자리하고 있잖습니까.”

   “아니. 난 신경 쓸 필요 없으니 촌극을 계속하게. 날 괴롭히던 영웅의 한심한 모습은 상당히 재밌었거든.”

   

   위기감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목소리에 에르기누스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어둠에 닿는다.

   

   그 옆모습을 보고 일순 멈칫했던 요정여왕은 느리게 에르기누스의 손을 놓았다.

   

   “더 안 하나? 바란다면 기꺼이 기다려 줄 터이다만.”

   “거절하마. 네 놈의 즐거움이 될 행동은 조금도 해 줄 생각이 없다.”

   “하하. 이것 참.”

   

   세상에 또 하나의 태양이 피어올랐음에도 여전히 대지에 자리를 잡고 있던 어둠 속에서 붉은 눈동자를 지닌 남자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수백년이라는 시간 동안 결계 안을 떠돌며 깊어지기만 하던 어둠을 모두 취한 남자의 형상은 두 태양의 아래에서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자네의 존재 그 자체가 내게 즐거움이 되는데 말이야.”

   

   남자의 주변에서 넘실거리는 기운 안에 어둠의 신격이 자리를 잡는다.

   

   오랜 세월 주인을 찾아 헤매던 어둠들이 주인을 만나 드디어 본 모습을 되찾아가는 것이다.

   

   “어째서 본 모습을 숨기지? 주인의 사랑 앞에서 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두렵나?”

   “멍청한 질문이군. 두려운 것이 당연하지. 사랑을 한 적이 없어 그런 것도 모르는가. 불쌍하군. 그래.”

   

   에르기누스는 태연히 대답하며 어둠의 악신을 살핀다. 아직 자신의 권능을 다루는 게 어설프군.

   

   부활한 지 얼마 안 되어서 힘을 되찾는 것에 급급한가. 다행스러운 일이다.

   

   최소한 주신의 사도가 피워 올린 기적이 끝나기 전엔 저 자는 제 힘을 발휘할 수 없을 터.

   

   “오. 사랑이라. 난 사랑을 모르지 않아. 자신마저도 불태워버릴 뜨거운 감정은 이윽고 재가 되었을 때 깊고도 깊은 어둠을 만들어 내거든. 네 뒤에 있는 여자가 그랬던 것처럼.”

   

   두 팔을 벌리고서 히죽 웃은 남자는 자신의 어둠으로 기적의 빛을 밀어내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멍청한 에르기누스. 그대는 자신의 사랑을 행복한 꿈에 초대했노라 생각했지만 그건 네 착각에 불과했다. 요정여왕은 그 곳이 꿈이란 사실을 너무도 간단히 눈치 챘지.”

   

   저 말에 반박하기 위해 요정여왕이 입을 열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어둠이 그녀의 목소리를 지웠다.

   

   “알겠나? 저 여자를 미치게 만든 건 너다. 저 요정의 여왕에게서 순수를 빼앗아 간 건 너다. 오롯이 너 때문에. 한 명의 소녀가 되었던 여왕이 불행해졌다.”

   “뭐래?♡ 불행해진 건 네 면상 때문에 오염되어버린 내 눈밖에 없거든?♡”

   

   대지에 존재하는 그림자를 타고서 진득하게 달라붙는 어둠의 목소리는 위대한 대마법사의 마음에도 의심의 싹을 피우려했지만 기적을 피워 올린 아이의 걸음은 너무나도 간단히 그 싹을 짓밟아버렸다.

   

   “신이란 작자가 하루 웬 종일 왱알왱알♡ 너 어둠이 아니라 아줌마의 신이야?♡”

   – 푸하핳!

   – 어울려!

   – 그래서 말이 많았구나!

   

   여자아이의 비꼼에 호응하는 요정들의 비웃음이 남자의 반론을 가로 막는다.

   

   결계가 무너지고 여왕의 꿈이 끝나버렸어도 여전히 이 곳은 요정의 숲. 여기에서 장난기 많은 요정들을 말로 이길 수 있는 자는 없다.

   

   “그 따위로 생겼는데 사실 여자였구나?♡ 불쌍해라♡ 그런 면상을 타고 났으니 마음에 어둠이 생길 수밖에 없지♡”

   “…그리도 비명으로 노래를 부르고 싶으냐.”

   “아니?♡ 싫은데?♡ 너한테 노래 불러 줄 생각 조금도 없는데?♡”

   – 노래 안 불러 줘?

   – 맞아! 우리만 노래 들을 거야!

   – 아줌마는 사라져!

   – 너 방해야!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잔뜩 거만한 체를 하던 남자가 입술을 꾹 깨물고서 어깨를 떤다.

   

   분노를 억누르느라 남자가 침묵한 것을 확인한 여자아이. 루시는 고맙단 말을 전하려는 에르기누스의 옆구리를 후려차서 넘어트렸다.

   

   “저 닭장 앞에서 찐따처럼 구는 거 더럽게 답답하거든?”

   “어. 어어어?”

   “수백년 동안 동굴에 처박혀서 망상도 잔뜩 했을 거 아냐. 쉰내 나는 동정 해골. 그 망상마냥 좀 역겨운 짓 좀 해봐. 비웃어주게.”

   “노. 노력해보마.”

   “그리고 닭장 여왕.”

   “네? 네!”

   “지금 여기로 여러 짐승들이 달려오고 있을 거거든? 데려와.”

   “아! 그 분들 말이군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마중이 나갔으니까요!”

