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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3

        

       하지만 리세는 오딜리아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오딜리아가 자신을 경계할 것이라는 생각을 추호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진성에게 한 항의의 말은 영어도 한국어도 아닌, 일본어였으니까 말이다.

         

       “….”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딜리아는 일본어를 할 줄 알았다.

       어쩌면 한국어보다도 더더욱 능숙하게 말이다.

         

       그녀는 한때 광기가 휩쓸었던 독일에서 태어났으며, 그곳에서 선전에 사용된 과거가 있었다.

       그리고 나치 독일과 일본제국은 한때 동맹이었으며, 꽤 가까운 사이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오딜리아는 일본어를 어느 정도 익히게 되었으며, 일본와의 교류를 나누는 자리에 여러 번 참석하기도 했다.

         

       오래된.

       떠올릴 때마다 생생했던 광기가 떠오르는 그때의 기억.

         

       그 기억은 강렬하게 그녀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고, 그때 익혔던 일본어는 과거를 부정하지 말라는 듯 그녀의 머릿속에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오래오래 남으며 그녀의 일부가 되었고, 일본이 전쟁특수로 다시 일어서고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부유한 국가가 되었을 때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일본은 경제 호황 당시 ‘이코노믹 애니멀’이라는 별명으로 돈 버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으며, 벌어들인 돈으로 세계 곳곳에 여행을 다니며 사치를 부리곤 했다. 그리고 오딜리아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일본에 진출하거나 일본 기업과 손을 잡았고, 크게 사업을 일으킬 수 있었다.

         

       지금도 그녀의 사업체는 일본에 단단하게 자리를 잡은 상태였고, 몇몇 브랜드의 경우에는 아예 일본 토종 브랜드라고 오해까지 받을 정도였는데….

         

       “….”

         

       그렇기에 오딜리아는 리세가 한 말을, 그 안에 담긴 뉘앙스까지 전부 파악할 수 있었다.

         

       테러하는 것 자체에는 아무런 부담감이 없는.

       하지만 자신과 함께 테러하는 것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리세의 저 말에 담긴 뜻을 말이다.

         

       오딜리아는 당황과 경계가 섞인 눈으로 진성과 리세를 번갈아 보았다.

       진성은 이러한 시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며 오딜리아와 눈을 마주쳤고, 눈웃음을 지으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얼핏 자연스럽게 보이는 그 미소는 경계를 풀게 만드는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테러’라는 행위가 저 미소 짓고 있는 입에서 나왔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저 미소가 더더욱 위험하게 보였다.

         

       “마녀.”

         

       진성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저음은 그녀의 직업을 말하고 있었다.

         

       영어로.

         

       “대마녀.”

         

       그리고 이윽고 다음에 나오는 말은 독일어였다.

       그것도 베를린 근방에서 들을 수 있는, 강한 억양의 독일어.

         

       강한 억양의 독일어는 대마녀에게 친숙하게 들리는 것이었지만….

         

       어째서일까.

       어째서 저 저음의 소리가, 그녀의 몸을 덮치고 사슬로 옭아매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강하게 억압하고 폭압적으로 찍어누르듯.

       그의 입에서 나온 ‘대마녀’라는 단어는 그녀의 정신을 찍어누르고, 그녀의 고개를 강제로 진성이 있는 쪽으로 고정하는 것 같은.

       그런 착각이 들었다.

         

       “오딜리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리는 것은 일본어 발음의 소리.

       일본인이 외국어를 할 때의 특징이 모두 묻어있는, 그러한 소리.

       하지만 기이하게도 그러한 특징 때문에 진성이 더더욱 낯설고 기묘하게 느껴진다.

       눈앞에 있는 존재가 자신과 근본적으로 무언가가 다른 존재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낯설다는 감정은 곧 공포와 경계로 바뀐다. 하지만 그런데도 고개를 돌릴 수가 없다. 눈이 계속해서 마주친 상태로, 눈동자를 바라보고. 눈동자 안에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본다.

