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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2

        

       도움이 될 물건.

         

       “도움이 될 물건…이요?”

         

       “그러하다. 내 실험해보지는 않았지만, 신력을 저장하기에는 나쁘지 않을 것이니라. 그리고 신력을 저장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자체로도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이니, 인맥을 쌓는 데도 나쁘지 않을 것이니.”

         

       마르크스의 손가락뼈.

       그 물건은 진성이 보기에 사람들의 기원이나 미신과 얽혀있는 것이 많은 물건이었다.

       신력의 특성에 대해서는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지만-

       아마 진성이 생각하는 것이 맞았다면, 마르크스의 손가락뼈는 충분히 리세의 신력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만약 아니라면?

       그래도 큰 상관은 없었다.

         

       그냥 다른 데에다가 사용하면 그만이다.

         

       그 물건을 일본에 있는 공산당 사람들과 친분을 쌓는 데 사용하면 그만이 아니겠는가.

         

       일본은 ‘일본공산당’이라는 정당이 존재한다.

       무려 일본제국 시절부터 활동한, 유서 깊은 정당이었다.

         

       평화주의적 성향, 자유 민주주의의 체제의 긍정과 옹호 등이 특징인 정당인데….

         

       그리 세가 강한 정당은 아니었다.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머리에 꽃밭만 들어찬 놈들’이라면서 욕을 먹고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하지만 기나긴 세월 동안 정당을 유지한 저력은 분명히 존재했다.

         

       다른 정당들이 강력한 권력과 이득으로 뭉쳐 있다면…’일본공산당’은 끈끈하고 끈적한 느낌으로 뭉쳐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일본공산당과 인맥을 만드는 것은 분명히 이득을 가져다주리라.

       ‘축복’으로 점점 여당과 야당에 진성의 영향력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일으킬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득….”

         

       리세는 그 단어를 조용히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진성을 믿겠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진성의 뜻에 따르겠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대마녀가 다리를 꼰 채 앉아있었는데, 그 태도가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누가 본다면 이 방의 주인이 리세가 아니라 오딜리아라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심지어 언제 이야기가 끝나냐는 듯 지루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기까지 했으니.

       리세는 오딜리아의 그런 태도에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거슬려.’

         

       거슬린다.

       손톱 옆에 난 거스러미처럼.

       손톱 아래에 엄청나게 작은 가시가 박힌 것처럼.

       맨발로 걷다가 과자 부스러기가 발바닥에 달라붙은 것처럼.

         

       거슬려.

         

       ‘방해꾼.’

         

       리세에게 있어서 오딜리아는 방해꾼이었다.

         

       좋은 분위기를 두 번이나 망친 방해꾼.

       대체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 것인지-

         

       아니, 안다.

       저 여자에게 그 어떤 의도도 감정도 없었다는 건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연재해처럼, 무슨 악연으로 얽히기라도 한 것처럼 좋은 분위기일 때 두 번이나 튀어나와서 분위기를 망쳐버린 것은…감성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래, 이해하기 힘들다.

       절로 짜증이 조금 솟구쳐 오르고, 자석의 같은 극끼리 밀어내는 것처럼 저항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심정을 느끼는 순간.

       리세는 학창 시절 교토에서 전학을 온 친구에게 배웠던 것처럼, 진성에게 배웠던 것처럼 방긋 웃음을 지어 보였다.

         

       누가 말하길, 미소는 공격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던가.

         

       지금 리세가 짓는 웃음은 바로 그것이었다.

       약간의 공격성.

       약간의 저항감.

       약간의, 거슬림.

         

       그 모든 것이 담겨…방긋 웃으면서도 언제든 공세로 전환할 수 있도록, 그렇게 리세를 무장하게 했다.

         

       진성은 그런 리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렇다면 둘 다 나의 계획에 따라주기로 약조하겠느냐?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에는 무를 수 없음이요, 오직 발을 뺄 기회는 지금밖에 없으니. 말의 무거움을 알고 가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로다.”

         

       오딜리아와 리세에게 자신을 따를 것이냐고 물을 뿐이었다.

         

       “네. 신주님의 뜻대로.”

         

       “네, 뭐…. 할게요.”

         

       그리고 그 대답은 같았다.

         

       리세는 믿음으로 가득한 긍정.

       오딜리아는 약간의 떨떠름함과 망설임을 담은 긍정이었다.

         

       “좋다.”

         

         

         

         

        * * *

         

         

         

         

       미래는 바뀌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아주 약간의 비틀림이고, 그저 약간의 오차로 볼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가볍다고 할지라도 어디 미래까지 가벼울 수 있는가?

         

       나비로 비유할 필요도 없다.

       여행하는 이가 잘 걷다가 살짝 방향이 틀려 걷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잘 세워지던 기둥이 각도가 틀어지거나 위치가 조금 뒤바뀐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여행하던 이의 발걸음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을 때, 그 끝에는 여행자는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 완전히 다른 곳에 있게 될 것이다.

