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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0

    알아본 결과, 로제프는 이미 며칠 전부터 자리에 없었다.

    그리고 대화와 협상을 이끌어나갈 우두머리가 없으니, 결국 무력충돌밖에는 답이 없었다.

    우두머리가 없는 조직은, 아무런 권한도 없었으니까.

    나름 부두목이라는 자는 힘은 세서 부하의 통솔정도는 잘 하는 모양이지만, 머리는 영 좋지 않은지 제대로 아는 것도 없었고, 대화도 제대로 안 통했을 정도였다.

    아무리 무식해도 살아온 도시에관해 아예 아무것도 모를 순 없으니, 지하통로와 도시상황에 대한 이야기 정도는 들을 수 있었지만.

    그러나 루크에게는 이런 현 상황도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사실, 로제프의 존재유무가 루크의 계획에 큰 지장을 주지는 못한다.

    당초 계획부터가 로제프의 존재를 상정하고 짜여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지 지하통로의 정확한 위치, 그리고 그동안 통로를 오갔던 화물을 확인할 수 있는 문서나 자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주민들을 대피시켜둘 수 있을만한 인력같은 게 필요했고, 우연히 그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던 게 로제프였을 뿐이이지.

    보라, 결국 지하통로에는 도착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저택을 온통 들쑤시고다니면서 찾아낸 지하통로는, 통로라기보다는 어떤 건물에 더 가까울 정도로 넓은 공동을 형성하고 있었다.

    루크는 작게 감탄했다.

    “대단한데, 단순한 땅굴이라기보다, 무슨 드래곤의 레어같아.”

    그간 루크가 보아온 지하통로의 형태는 보통 드워프들의 광차나 겨우 오가는 비좁은 땅굴이었으니, 넓다는 반응도 무리는 아니다.

    천장도 생각보다 넓고, 통로의 폭 자체도 꽤 넓다.

    광차 하나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넓이를 생각했건만, 이정도면 광차가 최소 두개는 오갈 수 있을 것 같은 크기 아닌가?

    “비밀스런 지하통로라기에 그다지 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대단하군.”

    대충 들어보니 원래 이 도시를 관통하는 작은 워프트레인이 하나 들어설 예정이었으나, 공사를 진행하던 업체가 돌연 파산하고 도시 개발계획도 취소되는 바람에 버려진 터널을 유지보수해서 계속 이용중이라는 모양이었다.

    그 덕분에 인력도, 자본력도 부족한 이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규모의 땅굴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워프트레인을 운용하려면 이만한 공간이 필요한건가?

    아직 워프트레인을 직접 본 적은 아직 없지만, 터널의 크기를 보아하니 꽤나 커다란 이동수단인 모양이다.

    “이 정도면 거의 뭐, 잘하면 지하에 드워프들의 도시를 세울 수도 있었겠는데. 안그런가, 시에나?”

    5000년 전 헬켄의 지하도시 풍경을 떠올린 루크는 시에나에게 농담처럼 물었다.

    하지만 그렇게 묘하게 들뜬듯한 루크의 모습과는 달리, 시에나의 표정은 영 좋지 못했다.

    뭔가, 아직도 다른 세상에 혼자 남겨져있는 느낌이랄까.

    그에 루크는 그런 시에나의 눈 앞에서 손뼉을 치며 시선을 돌렸다.

    “시에나? 시에나!”

    “으, 응?”

    “정신 차리게. 아까부터 대체 왜 그러는가?”

    “아니, 뭐. 그냥…….”

    시에나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아무래도 상황이 좀 정리되고 나니,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한 깊은 후회가 시작된 탓이었다.

    “하아, 미안해. 그때, 아무래도 내가 먼저 나섰어야 했는데.”

    11살짜리의 미인계를 내세워 잠입?

    하아, 예르나가 봤으면 연 끊자고 했어도 할 말이 없다.

    차라리 내가 했어야 했는데.

    설마 루크가 말한 미인계가 정말로 그 미인계인줄은 몰랐지.

    아무리 필요해서 하는 일이라지만, 도대체 친구 딸이랑 대체 뭐하는 짓인지.

    “…….”

    앞서서 주변을 살피던 루크는 시에나에게 잠시 멈춰섰다.

    아무래도 시에나는 아까 그 잡배들이 자신에게 했던 말과 취급들을 아직까지 마음에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딱히 그건 별로 신경 안써도 되는데.

    솔직히 당시 기분이 불쾌했던건 사실이지만, 이미 다 지나간 일이다.

    게다가 자신의 현재 몸은 보고 들은 것을 의식적으로 잊어버리는 것이 불가능한 본체와는 달리, 선택적으로 기억을 잊어버리는 것도 가능한 자율기동 인형.

    망각의 축복은 벌써 내려진 터였다.

    “괜찮네, 다 이미 지난 일. 난 이미 잊어버렸으니 신경쓰지 말게.”

    “루크…….”

    하지만 시에나는 루크의 의연한 반응에 오히려 불편해졌다.

    불과 몇분 전에 있었던 일들을 정말로 잊어버렸을 리는 없으니 일부러 위로하는 말임이 확실한데, 루크가 너무나 괜찮은 분위기로 말하는 것이 일부러 자신이 걱정하지 않도록 과장되게 행동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렇게까지 자신을 위로하는 루크 앞에서 더 자책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속으론 답답하고 미안해도 겉으론 티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시에나는 크게 심호흡하고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다음부턴 이런건 하지 말자. 너무 교육적이지 못해.”

    “……이제와서?”

    그런건 아까 전에 미친 개처럼 날뛸 때부터 생각했어야 했던거 아닌가?