       불꽃이 흔들흔들, 흔들흔들.

       눈동자를 제물로 불타오르는 것처럼 안에서 솟구쳐오르는 불꽃은 하늘거리고 있었고, 그것을 보면 볼수록 멍한 느낌이….

         

       “힉!”

         

       그 순간.

         

       오딜리아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비틀었다.

         

       그녀는 잠깐 졸았다가 깨어난 사람처럼 놀란 표정을 지었고, 그녀의 몸은 한차례 전기가 훑고 지나가기라도 한 듯 움직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격렬한 움직임에 그녀가 앉고 있던 의자 역시 호응해주었고….

         

       “어? 꺅!”

         

       쿠당탕!

         

       그녀와 함께 뒤로 넘어가 버렸다.

         

       오딜리아는 소녀 같은 비명을 지르며 의자와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덜컹.

         

       오딜리아는 자신이 뒤로 넘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기 무섭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의자를 세우고, 다시 앉고, 아까와 똑같은 자세로 앉았다.

         

       마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온몸으로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

         

       어떻게 아무 일도 없는 것이 될 수 있겠는가.

         

       목격자가 두 명이나 있는데.

       당사자조차도 조금 전 일이 창피해서 귀가 빨갛게 되었는데.

         

       “….”

         

       오딜리아는 진성과 리세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그러면서도 어서 하려고 했던 말을 계속하라는 듯, 진성에게 손짓했다.

         

       모르는 척하고 빨리 설명이나 계속하라는 부끄러움 섞인 재촉이었다.

         

       진성은 오딜리아의 그 필사적인 손짓을 외면하지 않고, 방긋 웃으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단어의 사용이 거칠기는 하지만 내가 하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니라. 폭력이 있기는 하나 잔혹하지는 않은. 그래, 애니메이션 느낌의 그런 것이니라.”

         

       애니메이션.

         

       그 단어를 듣자 리세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애니메이션이라니?

         

       리세가 아는 애니메이션은 폭력적인 장면이 꽤 많은 것이었다.

         

       로봇끼리 싸우거나, 닌자끼리 싸우거나, 능력자끼리 싸우거나, 무도대회 같은 것이 열리거나….

         

       그녀의 머릿속에서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은 소년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폭력적이지 않은’ 애니메이션이라고 했을 때, 그 이미지를 쉽게 그리지 못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녀는 이어지는 진성의 말에,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영화관에서 볼법한, 아이들이 부모님의 손을 꼬옥 붙잡고 와서 보는 그런 느낌의 애니메이션을 떠올리면 되느니라. 아기자기한 분위기이지 않으냐?”

         

       영화관.

         

       리세는 그 단어를 듣자 진성이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3D 애니메이션.

       장난감이 살아서 움직이고, 하늘에서 스파게티가 떨어지기도 하고, 멸치 떼가 우주로 날아오르더니 은하 저 너머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사이보그 고래가 공룡들과 힘을 합쳐서 운석을 막기도 하는 그런 느낌의 애니메이션!

         

       “마녀는 무생물을 움직일 수 있게 해주고, 생명을 변이시킨다. 청소기가 스스로 움직이게 할 수도 있고, 나무가 뿌리로 걸어 다니게 할 수도 있지. 펭귄이 하늘을 날아다니게도 할 수 있으며, 고래가 가지고 있는 지느러미를 발로 만들어서 육지를 활보하게 할 수도 있음이라. 위치크래프트란 그런 것이고, 생명력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진성의 설명은, 리세가 떠올린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위치크래프트를 조금 세련된 형태로 사용한다면, 재미있는 일을 벌일 수 있지. 누군가에게는 테러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농성일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골탕이며, 누군가에게는 장난이 될 수 있는. 그러한 일이로다.”

         

       진성은 그렇게 말하며 오딜리아를 바라보았다.

         

       ‘장난’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면서 말이다.

