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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2

    <572 – 너무 빠른 아이(7)>

     

    대지가 울릴 때부터 안데르센은 교수의 자비에 기대지 않고 거대종 침공에 대비했다.

     

    “모두 지금부터 전력을 다해 땅을 파기 시작한다. 거대종이 지나가는 동안 버틸 수 있는 지하거점을 만드는 거다!”

     

    흙더미를 파내고 기둥을 세우며 경화술식으로 천장과 벽, 바닥을 굳혀 은신처를 만든다.

    방학 동안 <무식해서 몸으로 고생하기> 강의를 들으며 몸에 때려 박힌 토목 건축지식과 노가다 기술, 다양한 생활마법이 작업속도를 향상시켰다.

     

    “<어디서나 잘 자기> 강의를 들을 때에 이런 진지구축 기술이 있었다면 독충에게 마구 물어뜯기며 각종 내성 기능작을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피크닉으로 힐링하기> 강의를 듣기 전에 결계방호마법을 배웠으면 뇌를 흔드는 음파공격이나 거대종의 진동에도 버틸 수 있는 은신처를 만들었을 텐데!”

    “지나간 후회와 고통으로 점철된 후회의 날들로 벼려낸 기술, 오늘에서야말로 빛을 보겠다!!”

     

    이슈타르가 제국 귀족들의 협력?을 받아 공구리 친 대지로 살아남았다면, 안데르센과 서귀연은 자신들의 실력으로 거대종의 침공에서 살아남았다.

     

    “모두 어디서나 잘자기 강의에서 배운 일시적 가사상태에 돌입해라. 거대종이 우리의 숨소리, 마나 한 올도 감지하지 못하도록 은폐하는 거다!”

     

    병적인 수준의 철저한 대비 덕분에 한 사람의 이탈이나 낙오도 없이 완벽하게 위기대처에 성공한 안데르센 대공자와 서귀연 일동!

    강의가 끝났음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를 듣고 나서야 그들은 흙먼지를 쿨럭쿨럭 내뱉으며 지상으로 조심스럽게 올라왔다.

    지면에는 흙더미가 되어 흩어져내리는 거대종몬스터와 놈에게 집어삼켜져 극도의 공포 속에서 마법을 펑펑 난사하다가 지쳐 쓰러진 제국 귀족 자제들이 교관들이 손에 하나씩 뽑혀 나왔다.

     

    “봐라. 마갑을 찼다고 잘난 체하던 녀석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발렸는지. 이것이 우리 서귀연과 제국귀족연합의 차이다.”

     

    서귀연 일동은 정말로 조금, 아주 조금이지만 존경심을 느꼈다.

    개똥도 약에 쓴다더니 안데르센 대공자의 저주받은 안목이 이렇게 빛을 보는 날이 오다니!

    처음부터 지뢰강의를 고르지 않았으면 이런 고생할 일도 없었지만, 지뢰강의를 열심히 들은 덕분에 핵지뢰 강의를 고르고도 몸 성히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조금이나마 성취감을 느끼게 했다.

     

    “제법이군. 첫 강의를 몸 성히 끝마친 수강생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과찬의 말씀입니다. 거대종 몬스터가 아닌 다른 몬스터의 침공에 대비할 여유도 없었기에 이번에는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가짐 또한 훌륭하군. 이슈타르 수강생이나 오크노디 수강생만큼 자네들도 아주 인상 깊었다.”

     

    로버트 엘하임 교수의 칭찬에 문득 안데르센 대공자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 두 사람은 거대종의 침공에서 어떻게 무사히 버틸 수 있었습니까?”

    “이슈타르 수강생은 제국파 학생들을 도발하여 자신이 만든 진지 위의 대지를 제국파 학생들이 공구리치도록 만들어 간편하게 살아남았다.”

    “그런 영리한 방법이…!”

     

    적의 힘을 자신의 안전을 위한 자원으로 사용하다니, 역시 어부지리라고는 해도 1학년 최종 학년수석으로 등극했던 이슈타르다운 수완이었다.

     

    “그럼 오크노디는 어떻게 버텼습니까?”

    “날았다.”

    “예?”

    “해발 200m 위까지 비행하면 지상의 흙을 퍼먹는 거대종 몬스터는 자신의 눈높이 위의 생명체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지.”