    루크가 어이없다는 듯 시에나를 바라보자, 시에나는 기분을 환기하듯 주변에 쌓인 화물들을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이제 여기서 뭘 어떻게 해야해, 우리?”

    누가봐도 말을 돌리는 모양새였지만, 루크는 별신경쓰지 않고 대답했다.

    “우선, ‘제단’을 찾아야해.”

    물류공장에 파견된 서드쪽에 물어본 결과, 정황상 아직 ‘화물’은 옮겨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이곳의 어딘가에 ‘제단’이 있을거라는 얘긴데, 화물이 정확히 뭔진 몰라도 일단 이쪽으로 도착할것만은 확실한 사실이다.

    그러면 아마 제단도 그리 멀리 떨어져있진 않겠지.

    “그래, 제단 말이지…….”

    잠시 후, 시에나가 이어 물었다.

    “그러면 뭐. 새 시체라던가, 이상하게 생긴 인형같은걸 찾으면 되는 거야?”

    물론 그녀는 전직 경찰인만큼, 기초적인 흑마법 관련 교육을 받은 적이 있기는 했지만, 흑마법의 희생자공식과 같은 간단한 공식외의 대부분의 지식은 오래되어 잊어버린 상태였다.

    흑마법 특유의 복잡성과 심각성때문에 실제 흑마법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실제 사건사례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있다해도 그냥 네트워크 어딘가에 떠도는 지식을 활용해 어디서 구한 동물사체나 짚단인형으로 보기 싫은 사람에게 저주를 내리는 정도고.

    그에 루크가 대답했다.

    “후훗,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마 그건 아닐걸세.”

    진 전체로보면 수백명의 희생이 엮인 거대한 의식이다.

    아마 그런 귀여운 제단을 준비해두진 않았겠지.

    “그러면 제단을 찾으려면 뭘 찾아야해?”

    “글쎄, 그것까지는 정확히 모르겠군.”

    “모른다고?”

    “제단에 딱히 정해진 형태는 없거든. 제단은 그저 의식을 행할 자리에 불과하니까.”

    평평한 돌, 동물의 사체, 수정구슬, 흑요석, 초원, 토템…….

    과거에도 제단은 이렇듯 주어진 형태가 없어 늘 술자의 기호와 환경에따가 변화하기 마련이다.

    헌데 5000년이나 지난 지금은, 제단이라는 개념은 극도로 변화하고 해체되어 형상보다는 어떤 관념의 형태가 되어버린 상태.

    그렇다보니 루크도 정작 무엇을 찾으라고는 도저히 말해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 우린 찾을 수 없는 거 아니니?”

    시에나가 미묘한 표정으로 그렇게 묻자, 루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닐세, 그래도 제단을 구분할 수는 있을거야.”

    “어떻게? 주어진 형태가 없다면서? 어떻게 생겼을지도 모르고.”

    “사실, 제단이 되기 위한 몇가지 규칙은 있거든.”

    “규칙?”

    시에나가 묻자, 루크는 손가락을 세개 펼치며 설명을 시작했다.

    “규칙은 크게 세가지가 있지.”

    첫째는 ‘구분성’. 이는 주변의 물품들과 차별되는, 그러니까 다른 곳에선 찾아보기 힘든 상징과도 같은 특징을 이야기한다.

    흰 양 사이에 검은 양이 있으면 확실히 눈에 띄는 것처럼,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일수록 구분성은 짙어진다.

    그리고 의식의 진원지가 중요한 의식일수록, 진원지의 구분성은 중요해지는 법이다.

    둘째는 ‘잠재성’. 이는 물질 자체가 가진 잠재력과 힘을 이야기한다.

    모든 마법적 현상에는 마나가 필요한만큼,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특징이다.

    그리고 강한 의식일수록 많은 마나를 소모하기 때문에, 대기중 마나농도만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이럴 때엔 제단에 많은 마나를 축적해두어야만 제대로 의식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세번째는 ‘반응성’. 이는 물질이 의식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느냐를 구분하는 특징이다.

    흑마법은 기본적으로 ‘가치의 상실’을 대가로 삼는 마법이기때문에, 가치의 상실이나 형태의 변화가 미미한 보석이나 광물은 사실 적합하지 않다.

    물론 광물은 흑마법 이외의 마법과 반응성은 괜찮아서 아예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제물도 별로 필요하지않은 간단한 의식이나 점술이라면 모를까, 대규모 희생을 필요로하는 큰 의식에는 사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루크는 정리했다.

    “그러니까 생필품이 아니고, 기준치 이상의 마나를 포함하고 있으며, 쉽게 부패하거나 오염, 변질에 취약한 물건이라면 매우 유력하겠지.”

    “그렇구나…….”

    루크의 설명을 좀 들으니 그런 교육을 받았던 기억이 조금 드는 것 같기도 한다.

    그렇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시에나는 문득, 루크가 대체 어떻게 이렇게 흑마법에대해서 잘 아는지 궁금해졌지만, 책에서 읽었다며 얼렁뚱땅 넘어가는 루크의 반응에 더이상은 추궁할 수 없었다.

    그래, 지금은 그게 급한 건 아니니까.

    저 화물들 확인하는 게 더 막막하지.

    “그나저나, 우리가 저거 다 확인하려면 엄청 부지런해야겠는걸.”

    “아, 그건 아마도 괜찮을거네.”

    무슨 뜻인지 의아해하는 시에나를 향해, 루크는 가볍게 웃으며 주머니에서 검은 조각을 꺼내고 말을 이었다.

    “내가 인부들을 좀 데려왔거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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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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