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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1

        

         

       왠지 모르게 그런 날이 있다.

         

       아침부터 개운하고, 몸이 가볍고, 눈이 번쩍 뜨이고.

       아침의 밥맛은 맛있고, 햇살은 깃털처럼 몸을 가볍게 쓸고 간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평소보다 잘 들리고, 주인과 함께 산책하는 강아지 한 마리, 햇볕을 쬐는 고양이 한 마리조차도 눈에 잘 들어오는 날.

         

       그런 날이 존재한다.

         

       리세가 맞이한 아침은 그런 것이었다.

         

       상쾌한,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한 느낌의 아침.

       평소였다면 ‘컨디션이 좋네.’라는 생각하면서 평소에 미뤄뒀던 일을 단숨에 끝냈을 그런 날이다.

         

       그런데.

       몸 상태가 이리도 좋음에도, 이상하게도 찜찜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였을까.

         

       어째서 컨디션이 좋은데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리세는 그런 의문을 품었다.

         

       …

       …

       …

         

       “누구세요?”

         

       그리고, 진성이 어떤 여자를 데리고 온 순간.

       그 의문은 해소되었다.

         

         

         

         

        * * *

         

         

         

       “서로 인사들 나누도록 하거라.”

         

       “….”

         

       “이쪽은 나와 함께 수행하는 구도자이며, 일본에서 나의 일을 돕고 있는 무녀. 사이고 리세이니라.”

         

       “….”

         

       “이쪽은 유럽에서 이름을 떨친 대마녀, 오딜리아 A 라이히(Odilia A Reich)라고 한다. 사업체를 가지고 있으며, 그 때문에 미국에 방문하였지.”

         

       오딜리아와 리세는 진성에게 이끌려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를 보았다.

         

       어색함.

       이 숨이 막힐 것만 같은.

       어쩌면 금방이라도 터져버리지 않을까 싶은 이 끔찍한 어색함!

         

       “네…. 오딜리아 씨, 만나서 반가워요.”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리세였다.

       어색한 분위기임에도 리세는 방긋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넸는데, 그 말투는 상냥하고 친절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저 사람은 천사 같은 성격이겠구나 으레 짐작할 정도로 말이다.

         

       “크, 크흠. 그래. 만나서 반갑구나….”

         

       그리고 오딜리아는 그 친절한 인사에 대해 회답했다.

       어색함이 뚝뚝 묻어나오는 말투로 말이다.

         

       거기에 더해, 존대로 인사를 한 리세와는 다르게…. 나이 먹은 사람이 어린아이에게 반말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의 말투이기도 하였고.

         

       물론 실제 나이를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말투는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젊어 보이는 외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처음 마주한 사람에게 하기에는 좋은 말투는 아니었다.

         

       하지만 리세는 이러한 오딜리아의 태도에도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방긋방긋.

       사람 좋은 웃음만 짓고 있을 뿐.

         

       리세는 자신과 별로 이야기를 나눌 것이 없다는 듯 몸을 살짝 튼 채 다리를 꼰 자세를 취하고 있는, 심리적인 저항감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오딜리아를 바라보며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설탕과 크림을 잔뜩 집어넣은 에스프레소를 가볍게 홀짝이고는, 혹여 크림이 자신의 입가에 묻었을까 티슈로 자기 입을 닦았다.

         

       그렇게 입을 닦는 짧은 순간.

         

       “크흠. 그래서, 이곳까지 데려온 이유가 뭐죠?”

         

       대마녀가 고개를 살짝 돌려 진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리세에게 한 약간은 무례함이 담겨있는 태도가 아니라- 존중이 가득 담겨있는 존대였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리세의 입가가 살짝 변화했다.

       다만 그 변화는 너무나도 찰나에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티슈에 가려져 있어서.

       그래서 오직 리세만이 그 변화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커다란 것은 아니니라.”

         

       진성은 대마녀의 질문을 받자 방긋 웃었다.

       그리곤 호텔에 들어올 때 바꿨던 얼굴을 다시 원래의 얼굴로 바꾼 뒤, 오딜리아와 리세의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곤 아직도 김이 펄펄 나고 있는 커피잔을 들어 거침없이 꿀꺽꿀꺽 마시고는 이렇게 말했다.

         

       “농장에 다녀오니 참으로 기묘한 일이라. 그곳에 약간의 손을 쓴다면 우리 모두의 이익이 될 수 있음이니. 그리하여 이러한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이야기.

         

       진성은 그렇게 말하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 농장에 얽혀있는 것이 무엇이고 하니. 대마녀야, 너는 화장품의 원료가 필요하였을 것이다. 그것도 쉬이 구할 수 없는 특수작물, 질이 좋은 물건을 말이다.”

         

       “네? 네….”

         

       “모름지기 신제품이라는 것은 개발하기 어려운 것. 노력을 쏟아붓고 운이 따라야 개발되는 것이 아니던가.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면 응당 그 대가를 받아야 함이 옳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개발해놓고도 재료가 없어서 만들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때를 놓쳐 범람하는 제품들 속에 묻혀버리게 된다면 그것만큼 큰 손해가 어디에 있겠는가? 거기에 바람이 거세게 불며 기둥을 흔들고 있다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대마녀에게 그 농장에 자라고 있는 작물은 화장품을 개발하는 데 꼭 필요했다.

       아니, 작물뿐만이 아니다.

       그 공간 자체가 필요했다.

         

       기존에 자라고 있는 작물을 모두 수확한 후, 위치크래프트를 이용해서 거기서 무언가를 할 계획이었으니까. 무생물을 생물처럼 만들고, 생물을 변이시키는 위치크래프트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환경 역시 매우 중요했다.

