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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0

    <570 – 너무 빠른 아이(5)>

     

    2학년이 되며 안데르센과 서귀연 일동은 새로운 수강신청전략을 수립했다.

     

    “작년 한 해, 우리는 아무튼 꿀을 빨 수 있는 강의를 골랐다. 그리고 기프트 아카데미에는 그런 게으른 학생들을 저격하는 함정강의가 가득하다는 안타까운 교훈을 얻었지.”

    “그냥 대공자님의 촉이 구린 것 아닙니까?”

    “시끄럽다, 옐친. 보충강의는 너희들이 가져왔던 걸 잊고 있진 않겠지.”

    “윽. 면목 없습니다…”

     

    늘 안데르센의 최악의 촉에 휘말려 생고생을 해왔던 서귀연 멤버들이 불쌍해 보충강의 선택권을 줬지만, 이미 안데르센화 되어버린 서귀연!

    그들은 방학 내내 벌크업이 될 수밖에 없는 특훈을 거치고야 말았다.

     

    “아무튼 현명한 자는 과거로부터 배우고 어리석은 자는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우리는 현인이다.”

    “오오. 드디어.”

    “대공자님의 힙스터 병이 나으셨군.”

    “우리도 남들이 듣는 강의를 가는 건가.”

     

    모두의 감탄을 받으며 대공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마법시계 위로 강의 하나가 떠올랐다.

     

    ━━━

    [오경보 긴급사태의 대응 전략]

    -수요일 2교시 11시~13시

    -교수 : 로버트 엘라임

    -행정학부, 교양

    ━━━

     

    “보아라. 척 보기에도 꿀을 빠는 것과는 거리가 먼, 위험한 느낌이 드는 강의명을.”

    “오오오!”

    “2학년 의료동의 진료기록에서도 <오경보 긴급사태의 대응 전략> 강의실에서 온 수강생의 입원 및 치명상 치료기록은 없었다.”

    “대공자님이 정말 달라지셨군요. 그렇게까지 치밀한 조사를 해오시다니!”

    “또한 로버트 엘라임 교수는 교내식당에서 식사할 때도 주변 교수들과의 교우가 존재했다. 글러먹은 쓰레기 교수들처럼 혼자 식사하면서 교수 사이에서도 괴짜로 찍히지도 않았지.”

    “…대공자님이 너무 기세등등하니까 쫄리기 시작하는데. 이거 플래그 아니야?”

     

    서귀연 일동이 불길한 소리를 한 녀석을 의자에 앉히고 기다란 봉을 꺼냈다.

     

    “저 괘씸한 놈의 주리를 틀어라!”

    “으아악! 미안하다, 잘못했어!”

     

    대공자도 바보는 아니다.

    그의 강의선정에도 철학이 있다.

     

    “우리는 날먹을 좋아한다. 교수들은 그런 날로 먹는 심보를 저격해서 함정강의를 개설했지. 1학년의 우리는 실컷 당했지만 2학년은 다르다.”

    “함정강의를 피해서 다니는 겁니까?”

    “그렇다. 무엇보다도 함정에 걸리더라도 함정을 이길 지혜가 있으면 더는 함정강의가 아니지. 그러니 만에 하나 함정에 걸리더라도 간단히 돌파하기 위해 <오경보 긴급사태의 대응 전략>을 수강한 거다.”

     

    함정강의에 대응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강의!

    수강생이 많다는 사실부터 신뢰도가 올라왔다.

    제국의 귀족 자제들은 위험한 강의는 지난 1년간 귀신 같이 피했음을 고려하면 더욱 안심된다.

     

    “풋내기의 탈을 벗은 애송이들이여, 이 로버트 엘하임의 강의에 온 것을 환영한다.”

     

    교수 역시 지극히 평범한 사각턱에 턱수염이 자란, 너무 잘생기거나 과하게 못생기지도 않은 평범의 극치에 가까운 자.

    교관들에 의해 사방에 설치되는 스피커 또한 평범한 강의에 필요한 준비물로 보였다.

