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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2

    낮과 밤의 구분없이, 오로지 쾌락만을 본위로 돌아가는 사회의 어두운 면, 홍등가.

     

    밝은 대낮에도 빛이 잘 들지 않는 이 거리는, 퇴폐적인 붉은 빛이 한시도 꺼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소녀는, 하루에 두번이나 마주하게 된 시련에 한숨을 지어냈다.

    이곳은 루미가 오늘 만난 외부인들에게 안내해주려고 했던 ‘가게’이자, 과거 그녀의 어머니가 일했던 영업장.

    그리고 현재는, ‘만능약’의 유일한 판매처이기도 했다.

    ‘치, 이번엔 뒷문을 지키고 있잖아……. 분명 아침에는 아무도 지키는 사람들이 없었는데.’

    루미는 뒷문을 지키고 선 두명의 남성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하기사, 사람들이 바보 멍청이도 아니고 아침에 도둑이 들었는데 당연히 그에대해 방비를 하겠지.

    역시 그 때 도망을 잘 쳤어야 했는데.

    루미에게 그들은 장벽 그 자체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약을 훔쳐 달아나는 자신을 쫓아왔던 그 추격자들이었으니까.

    “으으…….”

    그렇게 생각하니, 아까 얻어맞은 부위가 욱씬거리는 것 같았다.

    이래서야 또다시 얻어맞고 쫓겨나지 않으면 다행이리라.

    하지만 방법이 딱히 없다.

    오늘 약을 구하지 못하면 엄마는 어떻게 될지 모르고.

    말이 통할까?

    글쎄, 그래도 이번엔 돈이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생각과 함께 루미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저, 저기…….”

    “뭐야?”

    기어들어가는 듯 작지만 익숙한 목소리에, 그들은 곧바로 반응했다.

    “루미, 네가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와? 네놈에겐 면목이란게 없는거냐?”

    “아니면, 더 얻어맞고 싶어서 온 거야?”

    “자, 잠깐만요! 전 이번엔 약을 사러 온거에요! 봐요!”

    그들은 아침에 그런 짓을 하고도 다시 가게를 찾아와 약을 찾는 루미에게 기가 찰 노릇이었다.

    게다가 20만길이라니.

    어디서 뭘 하고 벌어들인 건진 모르겠지만, 반나절도 안돼서 이런 돈을 모아온 사실은 꽤 놀랍다.

    약을 사기엔, 턱없이 모자라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손에 들린 20만길은 진짜였기에, 그들은 잠시 서로 눈을 마주치며 무언의 계획을 주고받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따라와. 여기 있으면 손님들이 안좋게 볼테니까.”

    “…! 정말요?”

    또다시 문전박대가 이어질것을 예측한 루미에게 그것은 상당히 의외인 대답이었다.

    역시 돈이면 되는건가?

    “그래, 그 쓰레기같은 겉옷은 어디다 버려놓고. 냄새가 아주 고약해.”

    “네, 네!”

    루미는 곧바로 하수통로를 지나며 온갖 지저분한 것들이 말라붙은 로브를 벗어던지고 그들을 따랐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 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루미가 안내받은 곳은 약을 모아둔 창고가 아니라, 어둡고 좁은 보일러실이었다.

    “저, 여기 있으면 약을 주시는거에요…?”

    어딘가 싸한 느낌에 루미가 묻자, 그들은 웃음을 터트리고는 루미의 손에서 빼앗은 구겨진 20만길을 흔들며 대답했다.

    “바보야. 너에게 줄 약이 있겠냐? 이건 네가 일으킨 손해를 갚는다고 생각하라고.”

    “그, 그럴 수가…!” 

    그럼 그렇지!

    작고 힘없는 자신에게 순순히 약을 팔아줄거라고 믿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기는 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는 것은 20만길을 잃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루미는 그들 중 한명의 다리에 매달려가며 사정할 수밖에 없었다.

    “부탁이에요, 약을 주세요. 어머니가 위독하시단 말이에요!”

    “어머니의 약? 무슨 약?”

    “‘만능약’말이에요!”

    ‘만능약’이라는 말에 그들은 눈을 크게 뜨며 루미를 쳐다봤다.

    그리고 너무 우습다는 듯 크게 웃어제끼기 시작한다.

    “왜, 왜 웃죠?”

    그들이 웃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루미에게, 그들은 자세한 설명 대신 자신의 하반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멍청아, ‘만능약’은 죽은 이거 살리는 약이야!”

    “하하하! 생각해보면 죽은걸 살리는 건 맞네!”

    “아…….”

    무슨 뜻인지 어린아이도 순식간에 이해할 정도로 적나라한 만능약의 묘사에 루미는 말도 잊고 고개를 떨궜다.

    그들은 겨우 웃음을 참아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프흐흐…. 난 또. 마약도 아니고, 대체 그런걸 꼬마가 어디에 쓸데가 있어서 그런걸 훔쳤나 했더니 그래서였냐?”

    “야, 야. 너무 그러지 마라. 그런 엄마때문에 반나절만에 20만길이나 벌어온 효녀잖아. 크큭, 지 엄마가 자기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는 전혀 모르고.”

    “…네? 엄마…가?”

    뜻밖에 알게된 사실에 루미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런 루미의 표정이 꽤 맘에 들었는지, 그는 웃으며 가학적인 진실을 이어갔다.

    “네 눈 말이야, 그거 네 엄마가 팔았어. 희귀한 금색이라 수요가 좀 있었거든.”

    “거, 거짓말…. 그럼 내 눈을 고친 약은 대체…….”

    “멍청아, 그건 만능약이 아니라 보스께서 직접 가져왔던 시약이야.”