    “그런 방법이…!”

    “비행마법에 들어간 마나는 너희가 진지를 구축하거나 적을 끌어들이는 데 들어간 수고로움보다 훨씬 적었다. 숙련자는 비행마법을 유지하는 데 소모되는 마나값도 더욱 줄어들지.”

     

    로버트 교수는 훌륭한 대응으로 살아남은 학생들에게 보다 나은 답안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비행마법은 2학년 커리큘럼에는 없는 3학년의 생존기술이지만, 진정 쓸모 있는 기술은 예습을 통해서라도 배워야겠지. 2학년이라는 변명에 안주하지 말고 예습에도 공을 들이는 것이 좋을 거다. 그런 의미로 비행마법을 알려줄 테니 다음 강의시간까지 익혀오길 바라네.”

     

    새로운 마법의 습득은 올바른 술식구조를 이해하면 십분도 걸리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 술식과 구조, 원리를 이해하는 데는 며칠의 시간도 부족하다.

    숙련도를 올리고 주문속도를 향상시켜서 실전에서 자유자재로 사용하려면 족히 몇 주는 걸린다.

     

    “기초만 떼어도 충분합니까?”

    “숙련경지는 상관없다. 덜 익히고 와서 몸으로 고생하는 건 교수인 내가 아니라 수강생인 자네들이니.”

    “……”

    “참고로 강의를 포기하는 건 상관없지만, 어차피 3학년이 되면 너희는 이런 강의를 듣게 될 거다. 그땐 교관의 도움조차 기대할 수 없지.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지 말도록.”

     

    학생을 학대하는 미친 교수님이지만 분하게도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저흴 겁쟁이나 바보 취급하지 마십시오. 그런 건 말하지 않아도 다음 주까지 완벽하게 비행 마법을 마스터해서 돌아올 작정이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강의를 정복해주마.

    그리고 이깟 시시한 강의 따위, 너무 하찮아서 질린다고 수강평가를 남겨주겠다!

    안데르센 대공자는 그런 광인스러운 다짐을 하며 꺾이려는 의지를 다잡았다.

     

     

    * * *

     

     

    “과연 듣던 대로야. 981기 수강생들은 제법이군. 브론즈 교수.”

     

    학생들이 떠난 뒤, 로버트 교수가 횃불의 그림자를 향해 말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불꽃처럼 펄럭이던 그림자가 망토를 걷더니 단숨에 여성의 굴곡과 형상을 이루었다.

     

    “내 수제자는 어땠지?”

    “오크노디. 과연 별난 아이더군. 황제살해자 이슈타르나 안데르센 대공자도 학년에 맞지 않는 강함을 지녔지만 그 아이는 이질감이 배는 달랐어.”

     

    누구보다 먼저 공중으로 날아올라 위기를 회피했던 오크노디는 마찬가지로 공중에 떠올라 모든 학생들의 시선을 피했던 교수 옆에 다가왔었다.

     

    -저 합격이죠?

    -눈치가 좋군. 합격이다.

    -와아!

    -그런데 아까부터 뭘 흥얼거리는 거지?

    -위기경보 브금이요!

    -호오. 제국의 위기경보를 알고 있단 말인가?

     

    비상사태, 재난사태가 닥쳐야만 피난을 목적으로 울리는 경보를 이미 숙지하고 있는 오크노디.

    그것은 대단히 이상한 일이었다.

    제국경보는 일반인들에게는 비상사태라는 인식만을 심어줄 뿐, 적절한 대처 방법을 알리지는 않는다.

    경보를 해석하고 시민에게 알리는 것은 각 지역에 상주하는 마법사들의 몫.

    그렇기에 각각의 경보의 차이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은 소수의 마법사나 경보를 직접 만든 악사 외에는 없다시피 하다.

     

    -이건 거대종 경보고요, 이건 언데드 경보예요! 이건 마력재해 경보고요, 이건 마계침공 경보! 이건 또… 그리고 저건 또…

     

    재잘재잘 멈출 줄 모르고 이어지는 경보목록.

    그 숫자가 자신이 아는 모든 종류의 경보와 일치했을 때, 로버트 엘하임은 오크노디라는 아이에게 형언할 수 없는 불길한 무언가를 느꼈다.

    어떤 경보는 근 100년간 울린 적이 없었다.