       열대의 식물이 설산에서 자랄 수 없고, 선인장이 늪지대 한가운데에서 둥둥 떠다니며 자라나기 힘들 듯이, 최고의 효율로 위치크래프트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환경 역시 매우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 농장은 오딜리아에게 있어서 최고의 공간이었다.

       화장품에 들어가는 특수작물도 기를 수 있고, 위치크래프트로 강력한 경호원을 만드는 데도 쓸 수 있고, 질 좋은 토양 덕분에 온갖 것들을 실험해볼 수 있기까지 하니까 말이다. 게다가 땅덩이가 넓고 도심과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으니 좀 커다란 녀석을 만들어도 될 것이고, 유럽에서처럼 이상한 놈들이 꼬이지도 않을 테니 마음마저 편했다.

         

       그러니 꼭 얻고 싶은 곳이었는데….

       오딜리아의 추측, 그리고 거기에 더한 진성의 점괘에 따르면 이 농장은 그녀의 악연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

       그것도 자신의 사업을 방해하고 자신을 놀려먹기 위해서라는 어처구니없는 목적 때문에 말이다.

         

       “그리하니 그 농장을 얻으면 분명한 이득이 따라올 것이니라.”

         

       진성은 그렇게 말하고는 리세를 바라보았다.

         

       “방금 내가 말한 것이 대마녀의 이득이었다면, 나의 무녀야. 너에게도 분명한 이득이 있느니라.”

         

       나의 무녀.

       그 말을 들은 리세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오딜리아에게 짓던 미소와는 다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미소 말이다.

         

       하지만 오딜리아의 표정은 조금 묘하게 바뀌었다.

         

       그녀의 눈이 진성과 리세를 훑어보았고.

         

       ‘혹시…?’

         

       둘이 뭔가 묘한 사이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나의 무녀….

       가벼운 사이에 쓸만한 말은 분명히 아니었다.

         

       “신력이라는 것은 기기묘묘한 힘이다. 그것은 에너지이지만 마력과도 그 성질이 다르며, 기와 그 성질이 다르다. 기는 압축하여 몸에 자리를 잡을 수 있음이요, 마력은 끈끈하지만 물과 비슷하여 흐르니 둘 다 몸에 담아두기에는 나쁜 성질이 아니다. 다만 신력은 그 주체에 따라 다르며 그 성질 역시 판이하니. 에너지라고 할 수는 있으되 몸에 한껏 담아두기에는 무리가 가는 힘이라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런 오딜리아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성은 리세에게 에너지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었다.

         

       “무녀는 그릇이요, 그 그릇의 형상은 바뀌기 어려움이라. 그리하여 신체(神體)는 자신의 힘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을 무녀로 발탁하여 신력을 갖게 하고, 스스로는 채워질 수 없는 신체에 신력을 불어넣으며 그 힘을 휘두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다만 그릇이라는 것은 각기 다른 것이어서. 그렇기에 크기와 형태가 각각 달라, 그리하여 힘을 빠르게 얻을 수는 있으되 그 한계를 넘어서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로다….”

         

       재능을 확장하고 그릇의 형태를 바꾸고 그 크기를 키울 수 있는 다른 능력들과는 다르게, 신체(神體)에 종속된 이들은 그것이 힘들었다.

         

       이는 신력의 주체가 자신이 아닌 자신이 모시고 있는 신체(神體)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였다.

         

       다른 능력이 자신이 주체가 되어 에너지를 다루고, 익숙해지는 것은 자그마한 자산을 불리고 불려 억만장자가 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신력은 그냥 부자가 준 카드를 자기 것처럼 긁고 다니는 것에 그친다.

         

       자신이 직접 재산을 불리려 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고.

       처음부터 카드의 한도까지 긁을 수 있으니 이것 역시 편한 일이다.

         

       하지만 카드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며, 그 카드의 한도는 변화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가난뱅이가 부자가 되고, 아무 영향력이 없었던 이가 떵떵거리며 제 명성을 세상에 떨치게 되었을 때도.

       카드를 받은 이는 그저 다른 사람이 준 카드를 긁고 다닐 뿐, 처음과 똑같으리라.

         

       게다가 카드에 들어있는 돈을 다 쓰고 난 다음 언제 그 카드를 다시 사용할 수 있을지도 카드 주인의 뜻과 사정에 따른 것이었으니….

         

       그렇기에 카드를 받은 이는 카드 주인의 관심을 갈망하며, 자신이 카드를 사용할 수 있게 빠르게 갱신해주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신력은 재능을 강하게 타는 힘이었다.

         

       그릇에 따라 힘이 결정되는 만큼, 다른 능력들보다도 훨씬 잔인하게 재능을 탐하는 힘.

         

       하지만.

         

       이 잔인하기까지 한 힘은, 리세에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것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카드 주인을 담가버리고 노예로 삼은 것이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한때 리세가 모셨던 신체(神體)는 사라졌고, 리세는 무제한으로 신력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무제한으로, 실시간으로 신력을 공급받을 수 있는 무녀.

       이것이 어떻게 단순한 그릇일까?

         

       리세는 그릇이라기보다는 마르지 않는 샘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

         

       본래 가지고 있던 그릇의 크기는 한 번에 쏟아낼 수 있는 한계일 뿐이다.

         

       그래.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위에서 카드로 비유하였듯.

       그릇의 크기는 카드의 한도와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리세에게 필요한 것은 카드의 한도를 늘려주는 것이다.

         

       “그릇의 확장이 어렵다면 그릇을 꾸미고, 부속을 붙이면 되는 일이니라.”

         

       그래.

       리세가 진성에게 세례를 받고 신력으로 이루어진 외부 기관….

       여우 귀와 꼬리를 가지게 되었던 것처럼.

         

       “저 농장에, 너에게 도움이 될 물건이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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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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