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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0

        

         

       “흐음. 생각보다 잘 지내는 것 같으니 참으로 안심이 되는구나.”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정말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진성은 대마녀에게 친절한 태도로 천천히 이해시켜줄 생각이 없다는 듯 거침없이 방 안으로 들어왔고, 오딜리아가 빌린 방이 마치 자신의 방이라도 되는 것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서류 가방을 놓고, 재킷을 벗어서 아무 데에나 걸어두었다.

       그리고는 대마녀와 마주 보는 위치로 빈 의자를 끌어오고는, 거기 자연스럽게 앉고는 말했다.

         

       “그래, 보아하니 아침은 먹은 것 같은데, 오늘은 호텔에서 쉴 생각이더냐?”

         

       너무나도 평온하고 평범한 말투.

       누가 보면 오딜리아와 같이 여행을 온 사람이라고 착각하기 충분한 질문.

         

       “여긴, 어떻게…?”

         

       하지만 오딜리아는 혼자 미국으로 건너왔다.

       진성의 집안은 물론이고, 회사 사람들에게도 그냥 ‘출장을 간다.’라는 말만을 남기고 미국으로 건너온 상태였단 말이다. 그녀가 그녀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둘밖에 되지 않는 측근, 그리고 그녀의 소중한 제자인 아그네스 정도인데….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박진성이, 이곳에 있는가?

         

       게다가 이 방은 어떻게 들어온 거고?

         

       오딜리아는 그 모든 의구심을 담아 진성을 바라보았다.

       

        그 의문에 대해서, 진성은….

         

       “허허허. 인연이라는 참으로 기이한 것이라. 우연이라고는 하나 목격하게 되었고,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알았으니 내 어찌 보러 오지 않을 수가 있으랴? 내가 여기 들른 것은 오직 그뿐인 이야기이니라.”

         

       …참으로 의뭉스러운 대답으로 답하였다.

         

       하지만 제대로 된 대답이라고 할 수 없는 말임에도, 대마녀는 이해하였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진성은 주술사인 동시에 예언자이며, 예언자인 동시에 주술사였기 때문이다.

       진성은 자신의 미래를 본 사람이며, 자신의 과거를 읽은 사람이었으며…. 한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의 점을 왔다 갔다 오가는, 다른 이들과는 괴리된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진성의 말이 ‘예언으로 보고 찾아왔다.’라는 말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점괘로 읽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예언이든 점괘든, 대마녀에게는 ‘대단한 능력으로 너의 어려움을 알고 찾아왔다.’라는 뜻으로 읽힌다는 것.

         

       그렇기에 대마녀는 진성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전부는 아니고, 일부만.

         

       “혹시, 무슨 큰 문제가 일어나나요…?”

         

       대마녀는 조심스럽게 진성에게 물었다.

       어깨는 움츠러들고, 표정은 조심스럽게 변한다.

       평소하고 다니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은 어디로 간 것인지.

         

       마치 어린아이가 치과에 끌려가서 검사 결과를 마주할 때처럼.

       어쩌면 동물병원의 존재를 인지한 강아지가 주인의 품 안에서 짓는 표정과도 닮지 않았는가.

         

       오딜리아의 표정에는 불안감이 가득 들어찼고, 그녀의 얼굴은 혹시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이 자신이 홀로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재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어두워졌다.

         

       그녀는 자신이 나이트가운을 입고 있으며, 그나마도 침대 위에서 뒹굴뒹굴하느라 헐겁게 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랬다가 자기 몸에서 느껴지는 실크 특유의 감촉에 나이트가운이 흘러내리려 하는 것을 느끼고 화들짝 놀라 여미고는, 다시 침대에 앉았다.

         

       그리곤 조마조마한 눈으로 진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대체 얼마나 심각한 일이 있기에 미국에 있는 자신에게 찾아온 것인지 불안해하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자신의 불안감을 해소해줄 탁월한 해결책이기를 기원하면서.

         

       “보자…. 어디….”