       어쩌면 링반데룽(Ringwanderung)처럼,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같은 자리를 끊임없이 맴돌 수도 있겠지.

         

       건축물의 기둥의 비틀림은 점차 심해질 것이다.

       낮은 층계에서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닐 것이나, 그 층이 쌓이면 쌓일수록 그것은 비틀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비틀림은 점차 커져, 나중에는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무너지며 빌딩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약점이 될 수도 있겠지.

         

       가벼운 것이나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진성은 미국으로 건너왔다.

         

       미래가 어찌 되었는지, 어찌 바뀌기 시작하였는지.

       변수는 무엇인지, 그 변수를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지.

       통제할 수 없으면 예측할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없다면 이용할 수 있는지.

         

       그것을 제대로 체감하기 위하여, 그는 이곳에 있다.

         

       그렇기에 진성은 대마녀의 일에 관여하기로 선택하였다.

         

       오딜리아에게 ‘신주’로서의 자신의 일면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감수하고 말이다.

         

       ‘리세도 이제 나에 대해서 더 알게 되었구나.’

         

       물론 리세가 ‘박진성’에 대해 아는 것은 덤과 같은 이야기였다.

         

       진성이 리세에게 가르치기를 본질이야말로 중요한 것이요, 그 껍데기는 언제든 갈아낄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음이니.

       나무에 칠을 하고 기괴한 형상을 만든다고 하여 그것이 나무가 아닌 것은 아니요, 집이 지역에 따라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던 그 본질은 사람이 머무를 공간임은 분명한 것이라. 그렇기에 낯섦을 느낄 수 있어도 그것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면 그것이 익숙한 것임을 알아낼 수 있는 것이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 본질을 본다면 쉬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니 그것이 바로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가르침 때문일까?

       리세는 진성의 정체에 대해 큰 의문을 품지는 않았다.

         

       물론 궁금하기는 했으리라.

       진성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떤 과거를 가졌는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등-

       리세가 보는 진성은 의문으로 가득한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리세는 거기에 매몰되지 않았고, 거기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서 진성은 ‘신주’였으며, 자신에게 가르침을 내리는 사람이었으며, 자신이 모시는 존재였으며, 자신을 구원해준 사람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것이 바로 리세가 생각하는 진성이었고, 진성의 본질이었다.

       이름이니 과거니 하는 것은 그 본질에 씌워진 가면이고, 칠에 불과한 것이니.

         

       중요한 건 본질이며, 그녀와 함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리세가 진성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는 것은 덤에 불과한 것이다.

         

       리세가 진성에 대해 좀 더 알게 된다고 한들, 그녀의 태도가 바뀔 리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오딜리아도 그럴까?

         

       저 미신에 약하고, 괴팍하지만 여린 면이 있고, 사람에게 잘 속아서 파멸할 정도로 귀가 얇은 대마녀가….

       과연 진성의 또 다른 일면을 보고도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글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회귀 전에 종교인에게 속아 파멸할 정도로 귀가 얇다는 것은.

       진성 역시 그녀에게 무언가를 속삭여 끌고 갈 수 있다는 말과 같음이니.

         

       돌발행동은 억제할 수 있으리란 자신감은 있었다.

         

       그렇기에 진성은 즉석에서 계획을 짤 수 있었다.

         

       “우리 모두에게 이득이 될 이야기를 하겠다. 이는 아주 약간의 위험만이 있을 뿐 그 끝에는 반짝이는 재물이 기다리고 있으니, 참으로 좋은 일이 아닐 수가 없음이라. 하여 너희 둘은 커다란 이득이 기다리고 있음을 명심하고 마음속에 있을 미혹을 지우고 내가 말하는 대로 행하면 되는 것이로다.”

         

       그리고 그 계획이란.

         

       “너희 둘은 지금부터 농장을 점령하게 될 것이다.”

         

       아주 자그마한 테러였다.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지.”

         

       아니, 달리 표현하면 ‘농성(籠城)’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이다.

         

         

         

         

        * * *

         

         

         

         

       “네?”

         

       “응?”

         

       둘은 귀를 의심했다.

         

       리세는 진성의 말에 반문하였다가 그의 말을 곱씹고는 눈이 살짝 커졌고, 오딜리아는 꼬았던 다리를 풀고 허리를 곧게 폈다.

         

       그리고 둘은 거의 동시에 항의의 말을 외쳤다.

         

       “신주님! 저분과 일을 둘이서요?!”

         

       “잠깐! 농장을 점령한다니?!”

         

       그런데, 둘의 항의에 차이가 있었다.

         

       오딜리아는 ‘농장을 점령’한다는 말에 깜짝 놀랐지만, 리세는 ‘너희 둘’이라는 단어를 듣고 깜짝 놀란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이 둘의 항의는 비슷하게 보이나 크나큰 차이가 있었고….

         

       “….”

         

       …그것을 눈치챈 오딜리아는, 리세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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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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