    “어디 몸이 불편하신 높으신 분들에게 팔아먹을 거라고 했던가? 그러니까 그건 애초에 이런 곳에서 팔릴 물건이 아니었다고. 정말 여기서 그걸 살 수 있었을거라고 생각한건 아니지?”

    그 날, 루미의 어머니가 훔쳤던 약은 애초에 판매가 되는 물건이 아니었다.

    한 익명의 제약회사로부터 테스트를 목적으로 소량만 공급받은 값비싼 엘릭서였으니까.

    그런게 몇개나 있을리 없지 않은가?

    설마 있다해도, 20만길 정도론 턱없이 모자라다.
태어날 때부터 적출당했던 루미의 눈이 저렇게 재생된걸 보면, 효과 자체는 진짜였으니.

    “참 나, 그렇게나 딸을 끔찍하게 생각하던 년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런 간 큰 짓을 벌인건지.”

    “죽을 날이 가까워져서 변덕이라도 들었나보지 뭐.”

    자신의 눈에 얽힌 충격적인 진실을 이제서야 알게 된 루미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말도안돼, ‘만능약’이란게 고작 그런 약이었다니.

    그럴리 없어, 내 눈을 팔았던 게 어머니라니.

    거짓말이야, 자신을 향해 웃어주었던 그 미소가, 전부 거짓이었다니.

    그러면 그동안 자신은 대체 무얼 믿고있었던 거지?

    그리고 뭘 위해 살아있던 걸까?

    대체, 뭘 위해…….

    “그래서 난 아직도 보스가 그녀를 살려두신 결정이 이해가 안간다니까.”

    “우리가 뭘 어쩌겠어. 그분께서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다 이유가 있는 거겠지. 그년이 판 딸 눈으로 돈을 꽤 짭잘하게 벌어서 그런걸지도 모르고.”

    그렇게 또 이야기를 주고받던 그들은 아직도 넋이 나간 채 멍하니 서있는 루미를 향해 쏘아붙였다.

    “알았으면 더이상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고 꺼져. 오늘 네년때문에 아침 댓바람부터 운동하느라 순번도 밀려서 짜증나니까. 오늘 헬렌이랑 하는 날이었는데!”

    “오, 오늘 네 차례가 헬렌이었어? 안타깝네. 이번에 순번 밀리면 한달은 더 기다려야할텐데. 얼른 튀어라, 꼬맹아. 진짜 맞는다.”

    그들의 경고에도 이미 루미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수년간 믿어온 모든 진실이 고작 몇분만에 부서지는 것은, 루미같은 아이에게도 상당히 버거운 일이었다.

    그렇게 가만히 석상처럼 굳어있는 아이를 보며, 문득 그들중 한명이 입을 열었다.

    “야, 잠깐 망좀 봐줄래.”

    “너, 이새끼 설마.”

    그가 보일러실에서 루미와 뭘 하려는지 대충 짐작한 동료는 살짝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농담이 아니라는 듯 단호했다.

    “저년 때문에 내 순번 밀린거 생각하면 그냥 두고갈 수 없지 않겠어? 미리 약도 마셔놔서 이미 한계라고.”

    “…뭐, 심정은 대충 이해한다만.”

    확실히, 젊은 혈기에 만능약까지 마신거라면 참기 힘들만도 하다.

    그리고 이번에 들어온 약은 진짜 효과가 좋았으니까.

    그는 결국 하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알았어, 그래도 너무 심하게 하진 마라. 알지? 그래도 시약때문에 보스가 관찰하는 애니까.”

    “알아, 알아.”

    -찰칵.

    그렇게 그가 떠났고, 이제 방에는 루미와 그 단 둘이 남았다.

    마침 겨울이라 난방이 가동되고 있어 시끄러운 보일러실.

    여기선 뭘 하든 웬만해선 밖에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시, 싫어…!”

    그 때, 심리적 충격때문에 상황을 뒤늦게 인지한 루미가 돌연 놀라며 뒷걸음쳤다.

    하지만 좁디 좁은 방에는 도망칠 곳 따윈 없었다.

    금방 구석으로 몰려 피할 곳이 없어진 루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의 몸을 있는 힘껏 밀쳤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몸은 역시 어른의 몸을 밀치기엔 너무나 연약하다.

    그야말로 속절없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가여운 발버둥.

    그는 거기에 묘하게 고양되어가는 느낌을 받으며 루미를 더욱 벽으로 밀어붙였다.

    “어차피 너도 어머니의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으니까. 괜찮잖아? 대충 예습한다고 생각하고 가만히 있어. 그러면 나도 그리 심하게는 대하지 않을테니까.”

    “싫어, 싫다고!”

    차가운 겨울의 공기와 보일러실의 열기가 섞인 기묘한 바람이 노출된 루미의 배를 스쳤다.

    그에 다시 심각해져 있는 힘껏 저항해보지만, 역시 역부족이다.

    그래도 그 저항 자체가 완전히 무의미한 것은 또 아니어서, 좀처럼 다음단계로는 이어질 수가 없었다.

    “큭, 이 꼬맹이가-!”

    생각보다 성가신 루미의 저항에 슬슬 짜증이 솟기 시작할 무렵.

    그는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

    뭐랄까, 갑자기 바깥이 어수선해진 느낌?

    아직 무슨 일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보일러실의 소음은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소음 뿐 아니라 밖에서 안으로 들려오는 소리도 마찬가지로 흐릿하게했으니까.

    뭐, 망을 보는 동료에게서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는 걸 보면 분명 별 일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하던 일에 열중하려던 순간….

    -쿵–!!

    굉음과 함께, 불청객이 들어왔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런 내용은 쓰면서도 나 이런거 써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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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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