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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3

    루크는 눈앞에 펼쳐진 도시의 새로운 일면을 보고는 생각했다.

    ‘아마 진짜는 여기였던 모양이군.’

    벌레꼬치가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일정도로 낙후된 지역인 주제에, 이곳만큼은 웬만한 도시의 그것에 못지 않다.

    그러니까, 시선의 아래에 야시시한 사진이 인쇄된 명함이나 전단지가 지저분할 정도로 널려있고, 온갖 정신없는 문구로 도배된 입간판같은 정신없는 풍경이 말이다.

    ‘뭐, 이런 것이 꽤 많을거라는 건 루미가 ‘가장’ 큰 가게로 안내해줄 수 있다고 말했던 때에 어느정도 짐작이야 했다만….’

    ‘가장’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비교군을 필요로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적어도 두곳 이상일거라는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설마 이정도로 유흥업만이 기형적으로 발달했을 줄이야.

    로제프가 대체 무엇때문에 이렇게나 이쪽에 투자를 해댄건지 대충 짐작은 간다만.

    그나저나, 왜 하필 여길까?

    약을 유통하려면 굳이 이런 가게가 아니라도 충분하지 않나?

    번듯한 약국이 있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중심가쪽에서 판매하는 게 접근성은 훨씬 더 좋을텐데.

    루크는 조용히 목에 손을 가져다대며 입을 열었다.

    “시에나, 이야기했던 거리에 도착했다.”

    그러자 머지않아 시에나로부터 답장이 돌아왔다.

    “뭐? 벌써? 지금 고작 몇분밖에 지나지 않았잖아?”

    시에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직원을 심문해 얻어낸 정보로는 루크가 있는 장소까지의 거리가 아무리 빨라도 대략 20분정도는 걸리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크는 그야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하며 말했다.

    “길을 무시하고 직진거리로 달리면 금방이야. 아무튼, 여기서 이제 그 남자가 말했던 가게로 찾아갈 예정이다.”

    그래, 구불구불한 골목길만 아니라면 그 속도도 이해는 되려나.

    그렇게 생각한 시에나는 루크에겐 보이지 않겠지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루크가 건네준 조그만 수신기에 대고 말을 이었다.

    “조심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말하고. 이자식 조져버리고 바로 따라갈 테니까.”

    시에나의 살벌한 대답에 통신회선 너머로 ‘히익!’하는 소리가 잠깐 새어들어왔다.

    하지만 루크는 건물에 들어서기 이전부터 이미 이 건물이 틀리지 않을거라고 짐작했다.

    왜냐면, 근처에서 익숙한 천조각이 쓰레기통에 들어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저건 루미의 겉옷……’

    그 끔찍했던 하수통로의 냄새는 잊어버리기 쉽지 않지.

    루크는 그렇게 시에나와의 통신을 끊고 건물로 들어섰다.

    그러자 곧바로 그런 루크를 맞이해주는 한 무리의 남자들.

    “뭐야, 너? 지금 클럽은 영업 안하는데. 아니면, 신입으로 들어오고 싶어서 찾아온거냐?”

    -……….!!

    다가오는 그들 뒤로 이름모를 시끄러운 음악이 건물 안쪽에서 울려퍼지는 것을 들으며, 루크는 마법에 방해되는 케이프를 벗으며 웃었다.

    미인계를 두번 쓸 필요는 없겠지?

    —–

    파괴된 음향기기가 나뒹구는 무대의 스산한 침묵속, 정신이 나갈것처럼 흔들거리는 댄싱라이트가 주변의 처참한 광경을 비추고 있다.

    루크는 육편과 피, 그리고 마법의 유탄으로 발생한 건물의 바닥과 천장, 벽면에서 떨어진 잔해들을 내려다보며 한숨지었다.

    “흐음. 일단 이 꼴은 시에나에게 보이지 않기를 잘했군, 그래.”

    그나저나, 시에나를 로제프가 돌아올 때를 대비해야한다는 핑계로 저택에 떼어두고 온 것은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경찰인 그녀의 앞에서 이런 끔찍하고 충격적인 광경을 보였다간 분명 엄청나게 시달릴 것 같았으니까.

    사실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11살이기에 공식적으로 문제가 될 일은 없겠지만, 시에나가 자신을 보는 눈빛이 달라질 것 같달까?

    안그래도 시간도 없는데, 그런 것까지 감당하라면 극구 사양이었다.

    루크는 그들의 주머니에서 익숙한 형태의 액체가 담긴 약병을 꺼내들고는 묻은 피를 케이프에 대충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역시 전부 루체스트가 계획한 일이었어.”

    아니나 다를까, 시체의 마력반응을 보니 이들은 이미 도플갱어에 깊게 침식되어있는 상태였다.

    도플갱어 슬라임.

    루체스트의 최신 연구결과이자, 세상의 모든 질병과 장애를 완전히 치유할 수 있는 차세대 의학기술이라 광고하는 물건.