   

   이제는 누가 여왕인지 모를 공손한 어투가 끝나기 무섭게 하늘 위에서 검성과 여신의 사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에르기누스와 식은땀을 삐질거리고 있는 요정여왕, 두 손에 힘을 꽉 주고 있는 남자, 그리고 그 가운데에 자리한 루시 알른을 눈에 담은 검성은 이게 뭔 일이냐고 묻기 위해 옆으로 고갤 돌렸지만 거기에 대답해 줄 사람은 없었다.

   

   기적을 일으키며 요정보다도 더 요정 같은 아름다움을 얻은 루시와 빛에 정화된 요정여왕의 모습이 사도를 여신의 곁으로 보내버린 것이다.

   

   코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행복에 겨워 죽어가는 사도를 한심하게 바라보던 검성은 이내 이마를 꾹 짚고서 자신의 검을 뽑아들었다.

   

   “성녀님. 힘이 남으신다면 이 쓰레기 좀 정상으로 만들어주십시오.”

   “…치료는 해드리겠지만 정상으로 되돌리는 건 좀.”

   “그거면 됩니다.”

   

   쪼르르 사도의 옆으로 달려간 페이비가 치료를 위해 신성을 펼치던 그 때. 그녀의 옆에 생겨난 수풀이 걷히더니 늑대와 여우가 모습을 드러낸다.

   

   “다행입니다. 늦지 않았군요.”

   

   앞으로 걸어 나오며 사나운 남성의 형상으로 변한 늑대는 요정여왕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뮤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저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물론입니다. 당신처럼 숲에 충실했던 송곳니를 어찌 잊겠습니까.”

   “하. 하핳. 정말 감사합니다. 여왕이시여. 당신께서 구원해주신 목숨.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수백년이란 시간이 흘러 재회한 이들이 서로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한편. 늑대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던 여우는 사도의 옆에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마. 마지막으로 보는 게 이 광경이라면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평소와 다를 바 하나 없는 정경에 양 허리를 짚고 한숨을 내쉰 루시가 여우의 허리를 툭툭 건드리자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여우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야. 얼빠.”

   “하악. 학. 왜. 왜 그러느냐?”

   “돼지마냥 토실거리는 닭장의 엉덩이에 안 깔려고 죽게?”

   “…그런 게 가능한가?”

   “네가 사람 노릇을 해주면.”

   “리나! 안개의 여우! 이 목숨을 바쳐 어둠의 악신과 싸우겠노라!”

   

   순식간에 인간의 형상으로 변한 리나가 살기등등한 눈으로 앞으로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숲 저 멀리에서 진동이 들려온다.

   

   이 대륙 그 어느 기사단보다 고된 훈련을 받으며 검을 뽑아들 그 날 만을 기다리던 기사들이 세상을 구하기 위한 임무에 목숨을 바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다.

   

   두려움 따윈 저 멀리에 내던져버린 채 결연한 투지를 눈에 담았던 이들은 숲의 중심에 자리한 정경을 보고서 눈을 끔뻑였다.

   

   한 쪽엔 성녀의 치유를 받고 일어났다가 혼절하길 반복하는 여신의 사도가 있고.

   

   또 다른 한 쪽에는 침을 질질 흘리며 징그러운 웃음을 짓는 여인이 있었으며.

   

   또 다른 곳에는 존경을 담아 요정여왕을 바라보는 남자가 있었고.

   

   그 남자를 경계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대마법사가 존재했으며.

   

   그 두 사람의 가운데에는 뒤로 감춘 손을 움찔거리는 요정여왕이 있었던 데다가.

   

   그 너머로 시선을 돌리면 어둠 속에서 어깨를 떨고 있는 남자와 그를 놀리느라 바쁜 요정들이 자리했다.

   

   …이 곳이 진정 신화의 시대를 재현할 전장인가? 광대들의 무대가 아니라?

   

   기사들이 저마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이들의 군기를 잡아야 할 알른의 주인은 자신의 딸에게로 달려가고 있었다.

   

   “루시이이이이!”

   

   요정의 걸음으로 도망치려는 루시를 가뿐히 사로 잡은 베네딕은 감격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엉망이 된 얼굴을 딸에게 비비는 것으로 자신의 애정을 드러냈다.

   

   “정말 잘했다아아아! 이 파파는 딸이 너무 자랑스러워어어어!”

   “…나는 바보파파가 제발 좀 죽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고 있는데.”

   “걱정마라! 루시! 이 파파는 널 혼자 두고서 죽을 생각이 없으니!”

   “대체 귀에 뭘. 하아.”

   

   질색하다 못해 체념해버린 루시와 훗날 매도가 쏟아질 것도 모르는 채 딸바보 짓을 하는 베네딕을 보던 기사단장 포셀은 한참 동안 한탄을 하다 등을 돌려 기사단의 기강을 다잡았다.

   

   “…감히.”

   

   악신에게 대적하기 위한 전장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북적거리던 광경에 긴장감을 선사한 것은 토벌의 대상인 악신 본인이었다.

   

   “미물들 주제에 감히이이이!”

   

   남자가 자신의 분노를 담아 세상에 어둠을 퍼트리자 희미해져가던 기적이 완전히 사그라 들고 세상에 다시금 밤이 자리한다.

   

   “나를 쓰러트리겠다고?”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어둠 속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모든 어둠 속에서 웃음소리가 퍼져 세계를 메운다.

   

   “발악해봐라. 쓰레기들. 실패한다면 네 놈들은 어둠 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푸흫♡ 푸핳♡ 푸하하핳♡ 들었어?♡ 영원한 고통이래!♡”

   – 너무 무서워!

   – 도망쳐야겠다!

   – 영원한 고통이 뭐야?

   – 몰라.

   – 근데 좀 촌스럽지 않아?

   “닥쳐어어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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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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