         

       하지만 진성은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바로 내놓는 대신에,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얼굴에 드리운 것은 수심이니 일이 잘 풀리지 않음이요. 몸에 액(厄)이 있지는 아니하니 부정을 탄 것도 아니요 동티가 난 것도 아니라. 다만 끈적한 정념이 몸에 달라붙어 실처럼 늘어져 있으니 집념과 집착이 누군가로 이어져 있음이요, 그 끈끈함이 짙고도 짙으니 오랜 시간 겹겹이 쌓이고 묵혀지며 숙성이 된 형국이라….”

         

       “….”

         

       “주술의 재료로 사용한다면 생령(生靈)으로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다. 다만 이전에는 본 적이 없는 것인데 어찌 이리도 짙은 망념으로 가득한고? 이는 잔향이 남은 것이 아닌, 직접적으로 접촉하거나 연이 닿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로다…. 그리하니 이 괴로움의 원인이 되기에 충분하니. 그렇군. 그래….”

         

       진성은 눈동자에 불꽃을 품은 채 대마녀의 얼굴을, 어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악연과 얽혔구나?”

         

       당연하게도 그 결론을 들은 대마녀는 화들짝 놀랐다.

       아니, 놀랐을 뿐일까.

       눈이 토끼처럼 커졌고, 몸이 진성이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악연이요?!”

         

       “그래. 그것도 오랜 악연이로다.”

         

       진성은 그렇게 단언했다.

       악연이라고.

       지금 그녀가 악연 때문에 이렇게 고생을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진성은 그렇게 말을 꺼내고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흐음. 그런데 조금 이상하구나…?”

         

       무언가 맞지를 않는다.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진성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품에서 필통 하나를 꺼냈다.

       손가락 두 개 정도를 합친 것 같은 굵기의 통이었는데, 꽤 고급스러운 재료로 만든 것인지 광택이 남달랐다.

         

       진성이 필통의 윗부분의 뚜껑을 열자 안의 내용물이 드러났다.

         

       그 안에 있는 것은…. 볼펜 심이었다.

       그것도 아주 얇고 길쭉한, 볼펜 심들.

         

       “그건…?”

         

       “산가지이니라.”

         

       산가지.

       동양에서 숫자를 계산하기 위해 사용했던 나무 막대를 뜻하는 말이다.

         

       중국에서는 산목(算木), 혹은 산(算)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이것은 셈을 할 때 사용하는 도구이기도 하였지만, 그 외에도 놀이의 도구로 사용되거나…. 점괘를 볼 때도 사용되었다.”

         

       중국은 물론이고 한국, 일본까지.

         

       주산이 보급되기 전까지 널리 사용된 도구였다.

         

       진성은 손에 들린 것은 그 전통적인 산가지를 조금 색다른 형식으로 해석해서 만든 것이었다.

         

       산통은 필통으로, 산가지는 얇은 볼펜 심으로 대체를 한 것이었다.

         

       ‘산가지의 본질은 셈을 할 수 있는 막대요, 산통의 본질은 산가지를 담는 통이니.’

         

       이래도 되냐고?

         

       된다.

         

       셈도 할 수 있고, 점도 칠 수 있다.

         

       도구는 무엇으로 만들어졌건 간에 그 본질에만 충실하면 되는 것이 아니던가.

         

       돌로 만든 칼과 금속으로 만든 칼이 그 재질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사람을 썰고 자른다는 본질이 같듯이.

       나무로 만든 괭이와 금속으로 만든 괭이가 그 재질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땅을 파고 농사를 짓는 데 사용된다는 본질이 같듯이.

         

       그의 손에 들린 산가지와 산통 역시 마찬가지일 뿐인 이야기였다.

         

       진성은 필통을 천천히 흔들었다.

       그리곤 산가지 하나를 뽑는 것으로 점을 치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이 옛적부터 전해져오던 점법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것처럼 보였다.

         

       춘추전국시대에 사용했던 점이라고 하기에는 간략화되고 다른 점이 많았고, 그렇다고 기나긴 세월을 거치면서 개량되었다고 하기에는 약간은 허술하면서도 주먹구구식으로 이어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개인이 만들고 변형시켰다고 하기에는 체계가 잡혀있고…. 그러면서도 알려진 산가지로 행하는 점괘 어느 것과도 똑같지 아니하였으니.

       참으로 기이한 점법이었다.

         

       하지만 그 기이함은 알려지지 않았기에 생기는 것이었으니.