     

    “제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지닌 국가다. 그만큼 인접한 위험도 많고 각 지역의 주민들이 대응해야 할 비상사태도 많지.”

     

    그만큼 다양한 억까에 대응할 수 있겠군.

    만족스레 안데르센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며 서귀연 일동은 흠칫했다.

    안데르센이 강의에 너무 만족하고 있다.

    이건 아주 강력한 위기 신호였다.

    <어디서나 잘 자기>도 처음엔 강의시간에 잠을 자게 해준다고 개꿀이라며 좋아하지 않았던가.

     

    “그런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제국에선 다양한 경보를 발송하지만, 경보의 종류가 워낙 다양한 탓에 어떤 대비를 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경우가 잦다. 따라서 제국의 경보는 각 비상사태와 연관된 경보를 울리고는 한다.”

    “가령 거대몬스터가 출현하면 대지가 진동하며 큰 소음이 들린다. 하여 사이렌 또한 이 소리를 듣지 못하고 대피시기를 놓칠 이들을 위해 땅이 진동하는 소음과 거대 몬스터의 포효를 혼합하여 울리지.”

    “데스필드가 생성되며 언데드가 대거 부활하면 풀이 흔들리는 스산한 바람소리와 함께 뼈를 부수는 강한 소리가 경보음에 섞여서 울린다.”

     

    구석에서 갑자기 누가 손을 번쩍 들고 환호했다.

     

    “와! 비상사태 브금!”

    “오크노디…?”

     

    서귀연 일동은 잠시 멈칫했다.

    억까강의에 오크노디가 함께 듣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딱 한 번, 오크노디와 겹친 적이 있다.

     

    <피크닉으로 힐링하기>

     

    수많은 억까를 경험한 그들도 혈음악단의 시험 속에서 강제로 힐링을 즐기는 척했던 시험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로 잔인한 난이도를 자랑했다.

    갑자기 지뢰를 밟고 살아남는 법을 배우려고 왔다가 핵지뢰를 밟은 기분이 들기 시작하는 서귀연 일동!

     

    “대공자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도망치는 건 어떠십니까.”

    “불가하다. 설령 이 강의가 위험하더라도 인제 와서 먼저 발을 뺄 수는 없다. 저놈들의 낯짝을 봐라.”

     

    경보 그까짓 게 뭐가 문제냐며 시시덕거리는 제국귀족들이 안데르센의 신경을 건드렸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들을 돌아보지조차 않았다.

    시선이 향하는 것은 대부분 강의실 한쪽 벽에 등을 기댄 채 성검을 바닥에 꽂고 두 손을 검 손잡이에 얹은 채 교수를 직시하는 당당한 기백을 지닌 여인.

    교복 아래로 겹쳐 입은 갑옷의 모양마저도 보기 흉하기보다 고귀함과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용사, 이슈타르에게 향해있다.

    지금 물러난다면 제국 귀족 자제들에게 무시당하고도 우린 무시당할만했다고 시인하는 꼴이 된다.

     

    “…이상의 경보들이 울릴 때마다 제군들은 각 경보에 맞는 대피를 진행할 것이다. 단, 강의명에서 알다시피 <오경보 긴급사태의 대응 전략>은 항상 제대로 된 경보를 울리지는 않는다.”

    “두 개 이상의 재해가 발생하거나 혹은 다른 재해로 정체성을 위장한 재해가 벌어지거나, 경보담당자의 착오가 있거나, 더욱 심한 사태에선 제국의 적이 경보소를 급습하여 엉뚱한 경보를 울릴 수도 있지.”

    “그러니 너희는 얼마나 신속하게 각 경보가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구분하고, 잘못된 경보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신속함과 정확함을 갖출수록, 그리고 생존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혹은 사태해결에 도움이 되는지를 보일수록 점수는 높아진다.”

     

    과연 2학년 강의답게 1학년 때보다는 강의 수준이 높고 실용적이다.

    안데르센의 그런 흡족한 반응에 서귀연의 불안이 최고조로 상승할 무렵, 로버트 교수가 덤덤한 목소리로 폭탄을 던졌다.