         

       “…더 자세히 들을 수 있나요?”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오딜리아는 아까보다 훨씬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장난이라는 단어 때문에 반발심이 줄어든 것일까?

       아니면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는 생각에 이성이 살짝 마비된 것일까?

       그 이전에 있었던 기묘한 일 때문에?

         

       이유는 알 수 없다.

       아마 오딜리아 본인도 모르고 있겠지.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자아, 나의 설명을 잘 듣도록 하여라. 생명력이 그릇이라면 신력은 그 안에 담긴 액체와 같은 것이라. 그렇기에 잠시나마 사용할 수 있는 그릇을 빚어….”

         

       오딜리아는 이 일을 하게 되리라.

         

       진성의 뜻에 따라서.

         

         

         

        * * *

         

         

         

         

       자연이라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것이다.

       압도적인 초록색의 향연은 보기만 해도 압도되는 느낌을 주며, 그 초록색의 바다에 뛰어들게 된다면 주변의 모든 것이 적이 된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나무가 울창한 곳에서는 나무 사이에서 맹수가 있지 않을까, 괴물이 있지 않을까, 사람의 가죽을 벗기는 끔찍한 존재가 있지 않을까 하는 무서운 상상마저 하게 만들고, 밝은 빛을 갈망하고 또 갈망하며 기어이 손전등을 들게 만든다.

       그러다가 편히 쉴 수 있는 곳에 도달하게 되면 모닥불이라도 피워 주변을 밝히게 만드니, 이는 온기와 빛이 없으면 자연 속에서 몸을 건사할 수 없을 것이라는 공포심이 불에 집착하게 만드는 까닭이다.

         

       “저놈의 숲….”

         

       그렇기에, 그는 숲이 싫었다.

       울창한 나무가 싫었고, 나무가 자아내는 그늘도 싫었으며,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미지의 공간 역시 싫어했다.

         

       한낮에도 빛이 닿지 않는 곳을 바라보고 있자면 타오르는 두 개의 불빛이 흔들거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한다. 그리고 저 반짝이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것이 과연 어떤 동물일까. 혹 늑대나 퓨마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면, 자연스럽게 벽에 걸어둔 헌팅 라이플을 쥐고 그곳을 겨누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헌팅 라이플을 겨누고 나면 그 빛은 사라져버린다.

       마치 헛것을 보았다는 것처럼.

       혹은 남자를 조롱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남자는 그게 너무나도 싫었다.

         

       그랬기에, 숲을 모조리 밀어버렸다.

         

       『 숲은 어느 정도 남겨두도록 해라. 목재는, 네가 실패한다고 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도와주는 보험이 될 테니….』

         

       아버지의 유언이 있었음에도.

       저 숲에 있는 나무들이 소중한 자산임을 알고 있음에도.

         

       숲을, 밀어버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눈에 거슬려….”

         

       숲이 싫다.

       숲을 볼 때마다 위협을 느끼는 것이 싫다.

       어린 애새끼처럼, 숲에 공포를 느낀다는 것이 싫다.

       숲을 볼 때마다 가족을 위협하는 맹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도 싫다.

         

       그냥, 숲이 싫었다.

         

       하지만 싫다고 해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저 숲.

       그가 밀지 못한 저 숲.

       농장 바깥이기에, 그가 주인이 아니었기에 밀지 못한 저 숲….

         

       저 숲은, 정말로.

       정말로 눈에 거슬리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남자는 눈엣가시처럼 밟히는 저 숲을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가-

         

       이내 넓디넓은.

       저 잔재만 남은 숲과는 다르게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자신의 농장을 보고는-

         

       “쯧. 뭐, 언젠간 기회가 있겠지….”

         

       -언젠가 저 숲이 있는 땅을 사서 싹 밀어버리겠다고 생각하며, 숲에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남자가 떠나간 뒤 홀로 남겨진 숲은.

         

       [ 히힛. ]

         

       외로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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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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