    실제로 도플갱어가 이식된 이에게서 보이는 신체수복력은 가히 ‘초재생’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결코 ‘만능’은 아닌지라, 도플갱어는 숙주를 내부에서 집어삼키고 그 자리를 대체한다.

    그렇게 완전히 대체되는 순간, 그는 겉으로는 분간할 수 없지만 본질은 이미 언데드나 다름없는 상태가 된다.

    그러니까 엄밀히 따지자면, 이건 살인은 아닌 셈이다.

    뭐, 실제 살인이라 하더라도 딱히 죄책감이 느껴지진 않을 것 같지만.

    그러나, 이들이 지닌 슬라임은 그 기적같은 회복력을 기대하긴 어려울 정도로 순도가 매우 떨어진다.

    파괴된 신체부위를 대체하며 재생하지 못하는 걸 보면, 활동성도 그다지 뛰어나지 못한 것 같고.

    그럼에도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부정형으로 뭉쳐 자립성을 갖추기는 할 것이다.

    하수통로의 그 기묘한 아종 슬라임처럼.

    역시 그건 모종의 이유로 거리에서 하수구를 통해 버려진 도플갱어가, 벌레와 쥐를 집어삼키며 군집체를 이룬 결과일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루크는 그들의 시체와 피를 마법으로 들어올려 준비해둔 별도의 아공간구슬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단지 증거를 인멸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가만 두었다간 이 또한 제물로서 작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서였다.

    그중에 상태가 괜찮은 건 나중에 개인적으로 재료나, 연구용 샘플로 잘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뭐, 상태를 보아하니 썩 유용할 것 같지는 않다만.

    “흠, 내가 너무 심했나.”


    사실, 루크는 마음만 먹으면 전부 비살상제압을 하는 것도 어렵지는 않았다.

    슬립마법만 하더라도 거리 전체를 재워버릴 수 있을텐데, 굳이 이렇게 현장을 어지럽힐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루크가 이토록 파괴적인 행위를 한 것엔 이유가 있었다.

    도플갱어의 침식여부를 판단하는 방법은 현재, 숙주의 사망 시 발생하는 특이한 마력반응 외엔 실질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확실히 도플갱어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도록 인지시켜 활성화시킨 상태로 죽이는 것 뿐.

    그리고 그것에는 보통 화형이 가장 보편적이다.

    작열하는 강한 고통으로 확실히 죽음을 인식시켜 도플갱어를 활성화시킴과 동시에, 사망시 발생하는 마력이 불과 반응해 불이 검은 색으로 타오르니까.

    하지만 이렇게 목제 건물이 불안하게 다닥다닥 모여있는 곳에서 불을 질렀다간 걷잡을 수 없게 타오를 위험이 있다.

    너무 눈에 띄기도 하고.

    마력시가 있으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심장을 꿰뚫든, 목을 취하든, 머리를 터트리든, 죽음만 관측할 수 있으면 도플갱어의 반응은 확인할 수 있으니.

    그러고보면, 과거 한 마을을 통채로 몰살시켜버렸을 때에도, 도플갱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원인이었지.

    5000년 전엔 그들이 도플갱어가 아니라서 레니에와 함께 수습하느라 고생하긴 했지만, 지금은 반대로 시체를 수습하기위해 고생이라니.

    참 아이러니한 역사의 반복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금세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정갈한 상태로 돌아온 복도를 돌아보면서, 루크는 흐트러진 자신의 옷매무새도 함께 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허면, 이제 루미가 문제로군.”

    만능약의 정체가 도플갱어 슬라임 확실해졌고, 루미 또한 그 약물을 복용해 신체재생을 이뤄낸 거라면, 역시 루미는 이미 침식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역시 죽여야할까?’

    지금으로서 도플갱어 문제를 처리할 유일한 방법은 오로지, 의심되는 자들을 전부 죽이는 것 뿐이다.

    죽은 몸에 갇힌 산자의 영혼은 언제든지 루체스트의 꼭두각시가 될 위험이 있으니까.

    그들이 언데드로서 활성화되기 전에 해결하는 방법은 오직 죽은 몸에서 산자의 영혼을 빼내는 것. 

    즉, 죽음이다.

    굉장히 안타깝지만, 루미는 이미 꽤 오래전에 도플갱어에 침식되어서 분리가 불가능한 상태.

    따라서 루미도 루체스트에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죽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시 전체에 동일한 처리를 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칫하면 그 처분행위 자체가 ‘의식’의 트리거가 될 수도 있기에.

    그렇게되면 루체스트가 할 일을 제 마나를 들여 대신 해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면 아이의 죽음이 대체 무슨 의미지?

    어차피 상황에 도움도 되지 않을텐데?

    “골치아프군.”

    여러가지로 찝찝하고 복잡해진 상황 속, 루크는 일단 눈앞의 문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루미는 지금 어디있지?’

    어떤 선택을 하든, 일단 루미가 눈앞에 있어야 할 수 있는 법이다.