         

       이는 진성이 행하는 점법이, 역사에서 잊힌 점법이기에 생긴 일이었다.

         

       문자의 옥(文字之獄).

         

       옛적, 황제가 있었을 시절의 중국에서는 입 잘못 놀리고 문자 잘못 쓰면 크게 화를 입었다.

       그리고 그렇게 화를 입게 된다면 본인은 물론 가문조차도 건사할 수 없게 되며, 쓴 글은 싹 다 태워지며 아예 역사 속에서 잊혀버리게 된다.

         

       진성이 손에 넣은 이 점법 역시 그러한 이유로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다만 운이 아예 없지는 않아 유적에서 이 점법이 기록된 서적이 발견되었다. 게다가 중국 정부의 아낌없는 투자를 받아 훼손된 부분까지 복원될 수 있었으니, 문자의 옥 때 완전히 사라져버린 다른 것들에 비하면 훨씬 나은 운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그냥 연구용으로만 창고에 처박혀 있는 대신에 진성이 테러를 하는 중에 우연히 발견됨으로써 그에게 읽히기까지 하였으니.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가졌던 점법이라 할 수 있으리라.

         

       다만 그 점괘의 해석이 모호하고, 앞날을 예지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점법인지라.

       그래서 대가가 일정함에도 불구하고 잘 사용하지는 않는 것이었는데….

         

       ‘잡스러운 것을 알아내기에는 쓸만하지.’

         

       지금 상황에서는, 사용할만했다.

         

       “보자. 물길이 틀어지고 산세가 뒤틀린 형국이라? 세월과 함께 천천히 어긋난 것이요, 그 뒤틀림이 점차 심해져 순리에 맞지 아니하다. 하지만 그렇게 뒤틀린 것 역시 어찌 되었건 세상의 이치라. 다만 흐르고 움직이는 형상이 뜨거운 기운과 차가운 기운이 경계를 나누면서도 꼬리를 물기 위해 움직이는 형국이니…. 흠. 이거 참.”

         

       진성은 점괘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가도,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는 듯 살짝 감탄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였다. 그러고는 점괘를 어서 말해달라는 듯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오딜리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고문을 받는 와중에 허튼 정보를 토해내지는 아니하였으니 그때의 말은 진실이었을 터인데….’

         

       과거.

       오딜리아는 수많은 정보를 말했다.

         

       그리고 그 정보 중에는 기나긴 악연으로 얽힌 대마녀에 대한 정보도 있었다.

         

       말하기를, 질투가 심한데다가 자신을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었다고 하던가.

       한때는 친구였으나 같은 하늘에서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사이가 악화하였고, 자신이 겪은 재난이며 자신이 겪은 위험 등의 대부분은 다 그 여자의 손길이 닿은 것이 분명하다고 말을 했었다.

         

       그런데….

         

       ‘이러한 점괘는…. 참….’

         

       그가 행한 점에서는, 과거 오딜리아의 말과는 다른 것을 말하고 있었다.

         

       ‘어찌 점괘가 연애나 애정과 관련된 주제로 행했을 때와 흡사한 것인고?’

         

       질척거리고 끈적거리는 느낌이 딱 연애 점의 그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또 연애와 관련되었냐고 묻는다면 또 그건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뒤틀린 애정이나 뒤틀린 우정 같은 느낌이다.

         

       뒤틀린 애정, 뒤틀린 우정이라….

         

       “그래.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아갈 수 없는 원수의 수준은 아니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악연과 얽힌 것이니, 그리 심한 것은 아니로다.”

         

       진성은 점괘를 곧이곧대로 이야기하는 대신에, 무난한 해석을 내어놓았다.

         

       그리고는 허공에 손을 뻗어 대마녀의 핸드백을 자기 손으로 끌어들이고는.

         

       지익.

         

       핸드백을 열고 지갑을 꺼내, 거기서 달러 몇 장을 빼냈다.

         

       “복채는 딱 맞을 정도로만 받겠다. 이 정도의 값어치가 걸맞으니.”

         

       진성은 달러를 자연스럽게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는 말했다.

         

       “자, 이로써 점에 대한 대가는 다 치렀고…. 대마녀야. 잠시 나를 따라와 줘야겠다.”

         

         

         

         

         

        * * *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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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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