    어떤 경보는 결코 울려서는 안 될, 세계의 위기를 의미하기도 했다.

    그 많은 경보를 일반인, 아니 경보마법사도 아닌 자가 알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울릴 작정이 아니라면 보통은 알아야 할 이유가 없겠지. 그토록 오랜 시간 울리지 않았던 경보들이 울릴 사태에 대비할 이유가 없으니까.’

     

    대륙에 현존하는 모든 종류의 위협을 일으킬 수 있는 재단과 이를 알려주는 오크노디.

    로버트 엘하임에게 오크노디는 더 이상 수강생이 아니라 재단의 뜻을 전달하는 대리인이었다.

     

    -대체 뭘 바라는 거냐.

    -바라는 건 딱히 없는데요? 아, 가지고 싶은 게 없지는 않아요!

     

    오크노디는 해맑은 얼굴로 졸랐다.

     

    -저도 브금 하나 갖고 싶어요!

    -브금…?

    -교장님 브금도 있는 마당에 세계 유일의 플레이어인 제 브금이 없는 건 너무하잖아요! 나중에 혹시 시간이 괜찮다면 브금 만들기 도와주실 수 있나요?

     

    각 지역의, 나아가 세계의 위기를 알리는 위기경보.

    그것을 자신을 모티브로 삼아 만들고 싶다.

    그 의미는 아무리 생각해도 왜곡의 여지도 없다.

     

    내가 세계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고 싶은데.

    내 두려움을 온 세상에 알릴 경보를 하나 만들어라.

     

    최소로 잡아도 거대종의 침공.

    최대치는 가늠조차 불가능한 미지의 위협.

    그런 공포의 화신이 될 예정인 다크프린세스가 협력을 강요한다.

     

    ‘농담? 아니, 저 아이만큼은 그럴 리가 없다.’

     

    모든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누구보다 뛰어난 안목을 가져야만 했던 그는, 핏빛이 감도는 바이올린에 깃든 영혼의 형상도 꿰뚫어 보았다.

     

    [혈음악단 간부 일레트리코elétrico의 영혼]

    [이 영혼은 오래도록 멈추지 않는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며 비명을 연주하고 있다.]

    [그의 영혼은 결코 악기연주를 멈추지 않는다. 그가 멈추는 순간, 지옥보다 더한 악몽이 그의 영혼을 괴롭힐 것을 알고 있기에…]

     

    그는 보았다.

    저 아이의 뒤에 떠오른 핏빛 바이올린에 담긴 영혼의 절규를.

     

    영혼의 착취.

    악업의 비명.

     

    그녀는 이미 재앙을 노래할 준비를 착실히 갖추고 있다.

    물론 오크노디를 죽이는 것까지는 교수인 그에게도 어떻게든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평범한 교수보다도 강한 축에 속했으니까.

    하지만 뒷감당이 문제였다.

    재단의 이사장.

    제일 와이히엠하이.

    그는 삼대거악의 필두와 그가 지휘하는 재단의 장학생들로부터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합리적인 결단을 내렸다.

    여기선 그녀의 억지를 받아주는 수밖에 없다고.

     

    -본 강의에서 완벽한 성적을 거둔다면 그때는 기꺼이 협력해주지.

    -와아! 약속했어요?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

     

    그 모든 대화는 그림자조차 드리우지 않는 상공에서 이루어진 것.

    브론즈 교수는 엿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의혹이 생기는 것만은 어쩔 수 없다.

    브론즈 교수는 저 아이의 본성을 알고 있을까.

    알면서도 내게 제자 자랑을 빌미로 소개한 것이라면, 브론즈 교수 또한 재단과 한통속이 아닌가.

     

    ‘아카데미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아무래도 1학년 때 오크노디를 가르친 교수들을 조금 조사해봐야겠군.’

     

    새 학기의 시작과 함께 자라나는 거악의 씨앗.

    너무 빠르게 피어나며 벌써 싹을 틔우려고 드는 제국의 적.

    차세대 거악으로 점쳐질 자.

    다크프린세스 오크노디의 존재를 고학년 교수가 경계하기 시작했다.

    다른 수강생들에게는 안타깝게도, 이는 강의 난이도가 미친 듯이 상승한다는 의미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저 더 많은 브금이 갖고 싶었을 뿐인 브금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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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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