     

    “참고로 본 강의는 본래 3학년이 듣는 강의였지만 수강생이 없는 관계로 2학년 수강생을 받았다.”

    “?”

    “예?”

    “방금 교수님이 뭐라고 했지?”

    “…진짜 아니지? 누가 아니라고 말해줘.”

     

    벌써부터 익숙한 트라우마에 덜덜 떠는 서귀연 사이에서 그나마 강단이 있는 서귀연의 4인자, 옐친 브라우니가 거수했다.

     

    “옐친 수강생. 질문을 허락하지.”

    “3학년 수강생이 없으면 보통 2학년 수강생을 받는 게 아니라 폐강을 하지 않습니까?”

    “보통은 그렇지.”

    “그런데도 학년을 낮추어 강의를 개시하라고 허가가 떨어졌다면 당연히 강의난이도가 3학년이 아닌 2학년 기준으로 내려왔겠죠?”

    “당연한 소릴 하는군.”

     

    교수님의 단호한 수긍에 긴장된 분위기가 한결 느슨하게 풀어졌다.

    어느 양심 없는 교수들과 다르게 2학년부터는 상식과 지성을 갖춘 교양인들이 교편을 잡았나 보다.

    그런 안도는 이어지는 교수의 대답과 함께 무참하게 박살 났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교관들을 사용한다.”

    “…예? 그렇게 말씀하시면 교관 없이는 3학년과 같은 난이도라는 뜻으로 들립니다만….”

    “이런 것까지 일일이 알려줘야 아는가? 위험은 수위를 낮추어 닥치지 않는다. 진정으로 오경보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선 같은 강도의 위험에 처해야 하지.”

    “……”

    “걱정할 것 없다. 3학년들은 자력 생존이 신조였지만 2학년들은 여차할 땐 교관들이 사망 직전에 구해서 의료동 신세를 지게 해줄 예정이니.”

     

    굉장히 망한 것 같다.

    옐친 브라우니가 식은땀을 흘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자연스럽게 출입구를 등 뒤로 손을 돌려 움켜쥐었지만, 문고리가 돌아가질 않았다.

     

    <잠금마법>

    <봉인마법>

    <13중 도어락>

    <대마법결계>

    <유체화 차단술식>

    <차원침공 방어술식>

    <격리차원 유지술식>

     

    “참고로 이 시험의 신조는 오경보 긴급사태에서의 생존 및 대응에 있다. 하여 장외는 허락하지 않으니 강의실 외부로의 탈출은 금지된다.”

    “화, 화장실은요?!”

    “지려라.”

    “……여기엔 여학생도 어린아이도 있단 말입니다!! 교수님은 어린이의 인권도 무시할 겁니까!?”

    “엥. 저요?”

     

    입으로 위기경보 브금을 흥얼거리던 오크노디가 어리둥절해하며 옐친과 눈을 마주쳤다.

     

    “괜찮아요. 저는 마나연공법으로 모든 독소를 분해 정화할 수 있어서 안 지려요!”

    “이럴 땐 조금은 지려도 되잖아!!”

     

    욱한 나머지 자신이 쓰레기처럼 보일 말을 내뱉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옐친 브라우니.

    뒤늦게 몰려드는 수치심에 그가 입을 꾹 다물고 부들부들 떨고 있으니 로버트 교수의 한쪽 입가가 씨익 울라갔다.

    그것은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저, 저 인간. 생긴 건 평범하고 강의계획도 나름 번듯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설마…?’

     

    로버트 엘라임 교수.

    겉모습과 달리 그의 내면에는 악마적인 가학성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가혹한 강의에 시달리는 수강생을 보며 만족과 희열을 느끼는 잔인한 교수의 본성이.

     

    ‘당했다!’

     

    너무 늦어버린 깨달음이었다.

     

    “자, 그럼 첫 번째 강의를 시작하지.”

     

    요란한 사이렌과 함께 울리는 대형종의 발소리.

    여유롭던 제국 귀족부터 이 정도면 할만하다는 안데르센 대공자까지, 모두의 낯이 단번에 굳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학년 강의(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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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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