    건물 전체를 뒤졌는데도 루미의 흔적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주고 루미가 받아챙겼던 꼬깃꼬깃한 신권지폐가 아무에게도 없던 걸 보면 약을 사간 것 같지도 않고, 루미가 들렀을만한 장소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군, 분명 밖에 있던 것은 루미의 겉옷이었을텐데……

    ‘혹시, 여기 말고도 약물을 구할 수 있는 다른 곳이 있나?’

    바로 그 때였다.

    -두근.

    “이 느낌은…….”

    어딘가 익숙한 느낌.

    칸타시스의 것을 본따 만들어낸 심장이 공명하는 느낌이었다.

    —-

    -쿵!


    “뭐, 뭐야? 네녀석?!”

    “외부인언니!”

    난방장치의 작동음이 꽤 시끄러운데다 단서도 딱히 없을 것 같아서 무시했던 곳이었지만, 설마 이런 곳에 있었을 줄이야.

    보일러실에서 루미를 본 루크는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런가. 그런 거였군.”

    “너, 넌 대체 뭐야! 여긴 어떻게 들어온거지! 밖에 있던 사람들은 다 어떻게 했어!”

    그의 절규같은 외침을 들은 루크는 그저 무표정한 모습으로 그에게 한걸음 다가갔다.

    “내가 어쨌을거같나?”

    그의 목 뒤로 식은땀이 한줄기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보니 이상했다.

    지금은 무대에서 밤에 사용할 노래를 한창 테스트할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조용했고, 당연히 들려야할 사람들의 발소리나 말소리 같은 것도 전혀 들려오지 않았으니까.

    반면, 루미는 이 순간 가장 반가운 얼굴에 기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도시에서 만난 이들중 자신에게 가장 호의적이면서도, 가장 강할것이 분명한 사람이었으니까.

    “외부인언니! 도와주세요!”

    그러나 루미는 자신이 도움을 청하는 말은 자신을 억누르고있던 그에게도 똑똑히 들린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대충 그녀와 루미의 관계를 파악한 그는 곧장 루미를 억누르고 있던 자세를 고쳐서 루미를 인질로 붙잡아 협박하기 시작했다.

    -찰칵!

    “다, 다가오지 마! 가까이 오면 이 꼬마 죽여버릴거야!”

    그의 주머니에서 칼이 꺼내어져 루미의 얼굴에 닿았다.

    루크가 루미와 아는 사이라면 루미가 인질로서 충분히 작용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루크는 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하, 하하하! 좋아, 이제 말이 통하는 것 같네!”

    “외부인언니….”

    루미는 자신의 뺨에 닿은 날카롭고 차가운 감촉과, 걸음을 멈춰버린 루크의 모습에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참, 어리석기도 하지.”

    “뭐? 지금 누구한테 어리석다고 하는 거야? 애 죽는 꼴 보고싶어?!”

    하지만 루크는 콧방귀를 뀌며 평온하게 대답했을 뿐이다.

    “상관 없다.”

    “언니?”

    루크의 대답에 루미는 순간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하기사, 그녀는 오늘 하루 잠깐 만난 사이에 불과하다.

    반나절동안 함께 거리를 누비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나름 친해졌다곤 하나, 결국은 서로 사정이 있어서 거래를 나눴을 뿐인 비즈니스관계.

    구태여 나서서 목숨을 구해줄 의무따윈 없는 것이다.

    ‘그래, 어차피 난 혼자였으니까.’

    그것을 깨달은 후, 루미는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고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루미의 반응을 본 남성도 덩달아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 이런 인질로도 못써먹을 꼬맹이가!’

    결국 그는 루미에게 겨눴던 칼을 그대로 다가오는 루크를 향해 앞으로 내밀며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오, 오지 마. 오지말라니까! 진짜 죽일거야!”

    루미는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는 그의 팔에 더욱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목이 어찌나 강하게 졸렸는지, 금세 눈 앞이 흐려지기 시작할 정도.

    “으욱…….”

    그렇게 루미는 잠깐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

    다시 눈을 떴을 땐, 이상한 게 보이고 있었다.

    “……어?”

    이건 꿈인가?

    대체 어떻게 된거지?

    저기 하늘에서 돌고 있는 거, 사람 머리야?

    -푸슈우욱–!!

    하지만 그것은 꿈이 아니라는 듯, 그녀의 뒤쪽으로 핏물이 튀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엄청난 양의 피에, 루미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루크를 올려다보았다.

    “심장의 상태는 어때. 괜찮나?”

    “네, 네에…….”

    “다행이로군.”

    루크는 안도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루미는 그녀가 자신을 구한 게 맞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가, 감사사, 합니…”

    어, 이상하다.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아.

    왠지 몸도 엄청 떨리고…….

    “자, 그럼…….”

    그때, 들려온 루크의 목소리에 루미는 다시 루크를 올려다보았다.

    “다음은 네 차례다.”

    “히, 히익…!”

    그리고 이어진 루크의 말에 루미는 기절했다.

    “…어? 잠깐! 내 말은, 이제 네가 얘기할 차례라는 뜻이었다! 루미! 정신차리거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또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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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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